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발가벗은 힘: 이재형의 직장인을 위한 Plan B 전략
얼마 전 친구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너 ‘두 번째 산’이 뭔지 알아?”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잘 모르겠지만, 나는 세 번째 산에 오를 거야”라고 답했다. 그러자 친구가 피식 웃더니 또 다른 질문을 했다.
“너는 행복과 기쁨 중 무엇을 선택하고 싶어?”
나는 ‘행복’과 ‘기쁨’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친구는 그 차이를 구별해 보라고 했다. 내 생각을 말하자, 친구는 그 차이를 알고 싶다면 《두 번째 산》이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happiness)’과 ‘기쁨(joy)’의 차이는 뭘까?
행복은 자신을 위한 성공 또는 자신의 확장과 연관된다. 자기가 설정한 목표에 다가설 때, 즉 중요한 직위로 승진하거나 학위를 받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내가 응원하는 축구팀이 우승할 때처럼 내가 원하는 것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나타난다. 그래서 행복은 어떤 성공이나 새로운 능력 또는 어떤 고양된 감각적 즐거움과 관련이 있다.
이에 비해 기쁨은 자신을 초월하는 어떤 상태와 연관된다. 자기와 다른 사람 사이에 장벽이 사라져서 함께 하나가 된다는 느낌이 들 때가 그렇다.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볼 때, 숲을 걸으며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자연과 하나가 된다고 느낄 때,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이 책의 화자인 ‘나’와 함께 파도 치는 크레타 해변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자유를 만끽하며 춤을 출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다. 조르바는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을 출 때 내 주인은 나”라고 이야기했다. 이렇듯 기쁨은 흔히 나 자신을 잊어버리는 상태와 관련이 있다.
잠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라.
“나는 요즘 행복한가, 기쁜가?”
이제 ‘두 번째 산’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두 번째 산’이 있다면 ‘첫 번째 산’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산이 자아(ego)를 세우고 자기(self)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계층 상승의 엘리트적인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 자기 자신을 단단히 뿌리내리고 그들과 손잡고 나란히 걷는 평등주의적인 것이다.
두 번째 산을 오르는 방식은 첫 번째 산을 오르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첫 번째 산은 내가 정복하는 것이다. 정상을 향해 기를 쓰고 올라간다.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책의 주인공은 수컷 줄무늬 애벌레와 암컷 노랑 애벌레다.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가 된 이들은 풀잎을 먹으며 몸집을 불리고 기어 다닌다. 인생에는 ‘뭔가 더(something more)’가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이들은 길을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하늘을 향해 치솟은 기둥(pillar)을 발견한다. 기둥을 구성하는 것은 서로 짓밟으며 기둥 위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애벌레들이다. 기둥은 내가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다른 이들을 짓밟아야 하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현장이다. 애벌레는 결국 기둥의 정상에 오르지만, 허망함을 느낀다. 이 장면은 대다수 우리 인간의 모습을 닮아 있다. 내가 40대 중반에 사표를 던진 이유는 애벌레 기둥 위에서의 삶이 '행복'을 줄 수는 있겠지만, '기쁨'을 주지는 못함을 일찌감치 알아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두 번째 산은 다르다. 두 번째는 산이 ‘나’를 정복한다. 나는 어떤 소명에 굴복하고 그 소명에 응답한다. 그리고 내 앞에 놓여 있는 어떤 부당함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한다. 첫 번째 산에서는 야심을 품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며 독립심을 발휘하지만, 두 번째 산에서는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친밀하며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한다.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주인공 애벌레는 회의를 느끼고, 결국 기둥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후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된 이 애벌레 커플은 마치 모세처럼 애벌레들을 이끌고 나비들의 세계로 나아간다. 행복을 넘어 진정한 기쁨을 맞이하게 된 순간이다. 내가 '발가벗은 힘'을 외치며 야생으로 나왔을 때가 그런 감정이었는지 모른다.
첫 번째 산과 두 번째 산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산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쾌활하며 함께 어울리기에 흥미롭고 재미있다. 이들은 인상적일 정도로 멋지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며 또 멋진 식당, 여행지로 친구를 데려갈 수 있다. 두 번째 산에 있는 사람들 역시 세상의 여러 즐거움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도덕적인 기쁨을 추구하면서, 즉 자기 인생이 어떤 궁극적인 선을 지향하도록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추구하면서 그런 즐거움들을 초월해 지나쳐 왔다. 두 번째 산은 첫 번째 산 이후의 한층 더 풍성한 인생 국면이며, 기쁨은 행복보다 더 풍성한 감정이다. 행복은 변덕스럽고 찰나적인 경향이 있지만, 기쁨은 본질적이고 영속적일 수 있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우리가 첫 번째 산에서 목표로 삼는 것이고, ‘기쁨’은 두 번째 산에서 살아갈 때 저절로 생기는 부산물이라고. 내가 만난 경영자들 중 일부는 첫 번째 산에 머물러 있다. 때때로 그들은 선을 넘었고, 그래서 돈 많은, 부러운 부자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들이 가진 외형적인 것들 때문이었다.
자신이 지금 첫 번째 산을 오르고 있는지, 두 번째 산을 오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은 뭘까?
그것은 ‘행복’과 ‘기쁨’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아가 내면으로 향해 있는지, 바깥으로 향해 있는지를 구분해 보는 것이다. 두 번째 산에는 나만이 아닌 타인과 같이 살아가는 삶, 같이 무언가를 이루고 도와가는 공동체적인 삶이 있다. 두 번째 산에서는 공동체에서 ‘헌신’하는 삶을 살며, 거기엔 기쁨, 감사, 행복이 있다. 나 역시 첫 번째 산과 두 번째 산을 왔다갔다하지만 대부분 첫 번째 산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공동체에 헌신하는 삶을 살겠다며 가족을 등한시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다. 나는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종종 보았다. 그런 삶은 진정으로 두 번째 산에 오른 것이 아닐 게다. 공동체에 헌신하라는 말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우선 내 가족을 위해 헌신하도록 하자.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가 말하는 요지는 이렇다.
“행복은 좋은 것이지만 기쁨은 더 좋은 것이다."
당신은 요즘 행복한가, 기쁜가?
이재형 비즈니스임팩트 대표 | 비즈니스 코치 | 세종사이버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