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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산맥에서 만난 독일 여인들

간밤에 편히 잤으므로 다시 산을 오르며 체력을 키우려고 북으로 달려서 이곳 동쪽문에 도착하였다.  




입구에 도착하니 두 대의 여행밴으로 이곳을 탐방하는 학생들이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이 떠나기를 기다려 깨끗한 사진을 하나 만들었고...




콜로라도 장대한 록키산맥 국립공원에 7주만에 다시 찾아왔다.




이곳에 며칠 머물면서 전보다 더 세세히 살펴보기로 했으며 첫 도착지 이곳 콜로라도 강 원류를 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아침을 먹지 않는 체질이어서 점심으로 쇠고기와 감자가 든 보리 chunky 하나를 넣었고 뽀빠이 만화영화를 만들어 시금치 판매를 촉진시킨 뽀빠이의 힘의 원천인 시금치 통조림을 하나 넣었다.


서양음식에 길들어서 반찬은 거의 필요치 않으며 한식을 먹더라도 반찬이 필요 없이 찌개나 국 하나면 끝나는 식성이라서 여기에 후추가루를 뿌리고 차가운 캔 코카콜라 하나면 한끼의 식사가 된다. 전 세계 민족의 음식을 살펴보면 반찬을 먹는 유일한 민족이 한국인이다.


물론 일본인이 다꾸앙 등 짠지 반찬을 먹고 이탈리안이 피클을 먹지만 한국인 반찬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고 서구인들이 주식 외에 간략히 채소 샐러드를 먹지만 우리의 반찬 문화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로서 명함을 내밀 수 없다.


덴버 인근에 가면 한국식 오이지 절임을 사서 잘게 썰어 병에 담아가지고 다녀야겠다. 원체 짠 것을 좋아해서 오이지 또는 새우젓 중에 하나 있으면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식성이고 누룽지밥을 먹어도 코카콜라, 순대국을 먹어도 코카콜라를 마시는 조화는 뭔지...





여기서 유타주로 흐르고 그랜드 캐년의 협곡을 만들며 네바다주 후버댐으로 흐르고 아리조나주를 거쳐서 바하 캘리포니아로 들어가 태평양으로 사라지는 콜로라도강 원류가 이곳이다.  





무척 긴 트레일도 있지만 오늘은 콜로라도강이 나오는 곳까지 가서 되돌아 나오기로 했다.





연로한 레인저를 만났는데 이곳에는 곰이 별로 살지 않아서 안심하고 다녀도 된다고 하는데 여행객이 하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콜로라도 록키산맥은 의외로 야생동물이 별로 보이지 않으며 어쩌다 엘크 또는 무스 한마리 보이면 호들갑을 떨고 떼지어 셔터를 눌러대는 곳이다.





엄청난 산세로 보아서는 야생동물이 도처에 널렸어야 하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고 자동차 소음이 심하고 사람의 발길이 산골에 이르렀으니 짐승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콜로라도강이 시작된 이 계곡에서 실개천으로 부를 수도 없는 도랑을 만났다.





시카고와 텍사스서 온 인도사람 가족이 이곳을 오다가 너무 멀다고 내려가더니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추억속의 문산천 생각이 나서 자갈밭을 걷다가 삼각대를 세우고 콜로라도 강 이쪽과 저쪽에 다리를 걸쳤는데 큰 강에 다리를 걸치니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이 생각나서 웃었다.





물은 맑고 깨끗했으며 송사리가 무척 많았는데 자연사 한 나무가 쓰러져 냇물을 막은 모습이 거칠면서 아름다웠다. 한국 같았으면 동네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는 정도의 시냇물이지만 이것이 하류로 내려가면서 점차 불어나서 큰 강을 이루고 그랜드 캐년 협곡을 만들며 바다로 흘러가는 콜로라도 강이다.





수건을 배낭에 넣을까 말까 망서리다 놓고온 것이 아쉬웠고 내년에 다시오면 이곳서 목욕을 해야겠다.


작년에는 유타주 모압 마을에 흐르는 콜로라도 강 위로 올라가서 목욕을 했는데 대륙을 다니며 곳곳의 강과 냇물에서 하는 목욕은 나의 큰 즐거움이다.





깊은 계곡으로 멀리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만 오늘은 이정도에서 물러나기로 했으며...





아쉬움이 많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다..





계곡 사이의 언덕을 오르고 내리면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내려오는 중에 할머니 두분이 Lulu 시티에 간다며 그곳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이미 내려왔으니 떠나겠다고 했다. 연세가 거의 80 이 된 할머니가 밤을 지새우는 오버나잇 캠핑을 떠나는데 배낭의 크기가 엄청났으며 닌자거북이처럼 온몸에 주름이 짜글짜글한 할머니가 캠핑하러 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레인저에게 물으니 아무곳에서 자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야영장에서 지내야 하는데 야생동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울타리가 쳐있다고 한다.





시야가 막힌 계곡의 트레일이라서 흥미가 없었고 콜로라도 강을 본 것으로 이곳과 작별을 하였다.






물이 흐르면 건너는 작은 다리가 곳곳에 있었고...





강가의 넓은 곳에서 돌을 던지며 놀던 인도가족이 그새 내려오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가 밀려서 차를 세우려고 도는 방문객이 많아서 서둘러 이동하였다.





이제 산맥의 도로를 따라 정상으로 오르면서 곳곳에 멈추어 경치를 감상하였는데 지난해와 달리 사방이 흐리게 보이는 것을 미루어 생각하면 아무래도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대화재의 영향으로 연기가 찬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높은 곳에 오르면 맑아서 다행이었고 낮은 곳은 흐리게 보이는데 기후는 나의 소관이 아니라서 방법이 없다.  





정상으로 오르니 가슴이 답답해지는데 아무래도 운동부족으로 폐활량이 줄어서 그런 것 같았다.





지대가 높아서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데 콜로라도는 해발 약 3'500 미터 이하에서 나무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북으로 갈수록 나무의 서식분포도는 낮아지는데 곳에 따라서 약 3'000 미터에서 이미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곳을 볼 수 있지만 고도가 높을수록 나무는 작게 자란다.





곳곳에 눈이 있지만 더운 한여름이라서 7주 전 6월 중순처럼 많이 쌓인 눈은 없었다.





난간이 없어서 운전이 매우 불안정해지는 곳이며 제발이지 입장료와 들어오는 막대한 헌금으로 가드레일을 설치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차선을 따라가면 되지만 한순간 방심에 차는 계곡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황천길이 지척에 있는 곳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놔둘 것인지 알 수 없다.






쌓였던 눈은 그새 오간데 없고 햇살은 무척 뜨거웠다.




온도는 영상 약 17도 가량이고 바람은 세차고 야생동물은 그림자도 볼 수 없엇다.





저편으로 이어진 록키산맥 국립공원의 정상이 멀리 왼편 툰드라 지대에 보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와 망원경만 갖고 툰드라 지대를 올라갔으며 이곳 버섯바위는 작년에 맹장염 수술 직후 아픈 배를 움켜쥐고 왔던 곳이라서 이번에는 조금 더 올라가는 끝까지 오르기로 했다.





저곳이 이곳 록키산맥 국립공원 가장높은 도로 주차장에서 가까운 정상이며 천천히 걸으면 그리 힘들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이곳 정상에는 그라운드 호그가 무리지어 사는데 낙은 풀과 이끼뿐인 이곳에서 통통하게 살찐 모습으로 살아가는 녀석들이 신기했으며 얘는 바위 꼭대기에서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지대가 높아서 천적인 매가 없어서인지 경계심 없이 한가로운 녀석이다.





정상에 있는 바위에 여러 사람들이 올라 갖가지 기묘한 자세로 기념사진 만들기에 분주하였다.







특이한 것은 남자는 대체로 뻣뻣하고 평범한 (아저씨 자세)로 사진을 찍지만 여자는 참으로 독특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유명한 곳은 정상에 오르면 다양한 종류의 표지가 있어서 뻥을 칠 수 없는데 이곳에도 해시계 모습의 거리측정 조형물이 있었다.





용도가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가운데 볼록한 가늠쇠에 이편에 실금으로 된 가늠자에 눈을 대고 조준하면 그곳으로 보이는 산의 높이를 알 수 있는 표시판이었다. 아래를 보면 14'255 피트 (약 4'280 미터) 높이의 Longs Peak 높이가 표시되어 있고 가늠쇠 위로 솟아있는 산이 (롱스 픽) 이다.


윗부분 평평한 곳에는 방향별로 각곳의 국립공원이 표시되어 있는데 옐로스톤의 방향과 거리 등이 새겨져 있다.


수년 전 히말라야에서 추락사 한 한국인 여성 등산가는 자신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고 했으나 그곳에 상주하여 정상 정복의 진위를 판가름하는 백인 할머니와의 면담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당시 기사를 기억하면 할머니는 수많은 등반가의 데이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정상에 오른 사람의 진위를 감별하는 그 세계에서는 공인된 할머니였으며 할머니가 인정해야만 정상에 오른 것으로 공인되는 절대적 권한을 가진 할머니였는데 얼마전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서울만 하더라도 인수봉과 만장봉 등 전국의 유명한 산의 정상에는 오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표식이 있어서 대화를 해보면 금새 진위를 알 수 있는데 록키산맥에서 가장 높은 국립공원 도로 위 정상에는 해시계 모양의 청동조형물이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바위에 올라 아래를 보면 이런 모습인데 급커브에 허름하고 나즈막한 돌담이 조금 있을 뿐 난간이 없기 때문에 길을 벗어난 즉시 데굴데굴 굴러서 황천을 가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저승은 (곧장) 가는 것으로 알지만 이곳 록키산맥에서는 한참을 굴러야 계곡에 처박히고 구르는 것이 멈춰야 가는 것을 알 수 있고 죽음에 이르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80 이 넘은 영감님은 아슬아슬하게 위에 올랐으며 아래에서는 부인이 셔터를 누르고 있었는데 내가 부축해 드릴테니 올라가자는 말에 극구 사양하며 무섭다고 한다. 천진스럽던 어린시절은 지나고 다람쥐처럼 뛰던 몸이 지금은 쉽게 오를 수 있는 평범한 바위 조차 겁내는 연세가 되었다.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고 있는데 꽤 많은 사람이 올라오고 어른 보다는 어린아이가 운동성이 확실히 좋은 것을 알 수 있다. 곳곳의 트레일을 다니면 아이들은 다람쥐처럼 재빠르고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어른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버섯바위에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여인...





아이폰으로 셀카로 불리는 자작 비디오를 찍으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록키산맥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고 있었는데 보기에 매우 위험하였으며 이곳에 온 기념으로 유투브에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툰드라 지대...





저편의 비포장 길을 가봐야 하는데 이번에 시도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며 내려왔으며 무슨 사고가 난 것인지 얼마 후 급격한 기동으로 날아갔다.





올때마다 저곳이 나의 자리로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떠나기 아쉬워서 길건너 돌담에 앉아 건너편 산을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으며...





지난번에는 엘크가 이곳까지 올라와 풀을 뜯어먹고 있었는데 오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 흰차에서 내린 네명의 여인이 말을 건넸다. 차림새가 독특하다며 사냥꾼이냐고 묻기에 나는 사냥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야생동물에게 사냥 당하지 않기 위해서 보호색 옷을 입은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었고 대검은 호신용으로 늘 갖고 다닌다고 말해주었다.


영어는 꽤 잘하지만 투박한 발음이기에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으니 독일에서 왔다는 대답이었고 곁에 앉은 여인과 키가 큰 여인은 2주 전에 서울에 다녀왔다며 반가워 했다, 맥주를 좋아한다는 하얀바지의 연세가 지긋한 여인은 다음주에 서울에 여행을 간다며 한국사람을 이곳에서 만났다며 반가워 하고 둘만의 기념사진을 찍어갔다.


이들과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내가 그리 반갑지만은 아닌 것이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너희가 한국팀에게 열받은 사건이 생겼다는 말에 웃으며 실망이 컸다는 대답을 하면서 하얀 옷 여인의 말이 (뢰프) 감독이 술취한 것처럼 선수의 포지션 배정을 잘못한 실책이 크다며 열변을 토했다.


축구를 생명처럼 여기는 독인이라서 이들의 심장이 파열될 정도로 열받은 모습을 상상하며 웃음이 났지만 너희 독일팀에게 우리가 그동안 여러번 패해서 열받은 것에 비하면 한번 진것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세계를 다니는 이들 선진국 여행객들이 바라는 것은 현대화 된 고층건물과 서구식 문화가 아닌 그 나라 전통을 보려는 것인데 서울의 모습을 좋다고 말하면서 특징이 별로 없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난 독일 여인이 다음 주 한국에 가면 한국의 옛 전통문화를 많이 접하면 좋겠다.  


옛것을 아끼고 보존하는 민족적 의식이 있어야 했는데 조선말기에서 일제시대를 거치며 때려부순 것에 더하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경제발전을 우선시 하는 정책이라며 무식한 관료들의 결정에 의해 옛것을 마구 부수고 콘크리트로 포장한 치졸한 정책이 너무 많았다.  


내 어린시절에 덕수궁 대한문을 교통에 방해가 된다고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짜맞추는 한심한 모습을 지켜보았으며 군사정권 때 독립문 위로 고가도로를 만들어 놓고 이후 미관상 보기에 좋지 않고 서대문의 교통 흐름에 방해가 된다며 독립문을 뜯어서 옆으로 옮긴 것에 분노가 치밀었으나 권력이 없는 서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여간 자연을 정복해서 사는 것도 좋지만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면서 더불어 옛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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