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은둔자의 절벽마을 인디언 보호구역





40번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연료계가 바닥을 향해 있어 지도를 확인하니 앞길에 작은 마을 두 곳이 있어 그곳에서 연료를 채우기로 하였다. 고속도로에서 진입하는 마을이며 시골길 87번 북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안도하며 찾아갔더니 인터체인지에 주유소가 보이지 않는다.  

길을 몇 번이나 지나치고 잃어버리고 왔는데 난감하였지만 일단 북으로 달려서 Hopi 인디언 보호구역을 가기로 하였다. 거리는 대략 60 마일 (약 96 km)이고 연료계 불이 켜져도 평균 삼사십 마일은 갈 수 있어서 그냥 가기로 하였다.    


완전한 평야였고 차량은 어쩌다 한 대 다니는 적막한 길인데 가다가 연료가 없으면 지나치는 인디언에게 연료를 얻어서 가거나 인근 그들 집에 연료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연료값을 후하게 지불하면 되겠다는 판단이었다. 오늘의 목적지 Second Mesa 에는 2년 전 여행길에 만난 인디언 가족이 있는데 그들은 모텔 겸 호피 인디언 문화센터 건물의 옆 빈터에서 목각인형 장사를 하기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다.   




방향이 아른거려 몇 번을 멈추어 길을 가늠하던 시간이었고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햇살이 너무 뜨거워 일하는 시간 외에는 집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며 고요한 낮 거룩한 낮 아무도 없는 낮이니 물어볼 사람이 아예 없었다.  


어렵게 호피 인디언 문화센터 빈터에 도착하니 수공예품을 파는 사람이 있어 블러그를 열어 2 년 전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얘 이름이 "프린스"인데 어제와 오늘 그들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First Mesa (첫 번째 메사)에서 축제가 있는데 그곳서 춤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선 주유소를 물었더니 Third Mesa (세 번째 메사) 마을에 있는데 거리는 대략 오륙 마일이어서 그곳에 가기로 하였다.  


호피 인디언 보호구역 모든 곳은 법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곳으로 조심하며 주유소를 찾아갔더니 마당에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고 가게의 규모도 꽤 컸다. 콜라부터 마시고 연료를 채운 후 다시 두 번째 메사로 되돌아가 First Mesa (첫 번째 메사) 가는 길을 묻고 8 마일을 달렸다.    




그곳에 가면 절벽이 보이고 절벽 위에 올라가면 축제 장소가 있으니 그곳서 찾으라고 하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인디언을 이곳서 만나 물었더니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절벽길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없어 셔터를 몇 번 누르고 길을 찾아들었는데 한국의 산골마을 길과 같아서 진입로를 찾을 수 없어 오르고 내리기 반복하다 아무 집 마당에 들어가 클락숀을 조금씩 눌렀더니 창으로 내다보던 젊은 인디언이 나오기에 차에서 내려 중절모를 벗고 한국식으로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를 하면서 길을 물었다.  


참고. 

미국에서는 남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가면 자칫 총탄에 맞을 가능성이 있고 하소연할 법적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에 남의 주택 마당에 허락 없이 들어가면 안 된다. 나는 농장에 들어가거나 길을 물을 때는 상대방 나이에 상관없이 반드시 중절모를 벗고 허리 굽혀 인사하는데 한국식으로 인사하면 아무리 까칠한 사람도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감명받아 바로 친절하게 변한다. 옛날부터 각양각색의 인종을 만나며 터득한 나의 노하우이며 빈민가 양아치도 감동시키는 100 % 확실한 방법이다.  


대체로 인디언 보호구역의 원주민은 까칠한 정도를 넘어 적대감을 느낄 정도지만 집안에서 나온 젊은 인디언은 친절을 베풀며 이리저리 길을 가르쳐 주었으며 다시 공손히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가 알려준 길을 오르며 이들이 절벽 위에 살게 된 이유를 바로 짐작하게 되었다. 저편의 길은 경사가 보통이지만 이곳서 오르는 길은 급경사여서 변속기가 망가질까 봐 긴장이 되었고 자동변속기 1 단에 고정하고 오르는데도 엔진이 부서질 듯 굉음을 내었다.     




차창에 카메라를 대고 눈치껏 셔터를 누르는데 눈앞의 이런 경사를 다니는 저들이 놀라웠다.    




태고에 해저에서 올라온 단층 흔적이 선명한 이곳 Mesa 꼭대기에 사는 이들이 놀라웠으며 길가에 차를 세운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산 위로 올라갔다.    




위는 이렇게 마을이 형성되었고 축제의 장소여서 여러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차 세울 곳을 찾느라 오가던 시간이었으며 다시 꼭대기로 올라가 주차하기로 했다.    




촬영 금지구역이지만 인적이 없어 셔터를 누르는데 개는 먹는 것에 열중하여 쳐다보지도 않고 간섭하지도 않는다.   




주차할 곳이 전혀 없어서 임시로 만든 간이식당 앞에 멈추어 축제장소에 들어가려고 입구를 물었다.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묻기에 번호판이 오클라호마로 되어 있으므로 나는 오클라호마주에서 온 아파치 인디언이라고 했다. 몇몇은 바로 눈치채고 웃지만 점잖고 태연하게 시침을 떼며 프린스 가족을 만나러 왔다며 축제장소를 재차 물었다.

    

(몬타나주 와이오밍주 샤이언 인디언과 오클라호마주와 스모키 마운틴 체로키 인디언 마을에는 거의 백인 모습의 인디언도 있지만 이런 은둔자의 삶을 사는 보호구역에서는 백인 혈통을 보기 (없다고 해야겠다) 어렵다. 인디언은 동양인 모습이지만 수쳔년 세월에 혈통이 변해서 몽고 중국 한국 티베트 사람과 확연히 다르다.)   




차를 세워야 들어갈 텐데 장소가 없어 절벽길 아래를 반복적으로 다니다 다시 올라와 주택의 문 앞에 세우고 양해를 구하였다.  


그들이 가르쳐 주는 곳으로 걸어가며 인디언 원로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원로라고 해야 내 나이 정도 되었는데 습도가 없고 햇살이 강렬한 곳에 살아서 겉늙은 사람이다.) 이곳서 열리는 축제가 무슨 종류인지 물었더니 비를 내려달라는 옛날 한국의 (기우제)였다. 보는 이 마다 경계도 하고 궁금도 해서 누구냐 묻기를 쉬지 않기에 그때마다 Apache nation "아파치 부족"이라 말하고 인디언 역사를 쓰느라 전국의 보호구역을 다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중 한 중년이 자신은 샤이언 인디언과 호피 인디언 혼혈이라고 하기에 대화가 길었으며 그가 알려준 뒤편으로 갔는데 남의 집 마당과 축대가 이곳에서는 공용으로 사용하는 길이다. 

이곳은 절대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 곳이어서 카메라는 차에 놔두고 아이폰은 뒷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보는 사람마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염려하며 주의를 주는데 지나친 감이 있지만 이들의 법칙이니 따를 수뿐이 없었다. 차 안에서는 인적 없는 곳을 향해 셔터를 눌렀지만 이곳은 감시의 눈초리 때문에 불가능하였다.  


(호피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사진을 찍다 걸리면 경찰에 체포되어 카메라 압수에 500 달러 벌금형에 처해진다.) 


의자에 앉으니 옆사람들이 누구냐 묻기에 프린스 가족을 만나러 온 아파치 인디언이라고 했는데 옆의 중년 여인이 프린스가 자신의 동생이라며 반가워한다. 그를 알게 된 2년 전 사연을 말해주니 근처에 있는 프린스 부인을 불렀으며 부인은 이곳을 찾아온 나를 보더니 너무 놀라워하였다. 작은 목소리로 여행 중 너희 가족을 만나려고 이곳에 왔다고 말해주었다.   


아래의 사진들은 축제장소를 Youtube에서 동영상을 찾아 아이폰 셔터를 눌러 캡처하였으며 모든 것이 똑같다.    


(가운데 카우보이 모자를 쓴 인물이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놀라운 것은 26대 디어도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곳 축제 현장을 방문한 동영상이 보여서 캡처하였는데 1913 년이었으며 그 당시 포장도 안되고 기차도 없는 이곳에 털털거리는 자동차 혹은 마차로 왔다고 여겨지는 이분이 참으로 놀라운 것은 스페인과 전쟁을 할 때도 기병대를 이끌고 선두에 섰으며 지나온 요세미티 국립공원도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파인 것이 존경스러웠다.    



2014년 7월 8'200 마일 (약 13'000 km) 대륙 여행 때 사진이며 디어도 루스벨트 대통령은 산꼭대기 세 번째 인물이다.  


참고. 디어도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우스 다코다주 러쉬모어 마운틴에 있는 네 명의 대통령 조각상 인물 중 한 분이며 디어도는 식민정책과 국토확장의 공헌이 큰 인물이며 1 대 조지 워싱톤, 3대 토마스 제퍼슨, 16대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과 함께 선정되어 이곳에 명성을 남겼다. 


https://youtu.be/NrK_8 tqKIcY  <-- 이것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호피 인디언 축제를 참관한 103년 전 다큐멘터리 이므로 글을 모두 읽은 후 눌러서 보면 되겠다.  

https://youtu.be/LnfXIPZSg5 k <-- 이것을 누르면 이 장소에서 축제를 벌이는 동영상으로 연결되며 유튜브에 여러 형태의 축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이곳이 First Mesa 절벽 위 마을의 축제장소이며 해마다 이곳에서 각종 축제가 열리며 흙으로 만든 집에 둘러싸인 사각의 특이한 장소였다.    




이들의 주택은 멕시코 주택처럼 흙으로 지었으며 석가래를 걸치고 흙을 두껍게 덮은 지붕이어서 사람들이 그곳에서 관람한다.    




2012년 동영상인데 이곳은 원래 외지인에게 개방이 되었고 촬영할 수 있었는데 호피 인디언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 외부세계의 여론 때문에 인디언 부족회의에서 원로들 결정으로 금지하게 되었다.  

다른 종족은 축제를 공개하지만 이들은 법으로 정했기 때문에 자신들도 사진을 찍지 못한다고 한다.   




가면을 쓰고 나오는데 기괴한 모습으로 흉측한 느낌이 들지만 이들의 문화이므로 존중하면 된다.   




발을 구를 때마다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올라 오른편 건물 뒤편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이곳 지붕으로 올라가서 구경하였다. 이십 대와 십 대 아이들은 친절을 베푸는데 나이가 많을수록 뇌가 석회질로 변해서인지 무뚝뚝하고 폐쇄적 성품이었다.    




뭐가 그리도 궁금한지 보는 사람마다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신분을 묻는 것이 귀찮은 정도였고 손에 들고 있는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을까 서로 감시하는 모습이 좋지 않았으며 그들이 믿거나 말거나 아파치 부족으로 나를 소개하며 곳곳을 살펴보았다. 


인근의 다른 부족이 오는 것도 반기지 않는 이들이고 나를 친근감 있게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다. 생긴 모습은 분명 동양인으로 배지가 빼곡한 중절모를 쓰고 숲 속에서 생존해 온 사람처럼 사냥꾼 옷을 입었으며 아파치 인디언이라 하지만 아닌 거 같으니 의심도 있고 태생적으로 친절한 기미는 전혀 없었다.  


아마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시기에 내가 이곳에 왔다면 잡혀서 이들의 특별한 식량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이 열려있는데 가운데 테이블이 길게 있고 의자가 여럿 놓여있어서 식당으로 착각하고 들어가 화장실을 사용한 후 코카콜라를 달라고 했더니 물뿐이 없다고 하기에 다른 음료수로 달랬더니 여기는 식당이 아니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50 대 주인녀석.....  


부족의 축제가 아니고 혼자 외진 곳에서 그랬으면 부러지지 않을 만큼 내지르고 떠나버렸을 정도로 까칠한 녀석이었다. 두어 시간 머물렀으니 떠나기로 하였고 프린스 가족과 문화센터 식당에서 오전에 만나기로 하고 자리를 떠났다.    




옛날 이들의 삶의 모습이며 사진에는 가녀린 여인이 있는데 실제 인디언 부족의 여인은 (남자는 물론이고) 김칫독 체형의 사람이 거의 대다수다. 추론하면 이들은 채소음식이 거의 없고 육류 기름진 음식과 콩 음식이 많고 날이 너무 무더워 활동이 적어서 그런 것으로 보면 되겠으며 교육의 평균지수가 일반사회보다 낮은 것도 이유로 볼 수 있다.     




캡처한 Mesa 거주지.   




옛날 허물어진 주택의 모습.    




이 집은 동영상 캡처 사진이지만 지금도 실제 산 위에 존재하며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이렇게 절벽에 난 길로 다녔다.    




이들은 절벽 위에 집을 짓고 이렇게 사다리로 올라 다녔으며 콜로라도 주 Mesa Verde처럼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렇게 지은 것이다. 적이 침입하면 사다리를 모두 올리고 벽을 성벽 삼아 위에서 방어하는 구조다. 절벽이 성벽 역할을 하지만 함락되면 모두 집 위로 올라가 항전하는 이중 성벽인 셈이다. 


절벽 위에는 난간이 없는데 아이들은 절벽 끝에 서서 놀고 어른들은 그렇게 노는 아이를 제지하지도 않는다. 태생적으로 그렇게 살았어도 만약에 추락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위험한 곳이다.        


 


절벽길을 내려오다 인적이 없어 카메라를 꺼냈으며 이들은 원래 저 아래 흩어져 살았는데 옛날에 다른 부족의  침입이 잦아져 절벽 위로 거주지를 옮겨서 살았으며 부족이 사용할 양식과 짐승을 Mesa로 옮겨놓고 그곳서 지냈으며 사방이 절벽인 이곳에는 활과 창으로 무장하고 몇 곳만 지키면 침입이 불가능한 곳이다.   




내려오며 렌즈를 당겨 살펴보는데 한국의 옛 산성보다 훨씬 효용성이 높은 성벽이었고 저곳 절벽에서 독수리처럼 살아가는 날개 없는 호피 원주민이 경외스럽게 느껴졌다.    




이들이 먹는 물은 어디서 길어오는지 미처 묻지 못했으나 옛날에는 평지에서 우물물을 길어지고 올라와 사용했을 것이고 지금은 중턱에 대형 물탱크가 설치되었으니 그곳에서 마을에 공급된다.  


옛날에 리차드 버튼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가 열연한 영화 "독수리 요새" 가 있었다. 2차 대전 때 알프스 산맥의 독일군 요새에 잠입하여 폭파 임무를 완수하고 탈출하는 영화였는데 그곳은 케이블카로 올라가기라도 했지만 이곳은 몇 명의 보초를 세우면 잠입할 수 없는 진정한 독수리 요새였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줄이고 2편으로..........

작가의 이전글 아리조나 사막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