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일기
최근 시즌2가 방영되고 있는 <무쇠소녀단(이하 무소단)>은 내가 애청하는 예능이다. 평소에 예능 콘텐츠를 챙겨보지는 않는 편인데, 스포츠 분야는 관심이 많다 보니 무소단을 비롯해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 같은 관련 예능은 한번씩 보게 된다.
무소단 시즌1에서는 철인3종 경기에 도전했다. 남자들도 버거운 운동을 여배우들이 예능에서 한다길래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망하면 안되니 운동 좀 한다는 여배우들을 섭외했겠지 싶었어도, 그래도 다른 운동도 아닌 철인3종 경기를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우연찮게 보게 된 몇몇 클립을 통해 이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왔고, 결국 방송을 챙겨보게 되었다. 선수를 지망하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까지 열심히 할 수 있나? 싶었고, 아무리 해도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에서 나도 같이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래서 4명이 모두 완주한 결말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무소단 시즌2의 도전 종목은 복싱이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복싱? 여배우들이 격투기를 한다고?
그냥 뛰고, 달리는 그런 운동과는 차원이 다른, 쉽게 말해 때리고 맞아야 하는 종목이다. 누가 나에게 지금 격투기를 해보라고 하면 선뜻 하겠다고 못할 것 같은데... 복부는 그렇다 쳐도 안면을 수시로 강타당할텐데 저걸 여배우들이 한다고? 이건 무리수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내 걱정은 그저 기우였다. 두시즌 연속 참가하는 설인아, 유이, 박주현은 물론 새로 합류한 금새록까지 처음에는 무서워서 피하고 엉거주춤하던 모습들이 금새 사라졌다. 연습 때 상대에게 정말 후들겨 맞아도 끝까지 고개를 들고 반격하고, 패배의 분함을 삼키고 더 성장하기 위해 이 악물고 운동했다. 그 결과 최근 실전 스파링에서는 그간의 엄청난 노력이 상상될 정도로 발전된 모습을 보이며 감동을 주고 있다.
(설인아가 스탠딩 다운 이후 마지막 10초에 벌인 난타전은 정말 소름돋았다)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은 땀 흘린 만큼 성장을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몸은 정직하다'라고 하지 않는가? 열심히 하면 그 폭이 크든 작든 누구나 성장할 수 있고, 승패를 떠나 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그걸 체감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보람과 쾌감은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다.
대학시절에 농구를 많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때 땀의 가치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2학년 때는 대회에서 한 경기라도 더 이길려고, 후배에게 주전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했다. 안하던 웨이트도 하고, 토나올때까지 달리고, 밤에 깜깜한 농구장에서 슛 연습도 하고... 그렇게 노력해서 대회에서 첫 3점도 꽂아보고, 16강도 진출해보고 했던 그런 기억이 있다. 특히 대회 첫 3점은 마지막 릴리스에서의 손끗 감촉과 볼이 링에 빨려들어갈때의 벅참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열심히?
사실, 대학생이면 공부해서 좋은데 취업할 생각을 해야하는데... 체대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때는 농구에 진심이었고 열심히 뛰어서 기량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그래봤자 어디 대회에서 우승할 것도 아닌데도 이럴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노력이라는 과정의 소중함과 그 뒤에 따라오는 성장이라는 열매의 달콤함에 취했던 것 같다.
사회에 나온 뒤 이때껏 일이건 공부건 열심히 하면서 살게된 것은 이때의 경험이 크지 않나 싶다.
최근 우리나라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세태가 예전에 비해서는 더 만연해 있는 느낌이 든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69.5%*에 달하는데, 이는 결과 만능주의의 부작용이지 않을까 한다. 결과만 중시하다보면 과정에서 반칙이 난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의 무소단이나 골때녀 같은 스포츠 예능이 인기를 끄는 것은, 이런 세상에서 정당한 노력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내재된 갈망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 '정신건강 증진과 위기 대비를 위한 일반인 조사',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 2025.
여담이지만 올해 입사한 우리팀 신입(2000년대 생이다...)이 그렇게 건강한 편이 아니다. 그런데 대화를 해보니 그럴만해서 마음이 아프다. 어릴 때 공부하느라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단다. 그리고 공부를 늦게까지 해야하니 에너지 드링크도 많이 마시고, 식사도 학원 오가며 편의점에서 많이 때웠다고 한다. 입시 때문에 어린 나이에 그런 각성 음료나 편의점 가공식품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 건강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이처럼 생각보다 젋은 친구들이 몸이 약한 것을 많이 봤다. 비정상적인 대한민국 입시제도로 인해 어릴 때 건강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최근 5년새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ADHD 약 처방이 140% 늘었단다.* 과연 무엇이 아이의 미래에 정말로 도움이 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2024년 의료용 마약류 취급 현황 조사', 식품의약품안전처, 2024.
어릴 때부터 스포츠로 정신과 신체를 단련할 수 있게 해서 100세 시대라는 장기 레이스를 오래도록 건강히 완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