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와 넷플릭스의 불편한 동거, 그리고 IP

IPㅣK콘텐츠의 넥스트 스탭

by 대기만손

앞선 글에도 밝힌 바 있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관련 논의 중에 케데헌이 K콘텐츠인데 여기에 대한 IP를 모두 넷플릭스가 가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케데헌 사례에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매기 강 감독은 캐나다 국적으로 드림웍스와 디즈니에서 오래 일한 '할리우드' 창작자이고, 이 작품은 한국의 문화를 입힌 '할리우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글로벌 OTT 시장 최대 포식자인 넷플릭스와 IP 소유권에 대한 문제는 한번쯤 짚어봐야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글로벌 OTT시장 점유율은 2023년 2분기 기준 넷플릭스가 35.3%인 반면, 아마존프라임비디오(8.6%)나 애플TV+(8.3%), 디즈니+(7.3%) 같은 경쟁자들의 점유율은 넷플릭스의 1/4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김윤지, 2024).

상황이 이러하니 넷플릭스가 시장에서 우위를 가질 수 밖에 없고, 자본도 풍부하니 IP 대한 모든 권리를 보유하는 투자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제작비 전액에 +α를 지불해주는게 감지덕지일수도...).


출처: Parrot Analytics(2023년 8월)


우리나라에서 넷플릭스의 IP 독식 현상이 크게 대두되기 시작한건 <오징어 게임> 때부터다. 한국 드라마 사상 전무후무한 글로벌 성과를 거뒀는데, 모든 IP가 넷플릭스에 귀속되어 우리 창작자나 제작사에게 파생수익이 하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크게 이슈가 되었다.

(나도 그당시 방송본부에 있었어서 국회를 비롯한 각종 대외 관련 요구자료를 수시로 써냈던 기억이ㅠㅠ)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를 10년 전부터 피칭했지만 투자받지 못했던 작품이라 했고 받아준 곳이 넷플릭스 밖에 없었다고 했다. 넷플릭스가 투자한 콘텐츠들을 보면 특정 장르에 한정되지 않는다. 당시 한국은 로맨틱 코미디가 강세였고 해외에서도 주로 이 장르가 잘 먹혔다. 내가 만약 넷플릭스 투자담당이었다면 한국형 로코 장르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았을 것 같은데, 넷플릭스는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가져갔다.


출처: 넷플릭스


확률은 높지만 그저그런 성공이냐, 리스크는 크지만 혹시 모를 한 방을 노릴 것인가의 기로에서 넷플릭스는 리스크 테이킹을 선택한 것이다. 넷플릭스라고 거액을 투자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다 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제대로 한 방이 터지면 그간의 실패를 모두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인지 넷플릭스는 다소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것 같다.


덧붙이자면 한국은 헐리우드에 비해 제작비가 1/10 수준이라(그나마도 최근에 많이 올라서 이정도...) 밑져봐야 본전인 셈으로 치는 걸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애초에 넷플릭스가 한국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 자체가 도박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 도박덕에, 우리는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국가 브랜드나 문화, 콘텐츠 등 다방면으로 세계 시장에서 Korea가 각인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출처: TV조선(넷플릭스 한국 진출 선언 관련)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 방송 시장이 조금 더 성숙된 상태에서 넷플릭스가 들어왔으면 어땠을까? 넷플릭스 쏠림이나 IP 독점 같은 문제는 사실 당시 우리나라 방송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그때는 국내 방송사가 넷플릭스의 입장이었다. 아니 넷플릭스보다 더했다.


방송사가 제작비 전액을 부담하지 않고도 IP를 모두 가졌으며, 제작사는 모자란 제작비를 PPL로 메꾸는 구조였다. 그리고 일부 힘있는 곳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제작사는 해외 판매나 부가수익에 대한 권리가 없었다.

국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작비를 모두 주고 이윤도 보장하는(초창기에는 10~15%였다고 알려져 있다) 넷플릭스로 국내 제작사들이 몰릴 수 밖에 없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넷플릭스의 해외진출 주요 전략중 하나가 로컬라이징인데, 콘텐츠뿐 아니라 현지의 룰(rule)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는 넷플릭스가 창작자들에게 추가수익을 지불한 사례도 있는 등(넷플릭스가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다), 현지의 룰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꿔 말하면, 당시 한국은 창작자나 제작자에게 수익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곳이라(특히나 방송 시장) 넷플릭스는 그냥 그 룰을 활용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후발주자이니 거기서 경쟁력 있는 유인책을 쓴 것이 제작비 전액에 더해 이윤까지 보장해준 것이었다.


그렇다고 우리의 자업자득이라고 자조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넷플릭스는 압도적인 자본력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IP를 모두 가지는 경우가 제법 있기 때문이다. 어느 산업이든 독과점은 부작용을 낳으므로 넷플릭스의 막강한 영향력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분명 필요하다.


여기에 대해 정책적 규제로 풀어내자는 의견이 있다. 해외의 경우, 프랑스는 IP 권리를 일정 기간 후 자국 제작사로 환원시키고, 프랑스 매출 20%를 자국에 투자하게 했다. 그리고 스페인은 연매출의 1.5%를 스페인 공영방송 RTVE의 발전기금으로 출연, 스페인 매출의 5%를 유럽 현지 제작에 투자하게 했다. 또한 호주는 매출 10%의 자국 투자 권고 및 자국 콘텐츠 쿼터제 시행, 캐나다는 매출 30%의 자국 투자 의무 등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해외의 글로벌 OTT에 대한 규제 정책]
*프랑스: 2018년 EU의 '시청각미디어서비스지침(AVMSD)' 준용한 IP 권리 일정기간 후 자국 제작사로 환원, 2021년 ‘주문형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법(SMAD)’으로 프랑스 매출 20%를 자국 및 유럽 투자 의무화
*스페인: 2021년 새로운 시청각법안(audiovisual law)으로 연매출의 1.5% 스페인 공영방송 RTVE 발전기금으로 출연, 스페인 시장 매출 5%를 유럽 현지 제작에 투자
*호주: 10% 매출 자국 콘텐츠 투자 권고, 2024년 자국 콘텐츠 제공 의무 쿼터제 시행
*캐나다: 2023년 온라인 스트리밍 법(Online Streaming Act)으로 규제기반 마련, 매출 30% 자국 콘텐츠 투자 의무 부과


우리나라에서도 여기에 대한 규제나 법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런 규제 정책을 펼친 나라에서 <오징어 게임>을 넘어서는 대박 작품이 나왔는가?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존재하듯, 규제는 늘 이런 양면성을 지녔다. 이로 인해 넷플릭스가 국내 투자를 확 줄여버린다면? 그것 또한 새로운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출처: 이데일리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넷플릭스의 최근 행보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의 압도적인 지위가 어느정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자 과도한 투자를 줄여가고 있다. 제작사가 콘텐츠를 여러 OTT에 쪼개서 계약을 하더라도 압도적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넷플릭스가 사실상 독점 공급에 준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어 굳이 독점을 대가로 더 많는 비용을 지불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조영신, 2025).


따라서 이제는 제작사도 자본만 갖춘다면 IP를 보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 자본을 어떤 식으로 조달할지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초기에는 정부에서도 펀드를 확대 조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제작사들은 장기적으로는 부가사업도 극대화할 수 있는 제대로된 BM을 설계해 궁극적으로는 여러산업에서 자연스럽게 자본이 흘러들어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우리 토종 OTT를 육성하는 것도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식이나 전략에 대해서는 고민이 된다. 특히 최근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왓차를 보니 더 그러하다. 단순히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으로는 글로벌 OTT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 국산 대표 OTT는 티빙으로 정리되가고 있는것 같은데, 모쪼록 차별화되는 전략을 잘 세워서 넷플릭스와 경쟁할 수 있길 바란다.


출처: 와이즈앱(주요 OTT 앱 사용시간 점유율(2025년 1월)


그런 의미에서 국산 애니메이션 OTT인 라프텔의 최근 행보도 참고할만 하다. 국산 OTT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는데(2024년 당기순이익 24억원), 일본 애니가 주요 콘텐츠이지만 다양한 IP와 콜라보를 하고 있고 전시나 굿즈 판매같은 부가사업 파이프라인도 구축한 결과다. 최근 K웹툰 기반 오리지널도 제작하고 있고 해외진출도 하고 있어 내년에는 어느정도의 매출규모와 흑자를 기록할지 기대가 된다.


라프텔은 글로벌 애니메이션 OTT 크런치롤(Crunchyroll)을 벤치마킹했다. 애니메이션판 넷플릭스라 불리는 플랫폼인데 구독자가 1,700만명이 넘는다. 미국에서 만든 OTT이지만 이후 소니가 인수해서 일본계? 플랫폼이 되었다. 애니가 메인이라 역시나 주요 수익모델 중 하나가 머천다이징인데, 이미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이 나온다고 한다(Chike Nwaenie, 2024). 역시... 뭘해도 돈을 잘버는건 미국과 일본이다ㅠㅠ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매년 수십조 원을 투자하지만 이를 활용한 부가수익 규모는 그에 비해서는 매우 낮은 편이다. 하지만 2021년 온라인 스토어 Netflix.shop을 오픈한 이후 머천다이징 사업을 확장하며 부가수익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주요작품 런칭 때 팝업스토어도 열고 있는데, 실제로 1억 달러를 맴돌던 부가사업 매출이 2023년 11억 달러를 넘으며 전년 3억 2천만 대비 3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조영신, 2025).


출처: Netflix.shop
출처: 넷플릭스(<오징어 게임> 팝업스토어)


Netflix.shop의 경우 지금 가보면 인기 IP는 별도 카테고리로 빼놓았는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징어 게임>, <기묘한 이야기> 이렇게 3개만 별도 카테고리가 있다. 오겜은 한국에서 만들었고 케데헌은 한미 혼종인 점을 감안하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넷플릭스가 K콘텐츠 덕을 꽤 보긴 보는 것 같다.


넷플릭스는 이제 IP 사업의 끝판왕이라는 테마파크 런칭도 앞두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필라델피아, 12월에는 댈러스에 '넷플릭스 하우스'를 오픈한다. VR을 적극 활용해 기존 테마파크와는 차별화를 둔다는데 그 결과가 어떨지 귀추가 주목된다. 잘되면 이제 디즈니가 OTT에 이어 테마파크에서까지 넷플릭스와 경쟁해야하니 나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한다.


출처: 넷플릭스(넷플릭스 하우스 필라델피아 조감도)


넷플릭스가 잘되면 잘될수록 우리 입장에서는 계속 불편한 동거를 이어갈 수 밖에 없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넷플릭스가 가지는 글로벌 유통망의 강점은 활용하되 우리의 실리도 챙길 수 있는 그런 투트랙 전략으로 접근해야할 것이다. 한국 영상콘텐츠 시장이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게 민관이 머리를 맞대어야하는 때다.



참고문헌

김윤지, '성숙기를 맞이한 OTT 시장의 한계와 가능성',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2024.

박정현, 'OTT한파 속 라프텔, 코어 팬덤 힘으로 홀로 흑자', 한스경제, 2025.

조영신, '애프터 넷플릭스', 21세기 북스, 2025.

한국콘텐츠진흥원, '글로벌 OTT 동향분석 Vol.4', 2023.

Chike Nwaenie, 'Crunchyroll Banked Over $1 Billion in Licensed Goods Last Year in New Report Reveal' CBR, 2024.

Netflix, 'It’s Open Season for Netflix House as Philly Arrives Nov. 12, Dallas on Dec. 11', 2025.


keyword
이전 07화K콘텐츠에서 K컬처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