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뒷면에 그림을 그린다.
물감을 바른 뒤 유리를 뒤집어,
그 너머로 완성된 그림을 감상하는 예술 형식을
리버스 글라스 페인팅이라 부른다.
이 기법의 기원은 아득하다.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기원전 4세기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하며,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중세 예술로 다시 태어났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베네치아 근처 무라노 섬의 화가들이 이 기법을 널리 활용했고,
작은 교회 제단화를 장식하는 데 주로 쓰였다.
미국에서는 1815년부터 1850년경까지 연방주의 시대에 크게 유행하며
시계와 거울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후 값싼 인쇄물의 등장으로 점차 잊혀져 갔다.
그 잠든 기법을 깨운 것은 20세기 초 청기사파(Der Blaue Reiter)였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생애에 걸쳐 70점 이상의 리버스 글라스 페인팅을 제작했으며,
프란츠 마르크와 가브리엘레 뮌터도 이 기법에 매료되었다.
칸딘스키의 첫 리버스 글라스 작품 〈황색 말과 함께(Mit gelbem Pferd)〉는
윤곽선이 부족해 다소 평면적으로 보이지만,
점차 숙련되면서 그의 작품들은 더욱 유희적이고 다층적으로 발전해 갔다.
현대에 이르러 이 기법을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작가가 있다.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버지니아 가발도 윌리스(Virginia Gabaldo Willis)다.
그녀의 작업은 대형 가마에서 세 겹의 유리를 구운 뒤,
분말 형태의 준보석·티타늄·운모·희귀 안료를 이용한
침전 과정으로 유리 뒷면에 그림을 입히는 방식이다.
마른 호수 바닥이 물에 잠길 때의 침전과 증발,
건조를 모방한 이 과정은 지질학적 시간 자체를 화폭으로 삼는다.
수정 같은 외피에 싸인 그녀의 작품은 지구 깊숙이 묻혀 있던 고대의 층을 들여다보게 하며,
지극히 짧은 시간을 살면서도 지대한 흔적을 남기는 인간 존재의 역설을 조용히 일깨운다.
https://youtube.com/shorts/0M8TKZKRmo4?si=TT_QTOXL8v84NGhr
이 기법의 매력은 단순히 역순으로 그린다는 데 있지 않다.
붓이 닿는 모든 순서가 뒤집힌다.
하이라이트가 먼저이고, 배경은 가장 나중에 온다.
화가는 결과를 먼저 그리고 과정을 나중에 채운다.
시간을 거꾸로 사는 사람처럼.
그리고 그림을 완성하고 유리를 뒤집어 뒷면에 비친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은은하게 빛나는 질감이 눈을 사로잡는다.
그 어떤 캔버스도 흉내 낼 수 없는 발광이다.
안료가 유리에 밀착되어 있기에, 색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것이 된다.
리버스 글라스 페인팅 앞에 서면 묘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내가 보는 것은 그림의 앞면이지만, 작가의 손이 닿은 것은 뒷면이다.
우리는 언제나 화가의 손길과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작품을 만난다.
그 얇은 투명함이 거리를 만들고, 동시에 빛을 통해 연결을 만든다.
어쩌면 예술이란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에 놓인 투명한 한 겹 —
서로를 선명하게 보여주면서도 결코 완전히 닿을 수 없게 하는 그 아름다운 거리.
유리는 투명하다.
그러나 그 뒤에 무엇을 숨기느냐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깊은 색을 품은 사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