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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조나 사막에서

2016.6. 25 이야기


눈길이 닿는 곳마다 모래와 흙으로 된 사막이며 만고풍상 흐르는 세월 풍화에 깎이고 깎여서 구릉으로 변한 곳이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수풀이 우거지고 기암괴석으로 둘러서고 맑은물이 흘러야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인 듯한 이곳에도 온갖 동식물과 더불어 사람도 사는 곳이다.    




saguaro 스구아로 선인장 집단서식지를 가려면 아리조나의 명승지로 불리는 sedona 세도나 그곳을 거쳐서 가야한다.   




needle "바늘 마을에서 밤을 지새고 이곳 catfish paradise "메기의 천국" 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주와 아리조나주주 경계인 콜로라도강에 도착하였다. 콜로라도주 눈덮인 록키산맥을 출발하여 멀고 먼 여행을 하는 강물은 moab, 캐년랜드, 그랜캐년, 후버댐 등 곳곳의 대자연의 명승지란 명승지는 모조리 휘돌면서 이곳까지 왔으며 저편으로 흘러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로 들어가 태평양으로 흡수되어 그곳서 부터는 수쳔년의 바다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한국으로 비교하면 문산천 개울의 넓이지만 콜로라도주에서 유타주와 아리조나주로 이어지는 고원을 지나며 쏟아질 듯 흐르는 급류가 되어 캐년랜드, 그랜드캐년, 후버댐 등 장엄한 대협곡을 만들며 

이곳까지 흘러오는데 대륙을 거치며 바위에 부딧히고 폭포에서 떨어지고 장거리 여행에 지쳐 파랗게 멍든 물줄기는 여기서 겨우 한숨을 돌리고 천천히 흐르게 된다.   


 


나는 모르는 분이지만 옛날에 명국환 이라는 가수가 계셨고 그분이 부른 "아리조나 카우보이" 라는 노래가 있다. 


"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말채찍을 말아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아리조나 카우보이, 저멀리 인디언의 북소리 들려오면 고개너머 주막집의 아가씨가 그리워 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이곳에 온적이 없는 분일텐데 작곡가 작사가 가수 그분들이 어떻게 그런 노래를 만들어 내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신통방통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 (사의 찬미) 를 부르신 윤심덕 선구자, (사막의 한)을 부르신 키다리 고복수 아저씨, (아리조나 카우보이) 명국환 아저씨 등 참으로 놀라운 분들이다. 더 놀라운 것은 달나라에 가본 적 없는 우리 조상님들도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이런 민요를 지어 부르시면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옛적의 이태백 詩仙 을 떠올리며 달과 이태백을 노래했다. 


이번 대륙의 여행에는 아리조나를 몇번이나 들락이면서 사방팔방으로 튀었다가 이곳에 도착하였다.    




옛날에 무법자와 개척민과 카우보이가 다니던 이길은 시원하게 열렸으며 세월이 흐른 후에 옛기억을 떠올리며 대륙을 더듬는 추억의 여행을 하는 것에는 서부영화의 강렬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60년대 어린시절 주말이면 미군아저씨들이 영사기를 돌려 서부영화를 상영하였고 때로는 군부대 영화관에서 서부영화를 보며 자랐다.  전란 이후 침체된 한국에 활기를 불어넣고 개척시대와 산업혁명 등 우월한 미국의 현대문화를 보여주는 계산된 정책이었겠으나 어쨋든 그들이 뜻한 것은 작은 성과를 거두어 당시 어린꼬마가 수십년이 지난 후 그때 스크린에 비추었던 그 모습을 살피며 대륙을 다니고 있다.     




이제는 전성기가 지난 철길이 있는 마을에 들렀으며 이곳 킹맨 마을에서 옛날의 흔적을 살펴보던 시간이다.  


  


이곳은 지금도 객차가 다니는 곳으로 철도역사가 문을 열고 있었다.    




먼지가 풀풀거리던 신작로가 아스팔트 포장이 되었을 뿐이며 마을 전체는 아파치 인디언과 전투를 벌이던 서부개척시대 그모습 그대로였다.    



법원 건물....... 


서부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순회판사가 지방을 순회하면서 죄인에게 판결을 내리고 즉석에서 목을 매다는 교수형에 처하는 장면이 있다. 황량한 곳 작은 마을에는 보안관은 있으나 판사가 없어 주기적으로 말타고 다니는 순회판사가 있는데 그들이 인민재판 하듯이 즉석에서 간단히 판결을 내리고 목을 매달아 교수형에 처하는 장면이 있다. 


이곳은 마을이 커서 지방법원이 존재하여 대체로 공평한 판결을 받을 수 있었지만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재판은 보안관의 기록과 보고를 들은 순회판사의 일방적 판결이 떨어지면 시골교회 끝발없는 목사가 기도하고 형을 집행하는 그런 모습이 사방팔방에서 벌어지던 서부개척시대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시골을 다니면 옛날에 노예를 경매하던 장소도 있고 교수형 하던 자리가 남아있는데 그중 하나가 Englishtown, NJ 다. 이곳은 독립전쟁이 일어난 시기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며 거주민이 존재했던 마을인데 이곳의 광장에는 삼십여년 전까지 광장에 단상이 있었는데 그곳이 온몸을 밧줄로 묶고 올가미를 씌워 끌고 올라온 흑인노예를 경매하던 자리다. 두달 전에도 지나온 곳인데 그런 조상님의 추억 때문인지 잉글리쉬 타운에는 지금도 흑인거주자가 없다. 


지금은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갖가지 아름답지 못한 일이 대륙의 곳곳에서 벌어지던 시기였으며 이런 사막의 시골마을에서야 돈이 법이고 힘없고 빽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목이 매달려 죽는 길 뿐이었다는 생각이다.  


참고. (미국의 거의 모든 시골마을에는 가정집 크기의 법원이 있으며 이런 곳은 매주 정해진 날에 순회판사가 와서 서류를 뒤적여 판결하는데 이런 전통은 서부개척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지방자치제에 의해 세수를 늘리려고 지나다니는 외지차량에 트집을 잡아 티켙을 발부하여 재판에 회부하여 명맥을 유지하기 때문에 나도 몇번의 희생제물이 되어 벌금을 내었지만 옛날이었으면 갖가지 트집에 목이 매달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위 사진은 walkins glen 마을에 있는 것으로 은혜를 만나러 가던 2010년에 찍어놓은 사진이다.  

죄인의 목과 손목을 넣어 잠그고 의자에 앉혀서 채찍질 하던 형틀이다. 이런 것이 아직도 시골마을에 기념물로 존재하고 시골마을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데 판결이 내려지고 오라에 묶인 사람이 형장에 올려져 목이 매달려 버둥거리다 죽는 끔찍한 일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드럼통에 사람을 넣고 엎어서 정신병을 치료한다고 몽둥이와 망치로 드럼통을 두들기던 무식한 놈들과 살아있는 개를 드럼통에 넣고 시끄럽게 해서 죽여야 육질이 좋아진다고 개를 잡던 그런 놈들에 대한 나의 어린시절 저주를 떠올리면서 이곳 서부의 마을을 살펴보던 시간이다.  


곳곳을 살펴보면 밝은 곳도 많지만 내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수많은 고초를 겪다가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잔재를 찾아볼 수 있어서 곳곳을 샅샅이 살피며 다닌다.  맨하탄 남단 한복판에 있는 명문사립대 NYU 중심부 (워싱톤광장) 코너에 교수형을 시키던 고목나무가 있으며 사람을 매달아 죽이던 나뭇가지가 지금도 살아서 늘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리조나의 명소 세도나에 도착해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서 쓰구아로 선인장 서식지로 가기로 했는데 무더운 날씨에 끝없는 차량의 행렬에 막혀 고생하면서 한가한 곳으로 빠져 나왔는데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수천 수만의 인파가 바글하고 길가 아무 곳에나 주차하여 무법천지와 다를바 없었다.    



1956년 건축된 성당. 


2009년 2월에 왔던 곳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세도나는 좋아하지 않는 곳이다.

붉은색 모래암석으로 이뤄진 토질에 별로 볼거리가 없는 곳인데 이곳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곳이어서 인근의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등에 왔던 사람들이 마구 몰려드는 곳이며 반허구적 명성에 의해 관광명소가 된 특이한 곳이다.     




그래도 기왕에 왔으니 옛추억을 더듬으며 이러저리 다녔다.    




이곳이 관광명소로서 품격이 떨어지는 것은 주택이 너무 많고 밀집된 상가의 모습이 원인으로 보인다.  


 


자연만을 놓고 보면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지만 기후가 덥고 습도가 없어 노년층 거주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자연경관을 망친 곳의 하나다.   




세도나의 가장 큰 특징은 이곳 바위 꼭대기를 포함해 모두 다섯곳에서 나오는 vortex 볼텍스 (땅속에서 발생하여 나오는 회오리) 때문에 건강에 유익한 기운이라 하는 속설과 건조한 기후와 더불어 이곳에 사람이 모여드는 이유다. 하여간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이곳에는 노년층이 주류이며 거주인구는 1만명이 훨 넘는 곳이어서 관광명소로는 추천하지 못할 곳이며 내가 다닌 대륙의 명소가운데 최하위의 점수를 주어야 한다.  


젠장할............. 

 땅속에서 올라온다는 보이지 않는 볼텍스 기가 유익하면 누구나 이곳에 와서 천년만년 살겠지만 인간의 수명이 볼텍스에 좌우되지 않으니 문제고 그런 허황된 잡소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별로 볼 것이 없는 이곳에 주차장은 곳곳에 잘 만들어졌다.    




그래도 돗대기 시장터 같은 분위기는 아니고 괜찮은 상가로 이어져 있다.   




날이 무더워서 상점에서 차가운 스프레이물 뿌리는 장치를 만들어 테이블에 앉은 사람을 시원케 한다.   




차들이 밀려들고 길은 막히고 빠져나갈 틈이 없는 복잡한 시가지 때문에 사진이 거의 없으나 어서 이곳을 탈출하여 사막으로 튀기로 작정하였다. 남부 아리조나 사막의 쓰구아로 선인장 서식지에서 캠핑을 하려던 나의 꿈이 사라졌으며 오며가며 나갈길을 찾는 중에 북으로 이어진 출구로 되돌아 나왔다.  


섭씨 45도의 타는 듯한 불볕더위에 계곡으로 몰려든 인파를 통제할 방법이 없어 안전요원들도 바라만 보는데 계곡을 내려다보니 개미떼같은 사람의 모습이 널려서 아예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북쪽으로 튀었다. 나오며 보니 움직이지 못하는 정체된 차들이 10 Km 는 늘어섰고 순발력 있는 판단으로 돌아선 것이 주효했다.    


수년 전에도 너를 만난 첫모습에 정들지 않았는데 두번 째 이곳에 오게 되었고 지금은 쏟아낸 시루에 붙어있는 떡고물 만큼이나 붙어있을 작은 기억조차 모조리 사라졌으며 여행길에 이곳은 다시 들릴 일 없다는 생각을 하며 동쪽으로 달렸고 쓰구아로 선인장 서식지 가기도 틀렸으므로 북으로 올라가 2년 전 지나는 길에 만났던 호피인디언 가족을 만나보기로 하였다.    




갖은 고생끝에 이곳 호피인디언 보호구역에 도착했으며 연료는 바닥나서 노란불 들어온지 오래고 주유소를 물어물어 사막을 헤매던 황당한 날이었다. 독수리 둥우리처럼 절벽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호피인디언 이야기는 내일 마무리 할 것이며 물기가 전혀 없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축제이야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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