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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월 전 독일을 출발한 자전거 여행 부부.

천국이 멀리 있지 아니하고 산좋고 물 맑으며 스치는 사람마다 다정한 인사를 주고 받는 이곳이 천국이었으며 자연온천에서 이틀을 지내고 북으로 계속 진행하며 천국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살펴보던 시간이다.





급류에서 래프팅 하는 사람이 여럿이며 지금은 여름방학이 끝나서 모두 학교로 돌아간 시즌이어서 전국의 여행지는 한가로워지는 때다. 






경사가 심하고 수량이 많아 단거리 선수 속도로 흐르는 살몬강 급류에서 카약에 도전한 사나이...






대륙 중에서도 아이다호 주 살몬강 계곡이 참으로 유별난 곳이다. 


한국식 표현으로 자주 바뀌는 풍경과 사회적 이슈 그리고 변덕스런 성격 등을 일컬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이곳은 3일동안 천천히 지나며 마주하는 풍경을 보면 불과 일이백 미터 전진하면 풍경이 분단위로 바뀌는 곳이다. 우거진 수풀에서 바위산, 모래산, 풀 산, 자갈산, 민둥산 등 놀라운 곳이다.






Salmon 강 건너에 자갈과 모래가 흘러내린 큰 산이 있으며 산 위를 살펴보면 태고에 밀려 올라 온 바위가 풍화작용으로 부식하면서 무너지고 큰 바위에서 자갈로, 자갈에서 모래로 부서지며 아래에 도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강 하나 사이에 두고 오른편은 수풀이고 왼편은 사막의 산으로 변하는 곳이 이곳의 특이한 기후와 풍경이고 살몬강은 대체로 평균 폭이 20 ~ 50십 미터이며 한국식으로 하면 좁은 개울이지만 미국 거의 전지역은 장마철이 없고 거대한 산맥과 대륙의 경사가 심하고 수량이 연중 거의 일정하고 엄청난 물이 흐르는 것이 한국과 다르다.


한국의 하천과 강은 연중 약 3 주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철을 기준으로 필요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커진 것이고 장마철을 지나면 강수량이 현저히 줄어서 도랑물 형태의 큰 하천이 대부분이다. 옛날에 한국의 강과 하천을 다녀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가방과 카메라를 둘러메고 다닌 실제 경험이니 틀리지 않을 것인데 서부지역 모래사막은 폭우가 쏟아지면 강물이 넘치다가 며칠 후 개천이 말라붙는 그런 곳 제외하면 대륙의 하천은 엄청난 수량이며 이곳 계곡을 흐르는 좁은 살몬 강 수량은 급경사로 흐르는 속도와 강폭 등을 계산해 보면 한강 수량보다 적지 않은 곳이다. 


한강이야 소싯적에 뚝섬과 때로는 옥수나루에서 나룻배로 건너 잠실 앞 백사장서 놀고 온 텃밭과 같은 곳이니 물흐름이 무척 느린 곳이며 낙동강은 부산 주례에서 아는 가정의 재치잡이 전마선을 혼자서 노저어 몰고 갈대밭으로 다녔으며 물개처럼 수영하던 곳이고, 이리시 만경강은 식수로 부적격한 곳으로 치아가 갈라지고 색이 변하는 반상치병이 걸리는 그곳 만경평야 목천리에서도 살아봤으니 틀리지 않는 의견일 것이다. 황룡강 섬진강 영산강 남한강 금강 등, 에효~ 그리운 조국 강산....   








이곳도 지명으로는 마을인데 인구가 7 명이 사는 곳이며 그런 것까지 세세히 기록한 표지판을 세우는 나라가 미국이다. 조금 더 큰 마을에는 어김없이 전몰군인 기념비가 있으며 언제 어느 전쟁에 참전하여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기록을 고스란히 기록하여 이름을 남기며 군인을 우대하는 나라인 것이 한국과 다르다.


뉴욕에 거주하는 후배 데이빗 조 상사는 군바리라고 놀리면 미국 군인의 자긍심이 대단하여 반론을 제기하는데 오래 전 그가 이라크 전쟁 병참기지 쿠웨이트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여객기 안에서 임무 완수 후 귀국하는 영웅이 비행기에 타고 있다는 아나운스먼트가 있었고 탑승자 전원으로 부터 박수로 환영인사를 받았다는 한국서는 볼 수 없는 무용담을 들려준 적이 있다.


미국은 전쟁이 많은 유럽서 온 다양한 민족으로 무관을 숭상(대우)하는 정서가 있으며 데이빗 상사의 가정은 두 딸 모두 대위와 하사관이고 애비도 예비역 상사니까 만약에 죄를 저질러 법원에 가는 일이 생긴다고 가정하면 중범죄가 아니면 면제가 될 정도로 군인을 우대하는 나라다. 







계곡에 평지가 나오면 모두 목초지로 만들어 농장을 경영하는 곳이고 마을이 아닌 한 가구 농장으로 풍부한 물이 삶의 근원인 곳이다.






위 사진을 자세히 보면 강가에 휴계소를 만들어 놓은 것이 보이는데 지나는 나그네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사진 오른편에는 화장실이 있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샤워장이 없으므로 목욕은 강에서 하고 나머지는 유료인 RV Park 과 다르지 않다.


감자농사가 주종목인 아이다호 주는 관광객 유치 차원의 배려도 있겠으나 대륙을 다니면서 이곳처럼 휴계소를 많이 만들어 놓은 곳을 본 적이 없다. 조금 가면 휴계소, 조금 더 가도 휴계소.... 

아무 곳이나 차를 세우고 밤을 지새우면 되는데 캠프장이 아니므로 천막을 치거나 장작불은 피울 수 없는 제약이 있고 캠핑을 하려면 줄줄이 늘어선 캠프장을 가면 되는데 1박 비용은 10 달러 ~ 12 달러 정도다.






큰뿔 산양이 사는 절벽 표지판이 있어 걷는 속도로 가며 살펴봐도 녀석들이 보이지 않았다.







들판에 뭐만 서있으면 들어가 차를 멈추는데 이곳은 휴계소이며 옛 유래를 설명한 버팔로 (들소) 사냥지였다.






쇼숀 인디언 부족의 옛 거주지이며 그들은 스페인 원정대로 부터 야생화 된 Mustang(야생마)를 체포하여 길들여 타고 다니면서 때로는 부족 전체가 나서는 단체사냥으로 버팔로를 언덕위 광야에서 이곳 절벽으로 몰아 떨어져 죽게하여 털가죽과 고기를 취한 쇼숀 인디언 역사가 서려있는 곳이다. 







75번이 끝나고 93번 막다른 길이 나왔는데 지도를 살피고 대충 이렇게 가겠다고 생각은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여행지는 수시로 바뀌기를 고전속에 등장하는 변덕이 심한 뺑덕어미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으며 세상에서 종잡을 수 없는 것 두 가지는 개구리 점프와 럭비공 튀는 것인데, 여기서 남쪽으로 가기로 했었는데 삼거리 길가에서 망서리며 생각에 잠기다 어디로 가든지 이전에 간 적이 없는 곳이라서 고심끝에 Salmon 시티로 방향을 잡았다. 







마을은 그리 크지 않으나 소방헬기가 있을 정도.....






농경지가 많은 곳으로 국유지에 만든 휴계소는 드물었고 사유지는 모두 농장이어서 철조망으로 막혀 있었다. 








얼마를 전진하니 (알화화) 비싸고 질좋은 소먹이를 베어 말리는 밭에 큰뿔 산양 무리가 내려와 풀을 뜯어먹고 있는데 사람도 먹고 살아야 하듯이 산양도 먹고 사는 곳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녀석들은 말린 알화화는 먹지 않고 싱싱한 푸른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길 가장자리는 도랑이어서 길에 세우고 비상등을 켠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녀석들은 경계하느라 수시로 쳐다보고 있었으며 뒤이어 도착한 차량도 서서 산양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이 넓은 곳에서 카약을 타고 내려가는 무리가 있어 빈터에 차를 세워 바라보니 반갑다면 손을 흔들며 떠나간다. 


날이 저물어 빈터를 찾아 달리는데 집이 몇채뿐인 어느 마을 건너 강가의 숲에 운동장 보다 훨씬 큰 빈터가 있어 들어가 빙빙 돌면서 살펴보니 강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고 무인지경이며 알맞는 야영지로서 손색이 없기에 흰밥을 해서 스팸을 넣은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 잠에서 깨어 이곳까지 왔으며 아이다호주에서 다시 몬타나 주로 바뀌는 곳이고 이곳에서 43번으로 가기로 하고 스키장 아래 휴계소를 살폈다.






고개 정상에 있는 휴계소이며 두 세시간 더 자야해서 쉴 곳을 찾는데 승용차 휴계소에는 그늘이 없고 트레일러 쉬는 장소는 엔진을 켜놓아 시끄러워 조용한 곳을 찾아 길 건너로 갔다.







축구장을 그리면 딱 맞을 정도로 큰 빈터가 있고 나무그늘이 있는 아래로 가서 차를 세우고 아침 잠을 더 잤다. 이런 아름답고 좋은 자리가 넘치는 대륙이어서 유료인 RV Park 사용하지 않고 지난 여행과 다르게 이번에는 모텔에 가지 않고 빈터에서 지내며 대륙을 다니는데 모텔비 지출이 없어서 하루에 약 80 달러 절약이 된다. 


누가 총을 가졌는지 알 수 없는 나라여서 빈터에 차를 세우고 잠들어도 시비하는 이 없고 안심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인은 보편적으로 선하고 도움을 주려는 성품이어서 남을 괴롭히는 행동을 하지 않지만 대도시 빈민가 다양한 색깔이 있는 곳은 사정이 다른 것을 기억하자.  






얘들도 아침을 먹어야 해서 두리번 거리며 살피는 이곳에 도착해 셔터를 누르고 ....






배낭을 메고 광야를 달리는 여행자가 있어 지나친 200 미터 가량 먼 곳에서 그가 달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몬타나 주 Wisdom 마을 인근에 있는 이곳 Nez Perce 네즈 피스 인디언 부족 유적지를 답사하기로 했다.







규모가 큰 안내소가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 자료를 받아들고 유적지 인턴과 문답을 하는 시간이고 대략의 정보를 꿰맞추어 역사를 거슬러 생각하며 지난 번 다녀온 리틀빅혼 전투현장 다음해 1877 년 이곳에서 네즈피스 인디언 부족이 미 육군 7 보병부대에 의해 기습 학살 당한 현장을 견학하기로 했다. 







세월이 흘러 작은 동판에 인디언 용사와 남녀노소와 어린이 죽음을 위로한들 한번 뿐인 생명이 사라진 그들에게 무엇이 유익이 있으며 습격 중 전사한 백인 용사를 위로한 들 그들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나...













뉴욕시 근처 코네티컷 주에서 이곳에 와 인턴쉽을 하는 학생에게서 빅홀 전투현장의 역사를 배우는 시간이며 학생은 간결하게 설명하면서 문답식으로 읽곱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열심히 역사강의를 하였다. 


각자 출신지를 소개하는 시간이었고 오른편은 시카고, 일리노이, 왼편 노부부는 오하이오, 뒤편의 남정네 둘은 어느 지방이었고 나는 뉴욕시로 소개를 마쳤다. (누가 물으면 뉴욕에서 삽삼십년을 산 뉴요커 자존심이 있어서 시골 댈라스서 왔다고 하지 않으며 그곳은 잠시 거쳐갈 곳이라 말한다.) 






이곳 빅홀 강 옆 네스피스 인디언 유적지 전투현장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863년 이 근처 곳곳에서 금광이 발견되었으며 금광이 발결된 지역을 지명으로 살펴보면 같은 시기에 아이다호 시티 부터 몬타나 주 이곳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금을 채굴하게 되었으며 기름진 대지에서 옥수수 경작과 지천에 널린 버팔로 사냥과 물고기를 잡아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부족을, 161 명의 제 7 보병부대와 45명의 의용군, 이렇게 도합 206 명의 공격대가 1877년 8월 9일 새벽 기습하여 무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 살륙을 자행한 비극의 현장이다.


(의용군은 자원봉사로 참여한 전투원을 뜻하지만 이들 45명은 인근에서 금을 채굴하는 개척민으로 자신들의 금전적 이익을 위해 인디언 학살에 참여한 것이다.) 






언덕에 대포를 배치하고 기습준비를 마친 그들은 야밤에 공격하여 가리지 않고 살륙을 자행하였다. 


기습을 당한 현장이며 안내소에서 차를 운전해 멀리 돌아서 이곳 주차장에 왔으며 배낭을 메고 루트를 따라 가다가 아무래도 배고픔이 염려되어 주차장에 돌아와 라면을 끓여 엊저녁 남은 밥을 말아먹고 다시 들어갔다. 배낭에 있는 훈제 말린 소고기는 산중을 헤맬 때 대비한 이틀분 비상 식량이라 아끼는 것이고...






1877년 부족이 살던 그 자리마다 티피 천막 골격을 상징적으로 세워놓았으며 이곳에는 그날까지 약 750 명 부족이 살았고 200 명 인디언 용사가 있었는데 John Gibson 이 이끄는 기습부대와 추장 조셉 이 이끄는 인디언 용사가 혈전을 벌여 인디언 약 90 여명이 살륙당하고 기습부대원 30 여명이 전사한 참혹한 현장이다. (추장은 이름으로 미루어 보면 스페인 영토시절 스페인 카톨릭 수사에게 영세를 받은 인물로 보였고 몇몇 이름이 새겨진 지도자 이름도 기독교 이름이 여럿이다.)


여러명 추장이 있었으며 직급별 추장인 듯 하였고 그들 천막은 이곳을 찾은 후손들에 의해 추모의 표시가 매달린 것으로 보였다. 






추장의 이름이 새겨진 표식 아래는 25 센트 동전이 놓였으며....







매우 느리게 마을 전체를 돌아보던 시간.........







아름답고 풍부한 빅홀강이 바로 곁 10 미터에 있어 부족이 목욕하고 고기를 잡고 빨래하고 옥수수를 경작하고 가축을 기르던 이곳에 사는 생명을 금을 차지하고 경작지를 빼앗기 위해 무차별 살륙한 것이 슬펐다.


예나 지금이나 돈을 보면 환장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것들이 지구에 널렸으며 능력이 된다면 나는 그들을 모조리 붙들어 우주여행의 장도에 오르게 하여 금성과 수성을 지나 태양 속으로 천천히 들여보내겠으나 힘이 없으니...






왕복 십리 정도지만 강렬한 햇빛과 더위에 곳곳을 차분히 둘러보려고 충분한 물과 마른 음식을 짊어지었고 천이 여러개 걸린 티피는 이들의 토속종교 지도자 (무당으로 해석하면 될 듯) 가 거주하던 천막이었다. 짐승 머리뼈 또는 조개껍질에 약초를 넣어 태우고 연기를 쏘이게 하며 주문을 외우던 주술사 주택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도 이곳에 주택을 지으면 무척 훌륭한 주택지로 손색이 없는 곳인데 엣적 이곳에서 살륙당한 인디언 부족의 시신은 지금도 땅속에 묻혀 있다고 한다. 언제 발굴할지 모르지만 이곳 현장이 고스란히 공동묘지로 변한 곳이라 조심스레 걸으며 옛적에 떠난 영혼을 위로하면 다니던 시간....






인디언 부족의 주식인 옥수수를 심기만 하면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옥토에서 내쫓기 위해 기습 살륙을 했던 인간의 사악한 욕심을 저주하던 시간이다. 지금이야 세월이 흘러 승자의 위치에서 인디언 부족의 슬픔을 위로하는 개척민의 후예들이지만 앞으로도 유사한 상황이 생기면 더 큰 살륙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습성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서너시간 머물던 유적지를 떠나 푸른 들판 곳곳에 차를 세우며 셔터를 누르기도 하고 사색에 잠기면서 앞으로 갔다. 







아침 잠을 잔 고개 위에서 몇마일 지나는 길에서 배낭을 메고 열심히 달리는 여행자를 지나쳤는데 빅홀 전투현장에 머무르고 이곳 Wisdom 마을 초입이 가까운 곳에 그 친구가 달리고 있었으며 가게에서 얼음을 사서 아이스박스에 채우고 작은 마을을 둘러보고 길을 떠나려는데 저편에서 마을로 가까이 달려오고 있었다. 


달리는 여행자가 신기하여 아이패드로 거리를 재어보니 고갯마루에서 이곳 위스돔 마을까지 26' 7 마일 (42.72 km) 이며 그를 처음 본 곳을 6'7 마일 제하고 계산해도 20 마일 (32 km)을 달려 이곳까지 온 것이다. 참고. 마라톤 공식 거리는 42' 195 Km 다.


처음 본 곳에 서서 물을 주고 이야기를 나눌까 하다가 운동하는 사람은 끝날 때까지 건들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기에 지나쳤는데 배낭을 메고 백리를 달리는 그는 대단한 여행자이며 누구도 흉내 낼 엄두를 내지 못할 광야를 달리며 여행하는 맨중의 맨 못말려 맨이었다. 


과거 당수도와 단거리 육상을 했고 삼년 전까지 수십년 축구경력의 강력한 체력 소유자로서 운동장에서 누구를 상대해도 부족함이 없는 스피디맨이지만 뙤약볕 아래서 광야를 달리며 여행하는 못말려 맨에게는 적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한 날이다. 한국에 원정경기 다니면서 전직 국가대표들과 현역 젊은 프로선수를 상대로 맞짱 떠도 전혀 꿀림이 없던 체력이 이 친구에게 오늘 꼬리를 내렸다. 


(내 인생에 실제로 만난 운동하는 인물 중에서 처음으로 체력을 인정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70년대 중반 한국의 집 앞산에 있는 북파공작원 켈로부대 유격장에서 훈련하던 북파공작원들이 북파되기 전 최종훈련으로 배낭을 메고 총을 들고 문산까지 왕복 달리기 하는 것을 자주 봤지만 못말려 맨에게 비교하면 그들은 적수가 되지 못한다.  







위스돔 마을에서 278 번 도로를 따라 달리다 아이다호 주 산맥이 보이는 언덕에 쉬면서....





몬타나 주 들녘에는 검은 소가 떼를 이루고 있지만 이 정도는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길을 지나 큰 표지판이 보이기에 들어왔는데 앉아서 음식을 먹는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더위에 고생하는 그들에게 아이스박스에서 오렌지 쥬스, 물, 델몬트 과일통조림을 꺼내어 권하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얼마 후 붉은 색 티셔츠를 입은 또 다른 자전거 여행자가 멈추었으며 이야기가 길어졌다. 


오른편 부부는 독일 국민이며 독일을 출발하여 쿠르키스탄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지나고 중국을 거쳐 라오스와 말레이지아 타일랜드 등을 여행하고 쿠알라룸프르에서 알래스카로 이동하고 알래스카에서 캐나다를 거쳐 이곳 몬타나 주 광야에 도착해 잠시 쉬는 중이며 17개월 째 자전거로 달리고 있는 영어가 유창한 부부다.


가운데 처녀는 동부 캐나다에 거주하는데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동부지방 사람으로 영어가 매우 유창한 캐나다 국민이며 혼자 대륙의 자전거 여행을 하다 오늘 독일인 부부를 만나서 이곳까지 왔는데 오늘은 어느 들판에서 같이 지낼 예정이지만 내일은 모른다고 했다.


맨 나중에 도착한 캔사스 친구는 두달반 전 다녀 온 캔사스 시티 미주리 주에 거주하며 홀로 여행하느라 반대편에서 와 이곳을 지나는 중이었다. 


독일부부에게 여행 중 위험이 있었냐고 물으니 전혀 없었고 만나는 모든 이들이 친절하였다고 한다. 파미르 고원 산악지대를 지나면서도 문제가 없었고 자전거에 실은 작은 천막을 치고 들판서 자며 여행하여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이들 모두는 자전거에 캠핑장비를 매달고 다니는데 피곤하면 적당한 장소에 천막을 펴고 잔다고 하였다. 가장 좋은 여행지는 동남아였으며 길가의 노점상 음식이 맛있고 너무나 싸서 좋았는데 알래스카에 도착하여 물가 때문에 놀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알래스카는 농사가 안되는 변방이어서 본토보다 물가가 약 세배 가량 비싼 곳이라 설명해주었더니 그 또한 놀랍다고 한다.


캔사스 친구는 젊어서 부터 세계 곳곳을 여행한 베테랑이며 헉헉대는 그에게도 차가운 얼음물을 꺼내 주었고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나는 여행자끼리 동질감이 있어 애정이 깊은 사람들이다. 서로 돌아가며 기념사진을 찎었으며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어디서 자냐는 질문에 주로 모텔을 이용했다는 말에 오히려 그들이 놀란다.


혼자 생각에 너무 호사스런 여행을 한 것으로 생각도 들었고 하여간 이번 여행은 캠프장과 임자없는 들판에서 지내볼 생각이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다니는 때문에 여행자를 만나면 내가 화제의 중심이 되지만 이들에 비하면 힘들이지 않고 여행하는 대륙의 여행자에 불과하다. 캔사스 친구는 여행지식이 엄청 많고 지식과 언변이 탁월한 인텔리고 독일인 부부에게 갖가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이들에게 처음 들어서 알게 된 것은 대륙에는 자전거 여행자 만을 위한 장소가 따로 있다고 하는데 그런 곳에서 천막을 설치하고 지내기도 하는데 무료라고 한다. 오른편 세 사람은 곰을 만나면 눈에 발사할 최류 스프레이를 갖고 다니는데 내게 그런 것이 있냐는 질문에 대검을 갖고 다닌다고 설명해 주었다. 곰의 눈에 스프레이를 뿌릴 정도로 가까우면 생사를 건 격투가 벌어지는 상황이니 당연히 죽일 수 있는 칼이 훨씬 낫다. 






오면서 목격한 못말려 맨 이야기를 해주니 모두 놀라워 했으며 그렇게 한동안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나누다 캔사스 친구는 몬타나 주 복쪽으로 떠나고 독일 부부와 캐나다 처녀는 287 번 동남쪽으로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향해 떠났으며 힘들게 페달을 밟으며 전진하는 그들에게 경적을 울리며 빠른 속도로 앞질러 떠났다.


대륙을 다니면 이런 저런 여행자를 많이 만나지만 힘들고 지친 기색이 완연한 채로 달리는 못말려 맨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것은 달리다 한번 멈추면 주저앉기 때문에 그에게는 차마 멈추지 못하고 지나쳤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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