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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Feet 인디언 부족이 준 지팽이

여행을 하면서 한 곳에 이렇게 오래 머문 적이 없었는데 이곳 축제에서 가장 긴 시간을 머물게 되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그들의 캠프촌 천막으로 돌아가고 이곳에서 마지막 밤을 지새운 후 길을 떠나기로 했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니 픽업트럭에 천막을 싣고 와 설치한 오른편 마이클이 철거를 하는 중이고 구형의 모빌홈을 타고 뉴멕시코에서 온 뒤편의 죤 영감도 뉴멕시코로 돌아가려는 중이었다. 마이클은 작년에도 이 천막을 갖고 이 자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곳은 누구도 점거하지 못하는 터줏대감으로 까마귀 부족 인디언 혈통이다.


내년에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가능하면 다시 와서 일주일 동안 강에서 목욕도 하고 축제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내년에 다시 오면 몇 사람을 초대해 풀밭에서 스테이크 파티를 벌일 생각이다.




죤 영감은 박식해서 언변도 탁월하고 인디언 역사에는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능통하였는데 그가 들려준 말에 의하면 지난해 여행을 갔던 뉴멕시코 주 Zuni 부족과 아리조나 주 Hopi 부족은 서로 사촌이지만 Zuni 부족과 아파치 부족은 지금도 원수지간이라는 역사를 들려주었다.


이곳에서 어디서 온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리조나에서 온 아파치 인디언이라고 소개한다니까 아파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파치) 부족의 이름은 원래 Zuni 부족의 언어 (아보체) 가 아파치로 발음이 변해서 고착화되었으며 Zuni 부족의 언어( 아파치 뜻)는 enemy 적군이라는 뜻으로 옛날부터 아파치가 몹쓸 짓을 많이 한 역사를 들려주었다.  





떠남이 아쉬워서 캠프 곳곳을 다시 돌아보고 또 돌아보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떠나기 전에 1 km 거리에 있는 리틀 빅혼 전투현장 국립 기념지를 찾아서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이곳 크로우 부족을 포함해서 다섯 개 부족이 연합하여 카스터가 지휘하던 제 7 기병대를 전멸시키고 그 외 다른 기병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혀 물리친 미합중국 역사에 큰 페이지를 장식한 인디언이 승리한 전투다.




능선에서 바라보면 언덕 위아래 각 곳에 하얀색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1876년 여름에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인디언 연합군에게 전사한 기병대원 유골을 훗날에 발굴하고 그 자리에 비석을 세워 표시한 것이다.






그 당시 제 7 기병대는 90번 고속도로 옆 리틀 빅혼 강 건너 초원에 있는 Tipi 천막촌을 습격하여 몰살시키려고 돌격전을 펼쳤는데 그때 무모한 돌격으로 인디언 연합군에게 포위되어 쫓기면서 이곳 능선의 곳곳에서 저항하다가 모두 전멸한 역사의 장소다.




이곳에는 몇 개의 빨간색 비석이 있는데 그 당시 전투에서 죽어 미처 시신을 가져가지 못한 인디언 용사의 시신 발굴터 그 자리에 인디언을 추모하여 세운 비석이 빨간색이고 이것은 기병대원 비석으로 이름과 계급 등은 확인이 안 되어 모두 이곳에 쓰러진 미국 군인으로 표기하였고 6월 25일 1876년 전투로 기록해 놓았다.





리틀 빅혼 강가에는 수풀이 우거졌으며 지난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미국군의 교훈이 된 장소다.





이제 길을 떠나면서 캠프를 지나 서쪽으로 가기로 했다.




작년에 지나던 길을 가다가 네즈 펄스 인디언 부족 추장을 기념하는 곳을 만났으며 지난해처럼 이곳에 잠시 멈추었다. 조셉은 몬타나 주 43번 도로에 있는 Big Hole Battle Field 국립 전투현장의 인디언 마을 추장이었는데 그가 부족과 함께 학살당하여 죽은 후 이곳에 이름을 남긴 곳이다.


http://blog.daum.net/jamesju_usa/812  <-- 조셉 추장이 이끌던 부족의 학살현장 답사 기록.





시골길을 따라 서북으로 향하는 들판은 이렇게 보리와 밀이 황금빛으로 가득하였다.




보리는 몇몇 곳을 남기고 모두 베어졌으며 밀은 아직 베지 않았다.




곳곳에는 곡식을 저장하는 탱커가 대규모로 자리 잡고 있으며...




고개를 거의 숙인 밀이 베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옛날 여행 때 생각나서 근처로 가면서 일부러 이곳에 들렸는데 훼어 휠드 작은 마을 이곳 모텔에서 2009년 여름에 하루 자고 갔는데 이 건물이 특이해서 소개하려고 일부러 들렀다.


여행 목록에서 Montana / Idaho를 보면 자세한 이야기가 있는데 1910 년 기차역으로 쓰던 2층 목조건물을 12 마일 떨어진 곳에서 이곳으로 통째로 옮겨와 지금의 모텔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이 마을에는 대규모 곡식창고가 즐비했고 주민에게 물어보니 이곳 몬타나에서 생산되는 보리는 모두 맥주회사 버드와이서에 납품하는 것이라고 했다. 훼어 휠드 이 마을에 있는 곡식저장고 규모는 한국에 거주하는 분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어마어마하다.





이 작은 시골마을에 이런 것이 있을 정도면 다른 곳은 어떨지 판단해보는 것도 좋겠다.





작은 이것은 그때 없던 것인데 언제 새로 들어섰다.




전부 맥주회사로 가는 곡식이며 버드 와이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은 이곳의 보리밭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만든 맥주를 마신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대륙의 들판은 황무지 같으면서도 용도가 다양하다,





이 마을도 지나고 작년의 추억을 생각하며 북으로 갔다.




도중에 지난해 같은 시기에 개울에서 머리를 감다가 샴푸가 떠내려가던 곳에 들러 머리를 감고 두 달 전인 6월 말에 왔던 글래시어 국립공원에 다시 찾아왔다. 멀리서 보니 서쪽 산맥의 연기로 인해서 실루엣으로 흐리게 보이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이번에는 넉넉한 시간을 할애해서 곳곳의 트레일을 다니기로 했다.  





예전에 불이 났던 곳에는 잔솔이 가득 자라고 있었고...




8월 3일 출발해서 콜로라도와 그 외 여러 곳을 지나 캐나다 국경이 인접한 14번 Browning 마을에 왔다. 이곳은 Black Feet 불랙 휫 인디언 부족 자치국가 수도이며 오며 가며 들리게 되는 곳이다.


이번에는 그냥 스쳐 지나갔다가 St. Mary 마을에서 인터넷 연결이 안 되어 이 마을로 40 마일을 다시 와서 글을 쓰려고 왔다.




인터넷 연결이 잘되는 마을 한적한 곳의 빈터에 자리를 잡고 테이블을 밖에 내놓고 일단 음식부터 만드는데 지나던 부부가 낯선이가 궁금해 찾아왔으며 대화가 길어졌다.


까마귀 부족 축제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석했다는 말에 놀라워하였고 7월 중순에 열리는 이곳 불랙 휫 부족 축제를 보고 싶었는데 그때는 뉴욕에 가야 해서 참석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내년에는 오려고 한다는 말에 이들과 친밀도가 생겼으며 각지에 있는 인디언 부족 국가를 방문한 이야기 등 대화가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낯선 사람이 자신의 마을 빈터에 차를 세우고 자려고 한다면 괜스레 트집을 잡고 시비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미국도 다르지 않아서 주민 또는 경찰이 자주 시비하지만 원체 장거리 여행자 포스가 있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모두 내편이 되는데 이들 부부는 길 건너 파란 집이 자기 집이니 누가 물으면 리차드 친구라고 말하면 된다고 하였다.


수많은 인디언 부족 국가를 다닌 이야기를 하면 이들은 단번에 마음이 녹아서 나그네를 환대하는데 크로우 부족 축제에 6박 7일 있던 이야기에 감동이 된 듯하였다.


밤늦게까지 한편의 글을 써서 올리고 잠이 들어 아침 늦게까지 잤는데 리차드와 부인과 리차드 동생 레니가 차문을 열어놓은 것을 보고 지팡이를 들고 찾아왔다. 밤새 별일이 없었고 감사했다는 말을 하는데 부인의 말이 남편이 손님을 주려고 Black Feet 인디언 부족 서명이 있는 지팡이를 선물하려고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옆에 있는 친구 Lenny 는 동생이며 내 이야기를 했더니 같이 만나보겠다 해서 왔다며 인사를 시켰다.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하는데 성이 길어서 써달라 했더니 Rides-at-the Door 였고 부인은 Lois Fish 였다. 해석이 맞는지 모르지만 리차드는 성씨를 미루어 생각하면 그의 조상님이 말 타는 사람 또는 마부였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Rides at the door 말 또는 마차가 문밖에 왔다. 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정확한 뜻은 모르겠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인디언 부족은 마음 한구석에 백인으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멸시를 받는 풀리지 않는 분노와 허탈함이 있어서 이들을 이해하고 위로하면 금세 내편이 되는데 진실한 마음으로 이들을 대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이들과 친구가 되었고 초면이지만 나그네에게 우정의 표시로 부족의 지팡이를 선물한 것이다.


전날 밤 이야기를 하다가 이들이 내 차에 있던 인디언 추장 시팅 불 "앉아있는 소" (카스터 제 7 기병대를 전멸시킨 인디언 연합군 총사령관의 이름) 사진을 만져보겠다 해서 그 사람이 기병대 전멸시킨 시팅 불 추장이라고 했더니 종조할머니가 시팅불 추장의 조카이고 자신이 시팅 불 추장의 친족 혈연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를 하였다.  


한국의 속담에 부모님 말을 잘 들으면 떡이 생긴다거나 말을 잘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말을 잘하면 인디언 지팽이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다. 내년 여행에는 북쪽의 인디언 축제를 여러 곳 방문하면서 글을 쓸 생각을 했는데 가능하면 이들 부족 축제에 참여해서 친목을 다져야겠다. 





1번이 리틀 빅혼 전투현장이며 바로 옆에 있는 크로우 인디언 캠프를 떠나 북으로 향하여 2번 브라우닝 마을에서 이들을 만났고 바로 위에 있는 글래시어 국립공원 여러 곳 트레일을 답사할 예정이다.

두 달 만에 다시 온 글래시어 이야기가 메뉴로 오르게 된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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