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일기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건 아니지만ㅋㅋ 브런치 필명 '대기만손'이 뭔지 아주 가끔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브런치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딱히 내 필명에 관심은 없을 것 같지만, 정말 아주 간혹... 가뭄에 콩 나듯이... 궁금한 사람이 있다고 하니 이게 뭔지 간단하게 썰을 좀 풀어보려 한다.
대기만손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자성어인 '대기만성(大器晩成)'에서 따왔다.
대기만성은 노자의 도덕경 제41장에 나온 사자성어다.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스스로가 대기만성형인 사람이고 싶다는 희망과, 살아온 궤적이 나름 대기만성인 것 같아서? 대기만성에서 끝 글자인 성(成)을 내 성인 손(孫)으로 바꿔 필명으로 정했다.
대기만성이라는 이런 내 나름의 추구미?는 사실 내가 처음부터 뭘 잘하는 사람이 아닌 것에서 기인한다. 처음부터 잘 하지는 못하니까 뒤에 가서라도 잘하면 그럭저럭 무난한 사람이지 않을까? 라는... 일종의 정신 승리라고 봐야할까... 싶기도 하고ㅎ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 하는 편도 아니었고, 뭔가 특출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평범 그 자체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오히려 ADHD가 의심될 정도로(아마 당시에 검사를 받았으면 ADHD 판정을 받았을지도...ㅎㅎ) 집중력이 평균 이하라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가 정말 고역이었으니... 어쩌면 평범 이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지방에서 나고 자라 특별한 꿈도 없이, 학업에도 큰 흥미 없이 게임하고 농구하고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딱히 욕심 같은 것도 별로 없어서 그냥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았었다. 그나마 되려고 했던건 교사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집안에 교사가 몇 명 있기도 하고 안정적이라 부모님이 원하셨다.
IMF 여파로 교사는 당시에 매우 인기가 많은 직업이긴 했다. 특히 지방에서는? 그래서 내 성적으로는 사범대나 교대에 들어가기 만만치 않았는데, 결국 고3 수능은 원서도 하나 써보지 못하고 재수를 했고(2002년 월드컵...ㅠㅠ), 재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점수 맞춰서 겨우 간 대학은 공대였는데(나는 문과였다...), 적성에 영 안 맞았던지 정말 열심히 놀기만 하고 수업은 제대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그런 내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가 있었으니 바로 KBS의 <부활>이라는 드라마다. 당시에는 MBC의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센세이션을 일으켰기 때문에 <부활>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재밌게 봤던 작품인데... 대진운이 나빴던 참으로 비운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나는 이 드라마에 정말 푹 빠져서 매주 본방사수를 했는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 때는 드라마 영상을 짜깁기해서 뮤직 비디오를 만들어 팬 커뮤니티에 올리고 향유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래서 나도 윈도우 무비메이커라는 가장 기초적인 편집 프로그램을 가지고 뮤비를 만들어 봤었는데 너무 재밌었다. 영상을 다루는 일이 뭔가 내게 잘 맞는 느낌이었다. 이런 일을 하고 싶고 배우고 싶었다.
당시 공대를 다니고 있었기에 막연하게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 발견했던 과가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영상학과였다. 커리큘럼이 재밌어 보여서 꼭 여기를 가야겠다 싶었다. 이전 내 수능 성적으로는 서울 쪽 대학은 언감생심이었지만 그때는 이상하게 그런 용기가 났다.
이 시기는 공익으로 복무 중이었다(눈이 나빠서ㅠㅠ). 그래서 저녁에서야 공부가 가능했는데, 학원 같은 걸 다닐 사정은 되지 않아 온전히 독학을 해야했다. 그럼에도 뭔가에 홀린건지 공부를 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퇴근하고 도서관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넘게 복무지와 도서관을 오가며 문자 그대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했고, 붙어 버렸다. 가고 싶었던 그 학교 그 학과에
그때는 정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무모한 도전을 했는지 모르겠다. 운명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어찌 되었든 일생일대의 도전 하나가 괜찮게 풀리자,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에 대해 약간의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스물네살에 대학 신입생 2회차 생활을 시작했고, 그전까지 정말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영상학과 생활 자체는 즐거웠지만 동기들과 4살 차이가 나는 것이 여기저기서 자각이 되다보니 남들보다 몇 년 늦은 인생이 나도 모르게 신경은 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러한 늦음에 대해 스스로 위안 거리를 무의식적으로 찾았던 것 같은데,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이지 않았을까?
한 수업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런 내용을 발표하는 과제가 있었다. 일종의 셀프 브랜딩이랄까? 아무튼 그때 스스로에 대해 많이 돌아보면서 나의 이 늦음이 그저 뒤쳐진 인생일 뿐일지 뭔가 장점도 있는 인생일지 진지하게 포지셔닝해봤다.
느림... 거북이? 그러고 보니 원래 별명이 거북이였다. 거북이는 느리긴 해도 결국에는 토끼를 이기는데? 그러고보니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어도, 성적은 계속 우상향하긴 했네?
그랬다. 나는 그저 걸음이 느린 아이였을뿐 전진하지 않은건 아니었다. 더디지만 분명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고 있지 뒷걸음질 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찮게 찾은 문구 하나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때는 이게 괴테가 한 말인지는 몰랐는데, 아무튼 이걸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비록 갈 길을 잃고 헤맨 탓에 늦긴 했지만, 긴 방황 끝에 내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방향은 분명히 찾은 나에게 딱 맞는 문장이었다.
이때부터 더 이상 나의 늦음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처럼 용두사미(龍頭蛇尾)가 아닌 화룡점정(畫龍點睛)을 지향하고자 했다. 그렇게 20대 후반전부터는 스스로가 대기만성형 인간이라며 셀프 세뇌를 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 40대 초입에 접어들었다. 비록 드라마를 만드는 일을 하며 살고 있지는 않았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이라는 공공기관에 들어와 관련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아직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오늘이 정말 찔끔이라도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기에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늦었지만 방향은 잘 잡은 덕에 적어도 일은 재밌는 삶을 살고 있다. 돈벌이가 크게 안되는게 좀 아쉽긴 하지만 어떻게 세상사가 모든게 다 만족스러울 수 있겠나. 그래도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호지자불여락지자(好知者不如樂之者)라 하지 않았던가? 즐기면서 일하고 살다보면 언젠가 좋은 날도 오겠지 하며 오늘도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