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정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
17화. 8년간 돈을 풀어도 일본이 안 살아난 이유
― 화폐 정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
돈을 풀면 경제가 살아날까?
2012년 말,
아베 신조가 총리로 복귀하며 내건 슬로건은 명확했다.
"디플레이션 탈출", "경제 재생", "강한 일본"
'3개의 화살'로 불린 아베노믹스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2025년,
일본은 여전히 근본적인 구조 문제를 안고 있다.
화폐를 아무리 풀어도 순환되지 않고,
주식시장은 올랐지만 서민 경제는 여전하다.
아베노믹스는 무엇을 바꾸었고,
무엇을 바꾸지 못했을까?
3개의 화살: 정책의 설계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세 가지 정책이었다.
첫 번째 화살: 대담한 금융정책
- 2% 인플레이션 목표 설정
- 대규모 양적완화 실시
-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 확대
두 번째 화살: 기동적인 재정정책
- 공공투자 확대
- 국토강인화 프로젝트
- 경제대책을 통한 수요 창출
세 번째 화살: 성장 전략
- 규제 완화
- 여성 활용 정책
- 기업의 투자 환경 개선
표면적으로는 모든 경제정책 수단을 총동원한
종합적 접근으로 보였다.
양적완화의 실험: 전례 없는 규모
2013년 일본은행은 '차원이 다른 양적완화'를 시작했다.
연간 80조 엔의 국채를 매입하며
통화량을 급격히 늘렸다.
2025년 현재 일본은행 자산 규모는 GDP의 135%에 달해
주요국 중앙은행 중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국채 보유량도 전체 발행량의 50%를 넘어섰다.
이 정책의 즉각적 효과는 분명했다:
- 엔화 약세로 수출 기업 실적 개선
- 주식시장 상승 (닛케이 평균 2배 이상 상승)
- 기업 수익성 개선
하지만 기대했던 선순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 2013-2025년 실질 GDP 성장률: 연평균 0.8%
- 물가상승률: 2024년에서야 2% 목표 달성
- 실질임금 상승률: 12년간 거의 정체
기업 변화의 한계
아베노믹스 기간 중 기업들의 재무 상황은 크게 개선되었다.
내부유보는 2012년 328조 엔에서
2025년 547조 엔으로 67% 증가했다.
하지만 이 자금이 투자와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기업들은 여전히 '안전 우선' 경영을 선택했고,
혁신적 투자보다는 현금 보유를 선호했다.
기업 투자의 아쉬운 현실 (2025년 기준):
- 설비투자 증가율: 연평균 1.2% (목표 3% 미달)
- R&D 투자 GDP 비중: 3.2% (정체)
- 신기술 분야 투자: GDP의 0.8% (독일 1.8%, 미국 2.1%)
특히 디지털 전환 투자에서는 여전히 뒤처졌다.
AI, Io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 도입이
선진국 대비 느렸다.
노동시장 개혁의 미완성
아베노믹스는 '일하는 방식 개혁'도 추진했다.
장시간 노동 해소,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목표로 했다.
일부 성과는 있었다:
- 여성 고용률: 2012년 60.7% → 2025년 74.2%
- 고령자 고용률: 65세 이상 25.1% → 31.8%
- 최저임금: 시간당 749엔 → 1,004엔 (34% 인상)
하지만 근본적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여전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크게 줄지 않았고,
생산성 향상도 제한적이었다.
-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수준: 2012년 56.8% → 2025년 62.1%
- 시간당 노동생산성: OECD 평균의 79.3% (미미한 개선)
구조개혁의 좌절
세 번째 화살인 성장 전략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규제 완화와 구조개혁은 기득권의 저항으로 지지부진했다.
농업 개혁:
- TPP 참여로 일부 시장 개방
- 하지만 농협 개혁, 대규모화는 제한적
- 농업 생산성: 여전히 선진국 하위권
에너지 정책:
- 후쿠시마 사고 후에도 근본적 전환 미흡
- 재생에너지 비중: 2025년 22.1% (목표 36-38% 미달)
- 원전 재가동 논란 지속
규제 완화:
- 국가전략특구 설치
- 하지만 핵심 분야 규제는 대부분 유지
- 창업 활성화 효과 제한적
사회적 불평등 심화
아베노믹스의 부작용 중 하나는 불평등 확대였다.
주식과 부동산을 보유한 고소득층은 자산 가치 상승 혜택을 봤지만,
서민층은 물가 상승 부담만 늘었다.
소득 격차 지표 (2025년 기준):
- 지니계수: 0.334 (2012년 0.329에서 악화)
- 상위 10% 소득 집중도: 41.7% (증가)
- 중간소득층 비중: 56.2% (감소)
특히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도 더 벌어졌다.
도쿄권은 주식시장 상승과 재개발 붐의 혜택을 봤지만,
지방은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가 지속되었다.
코로나19 충격과 정책 한계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아베노믹스의 한계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냈다.
12년간 축적된 금융 완화 여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추가적 대응 여지가 제한되었다.
코로나 대응의 어려움:
- 이미 제로 금리로 추가 완화 여지 부족
- 국가 부채 GDP 대비 264%로 재정 여력 한계
- 구조적 취약성 그대로 노출
결국 2020년 8월 아베 총리가 사임하면서
아베노믹스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
기시다 정권의 새로운 방향
2021년 출범한 기시다 정권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우며
아베노믹스와는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기시다노믹스의 특징 (2025년 평가):
- 성장보다는 분배에 중점
- 임금 인상 유도 정책 강화
- 디지털·그린 분야 집중 투자
일부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 2024-2025년 임금 인상률: 3.1% (30년만 최고)
- 물가상승률: 2% 목표 달성
- 디지털 정부 서비스 확산
하지만 근본적 구조 문제 해결에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한국도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등
일본과 유사한 구조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경험에서 배울 교훈:
1. 통화정책의 한계 인식
금융 완화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실물경제 개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2. 구조개혁의 중요성
기득권 저항이 있어도 핵심 분야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미루면 미룰수록 비용이 커진다.
3. 분배 문제 고려
성장 정책이 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분배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4. 장기적 관점 유지
단기 성과에 급급하지 말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오늘의 교훈
아베노믹스는 디플레이션 탈출이라는
명확한 목표는 달성했지만,
근본적인 경제 활력 회복에는 한계가 있었다.
화폐 정책과 재정 정책만으로는
인구 감소, 생산성 정체, 혁신 부족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사회 전체의 마인드셋 변화 없이는
어떤 정책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성장에 대한 기대,
혁신에 대한 의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정책이 의도한 선순환이 가능하다.
한국도,
일본의 시행착오에서 배워
더 효과적인 경제 정책을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단순한 경기부양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활력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다음 화 예고
18화에서는 여성 활용 정책의 현실 – 유리천장과 육아 부담의 이중 구속을 다룹니다.
아베노믹스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던 여성 인력 활용이
왜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는지,
그리고 한국이 주목해야 할 정책적 시사점을 살펴봅니다.
[일본 : 잃어버린 미래가 남긴 구조적 경고]
3부 17화. 8년간 돈을 풀어도 일본이 안 살아난 이유 – 화폐 정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
(이 글은 일본 경제정책 자료, 일본은행 2025년 7월 정책전망, 내각부 경제사회총합연구소 2025년 평가, 세계은행 2025년 6월 일본분석 등을 종합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