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대와 상황에 따라 저마다의 고민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된 지 몇 년이 지나고, 배우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런 고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온도로 100세 시대의 노후를 함께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따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성숙이라는 단어를 씻고 찾아봐도 없던 스물일곱 살 12월에 결혼해 맞벌이로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른에 아버지가 되었고, 서른둘에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나의 삶은 둘째 치고, 우리 부부의 삶도 사라진 채로 20년을 달려왔습니다. 아니, 달려야만 했던 세상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정신을 차리고 그럴듯하게 산 것 같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애썼다”라는 말 정도가 어울립니다.
다시 돌아와 최근 1~2년 전부터 저희 부부는 부부만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퇴근길에 만나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가기도 하고, 집에서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기도 하며, 산책도 합니다. 주말에는 온전히 함께 1박 2일, 48시간을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보내기도 합니다.
침대에서 같이 또는 따로 각자의 콘텐츠를 소비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간식도 먹습니다. 이런 생활 속에서 함께 박장대소하며 웃기도 하고, 진지하게 서로를, 그리고 가족을 이야기하며 이해하기도 합니다.
갓 결혼한 부부와는 다른 온도지만, 긴 노후를 대비해 진짜로 친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랑의 무지개 빛 색깔 중 무엇가를 찾아 가는 중...
옆에 없어도 잠은 자지만, 함께 있으면 더 빠르고 편안하게 깊은 잠을 자게 해주는 배우자.
혼자 만들어 먹거나 시켜 먹어도 맛있지만, 함께하면 더 즐겁게 웃으며 먹게 해주는 배우자.
혼자서도 여가 생활이나 여행을 잘하지만, 옆에 있으면 더 규칙적이고 안정감 있게 만들어주는 배우자.
이제는 내 부모를 자기 부모처럼 대하며 대화하고 챙겨주는 배우자.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을 같은 눈높이에서 응원하고 바라보는 배우자.
이런 배우자라면 계속 함께 살고 싶지 않을까요.
아내는 저를 애착 인형(배우자)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내가 더 벌고 더 독립적인 성향인데, 제가 애착 인형이 되었습니다.
아니 서로의 애착 배우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건 마음과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자랑하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워너비가 있다면, 워너비가 되도록 애써보자는 말을 꺼내고 싶었습니다.
새해입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묻기보다는, 서로가 행복해질 방향을 조금 더 빨리 찾아 긴 노후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물음을 던져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물음을 던져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