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한 화면에 같은 얼굴이 여러 개 등장한다.
하나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고 있고, 다른 하나는 냉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내려다본다.
사샤 고든(Sasha Gordon, 1998~)의 초현실적이면서도
놀랍도록 정밀한 자화상 앞에서는 ‘자아’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린다.
폴란드계 유대인 아버지와 한국인 이민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백인 중심의 보수적인 뉴욕 교외 지역에서 자란 그녀의 작품은 혼혈, 여성, 퀴어로서의
정체성이라는 복잡한 지층을 한데 드러낸다.
그녀의 캔버스는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자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격렬한 실험의 장이다.
고든의 그림은 기술적 정밀함과 기괴한 내러티브가 공존한다.
그녀는 르네상스 거장들의 영향을 받은 동시에,
선명한 네온 색상과 광택 나는 피부 표현으로 초현실적이고 때로는 SF적인 분위기를 창조한다.
이 모든 기법은 ‘자신’이라는 주제를 향해 집중된다.
고든은 일상의 불안과 트라우마를 그림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표현한다고 말한 바 있다.
첫 이별의 상처를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오마주하여 그린 ‘Like Froth’처럼,
그녀의 작품은 개인적 경험이 예술사적 레퍼런스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2025년 데이비드 츠비르너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Haze〉는 이러한 내적 투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표작 ‘Pruning’에서 고든은 물이 가득 찬 수족관 안에 갇힌 자신을 그린다.
밖에서는 또 다른 자신(혹은 압제자)이 그녀를 물속으로 눌러 담그고,
그녀의 무릎은 유리를 향해 힘껏 밀어붙여 금이 가게 만든다.
올곧게 관객을 응시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절망보다는 도전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성별과 인종으로 인한 사회적 속박을 은유하며,
타자화된 존재가 어떻게 그 속박 자체를 깨부수려고 발버둥치는지 보여준다.
‘Concert Mistress’(2021)에서는 광활하게 웃으며 바이올린을 켜는 자신을 그려
‘모범적 소수자’라는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아이러니한 주석을 달고,
‘Campfire’(2021)에서는 한 화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통해 레즈비언 아시아계 소녀로서의 성장 경험을 반추하고 치유한다.
사샤 고든의 예언자적인 힘은 그녀가 ‘누구’를 그리는가에 있지 않다.
그녀는 오히려 ‘단일한 나’라는 환상을 해체하여,
우리 모두 내부에 감춰둔 수많은 얼굴—망가진 자, 가해자, 방관자, 생존자—을 직시하도록 강요한다.
그녀의 캔버스는 자화상을 통해 정체성의 유동성과 분열을 탐구하는 동시에,
아시아 여성의 성적 대상화나 미술사 전통에 대한 정면 도전과 같은 사회적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이 모든 것이 기법의 화려함 너머,
그녀의 작품을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젊은 화가의 작업으로 만든 핵심이다.
그녀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단지 한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다.
그 반짝이는 유막(釉膜) 너머, 우리 자신의 속박과 분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생명력에 대한 투쟁이 비쳐 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샤 고든의 자화상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확장된 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