거리로 나온 감정들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1970년대 미술관의 흰 벽 앞에는 차갑고 초연한 추상미술이 군림했다.

지나치게 지적이고 내적이며,

때로는 난해하기까지 한 그 작품들 앞에서 사람들은 감정보다 이론을,

직관보다 해석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화가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제 그만 차가운 머리에서 벗어나 뜨거운 가슴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라는 반란이 시작되었다.


신표현주의는 형상성과 예술성의 회복을 외쳤다.

추상의 안개 속에 감춰졌던 인간의 육체, 알아볼 수 있는 대상들이 다시 화폭 위로 돌아왔다.

이것은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의 절정을 알리는 새로운 선언이었다.


20251210_120407.jpg 게오르크 바젤리츠, Rebel, 1965


적극적인 작품판매 방식, 언론의 주목, 큐레이터들의 활발한 활동이 맞물리며

신표현주의는 순식간에 미술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 운동의 매력은 그 다양성과 공통성의 역설에 있다.

표면상으로는 작가마다 너무나 다른 스타일을 보이지만,

그들은 몇 가지 뚜렷한 특성을 공유했다.


먼저 전통적인 구성과 구도의 기준을 과감히 거부했다.

도시생활의 혼란스러운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했고,

무언가 메시지가 있는 것 같지만 명확히 알아차릴 수 없는 애매모호함을 의도적으로 유지했다.


신표현주의자들은 이상과 규범, 질서의 틀을 거부하며

자유로운 개인의 상징체계를 구축하려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종교나 사상에 관계없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세계적인 메타포를 사용했다.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 모순적 균형이야말로 신표현주의의 핵심이었다.


색채의 사용도 파격적이었다.

선명하지만 서로 어울리지 않는 배색을 대담하게 이용했고,

물감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금속, 지푸라기, 깃털, 말린 꽃 등 다양한 오브제를 화폭에 붙여 조형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때로는 부자연스럽고 풍자적이었지만,

그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현대 도시의 풍경이었다.


1.jpg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마르가레테 너의 금빛 머리(your golden hair Margarete), 1980


독일에서는 안젤름 키퍼가 거대한 캔버스에 역사의 무게를 담아냈다.

그의 작품들은 나치 독일의 어두운 과거와 대면하며,

지푸라기와 납 같은 물질을 사용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시각화했다.


게오르크 바젤리츠는 인물을 거꾸로 그리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관습적 시각을 전복시켰다.

그의 '거꾸로 된 숲' 연작은 형상성을 유지하면서도 추상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Georg-Baselitz-Adieu-1982.jpg 게오르그 바젤리츠 Georg Baselitz, 아듀 Adieu, 1982


미국에서는 줄리언 슈나벨이 깨진 접시 조각들을

캔버스에 붙이는 혁신적인 기법으로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폭스(Fox)'나 '아디외(Adieu)' 같은 작품에서 그는 거친 질감과 강렬한 이미지로

현대인의 파편화된 정신세계를 표현했다.


222.jpg 줄리안 슈나벨(Julian Schnabel, 1951~), What once denoted chaos is now a matter of record, 1981


데이비드 살레는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을 병치시켜 포스트모던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의 트란스아방가르디아(Transavanguardia) 운동도 신표현주의의 한 축을 이루었다.

산드로 키아는 원시적이고 신화적인 이미지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프란체스코 클레멘테는 인도를 여행하며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육체와 정신,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자화상 연작들은 인간 내면의 다층적 정체성을 탐구한다.


1046986_598567_254.jpg 데이비드 살레, 'Tree of Life, Heavenly', 2022


신표현주의는 단순히 표현주의의 재탕이 아니었다.

그것은 냉전시대의 불안, 소비사회의 공허함, 도시문명의 혼란을 몸으로 감각하고

캔버스에 토해낸 시대정신의 표현이었다.

1970년대의 차가운 이성이 놓친 것들-감정, 육체, 이야기, 역사-을 다시 불러들였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조형언어를 만들어냈다.


물론 비판도 있었다.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난,

유행에 편승했다는 지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하지만 신표현주의가 남긴 유산은 분명하다.

회화가 죽었다고 선언되던 시기에 회화의 가능성을 다시 증명했고,

미술이 거리로, 삶으로, 감정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캔버스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Sandro_Chia,_Almost_a_Kiss_3,_2009..jpg Sandro Chia, Almost a Kiss 3, 2009


631135c0a6b035ecimage_02.jpg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작가의 스튜디오



https://youtu.be/slpS9jZQm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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