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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 주 계곡의 시냇가에서..

미국의 감자를 전량 공급하는 Potato State 감자의 산지 아이다호 주에 도착하여 Nampa 를 거쳐 Boise 시티 등지로 다니며 주변 정세를 살펴보니 들판은 푸르고 주택은 깨끗하고 매우 풍족한 도시였다.


아이다호 주는 감자 농사꾼을 연상케 하는 주로서 매우 촌스럽고 가난한 느낌이지만 실제로 살펴보는 소감은 여느 주에 비하여 소득이 매우 높고 삶의 품질 지수가 매우 놓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주였다. 


도시도 아주 깨끗하고 걸인이 보이지 않았으며 시민의식 또한 대륙의 각 주 평균치를 훨씬 윗도는 문화의 도시로 보였다. 그래프 도표의 잣대로 소득과 삶의 지표를 살피는 것은 무미 건조할 수 있어서 아예 그런 것 찾아본 적도 없고 눈으로 보이는 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반품할 것이 생겨 월마트에 반품하고 새로운 것으로 교환하고 음식을 더 장만하여 아예 산속에서 조난을 당해도 2주는 편히 지낼 수 있는 식품을 채워놓고 어디로 갈까 망서리다 산속의 길로 들어가 21 번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곳곳의 계곡에는 급류가 흐르고 사잇길이 많아서 들락이며 21번으로 다시 와 천천히 멈추고 떠나기를 반복하며 산맥길을 올라갔다.






사잇길로 몇마일 들어오면 이런 곳도 있고 큰 댐이 있어 호수가 형성된 곳이며 주변의 산은 모두 사막의 산처럼 숲이 없는 민둥산이었다.






옛날 급류가 흐를 적에 양 옆이 깎여서 절벽이 되었고 지금은 댐이 있어 호수로 변신한 곳이다.






산길 가장자리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전진하며 상황을 살피다가 숲이 있고 시냇물 아래가 길에서 보이지 않는 장소가 있어 차를 돌려 오며가며 살펴보다 가장 적합한 곳으로 판단하고 아래를 내려가보니 자갈밭에 백사장도 열평 쯤 있고 물속 바위와 바위 사이에 모래가 깔려서 마음에 쏙 들었다.


차에서 음식을 만들 도구를 내리고 수라상 삼계탕 하나 남은 것에 쌀과 검은색 야생찹쌀을 더 넣어 계곡물을 붓고 불에 올린 후 물속에 몸을 담구었는데 천국은 멀리 있지 않고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인 것을 새삼 느끼던 시간이다. 


바위가 물 가운데 버티고 있는 사이로 맑은 모래가 운치를 더하고 깊은 물에 잠겨서 무상무념에 이르니 몸은 날듯하고 feel 은 가볍고 맑은 시간이었다. 착하게 살라고 하지 않아도 이런 계곡에서 사색에 잠기면 그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이며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법과 질서가 뭔 소용이 있냐는 생각이다.







삼계탕 원료에는 장작토막 두개, 새끼손가락 크기 인삼 한개, 긴 마뿌리 같은 것 몇 개, 대추, 밤, 그리고 감초로 보이는 토막이 몇 개, 찹쌀 조금, 들어 있는데 월마트에 약병아리 (hen) 가 없어 닭다리를 넣었다. 

두시간 가량 끓이고 물에 넣어 식혀서 간을 해 먹는 오늘의 닭다리 삼계탕은 불노장생의 보약으로 손색이 없었다. 


문제는 나무토막과 작은 나무가지 쪼갠 것이 여러개 들어 있어서 그것을 건져내고 먹는 것이 귀찮았으나 자갈밭 한편에 던져 한국에서 온 나무토막이 아이다호 주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던 시간이다. 반찬으로는 도라지무침을 꺼내었고 꽤 많은 양인데 남김없이 먹었다.


지금은 나이들고 양이 적어졌으나 20 대 때는 가장 큰 닭 두마리 잡아서 감자를 넣고 닭도리탕을 만들어 밥도 비비고 혼자서 깨끗이 먹어치운 식성이었는데 체격이 크고 뚱뚱한 사람이 오히려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고 마르고 운동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대식가의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다. 


미국에 오기 전 두 동생은 전용 전기밥솥이 있어 둘이 나누어 먹고 때와 때 사이에 라면 6개를 끓여 세개씩 나누어 먹는 식충이었는데 밥보다는 육식을 좋아하는 것이 동생들과 달랐고 집안 식구들 누구도 인삼을 먹지 않는데 여동생 시댁이 금산서 인삼농장을 해서 자주 큰 박스에 수십뿌리씩 가져오는 귀한 6년 근 인삼을 혼자서 먹었고 술담그는 큰 병에 인삼을 재면 그 정도는 삼사일 안에 깨끗이 먹어치우던 식성이었다. 가족들이 그 상큼한 것을 왜 먹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되었고 갓난애기 때 부터 인삼 등 한약으로 목숨을 이어와서 지금도 술을 제외한 음식은 가리는 것이 없다.


여기 들어 있던 것은 인삼이라기 보다 파지난 것을 하나 넣은 듯했으며 가격이 저렴하니 제대로 된 인삼을 넣을 수 없겠다며 이해는 되었고 얼른 건져서 버렸다. 사막을 다니면서 방울뱀을 체포하려는데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번 여행에는 기필코...






몸은 청결하고 마음은 맑아져 늦은 시간에 짐을 청돈하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아이다호 시키가 나왔으며 한바퀴 둘러보니 개척시대에 광산업이 중추 산업으로 번성한 마을이었다. 






지금은 보존구역이었으며 상권이 활발하지 않은 산속의 마을이었고 거주민은 옛 낡은 주택에 그대로 살고 있었다.






이곳 마을이 형성 된 것은 1800 년대 중반이며 그 이전에는 사냥꾼과 무역상이 다니던 곳이었고 본격적인 광업이 활성화 되면서 아이다호 시티가 정착민 마을로 발전했다. 




















이들 서양인들이 놀라운 것은 어느 시골 박물관을 가더라도 현대로 비교하면 윤전기사용하던 수동식 인쇄기와 활자가 있고 많지 않은 거주민 마을에서도 신문을 발행했다.  






건물 벽에 붙은 설명문에는 1863년 개척민 인쇄기술자 조셉과 토마스 버틀러가 훗날 "아이다호 월드" 가 된 보이스 뉴스를 발행했는데 지금 이 건물은 국립 유적지로 등록된 건물이라는 설명이다.


전신이 발명되면서 각지의 뉴스가 전해지고 이런 시골에서도 통신을 받아 신문을 발행 한 것은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초기 거주민은 광부 벌목꾼 사냥꾼 점포상 거간꾼 역마차 종사자 금융회사 식당 술집 여인숙 대장간 약국 보안관 사무실 등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들이 정보산업은 이미 1600 년대에 동부에서 발달했고 서부개척시대로 접어들면서 개척민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갔다.






마을이 형성되면 지금 시대의 버스정류장에 비교되는 웰파고 역마차 정거장이 반드시 생겼으며 정기 버스편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전신과 송금을 하던 웨스턴 유니언도 서부 개척민 마을에 감초 역할이고 지금 있는 장갑차량을 이용한 현금과 귀금속 호송사업도 이미 서부시대에 이런 곳에서 운영되어 지금에 이르는 것이다.


금을 채취하여 은행에 보관하고 전표를 받는 개척민, 그리고 모인 금을 총잡이 수십명을 고용하여 큰 도회지로 수송하기 위해 열차가 있는 지역까지 호송하던 서부영화의 무장마차 스토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 아이다호 시티를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지만 이곳을 서부시대 마을로 재현해서 말과 마차가 다니고 총잡이가 다니는 곳으로 변화시키면 좋겠다는 바램이며 그렇게 하면 마을사람 여행객 모두에게 유익한 곳이 될 것이다. 한국의 민속촌처럼 서부 개척민 마을로....






지금도 영업을 하는 집도 있지만 대부분 문을 닫고 보존된 건물이지만 곧 제 역할을 할 마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하 서부개척시대 마을의 비슷한 건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건너뛰고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호텔...






판사 사무실... 변호사 사무실.





검은색 건물은 대장간.






쇠창살로 가려진 감옥.







오늘은 어디로 가고 내일은 어디로 갈지 고민할 것도 없이 그저 발길이 가는대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대륙의 산천을 헤매이면 된다.


여행은 언제나 아름답고 정서를 맑게하는 명약으로서 궁시렁 거리기 좋아하고 근심걱정에 입방정이 심한 속세의 군상들이 없는 곳으로 다니는 이 시간이 끊이지 않아야 하지만 때가되면 속세로 잠시 내려가서 지내다 다시 신선계로 돌아 와야 한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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