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가 떠난 자리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어릴 적, 나는 강아지를 키웠다.

털뭉치 같은 녀석이 마당을 뛰어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 개가 달려들었다.

발목을 물렸다.

살점이 뜯기는 고통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공포였다.

그날 이후 나는 개를 멀리했다.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았다.

불편함도 없었고 아쉬움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독립을 하면서 강아지를 키웠다.

그런데 회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엄빠가 맡아서 키우라는 것이었다.

저녁에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냐고 돌 볼 시간이 없어서겠지.



이름은 호두.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특유의 길고 가느다란 다리에

매끈한 회색빛 몸을 가진 녀석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말해 좀 낯설었다.

복슬복슬한 맛도 없고, 앙상하다 싶을 만큼 홀쭉한 몸매에 사슴처럼 긴 목.

'이게 정말 개맞나' 싶었다.


처음엔 그저 귀찮았다.

밥 줘야지, 똥 치워야지, 산책시켜야지, 병원 접종에 털손질까지.

"뭔 놈의 개새끼가 사람 키우는 것보다 힘드냐"고 아내에게 툴툴거렸다.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나도 모르게 호두는 가족이 되어 있었다.

아침 여섯 시, 눈을 뜨기도 전에 코끝을 간질이는 따뜻한 숨결. 호두였다.

녀석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깨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눈을 뜰 때까지 그 가느다란 주둥이를

내 볼에 바짝 붙이고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눈을 뜨면 반드시 꼬리가 먼저 보였다.

채찍처럼 길고 얇은 꼬리가 허공을 가르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세수를 마치고 나오면 녀석은 이미 현관 앞에 앉아 산책 가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을 손에 드는 순간, 그 가늘고 긴 다리가 마루 위에서 달그락달그락 춤을 췄다.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는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종이라 계절마다 옷을 입혀야 했다.

처음엔 "개한테 무슨 옷이냐"며 손사래를 쳤는데,

어느새 나는 호두 옷 색깔을 고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매일 같은 길을 걸었다. 아파트 뒤편 작은 공원,

은행나무 두 그루 사이를 지나 벤치 옆 화단까지.

짧은 털에 지방이 거의 없는 몸이라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녀석은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럴 때면 나는 걸음을 늦추고 등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의사가 하루 삼십 분 걷기를 권한 뒤로 꾸준히 실천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호두 덕분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커피를 끓이고 호두는 물 그릇 앞에서 요란하게 물을 마셨다.

녀석이 밥그릇을 핥는 소리가 멈추면 이내 내 발치에 와서 웅크렸다.


그레이하운드 계열 특유의 그 자세,

새우처럼 등을 둥글게 말고 코끝을 꼬리에 파묻는 모양이 어찌나 앙증맞던지.

퇴직 후 텅 비어버린 오전이 그 작은 온기 하나로 가득 채워졌다.

오후엔 가끔 함께 낮잠을 잤다.

무릎 위에 올라오는 녀석의 무게가 처음엔 불편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무게가 없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에게 심한 알레르기가 생겼다.

기침과 재채기가 멈추지 않았다.

대학병원까지 가서 온갖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명확했다.

개털 알레르기. 동물은 키우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호두를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기로 했다.

어떤 주인을 만날지는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그저 잘 키워줄 거라 믿었다. 믿어야만 했다.


떠나보내던 날, 나는 말이 없었다.

호두는 새 주인이 낯설지 않은 듯 꼬리를 흔들며 따라갔다.

그 길고 가느다란 다리로 사뿐사뿐 걸어나가는 뒷모습이 차에 실려

골목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순간,

나는 손을 들어 흔들다가 그냥 내렸다.

목이 메었다.


차라리 죽었다면 잊으련만.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자꾸 든다.

죽음은 끝이라도 있다.

그런데 입양은 끝이 없다.

녀석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채찍 같은 꼬리를 흔들고 있다.

누군가의 발치에서 새우처럼 몸을 말고 웅크리고 있다.

그 누군가가 내가 아니라는 것이, 이토록 아릿하게 가슴을 긁는다.



동네 산책을 나서면 자꾸 두리번거리게 된다.

은행나무 두 그루 사이를 지날 때, 벤치 옆 화단 앞에서,

저 멀리 홀쭉하고 날렵한 실루엣이 보이면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호두가 아니다.

알면서도 자꾸 본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매일 아침 그 길 위에서 호두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

골목 어귀에서, 가로등 불빛 아래서, 달그락달그락 그 가느다란 발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집 안은 조용하다.

물 마시는 소리가 없다.

발치의 온기가 없다.

밥그릇과 리드줄과 작은 겨울 점퍼는 그대로인데

주인만 사라진 것들이 방 안 가득 흩어져 있다.



나는 다짐했다. 내 인생에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이 그리움을, 이 허전함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이상하다. 그 다짐을 하는 순간에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건 호두의 그 크고 맑은 눈이다.

사슴을 닮은,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그윽하던 그 눈.


호두가 나를 키웠다.

걷는 이유, 웃는 이유, 아침에 눈 떠야 할 이유.

그 모든 것을 그 가느다란 녀석이 주었다.

잘 살아라, 호두야.

나는 이제 혼자 걷는 법을 다시 배워야겠다.



https://youtu.be/E4l5sXC3Lu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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