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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스키장 록키산맥 모래산 국립공원.

  애팔라치안 산맥을 떠나면서 몸살이 너무 심하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파서 병원에 예약을 했고 진찰 결과 감기로 판정이 나서 물약을 처방받아 다음날 몸이 대충 나았다. 


두 달 전에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혈액검사와 엑스레이 등 검진을 했고 그동안 가래가 너무 자주 나와서 기관지가 나쁜 것으로 자가진단을 했었는데 폐와 기관지는 정상이고 만성비염 염증이 기관지로 넘어가서 자주 뱉는 것이라며 기관지와 폐는 건강하니 염려 말라는 진단이었다.


혈당이 100 이 정상인데 105로 나왔으며 코카콜라 아이스크림 초콜릿을 수십 년간 엄청나게 먹은 것에 비하면 지극히 정상이니 염려할 것도 없고 콜레스테롤이 조금 높은 정도로 전체적 건강상태는 비염을 제외하면 매우 건강하다는 의사의 소견이었다.


여름에는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 감기로 며칠 고생하였는데 미국은 작은 병도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하므로 약값보다 진찰비가 더 많이 들지만 처방전 외 상비약을 제외하고는 임의적으로 구입할 수 없어 불편할 때 많다.




뉴욕을 떠난 후배 사범을 다시 댈라스에서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그 길로 뉴멕시코 Raton 시티 방향으로 길을 떠났다.


자그마치 10 시간 동안 거의 볼 것이 없는 평야지대라서 도중에 하루를 자고 아침부터 연속으로 달려서 Capulin Volcano 목전에 있는 뉴멕시코주 이곳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광풍이 불고 차가 뒤집힐 정도의 폭풍이 불어 모든 차량이 멈추어 섰는데 이후 휴게소에 도착하니 광야에 무지개가 떴으며 호젓한 광야에서 신라면을 먹은 후 밤을 지새웠다. 





아침 일찍 87번을 출발하여 25번 고속도로 북쪽으로 달리고 160번 지방도로 서쪽으로 가면 4시간 거리에 Great Sand Dune National Park (거대한 모래언덕 국립공원) 콜로라도주 록키산맥이 나온다.


이곳은 미합중국 3대 제퍼슨 대통령 행정부로부터 탐사 명령을 받은 기병대장 Pike Zebulon 대위(콜로라도 스프링스 시티 맞은편에 있는 해발 4302 미터 Pike Peak 파이크 픽 산은 기병대장 파이크 대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가 황야를 가로질러 스페인 영토에 진입하여 남진하며 정찰하다가 "알라모스 마을" 인근에서 스페인 군대에게 포로가 되었던 역사의 장소다.





위 사진의 오른편 가장 낮은 계곡을 넘어와서 추운 겨울 눈앞의 황야에서 정탐하던 파이크 대위와 기병대 대원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훗날 캐나다와 전쟁에 장군으로 참전하였으나 전사하여 뉴욕주 Sackets Harbor 마을에 묻혔으며 나는 이 마을에 2010년 여름에 방문하였다)


록키산맥 앞의 밝은 색 낮은 산은 태고로부터 모래폭풍 소용돌이가 이곳에 불어오는 곳이며 무거운 모래 때문에 파이크 대위의 기병대가 넘어온 산맥을 넘지 못하고 저곳에 모래를 모두 떨어트린 후 가벼운 바람이 되어 파이크 대위가 넘어온 낮은 산맥을 넘어간 때문에 생긴 특이한 지형이다.  





이곳은 독보적인 거대한 모래산으로 콜로라도주에 있는 3개의 국립공원 가운데 하나이며 미국에 있는 58개의 국립공원 가운데 거대한 모래산 특징 하나로 200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지질학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매우 특이한 국립공원이다.


2016 년 3월에 이곳을 처음 방문하였는데 그때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등반할 준비가 안된 상태로 왔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였으며 작년 여름에 왔을 때도 다음으로 미루었는데 이번이 내 생애 마지막 등반 기회라는 각오로 정상에 오르기로 결정하였다.





공교롭게도 이날 8월 5일은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지 않는 날이며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날이었고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수천에 이르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생각을 가다듬은 후 차가운 코카콜라를 마셔서 에너지를 급속히 생성하고 배낭을 짊어지고 선스크린 로션을 팔에 뿌리고 망원경과 카메라 삼각대를 챙겼다.


무게를 줄이려고 굵은소금과 폭음탄 등 사소한 것까지 모두 꺼내고 훈제 소고기 3일분, 물 5병, 구급약 세트 중 일부를 배낭에 넣고 발목이 긴 등산화를 신고 떠났다. 망원경으로 정상 부근을 살펴보니 편도 2~3 마일 정도이며 능선을 돌아서 오르면 훨씬 멀지만 감기로 체력이 약해져 천천히 오르기로 했다. 





중턱 위에는 등반객이 손꼽을 정도이며 대체로 중간 아래까지 가서 되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서도 중국에서 온 대륙의 민폐족을 만났는데 메이드 인 차이나로 보이는 저급품 하얀 티셔츠를 단체복으로 입은 떼국인들이 너무도 시끄럽게 떠들며 소동을 벌이고 있었다. 생소한 곳을 방문한 것이 그들에게는 큰 행운이겠으나 저급한 교육과 문화와 다듬어지지 않은 언어로 인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입히는 피해가 끝이 없는 종족이다.


볼 때마다 참으로 묘한 것은 이것들은 어떻게 된 유전인자를 타고난 것인지 도대체 시끄러운 소음공해를 멈추지 않으며 사람들 사이로 점잖게 다니지 못하고 몸으로 밀치면서 교육과 담을 쌓은 자의 티를 내고 다닌다. 백인들이 착하기 망정이지 한국사람 정도 성격에 걸리면 싸대기를 여기저기서 연타로 맞아야 할 것들이다.  





앉아서 쉬는 사람들이 그들의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외면하고 한편에 앉아서 고개를 흔드는 이가 여럿이었고 나는 그들이 곧 돌아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다른 루트로 걸었다.





위로 오를수록 인파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세찬 바람이 불어서 모래가 높이 쌓이면서 능선의 경계를 만든 곳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이곳까지 열 번은 쉬고 걷고 또 쉬면서 위를 향해 오르는데 먼 곳 봉오리마다 사람들이 보였으며 직선거리가 수백 미터 넘는다.




쉬고 또 쉬기를 반복하다 앉았는데 아가씨 둘이 지친 기색으로 다가왔고 그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쉬었는데 콜로라도 스프링스와 덴버에서 온 친구사이였다.





같이 가자는 말에 나는 감기몸살로 체력이 약해져 빠르게 가지 못하니 너희들이 먼저 가라고 했다.





이곳에 오르는 많은 사람이 스케이트 보드처럼 생긴 탈것을 갖고 오르고 내리막에서는 쏜살처럼 내달린다.





남녀에 상관없이 체력은 나이순인 것이 확실하였으며 나보다 삼사백 미터 앞질러 능선을 따라서 걷는 젊음은 당할 수 없었다.





덴버에서 온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한 젊은 백인 아줌마는 너무 힘들어해서 나와 천천히 걸으며 쉬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다가 내가 너무 힘드니 먼저 올라가라며 앞으로 떠나보냈다.





렌즈를 당겨서 찍은 오른편 높은 곳이 정상이며 저곳을 오르는 것은 직선이 아닌 사방에 있는 능선을 멀리 돌아서 올라야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모래는 이렇게 산이 되었으며 자칫 능선에서 미끄러지면 아래로 곤두박질하는 위험한 곳이다.


너무 힘들어 여기서 쉬면서 망원경으로 사방을 살피려고 안경을 벗어 배낭에 올려놓았는데 잘못 건드려 안경이 모래산 아래로 스키처럼 미끄러졌고 그것을 잡으려고 마구 뛰어서 내려갔으나 결국은 계곡에서 안경이 멈춘 후 되찾을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안경은 유리가 바닥으로 엎어져 국가대표 스키선수보다 빠른 속도로 내려간 황당한 일이 생겼다.


안경을 집어 들고 위를 올려다본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 같았고 카메라는 능선 위 삼각대에 얹어 세웠고 돈과 카드와 신분증이 든 핸드폰 케이스는 배낭에 들었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올라가야 했는데 이 상황은 흡사 지옥을 탈출하려고 절벽을 기어오르는 그림 속의 아비규환과 다를 게 없었다.


다리 여섯개인 개미도 개미귀신이 파놓은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잡혀 먹히는데 100% 고운 모래로 산이 형성된 이곳을 정면으로 기어서 오르는 것은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도 멈추어 선 안경을 기념으로 찍는다며 어깨에 들추어 맨 망원경을 들이대었는데 경황이 없어서 카메라가 언덕 위에 있는 것을 잊고 망원경을 카메라로 착각한 해프닝이었다.





한편에서는 이렇게 신나는 썰매놀이를 하는데...


반대편 심한 경사지에서 정면으로 오르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하고 결국 옆으로 지그재그로 힘겹게 올라와서 길게 뻗어 누웠다.





1806년 파이크 기병대가 넘어온 록키산맥 계곡...


재작년과 작년에 이곳을 세밀히 관찰하니 모래폭풍 회오리가 저 낮은 계곡으로 들어가면서 무거운 모래를 이곳에 모두 떨어트리고 가벼워진 바람만 넘어가는 것을 수차례 목격하였는데 참으로 신묘막측하심이었고 이곳으로 오면 계속 발생하는 모래 회오리가 이곳에 모래를 퍼붓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두 명의 아가씨는 이미 정상에 도착하였고 검은 머리 아줌마도 거의 목전에 이르렀는데 나는 갈길이 멀었다.





체력이 고갈된 듯했던 검은 머리카락 여인도 정상에 올랐으며...





먼저 떠난 콜로라도 두 아가씨는 들고 간 모자를 쓰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능선을 따라 저곳으로 가서도 한참 더 가야 정상이 나오는데 눈앞에 보이지만 모래에 발은 파묻히고 매번 주저앉아 체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다리가 힘든 게 아니라 숨차서 더 힘들었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도 내게는 큰 사건이었으며...




거의 다가선 정상에는 건장한 체격의 젊은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정상에서 바라본 모래산은 이렇게 생겼으며 저편 끝까지 가려면 20 마일을 넘게 가야 한다.





급경사를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두 명의 콜로라도 아가씨는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데 등에 새겨진 거북이 그림을 집중적으로 찍어 의아했다.




이들과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올라온 능선을 따라가겠다고 하기에 이미 내려간 다른 사람들처럼 직선으로 가면 힘도 덜 들고 빠른 속도로 갈 수 있다고 의견을 말해주니 위험하다며 꺼리다가 작별의 인사를 하고는 직선의 경사지로 떠났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저곳이 정상이다.





힘겹게 올라 온 나를 환영하는 아가씨...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힘겹게 올라왔던 검은 머리카락의 여인은 그녀가 오르던 저 아래 능선을 따라 걸어서 내려가고 있었다.





너무나 힘겹게 오른 산이기에 이곳에는 다시 오지 못할 곳으로 알고 기념사진을 확실하게 찍었다.





어느 강철체력의 사내는 저편에 보이는 다른 곳 정상으로 간다고 약 두 시간 거리를 가겠다며 떠났다.





커플이 정상에서 호기롭게 썰매를 타고 내려가더니 이렇게 스키로 모래를 찍어서 초죽음이 되어 올라오고 있다.





혈기가 넘치는 아가씨는 낮은 모래언덕을 마구 굴러내려 갔다.





다시 올라와 쉬는 시간...






올라와 물을 마시고는 내게 라이터가 있는지 묻던 사내...





곰이 공격하면 폭음탄을 터트리며 싸우려고 늘 라이터를 갖고 다니는데 윗 옷을 벗은 사내는 마리화나를 피우기 위해 내게 라이터를 빌렸으며 왼손에 꽂은 불 붙인 마리화나를 내게 권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콜로라도주는 마리화나 흡연이 합법화되어서 누구나 구입할 수 있다.)


하여간 이들 서양 여자아이들은 사진으로 보는 체격으로도 어느 정도 강인한 체력인지 알 수 있으며 대도시 여인은 다양한 인종의 혼혈이 많아서 평균 신장이 짧지만 중부지방의 백인 여성은 혼혈이 적어서 대체로 로마시대의 검투사 정도로 볼 수 있는 건장한 체격이 주종을 이룬다.


이들 일행이 내게 아까 저 아래에서 급하게 아래로 뛰어 내려간 이유를 물었으며 안경이 스키선수처럼 미끄러져 내려가기에 잡으려고 마구 뛰어서 내려간 것이라는 말에 모두 웃음이 터졌고 달려서 내려간 것을 보면서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앞서 내려간 두 아가씨와 얘들의 신장은 175 cm 가 넘으며 신장이 길고 체력이 우수해서 모래산을 오르는 것도 기린처럼 성큼성큼 걷는다. 이들은 이방인에게도 격이 없으며 인종과 나이와 상관없이 친절하고 유머러스한 성품의 사람들이다. 나이로 보면 내가 얘들의 아버지 연세지만 서양인에게는 그런 벽이 없고 나도 초면의 이들을 대할 때는 어린 시절 친구를 대하듯 한다.





내가 젊다면 모래산을 가로질러 40 킬로미터 저곳까지 걸어서 완주하겠지만 지금 나이에 오기를 부리면 가다가 말라서 죽는다.





썰매는 아래서 빌리는 대여비가 20 달러라고 하는데 한번 사용하면 다시 왁스를 칠해서 잘 미끄러지게 한다.





강철체력의 사내는 위험하게도 혼자서 스키를 들고 계속 장거리를 떠나는 중이고...





나와 함께 재잘거리던 두 아가씨와 한 명의 사내는 멀리 반대편 하산길로 떠났는데 무척 친절하고 명랑하기를 때가 전혀 묻지 않은 하얀색 옷감과 같았다.





내려오는 도중에 힘겹게 거의 정상에 올라온 젊은 커플과 잠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무척 친절한 젊은 친구라서 기념사진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 여자 친구도 친절함이 비할 데 없었다.





내려가는 길이 멀기만 한데...





한 시간을 넘게 쉬었어도 멀리 능선을 따라서 돌아가기에는 체력이 부치므로 급경사 직선으로 내려가는데 무척 재미난 시간이었고 카메라 삼각대를 모래에 깊숙이 찔러 넣고 기념사진을 만들었다.

모래는 흙이나 작은 돌멩이 하나 없이 바람에 실려온 순도 100% 고운 모래이며 입자의 크기는 흑설탕 정도다.






이 젊은 커플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묻기에 능선을 따라서 가면 시간이 너무 늦겠다고 알려주니 곧장 오르겠다며 끝까지 올라간 강철체력이었고 내가 아래에 주차장에 도착할 때 같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기어서 오르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서 내려온다.





이들 커플은 조심스레 내려오더니...





사내는 미끄러져 내려오고 그의 여자 친구는 걸어서 내려왔다.






대단한 사람들...






이곳을 모래언덕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언덕이 아닌 거대한 산이며 맨땅을 걷는 등산에 비교해서 열 배는 더 힘든 곳이다.





급경사 비탈을 썰매로 내려온 베네수엘라 태생의 아가씨...

사진을 잘 찍어서 자신의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하였는데 영어를 매우 잘하였다.


차베스의 실패한 정책으로 인해 베네수엘라는 도탄에 빠졌으며 그로 인해서 미국에 온 지 3년 반이 되었다고 한다. 





파묻힌 남자...





저 산을 넘어서 한참을 가야 정상이 나오는데 체력의 고갈로 악전고투하면서 끝까지 완주한 것에 의미가 있는 날이다.





늘 체력이 넘치는 것으로 알았더니 오늘 모래산을 오르면서 젊은 시절 꿈이었음을 알았고 이미 서쪽 하늘에 붉게 물든 황혼과 같은 나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던 날이다. 젊은 날 산길과 운동장을 달리던 강철체력은 전설의 고향에 묻혀서 사라졌고 지금은 두 다리로 걷지만 머잖아 조상님이 하신 것처럼 나무막대에 의지해 걸어야 할 날이 눈앞에 보인다.


그레잇 샌드 듄을 떠나며 상념에 사로잡혔고 이곳저곳을 살피며 배회하다가 작년에 갔던 Joyful 

온천에 가서 목욕을 하기로 했다. 모래는 전신에 묻었고 카메라 삼각대도 모래가 끼어들어 작동하지 않을 정도이니 이미 덜그럭 거리는 만신창이가 된 몸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약 60 마일을 달려온 이곳 기쁨이 넘친다는 온천은 캠프 비용이 40 달러나 되었는데 말이 캠프장이지 장작불을 피울 수 있는 화덕이 없고 맨바닥에 천막을 설치하는 비용이 도를 넘었다. 

천막이 필요 없고 아무 곳에 차를 세우고 잠들면 되기 때문에 15달러를 지불하고 목욕재계하고 Poncha Spring 사거리로 길을 떠났다.


롱아일랜드 글랜 코브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덴버로 돌아온 처자와 온천에서 이야기가 길었으며 근처에 살면서도 엄마가 데려가지 않아서 록키산맥 국립공원에도 가보지 못했다기에 이번에 그곳을 꼭 가라고 권해주었다. 함께 온 엄마는 다른 일이 생겨서 가지 못했다며 조만간 데리고 가겠다고 딸에게 약속하였다.


그레잇 샌드 듄을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니 이곳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꼭 가겠다며 설레던 이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두 편으로 나누어 쓰려다가 한 편으로 만드니 너무 길어졌으나 어찌하리...)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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