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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번째 주 네바다 주 사막을 지나며

2016. 6. 19 일 이야기. 대륙에서 남은 3개의 주는 언제 가게 될지 모르지만 나의 발길이 닿은 47번째 주 네바다 사막을 건너게 되어 감사한 날이었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지역이어서 글을 쓸 수 없어 실시간으로 올리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으나 대륙의 인터넷 상황이므로 나에게는 선택이 없다. 




Zion national park을 떠나며 어디로 갈까 생각에 잠기다 네바다 사막을 건너기로 했는데 쉽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놔두고 마음의 결정이 쉽지 않아서 갈팡질팡 하며 Hurricane 타운까지 왔다. 

이번 여행에서 아리조나주를 몇 번을 들락였는지 정신 사납지만 여행의 묘미가 그런 것이라 전혀 불만이 없다. 


 


허리케인 타운에서 RV park camp ground 에 들어갔는데 오피스 문은 닫히고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자리는 3곳이 남아있으나 설명이 복잡해 다른 곳을 찾으러 다녔으나 폐쇄한 곳만 있어 다시 돌아와 남은 자리에 차를 세웠다.   




콘크리트 포장과 오른편 잔디가 한 세트이며 천막을 세우기 귀찮아서 차에서 자기로 했다. 오랜만에 컵라면을 끓여서 먹고 망원경을 세우고 하얀 달을 관찰하기로 했다. 윗 사진의 꼬마들이 놀자고 찾아왔기에 아이들과 더불어 장난스레 놀면서 차례로 망원경을 들여보게 했더니 분화구가 선명히 보인다며 소리를 지른다.  


가깝게 당겨서 보기 때문에 일분만 지나면 달이 옆으로 사라지고 다시 찾아 촛점을 맞추며 살펴보던 그런 시간이었는데 성능이 탁월한 광학 천체망원경을 구입해야 할지 차후에 결정하기로 했다. 

랩탑에 이상이 발생하여 갖가지 방법으로 개선하려 해도 타이핑 시스템이 회복되지 않으므로 새것으로 구입하기로 했는데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나씩 장만해야 한다.   




유타주에서 다시 아리조나주로 넘어가 네바다주 사막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네바다주는 아직 가본 적 없는 곳인데 북으로 가서 네바다 중앙을 가로질러 가려다가 15번 고속도로에 들어갔으며 이곳은 그랜드캐년의 북쪽에 있는 험준한 협곡에 만든 도로여서 선택한 것이다.   




처음에는 평범한 길이었으나 본격적으로 협곡에 들어서자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이런 곳을 일부러 택해서 길을 만드는 재주를 가졌는지 알 수 없으나 대범하고 무지막지한 발상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급경사의 절벽길을 달리는데 엔진 브레이크를 건 트레일러들이 굉음을 내고 급커브가 뱀처럼 쉬지 않고 도는 이 길 하나만으로도 명승 절경으로 부족함이 없는 도로였다.   


  


지도 가운데 두줄로 그어진 곳이 이곳이며 참으로 황당하고 무모한 급경사의 길이었다.    




경사진 길을 긴장상태로 달리는데 갑자기 평원이 나타나고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던 순간이었다.   


 


내려가는 왼편의 바위 산맥이 그랜드캐년의 북쪽 산맥인데 아리조나주 Mesa 고지대에서 네바다주까지 이어진 대단한 길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전진하여 네바다주 경계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이곳서 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고 168번 시골길로 가기로 하고 달렸다. 


미국의 대륙여행에서 나의 발길이 닿은 47번 째 주"State" 네바다 사막이다. 이제 남은 곳은 위스컨신주, 하와이주, 오레곤주 세곳이 남았으나 언제 그곳에 가게될지 모른다. 




황야와 산맥을 넘어 얼마를 달렸다.   




사막형 산맥은 모래와 자갈이 성분이고 이슬로 생존하는 사막의 잡초 서식지이며 저런 곳에도 생물이 살고 특히 각종 동물이 생존투쟁을 벌이는 곳이다.    




사잇길로 들어와 168번 도로 북쪽으로 달리다 인디언 보호구역의 표지판이 있어 마을 안으로 들어갔는데 무더위 때문인지 인기척은 찾아볼 수 없으며 방학이어서 학교도 문을 닫고 적막한 분위기였다. 마을에서 나와 북으로 달렸으며 그렇게 10 마일 정도를 달리는데 연료 계기판 눈금이 바닥 가까이 있어 아차 하는 생각에 차를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앞길은 예측이 안되고 남은 연료로 주행 가능한 거리는 대략 50 마일 (80 km) 정도여서 지도를 살피니 사막을 건너는 곳에 드문드문 마을의 표시가 있지만 주유소가 있을지 보증이 안되므로 드디어 결정을 내려 되돌아 가기로 했다. 168번 초입의 주유소에 들어가 연료를 가득히 채우며 점원에게 물으니 광야에는 주유소가 없는데 그냥 갔으면 낭패를 당할 뻔했다는 것이다.    




되돌아 온 지점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골프를 치는 사람이 보이는데 뙤약볕에서 정성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완전한 모래사막으로 사막에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나무 군락지를 만났으며 연료는 가득하고 물과 비상식량은 일주일 가량 버틸 수 있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혼자 장난하며 전진하였는데 사막에 존재하는 독사 방울뱀을 만나고 싶어서 뱀의 흔적을 찾으며 다녔다.   




국립 야생동물 보호지 표지가 보이고 저편에는 호수가 있어 차를 멈추었다.   




인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곳에서 아래의 호수를 내려다보니 비버가 사는 집이 보이기에 호수로 내려갔다.  


 


갈대숲 비슷한 곳 물가에는 오리 떼가 한가로이 노닐고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달려 비버 댐으로 갔다.     




언덕에서 카메라 삼각대를 세우고 조용히 기다리며 녀석이 언제나 나타날까 기다리는데 약병아리 크기의 오리가 헤엄을 칠 뿐으로 비버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살펴봐도 낮잠을 자는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되돌아 나왔다.   




몬타나주 사막에도 이런 호수가 있고 멕시코 사막에도 호수가 있는데 삭막한 곳에서도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었고 이곳을 터전으로 주변에는 살쾡이, 이리, 늑대, 사슴 여우 등 동물이 살 것이라는 추측 하며 길을 떠났다.   




녀석들도 지혜가 있어서 창문을 내리고 바라볼 때는 오손도손 놀더니 카메라를 꺼내어 조준하자 뒤뚱거리며 황급히 수풀 속으로 달리는 모습에서 인간의 비정함을 생각케 되었다. 저 아이들은 위장막을 치고 그 속에 숨어서 엽총을 조준하며 사냥하는 인간에게 가족과 친구를 잃었으며 그런 공포스러운 기억이 뇌리에 박혀서 카메라를 총으로 착각하고 도망치는 그 모습이 나를 슬프게 하였다.   




Crystal spring 교차로에 도달했는데 갈림길에 먹을 것을 파는 주유소가 있었으나 연료 계기판을 확인 안 하고 달렸으면 이곳에 도달하기 전에 차가 멈추어 황당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었다.    




375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는 모든 길은 황막 하지만 아름다움이 넘치는 곳이었으며 사막의 풍경에 매료되어 몇 번을 멈추고 모래벌판으로 들어가 식물의 분포를 살펴보고 무수한 도마뱀 노는 모습을 관찰하며 그렇게 다녔다.    




수평의 사막이 아니라 산맥과 산맥의 사이를 잇는 곧은 길이 이어진 곳이며 눈앞에 훤히 보이는 길이지만 저곳을 가려면 150 리 정도 가야 하는데 산맥을 넘으면 같은 모습의 길이 연속이며 도대체 사막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분간이 안되었다.   




지나는 차가 없으니 아무렇게나 멈춰 서고 길을 가늠하는데 비포장 도로 저곳 끝에 농장이 있으며 사람의 인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의해 작동하는 펌프가 물을 퍼올려 물탱크를 채우면 그곳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려는 소떼는 근처를 맴도는 그런 곳이며 여물은 사막의 식물을 뜯어먹으며 그렇게 성장을 한다.   




남부 사막에 자생하는 Joshua "여호수아" 나무인데 분위기는 아리조나 남부에 있는 사람이 팔을 뻗어 올린 듯한 모습의 수가로 선인장과 다르지만 그래도 이런 사막에서 푸른 나무를 볼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기 전혀 없는 사막..........   




이런 곳에 철조망을 쳐놓아 자신의 영역임을 표시한 사람들..........   




생물이 살 것 같지 않지만 그 속을 다니며 살펴보면 각종 짐승의 발자욱을 볼 수 있는 곳인데 독뱀이 도사리고 있을까 봐 카메라 삼각대로 조심스레 헤치며 다녔다. 어린 시절 뱀의 목을 조르고 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다 허공으로 던지는 짓을 했는데 그때는 그것을 재미로 했으나 뱀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친구들과 산채로 배를 갈라 알을 꺼내 살펴보던 그런 행동을 탐구심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Joshua Trees "여호수아 나무" 자연 생태계 연구단지.   




사막에는 온도차로 인한 이슬이 많고 이따금씩 폭우가 훑고 지나가는 때문에 생명이 살아갈 수 있다.   




메마른 산맥은 풀포기 하나 보이지 않고 아랫부분에만 잡풀이 무성하지만 저런 산맥에도 생물은 숨 쉬고 있을 것이다.   




고갯길을 내려가는데 저 앞에 호수처럼 반짝이는 곳이 있어서 차를 세웠다. 단번에 모래바람이 몰고 온 금모래 흰모래인 것을 직감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셔터를 몇 번 누르고 상황판단을 하는데 간단한 해답이 떠올랐다.   



이곳 평야의 서쪽에는 거대한 산맥이 있어서 비구름이 네바다 사막 이곳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캘리포니아에 비를 뿌리게 되는데 이곳은 무지막지한 열기로 인해 공기층이 하늘로 솟아오르면 사방에서 밀려오는 공기로 인해 강풍이 발생하여 모래를 쓸어오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회오리를 일으키며 저곳에 모래를 떨어트리기를 지난번 콜로라도 주 "Graet Sand Dune" 모래산과 같은 이치로 보면 틀림이 없다.    




이곳 무인지경의 포장도로 속도제한이 65 마일 (약 100 km)인 것에는 강풍의 위험이 있어서이며 실제로 속도를 높이면 측면바람에 차가 심하게 흔들려 처박히거나 뒤집힐 염려가 있어 속도를 낮추어 달려야 한다. 납작한 승용차는 그나마 괜찮지만 나의 차는 높고 면적이 넓어서 바람에 취약하여 만수무강을 위해서는 속도조절을 잘 해야 살아날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름다운 이곳 사막을 달리는데 멀리 마을이 보이기에 음식을 먹고 가기로 했다. 집은 꽤 많아서 주유소와 식당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동구밖에 서있는 표지판 앞에 차를 멈추었다.   




네바다주 "레이첼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써있고 he 글씨 위에는 접시 비행기가 그려져 있었으며 아래에 써진 글귀를 보다 웃음이 터졌다. 

Population: Human Yes ( 사람이 거주하는가? 그렇다!)   Aliens? (외계인은?)

(즉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닌 이곳에도 사람은 사는데 외계인은 살 수도 있고 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되겠다. 


사진으로 보는 달나라와 화성과 목성의 표면과 닮은 이곳이 지구를 제외한 태양계 행성과 다른 것이라면 잡풀이 있는 것일 듯.........    




이곳으로 오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식량과 물이 풍부했으므로 아무 곳에서 차를 멈추어 잠들어도 그만이었다.   




마을 근처 건너편에 폐광이 보이기에 신작로에 들어가 달려갔으며 저곳에 보이는 버려진 낡은 트럭이 나의 프로필 사진이 되었다.   




인적은 전혀 없고 열린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도마뱀만이 분주히 움직이는 곳이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연결하고 광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2차 대전 때 사용하던 GMC인데 일제시대를 살아오신 이웃집 아저씨들이 "도락꾸"로 부르던 트럭이었다. 

대륙의 탐사여행가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차이며 저것에 엔진을 얹고 고쳐서 외관을 그대로 보존하여 여행용으로 사용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외관은 저모 습 저대로 사용해야 적격이지 저것을 두들겨 펴고 페인트칠을 하면 그 순간 낭만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쯤에서 일반인은 이해가 불가한 막강한 나의 기억력을 살려서 저 "도락꾸"의 추억을 늘어놔야겠다.


얼마 전 대한항공 부사장 직함의 여자아이가 JFK 공항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에게 모욕을 주었다는 땅콩 회항 사건의 단상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 그녀가 태어나기 훨씬 전, 작고한 조중훈 할아버지는 미군과 영국군에게 불하받은 윗사진의 도락꾸에 드럼통을 펴서 용접한 사각형의 커다란 물탱크를 얹어 내 집 앞 불과 100 m 거리에 있는 개울물을 퍼서 소독약을 넣고 일선의 각 미군부대에 식수를 공급하여 사업을 일구었다. 미군부대서 제공한 트럭 엔진에 펌프를 연결하여 물을 퍼서 파이프로 쏟아 실어가던 도락꾸 물장수 아저씨가 땅콩 회항 사건 女 할아버지 조중훈 아저씨이며 얼마후 일본서 직수입한 한진 신형 물차가 수 십대로 불어나 규모가 커지고 베트남 전쟁 특수로 규모가 커지면서 이후 조중훈 아저씨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기억에 의하면 구형 도락꾸가 이삼십 대는 되었으며 학교에 갈 때 한진 도락꾸 물차를 타고 가던 시절이 있었고 땅콩의 할아버지께서 가끔 들러서 국밥을 먹으며 운전사 아저씨들을 독려하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엄마가 하시던 작은 식당은 물 탱커 운전사 아저씨들의 집합소였고 차가 고장 나거나 얼어붙어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우리 집에서 묵어가는 일도 잦았는데 어쨌거나 케네디 공항에서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한 기사를 보고 갖은 고생하던 그녀 할아버지 생각이 떠올랐으며 조상님 은덕으로 살아가는 것을 모르고 제年이 귀족 가문으로 착각하는 그 모습에서 씁쓸한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동등하게 태어난 것인데 요즘은 학식과 경륜과 품행이 아닌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분류되어 양반과 상것으로 분류되는 세상이 되었다. 조상님 은덕으로 부유하게 살아가는 천박스런 땅콩녀는 한국의 대다수 서민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죽기 전에 베풀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1848년 골드러시 때 이곳을 거쳐 캘리포니아로 가던 역마차 행렬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이곳에는 텅스텐을 캐는 광산이 있었는데 메마른 사막 Rachel 마을이 형성된 것은 1980년대에 문을 닫은 눈앞의 삭막한 폐광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거에는 전체 주민이 500 명 가량 있었으나 지금은 50여 명에 불과한 주민이 거주할 뿐이며 지나다 본 모텔은 삭막하기 짝이 없고 문을 열었는지 알 수 없었으며 인터넷은 고사하고 전화 시그널도 완전히 사라져 외부세계와 연락은 두절되었다.    




흙벽돌을 쌓아 만든 낡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려 했던 나의 희망은 한순간 사라졌으며 아무리 훑어봐도 주유소와 식당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으며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분명히 몇 명이라도 사람이 사는 마을이지만 인기척이 없어 길을 떠났다.    




이런 무인지대 같은 곳에서 농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으며 저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아갈까 궁금함이 많았다.   




레이첼 마을 이전부터는 길가에 철조망이 없는데 커다란 소의 그림이 그려진 팻말이 곳곳에 서있고 조심해 운전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광야에 부는 바람은 흙먼지를 일으키는데 카메라를 꺼내여 겨냥하면 그새 회오리가 사라져 아쉽기만 했다.   


 


저편 금모래 은모래 사막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바퀴가 빠지면 낭패일 것이 분명하여 망설이던 그런 시간들..........    




나는 네바다 사막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느리기로 유명한 나무늘보처럼 흐느적거리며 사막길을 다녔다. 너무나 아름다운 황막한 광야였으며 '사의 찬미'를 부르신 소프라노 윤심덕 선구자가 이곳의 모습을 본적이 없이 현해탄에 몸을 던져 죽어갔다는 것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인터넷 시그널이 전혀 잡히지 않는 사막과 산맥을 다니느라 밀린 글을 빠른 속도로 써 내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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