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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재회한 히말라야 여인 소피아.

여행의 기록이 뒤로 미루어질 때 많지만 소홀함 없이 스쳐 지나간 것과 보고 기억해 둔 것을 모두 정리해서 순서가 뒤바뀐 때가 없다. 오늘은 센트럴팍에서 브로드웨이를 따라서 걸어서 타임스퀘어를 갔다. 




원래는 이정도로 복잡한 곳이 아니었으나 십수년 이래로 비자발급이 수월하고 세계경제의 상향곡선에 의한 영향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여행객이 많아졌으며 과거에 있던 오리지널 전광탑 맞은편에 새로운 타워를 건설하고 여행객이 앉아서 쉬는 스탠드를 설치하였다.





세계의 모든 곳 가운데 단연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이곳 타임스퀘어이며 특히 연말이 가고 새해가 오는 시각에는 과거에 약 200 여만명으로 추산되는 인파가 몰릴 만큼 미국인과 세계인의 뜻깊은 장소인데 평상시에는 과거보다 몇배나 많은 인파가 몰려 걷기가 불편할 정도이며 화려한 네온사인의 불빛도 엄청 많아졌다.





관중이 바글거리는 스탠드 앞 경계석에 힘차게 올라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_<>?'{)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쉭쉭소리가 나는 방언으로 이곳에 있을지도 모를 사탄과 마귀를 내쫓는 여인이 있었다.


세상의 죄악이 가득히 만연했던 옛 소돔성 과 고모라성이 지금 이곳의 타임스퀘어인지 알 수 없으나 각기 다양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렇쿵 저렇쿵 평가할 필요는 없다.

창세기 성경 역사에 나오는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는 맨하탄에 비하면 표시도 나지 않을 매우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하였지만 당시에는 그곳에 죄악이 범람하여 여호와가 천사를 시켜서 유황불로 응징하여 궤멸시켜버렸다는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각기 개성대로 살아가는 곳이고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곳이라서 그 누구도 이분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으며 확고한 신념으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온세상을 향하여 귀신을 내쫓는 행동이 눈에 들어와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이 정도 신앙관을 갖고 타임스퀘어 거리에서 사탄과 마귀에게 물러가라고 호통을 칠 수 있는 민족은 한민족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분은 뉴욕시 또는 뉴저지에 거주하는 한인여성으로 짐작되었다. 9년 전 명동을 거닐 때 커다란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상의 종말이 가까우니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간다던 노년의 남성이 있었는데 그분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을지 아니면 먼저 천국에 갔을지 모르지만 세상에는 일반인의 경계를 뛰어 넘는 사람들이 많다.


어제는 맨하탄 허드슨 강변 도로의 가장자리를 점거하고 떼지어 중국정부의 "파룬궁 박해"를 성토하는 인파가 있었으며 수십명 경찰이 사고방지를 위해서 외곽을 지키고 있었다. 과거에는 있지도 않던 종교가 치밀한 기획에 의해 여기 저기서 느닷없이 터지는 활화산 모습처럼 사기를 목적으로 세상에 나오고 그것에 심취하여 물불을 가리지 못하고 맹종하는 자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으나 종교의 자유가 있는 미국이니 탓할 수 없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파X궁이 박해를 받아 중국으로 되돌아 가면 목숨이 위태롭다고 이민국에 망명신청을 하여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한 잔머리 굴리는 자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중국에서는 별볼일 없이 살아서 전혀 관심도 없었을 내가 알던 조선족 여럿이 밀입국한 후 거짓으로 망명을 신청하여 체류자격을 획득한 사례가 있어서 상황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거리를 가득히 메운 단체 청소년 여행단...





지금은 소돔과 고모라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이며 타락한 도시의 이미지는 이미 과거로 20 년도 더 흘러갔다.





선하고 자유뷴방한 사람들이 세계적 명소를 보기위해 이곳에 온 것이지만 타락한 도시의 일원이 되려고 온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이 밤늦은 시간이면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하고 맨하탄 가까이에 있는 퀸스 구와 브루클린 구 등 지하철이 발달한 곳 허름했던 빈민가의 렌트비가 천정부지로 뛰어v올라서 과거 렌트비 폭등의 악명이 높았던 훌러싱을 능가한지 오래되었다.





앉아서 휴식을 하는 사람부터 거의 나체로 행위예술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몸매의 여인도 보였다.





건장한 체격의 남성은 다음 공연을 위해 준비하는 중이고...





외지에서 온 여행자들은 이층버스로 거리 관광을 하고 있었다.






직업의식이 없으면 이렇게 벗을 수 없는 상황이겠으나 이들은 거리에서 행위예술로 널리 알려져서 입신출세를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가리는 것이 없다.






과거 루마니아의 요정으로 불리던 체조선수 코마네치 모습으로 거리 가운데서 반복동작을 하면서 연신 사진을 찍은 틴에이저도 있었는데 한갖 기념촬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세인의 관심으로 어디엔가 발탁이 되고 싶은 아이로 보였다.





지난밤에 이미 여행밴으로 곳곳을 둘러봤으므로 오늘은 한가히 거리를 걸으며 ㅊ억을 회상하던 시간이다.






세상에는 비슷한 사람이 많고 인기인의 지명도에 편승하여 직업을 영위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분은 외모와 풍채가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하고 그의 복장을 모방하여 기념사진을 찍는 사례로 수입을 얻는 직업인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바라기는 제발이지 오랑캐들이 이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시진핑 군의 목을 바짝 조여서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청나라 초기 시대로 되돌아가도록 이 사람에게 빌어본다.





4년 전 추운 날씨 속에 옷을 벗고 거리를 다니며 활동하던 키타맨을 이곳에서 만났으며 이놀은 무더운 날이라서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다. 이들은 거리가 좋아서 나왔다기 보다는 기념사진의 모델이 되어 수수료를 받는 사람이니 맨하탄 방문객은 기억하고 2달러 정도 사례금을 지불하면 된다.






갖가지 분장으로 무더운 여름에 거리를 즐겁게 하고 작은 수입을 얻는 사람들이 거리에 널렸다.  





옛날에는 맨하탄에 거주하던 아메리카 원주민이 다니던 길이 지금의 브로드웨이가 되었고 지금은 이곳을 중심으로 한 일정한 구간은 시민의 휴식처로 변모하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이곳에 모여드는 다수의 남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제작자의 눈에 띄어 모델 또는 여예인으로 탈박되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많으며 일반 여행객의 모습과 그들의 모습은 판이하게 구별이 된다.





여행객이 너무 많아서 콜택시를 불러도 차가 없다는 대답뿐이어서 훌러싱으로 떠나는 것에 2시간이 넘게 흘렀으며 시간이 조금 늦어서 찬양이와 찬양이 여친을 한인식당에서 함게 만났다.


뉴욕시 경찰국에 시험을 패스하고도 연락이 없어서 최종 인터뷰 문제로 경찰국 전화가 동생과 현역 경찰인 동생의 처남에게 두달 전부터 결려왔기 때문에 여러번 연락을 취했으나 아이의 뜻이 경찰이 되기 싫다고 하여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며칠 후 부터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자유스런 사회생활을 선호하기 때문에 경찰을 하지 않는다는 찬양이 뜻이니 아예 묻지 않았으며 어느 분야든지 성실하게 살면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다. 동생의 아들은 이미 경찰관으로 근무하여 2년 후면 연봉이 10 만달러 될 것이라고 하지만 연봉의 많고 적음이 삶의 척도는 아니기 때문에 그 절반의 수입에 불과한 찬양이 앞길을 축복하였다.


아들의 결점은 인간성이 너무 착한 것인데 착한 성품이 악한 성품보다 천만배 낫기 때문에 그 또한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아들은 순두부처럼 희고 물컹거리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눌려서 다져지고 단단한 두부로 변할 것이다.





후배 사범으로 부터 한국에서 여동생이 온다며 자동차로 뉴욕까지 가는 도중에 볼만한 곳의 추천을 부탁받아 경유기간을 고려하여 엘비스 프레슬리 기념관과 룰레이 동굴을 추천해 주었는데 그곳에 들려서 뉴욕에 도착한 그들과 만나서 롱아일랜드 존스 비치에 갔다.


어렸을 때 보아서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데 후배사범의 여동생 임순이는 자신이 2006년에 세상을 떠난 나의 여동생과 동기동창이라는 소개를 하기에 갑자기 울컥해졌으나 표를 내지 않고 즐거운 표정으로 대하였다.





댈라스에서 성공한 태권도장 케이스로 널리 알려진 민허사범은 제절로 좋아서 대서양에 빠져 수영을 하고...





밀물이 들어오는 시간이라 파도는 점점 높아졌다.






구명 요원이 사방을 살피는 곳...





성격이 맑고 명랑한 문산에 거주하는 여동생의 동창생 내외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존스비치였으며 다른 곳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입장료 10 달러는 내지 않게되었다.





이곳 존스비치의 특징은 물이 맑고 모래가 고우며 훌러싱과 맨하탄에서 한시간 남짓이면 올 수 있고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곳이지만 인근에 여러 해수욕장이 줄지어 있어서 인파는 그리 많지 않아서 좋은 곳이다.  




여동생과 재잘거리며 놀았을 동창생이 이제는 손주가 있는 할머니가 되었고 중년의 나이에 재작년에 이어 올해도 미국을 오게 되었는데 오래비를 잘 두면 이렇게 된다.





훌러싱으로 돌아오기 전에 히말라야 여인 소피아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이번에는 떠나야 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는데 점심을 대접해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훌러싱 중심부 모퉁이를 돌아서 금강산 식당으로 향했으며...





아름다운 용모의 소피아와 지난해 라스베가스에서 헤어진 이후로 처음 만나서 냉면을 먹으며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갑자기 연락한 때문에 동생 이사벨은 코네티컷주에서 일 문제로 오지 못하게 되었고 이들 자매가 올해 히말라야 캠프베이스까지 등반하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히말라야에서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었으며 야크 두 마리와 포터를 여러명 고용하여 등정을 하였고 너무 힘들어 모두가 캠프베이스에 가는 것을 포기하였으나 혼자서 다녀온 이야기며 내려올 때는 너무 힘들어 말을 타고 깍아지른 벼랑길을 통과하던 공포스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뉴욕에서 어떻게 김치를 가지고 갔냐는 질문에는 현지의 짐꾼들이 이미 담가놓은 것이라는 설명이었고 음식은 그들 짐꾼들이 챙기고 짊어지고 만드는데 1인 고용비는 하루에 15 달러라고 한다.


지난해 옐로우스톤에서 만난 멤버가 아닌 또 다른 뉴욕시 원정등반대 열명의 대원이 9월 10일 부터 16일까지의 일정으로 미국 제일의 절경 글래시어 국립공원의 원정탐사가 있기 때문에 자유의 남자 블러그 기록에 올리지 않은 천혜의 루트를 별도로 알려주기로 했다. 지난해 뉴욕 (산)원정등반대가 옐로우스톤에 왔을 때 두 명의 일행은 별도로 유타주 아치스 국립공원을 보겠다고 가서는 지나친 더위로 모텔에서 머물다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 6월말에 그들은 글래시어 국립공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대륙의 산간오지를 다니며 세세히 살핀 소감을 여행기록으로 남기는데 일반 아마추어 여행자들이 알 수 없는 곳 기록이 많고 나의 뒤를 이어서 대륙의 절경을 보러가는 등반객이 뒤를 이어서 보람이 있다. 블러그에 기록을 남긴지 이미 10년 세월이 흘렀으나 그동안 많은 독자들이 캐나다 록키산맥,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옐로우스톤, 록키산맥, 브라이스캐년, 애미쉬 타운 등 여러곳을 다녀왔다는 이메일 연락에 기쁨이 넘치기도 한다.


소피아와 이사벨이 글래시어 국립공원에 가는 그때에 나는 한국에서 오는 히말라야 원정대를 마중하여 솔트레이크 시티를 출발하고 수천 마일의 여행을 해야 해서 이번에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올 가을 또는 내년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으며 더욱 자세한 글래시어 국립공원의 루트를 알려주기 위해서 이번 8월에 다시 갈 생각이며 오는 길에는 히말라야 등반대를 위해서 유타주 다섯 곳 국립공원 중에 필요한 곳에 들리어 새로운 루트를 살펴보아야 한다.   


어디를 가든지 광활한 대륙을 다니기 때문에 거리와 위치가 문제될 것이 없으며 늘처럼 가고 또 가는 여행이라서 거리의 멀고 가까운 개념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 올해의 여행을 결산하면 그동안 각기 다른 3대의 차량으로 주행한 거리는 약 60만 Km 넘을 것이지만 멀리 돌아다니는 것 보다는 앞으로는 더욱 세세히 살펴서 독자에게 보다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곧장 가면 약 2'500 km 이며 작년에 참여한 까마귀 부족의 퍼레이드가 감동적이어서 이번에 가능하면 그곳을 거쳐서 갈 생각이다. 이사벨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떠나는데 찬양이에게 전해주라며 봉투에 넣은 용돈을 준비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서 히말라야 여인 소피아가 준 것이라며 찬양이에게 전해주었고 찬양이는 감사의 인사를 전해달라며 웃는다.


예로부터 아빠의 친구에게는 용돈이 마구 생겼고 제 생모의 주변의 것들은 주둥이로는 은혜가 넘치는척 하면서 영양가 없는 것들만 있어서 한푼의 용돈이 생기지 않던 찬양이와 은혜의 추억을 생각하며 웃음이 나왔다.  


폭설 때문에 9월 중순에는 글래시어 국립공원을 오르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지만 소피아와 이사벨이 속한 등반대가 무사히 등반하기 바라고 올해는 이미 맺어진 선약이 있으므로 늦은 가을이나 아니면 내년에 함께 할 기회를 다시 만들면 된다.


뉴욕시에는 수많은 친구가 있지만 이번에는 연락이 쉽게 닿는 두 명의 친구와 잠시 만났으며 아들과 소피아를 만나고 입을 봉한채 길을 떠났으나 10월 중순에 작은누나가 한국에서 뉴욕에 오는 그때에는 별도로 넉넉한 시간을 만들어서 헤어져 지내던 친형제 자매를 만나고 몇년동안 만나지 못한 선후배들을 만날 생각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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