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발가벗은 힘: 이재형의 직장인을 위한 Plan B 전략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아르데슈 출신인 앙리 샤리에르는 사춘기 시절 친구들의 꼬임에 빠져 나쁜 길로 들어선다. 그는 유흥가를 전전하며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져 살다가 결국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남아메리카 북부에 있는 기아나 감옥으로 유배된다.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줄곧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결국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악마의 섬’이라고 알려진 기아나에서 참혹한 유배 생활을 시작한다. 더위와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는 끝내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탈옥을 시도한다. 13년 동안 무려 열 번의 탈옥을 시도하고 실패하기를 거듭한 끝에 그는 결국 탈출에 성공해 자유인의 몸으로 여생을 보낸다. 이는 실존 인물 앙리 샤리에르의 삶을 각색해 만든 영화 ‘빠삐용’의 스토리다. ‘빠삐용’은 ‘나비’를 뜻하는 프랑스 말로, 사람들은 가슴에 나비 문신을 한 앙리를 ‘빠삐용’이라고 불렀다.
이 영화에는 인상 깊은 대사가 나온다. 탈옥에 실패한 후 독방에 수감돼 있던 빠삐용은 어느 날 꿈을 꾼다. 꿈에서 빨간 망토를 두른 심판관에게 빠삐용은 말한다.
“전 무죄입니다. 전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심판관은 그의 살인죄를 다루는 대신 빠삐용이 생각지도 못한 죄를 거론한다.
“빠삐용, 너의 죄명은 인생을 낭비한 죄다. 인생을 낭비한 죄! 유죄, 유죄!”
이 말에 빠삐용은 흐느끼며 중얼거린다.
“인생을 낭비한 죄… 유죄….”
판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자신의 살인죄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던 빠삐용은 심판관의 이런 지적에 꼼짝 못하고 유죄를 인정한다. 꿈속의 심판관은 인생을 낭비한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라고 지적한다. 이 판결은 빠삐용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든다.
중국 위(魏)나라의 사상가였던 양주(楊朱)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설사 백년을 산다한들 어려서 안겨 있는 기간과 늙어 아무 힘도 없이 사는 기간이 그 절반을 차지한다. 그리고 잠자는 시간, 헛생각을 하는 시간, 아프고 병들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시간들을 제하고 나면 정작 남는 시간은 조금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 짧다고들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인생이 아주 길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양주의 말처럼 우리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빠삐용처럼 인생을 낭비하는 죄를 저지르면서 살아갈 때가 많다.
2017년 12월 개봉해 단시간에 천만 관객을 훌쩍 넘긴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에는 사람이 죽으면 가게 되는 일곱 개의 지옥이 등장한다. 망자가 된 주인공 자홍은 살인 지옥, 나태 지옥, 거짓 지옥, 불의 지옥, 배신 지옥, 폭력 지옥, 천륜 지옥을 거치면서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중 초강대왕이 지키고 있는 나태 지옥은 무위도식하며 태만하게 산 망자들을 심판하는 곳이다. 이곳은 사람 얼굴의 형상을 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인면어가 들끓는 삼도천을 지나야 도달할 수 있다. 나태 지옥에서 죄인 판결을 받은 망자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봉에 맞지 않기 위해 평생을 달려야 하는 벌을 받게 된다.
이 장면을 볼 때 내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태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 스스로는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생각해보면 인생을 낭비한 죄, 나태한 죄도 많이 지은 듯하다.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낭비한 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멍하게 있느라 낭비, 뚜렷한 비전과 목표도 없이 바쁘게 시간만 허비하고 다니면서 낭비, 이런저런 핑계로 해야 할 일을 계속 미루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면서 낭비했다.
물론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흘려 보낸 시간들을 낭비라고 볼 것인가는 개인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유유자적하게 사는 것을 인생의 모토로 삼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최근에는 꿈이나 목표 없이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살 경우 불교에서 말하는 ‘과보’는 받게 되겠지만, 그 과보를 달게 받을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낭비한 데 대한 벌이 벌로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빠삐용’이나 ‘신과 함께-죄와 벌’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인생을 낭비하는 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내 경우는 자기계발에 몰입하고 일과 개인적인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시점, ‘발가벗은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한 시점부터는 인생을 낭비한 죄가 상당 부분 줄어들지 않았나 싶다. 당신은 어떠한가?
이재형 비즈니스임팩트 대표 | 비즈니스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