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제작위원회 시스템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1)

IPㅣK콘텐츠의 넥스트 스탭

by 대기만손


만화 원작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의 최신 극장판이 인기다. 그렇게 어렵다는 국내 극장가에서 400만 관객을 훌쩍 넘겨버렸다. 이미 일본에서는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있고, 북미에서도 개봉 3일 만에 7천만 달러(약 1,000억 원)를 벌어 들었으며, 그 외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장예솔, 2025).


출처: 애니맥스브로드캐스팅코리아


모든 TV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 성공하는 것은 아닌지라, <귀멸의 칼날>은 기존 애니에 비해 어떤 식으로 극장판을 차별화 했는지 조명해보는 것은 중요할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 더불어 살펴봐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계속해서 성공적인 IP를 발굴해내며 큰 수익도 창출해내고 있는 일본의 '제작위원회' 시스템이다.


우선 이번 극장판 무한성편의 흥행은 영상미와 서사구조가 주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영상미의 경우 화려한 액션이나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 세밀한 작화, 웅장한 사운드 등이 관객의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서사구조는 극장판이 주로 TV판 요약이나 번외편인 것을 벗어나 이어지는 이야기를 채택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TV판 결말 직전에 이야기를 끊고 이를 극장판으로 제작해 팬들이 극장을 찾을 수 밖에 없이 만들었다는 것이다(백수진, 2025).


한편, <귀멸의 칼날>처럼 만화 → TV 애니메이션 →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지는 IP 확장의 중심에는 일본의 제작위원회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 시스템은 리스크는 나누고 수익은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만화가 TV와 극장으로 진출하자니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제작비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만큼 리스크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작 IP를 보유한 출판사를 중심으로 방송사와 영화사는 물론 음반사, 완구 및 굿즈(MD) 제작사, 광고대행사 등 IP에서 파생될 수 있는 모든 수익에 연관된 사업자들이 한데 모여 공동으로 투자해 리스크는 나누고 수익은 공유하는 이 제작위원회라는 체계를 구축했다.


제작위원회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후 본격화 되었는데, 종종 비용 통제와 폐쇄적인 투자 구조로 비판 받기도 하지만 IP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장치라는 긍정적인 평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귀멸의 칼날>은 2020년 수익만 1조 엔에 달했고 머천다이징 수익은 90%를 차지했다(나카야마 쥰오, 2021). 이 외에도 수많은 일본의 만화 IP는 이런 식으로 IP를 확장하고 수익도 극대화하고 있다.


일본 제작위원회 구조(출처: 신한투자증권, 2023)


내가 2023년부터 한국의 콘텐츠IP 비즈니스를 활성화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면서 맞닥뜨린 가장 현실적인 어려움은 IP 확장에 있어 콘텐츠와 부가사업이 엇박자가 난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IP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콘텐츠가 런칭이 되기 전에 다양한 수익 모델이 세팅이 되어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IP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기획-제작-유통의 가치사슬에서 콘텐츠를 'IP화'하고 다양한 형태의 유통과 부가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부터 BM을 설계하고 거기에 필요한 작업들을 제작팀과 협력해서 세팅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이를 위해 조직 체계도 정비해야 하고 제작 외에 수반되는 비용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꼭 기획 단계부터 IP 사업을 고려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이 최선"이다. 콘텐츠IP로 파생되는 다양한 비즈니스는 그 콘텐츠의 인기에 기반하므로 작품이 온에어 상태일 때 가장 파급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미 끝이 나고 인기의 여운조차 시들해질 즈음에 관련 상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되거나 하면 아무래도 소구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뒤늦게 부가사업을 할 때 여기에 필요한 권리가 확보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게 흥행이 가능한 IP인가?

결국 쳇 바퀴처럼 돌고 도는 이 모든 것의 쟁점콘텐츠 흥행의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리스크'이다. 콘텐츠의 성공이 보장만 되어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는 투자지만, 콘텐츠산업은 그 어느 분야 보다 흥행 예측이 어려운 분야다. 그러니 시작 단계부터 투자는 필요하지만 결국 얼마나 리스크를 부담할 수 있는 지가 관건이고, 혼자 감당이 어려우면 전체적으로 분담하자는 것이 일본에서 제작위원회 시스템이 형성된 이유이다.


그렇다고 우리라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에 도입된 '문화산업전문회사' 제도가 그것이다. 2000년대 들어 영화와 드라마 산업이 성장하면서 제작비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정책금융 기조가 대출 중심에서 펀드·투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대안이 필요했다. 또한 영화, 드라마 제작현장의 회계 불투명성투자 유치도 어렵게 했기에 프로젝트 기반 특수목적회사(SPC) 형태인 문화산업전문회사 제도가 도입되었다.


문화산업전문회사 제도는 대규모 자본 조달을 가능하게 해서 우리나라의 영화나 드라마 산업의 스케일업에 기여했다. 산업에 지속적으로 돈이 들어오면서 텐트폴 작품들도 계속 제작될 수 있었고, 그 결과 천만 영화 시대가 열리는데, 한류 드라마를 탄생 시키는 데 일조했다.


문화산업전문회사 운영 시스템(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13)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문화산업전문회사를 통해 단일 프로젝트에 여러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면서 자금 조달과 리스크 관리에는 기여했지만 그 이상이 없었다. 이것이 일본 제작위원회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사실 설립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화산업전문회사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외부자금 조달과 리스크 분배가 주 목적이었다면, 제작위원회하나의 콘텐츠뿐 아니라 파생되는 다른 콘텐츠 제작이나 부가사업까지도 하기 위해 각자 자금을 대고 리스크를 나누는 것이 핵심이다.


이처럼 조직의 성격이 문화산업전문회사는 단발성, 제작위원회는 지속성 및 확장성이다 보니, 전자SPC가 해산되면 IP 권리가 소멸되거나 제작사에 환원되어 지속적인 IP 비즈니스가 어렵다. 반면, 후자참여사별로 나눠가진 권리를 가지고 각자의 전문 사업 영역에서 수익을 창출해낸다.


물론, 일본 제작위원회라고 마냥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IP 권리의 새로운 활용에 대해서는 위원회 전원의 동의가 필요해 의사결정이 느리고 경직적이다. 그리고 리스크 회피성이 높아 참신한 기획보다 검증된 원작 IP에 투자가 집중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 IP 비즈니스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제작위원회 모델이 여러 전문가들의 입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은 분명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류정혜 과실연 AI미래포럼 공동의장도 한 인터뷰에서 일본 제작위원회를 언급했다.


류정혜 과실연 AI 미래포럼 공동의장(출처: 삼프로 뉴스룸, 2025)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의 상황에서 과연 일본 제작위원회 형태의 시스템이 실현이 가능한 것일까?




이번 주제는 내용이 길어져서 여기서 끊고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참고문헌

권순우,「K콘텐츠가 대박이 나도 돈을 못버는 구조적 비극」, 삼프로 뉴스룸, 2025.

나카야마 쥰오, 『推しエコノミー 「仮想一等地」が変えるエンタメの未来』, 2021.

백수진, 「극장 불황 뚫은 '귀칼' 300만명… 굿즈도 동났다」, 조선일보, 2025.

장예솔, 「'귀멸의 칼날’ 전세계 박스오피스 석권, 북미 3일만 1000억 수입 육박」, 뉴스엔, 2025.

조영신, 「IP 다루는 귀신같은 칼솜씨... 귀멸의 칼날, 한수 보여줬다」, 더중앙플러스, 2025.

지인해, 김아람, 조영권, 「[엔터/미디어/웹툰] 적정 멀티플을 찾아서」, 신한투자증권, 2023.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과 일본의 콘텐츠 산업 금융투자 시스템 비교 분석」, KOCCA 포커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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