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유럽 경제 특히 독일 경제의 신화를 이야기하려면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폐허 위에서 일어선 독일이 세계 4위 경제 대국까지 올라간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사람들은 이걸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기적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별로없다.
물론 독일인들의 근면함, 뛰어난 엔지니어링 역량 이런 것들이 중요했지만,
그 이면에는 아무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 두 가지 기둥이 있었다.
첫 번째 기둥은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이고,
두 번째 기둥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었다.
저렴한 에너지는 생산 원가를 낮추고
중국의 큰시장은 상품을 구매해 주고
한마디로 호황 그 자체였다.
그러나 러우전쟁 발발로 에너지 가격이 10배가 오른 것이다.
에너지 가격이 10배 오르면 모든 것이 다 오른다.
공장을 돌리는 비용, 난방비, 전기료가 줄줄이 뛰었다.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은 2022년 10월에 10.6%까지 치솟았고,
이는 유로존 역사상 전례 없는 숫자였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ECB는 기준금리를 0%에서 4.5%까지 끌어올렸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 이자가 늘고 소비가 줄고 투자가 꺼진다.
에너지 폭등,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소비와 투자 위축, 경기 침체.
교과서 속 악순환이 그대로 현실이 된 것이다.
특히 독일의 에너지 집약 산업이 치명타를 입었다.
화학, 철강, 유리, 세라믹 산업이 흔들렸다.
BASF는 루트비히스하펜의 세계 최대 화학 단지 가동률을 줄이고
일부 공정을 중국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중국에 100억 유로 규모의 새 생산 기지를 짓고 있다.
러시아 때문에 힘들어진 독일 기업이 중국으로 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독일은 2023년 마이너스 0.3%, 2024년 마이너스 0.2%로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니.
'유럽의 병자'라는 별명이 다시 붙을 만한 상황이었다.
에너지 위기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중국 쪽에서도 문제가 터졌다.
유럽이 중국에 올인했던 핵심 산업, 바로 자동차였다.
폭스바겐, BMW, 벤츠는 중국 시장 없이는 안 되는 구조였다.
그런데 중국이 전기차 시대로 전환하면서 판이 바뀌어 버렸다.
BYD라는 회사는 2020년만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2024년 BYD의 연간 판매량이 427만 대를 넘었다.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합친 숫자인데,
테슬라 전체 판매량의 2배가 넘었다.
중국 시장에서는 폭스바겐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중국 정부가 전기차에 천문학적 보조금을 쏟아부었고,
배터리 공급망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에서는 따라잡지 못하던 기술 격차를 전기차라는
새로운 판에서 한 번에 뒤집어 버린 것이다.
내연기관에서 100년 넘게 쌓은 우위가 전기차로 넘어가는 순간 의미를 잃었다.
모터, 배터리, 소프트웨어, 이 분야는 중국이 더 잘한다.
EU는 2024년 10월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3%의 관세를 부과했다.
그런데 이것이 해결책이 될까?
중국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이 워낙 압도적이라 관세를 붙여도 유럽차보다 싼 경우가 많다.
자동차만이 아니다.
태양광 패널, 배터리, 풍력 터빈, 녹색 전환의 핵심 분야에서
중국이 글로벌 공급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유럽이 탄소 중립을 하려면 결국 중국산 장비를 사야 한다.
러시아 가스 종속에서 벗어나려다 중국 장비 종속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위기가 합쳐지면서 유럽에서 정말 무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탈산업화다. 공장이 문을 닫는 것이다.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가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제조업 일자리 하나가 사라지면 연관된
서비스업 일자리 3개에서 5개가 같이 사라진다는 연구가 있다.
공장이 있으니까 식당도 있고 운송업도 있고 정비업도 있는 것이다.
공장이 떠나면 다 함께 무너진다.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자.
BASF는 독일 본사를 축소하고 중국 잔장에 100억 유로를 투자한다.
폭스바겐은 2024년 말 독일 공장 폐쇄 및 3만 5천 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87년 역사상 독일 내에 공장을 닫겠다고 한 것은 처음이었다.
티센크루프는 독일 최대 철강 기업으로,
철강 부문 인력 2만 7천 명 중 1만 천 명, 40%를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지멘스 에너지는 풍력 터빈 품질 문제로 2023 회계연도에 46억 유로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기업들이 어디로 가는가? 미국으로 간다.
왜냐하면 미국이 문을 활짝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한국기업 역시 같은 상황이다.
여기서 미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22년 8월, 미국이 IRA,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이름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지만 실체는 미국 안에 공장을 지으면
어마어마한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주겠다는 법이다.
청정 에너지와 기후 부문에만 369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00조 원 규모다.
유럽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동맹이라면서 우리 기업을 빨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실제로 유럽 기업들이 줄줄이 미국행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계산을 해보면 답이 나온다.
셰일가스 혁명 덕분에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유럽의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이다.
거기에 IRA 보조금까지 받으면 같은 공장을 미국에 짓는 것이
유럽에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다.
한쪽에서는 "여기 와, 돈 줄게" 하고 다른 쪽에서는
국가 보조금으로 밀어붙이는 초저가 제품이 쏟아지는 상황.
유럽은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다.
"유럽도 보조금으로 기업을 붙잡으면 되지 않느냐?"
여기에 구조적 약점이 드러난다.
미국은 하나의 연방 정부다. 법 하나로 전국에 적용된다.
중국은 공산당이 결정하면 끝이다.
그런데 유럽은 EU 27개 회원국이 각자의 재정 정책을 갖고 있다.
독일은 기본법에 '슐덴브렘제', 즉 부채 제동 장치라는 조항이 있어서
구조적 적자를 GDP의 0.35% 이내로 제한한다.
거기에 '슈바르체 눌'이라고 적자 제로를
고수하는 정치 전통까지 있으니 빚을 쉽게 늘릴 수 없다.
이탈리아는 GDP 대비 부채 비율이 135%를 넘어서 여유가 없고,
프랑스도 재정 적자가 GDP 대비 5.8%로 EU 재정 적자 기준 3%를
크게 위반하고 있는 상황이다.
돈을 풀고 싶어도 미국이나 중국만큼 빠르게 대규모로 풀기가 어렵다.
27개 나라가 다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4년 9월, 전 ECB 총재 마리오 드라기가 '유럽 경쟁력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발표해서 큰 화제가 되었다.
드라기는 유럽이 연간 최소 7500억에서 8천억 유로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EU GDP의 약 5%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 수준의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유럽은 '느린 고통'을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느린 고통'이라니, 끔찍한 표현이지만 현재 유럽의 처지를 보면 과장이
아닌 것 같다는 게 더 무서운 점이다.
이쯤 되면 유럽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너무 중국에 몰빵했구나. 위험을 분산하자."
이것이 바로 '디리스킹'이라는 개념이다.
디커플링과는 좀 다르다.
디커플링은 아예 관계를 끊겠다는 것이고,
디리스킹은 관계는 유지하되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좀 더 현실적인 접근이다.
그래서 유럽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에너지 쪽에서는 러시아 가스 대신 미국, 카타르, 노르웨이 등에서 LNG를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 비중은 2021년 약 40%에서 2024년에는 약 11%로 급감했다.
2025년 1월에는 우크라이나 경유 수송 계약마저 만료되면서 더 떨어졌다.
독일은 LNG 수입 터미널을 기록적인 속도로 건설했고,
첫 터미널은 불과 194일 만에 완공되어 2022년 말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공급망 쪽에서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같은 대안 시장과 생산 기지를 찾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과 비용이다.
LNG는 파이프라인 가스보다 비싸다.
가스를 액화시키고 배에 싣고 다시 기화시키는 과정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유럽의 에너지 비용은 러시아 가스를 쓰던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구조적으로 비싸진 것이다.
공급망 다변화도 말처럼 쉽지 않다.
인도에 공장을 짓는다고 해보자.
인프라가 부족하고 관료주의가 심하며 중국만큼의 숙련 노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베트남은 규모가 중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나라는 현재 지구상에 없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결국 디리스킹은 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비용은 올라가고 효율성은 떨어지고
성장률은 더 낮아지는 것이다.
약을 먹고 있긴 한데 부작용이 엄청난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 전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 10년에서 15년은 걸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동안 유럽은 높은 에너지 비용, 약한 경쟁력, 느린 성장이라는 삼중고를 견뎌야 한다.
2026년 현재, 유로존 경제는 여전히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ECB가 2024년 6월부터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해서
예금 금리를 4%에서 2025년 중반 2%까지 내렸지만,
성장 동력이 구조적으로 약해진 상황에서 금리 인하만으로는 반등이 쉽지 않은 상태다.
소비자 심리는 여전히 냉각되어 있고 기업 투자는 미국이나 아시아로 빠지고 있다.
이 부분이 사실 오늘 이 글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다.
"유럽 힘들구나, 안됐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우리 한국도 돌아봐야 한다.
솔직히 한국의 상황이 유럽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첫째, 에너지 안보다.
한국은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동 원유, 호주와 카타르 LNG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다.
중동에서 분쟁이 심화되면,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 싫지만 생각은 해야 한다.
둘째, 중국 시장 의존도다.
한국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기준 약 19.7%다.
과거 25%를 넘기던 때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1위 수출 대상국이다.
중국 경기가 둔화되면 한국 수출이 직격탄을 맞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셋째, 기술 종속의 위험이다.
반도체는 한국의 핵심 산업이지만,
반도체 장비와 소재는 네덜란드 ASML, 일본 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또한 배터리 원자재인 리튬, 코발트, 니켈의 정제 과정은
중국이 글로벌 시장의 60%에서 많게는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우리가 배터리 강국이라고 자부하지만,
원자재 공급망에서는 중국에 종속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사례가 알려주는 것은 명확하다.
잘 되고 있을 때 위험을 분산하지 않으면 위기가 왔을 때는 이미 늦는다.
독일도 러시아 가스가 잘 들어올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중국 시장에서 벤츠가 잘 팔릴 때는 최고였다.
그런데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흔들리니까 한순간에 '유럽의 병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자강이다.
스스로 강해지는 것. 에너지원을 다변화하고,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핵심 기술의 자립도를 높이는 것.
이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당장은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유럽이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효율만 쫓다가 안보를 잃으면 그 대가는 효율의 몇십 배, 몇백 배가 된다는 것을.
유럽의 몰락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러시아의 싼 에너지와 중국의 거대한 시장에 의존하면서,
이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안주한 결과다.
'무역을 통한 변화'라는 아름다운 구호 뒤에는 전략적 자산을
남에게 맡기는 위험이 숨어 있었고,
그 위험이 현실이 된 순간 유럽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지금 유럽은 뒤늦게 디리스킹을 하고 에너지를 전환하고 경쟁력을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 과정은 길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정 국가의 에너지에 의존하고, 특정 시장에 수출을 의존하고,
핵심 기술의 공급망을 다른 나라에 맡기고 있는 모든 나라에 해당되는 경고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편하고 효율적인 길이 항상 안전한 길은 아니다.
가장 싼 기름이 가장 위험한 기름일 수 있고,
가장 큰 시장이 가장 큰 약점이 될 수 있다.
결국 진짜 경쟁력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자강, 스스로 강해지는 것.
이것이 유럽의 몰락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크고 분명한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존티토가 그렸다는 2036년 지도이다.
이 지도에는 한국이 중국 영토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일본 열도는 한국의 식민지로 표기돼 있다.
존티토는 자신이 1998년생 남성으로 2036년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광우병의 전세계 확산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을 예언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