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불완전

사물의 관계-문에 대하여

by 윤담

문은 언제나 두 세계를 나눈다.
안과 밖,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아직 말하지 못한 마음과
이미 지나간 말들 사이.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번 문을 열고 닫는다.
습관처럼, 혹은 무심하게.
그러나 어떤 문은 평생 닫히지 않고,
어떤 문은 너무 늦게 열린다.

아버지는 늘 문을 세게 닫으셨다.
그 소리는 하루의 피로가 담긴 종소리 같았다.
퇴근 후 현관문이 쾅 닫히면
그 소리로 하루의 무게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문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건 외로움의 소리였지만, 동시에 생존의 소리였다.

어머니는 그 뒤로 조용히 문을 열었다.
밤늦은 시간,
식탁 위에 남은 밥그릇을 덮고,
아버지의 셔츠를 베란다에 걸어두셨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부엌 불빛은
언제나 따뜻했다.
그건 화해의 온도였다.

이제 나는 그 두 문 사이에 선다.
닫는 법을 아버지에게서 배우고,
여는 법을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그러나 여전히 문 앞에서 멈출 때가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손잡이를 쥔 채 서 있는 순간들.

며칠 전, 오래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유서엔 짧게 적혀 있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그 문장은 너무 짧고, 너무 무거웠다.
아마 그는 그 문턱에서 오래 서 있었을 것이다.
그 문은 닫히지 않은 채,
그의 가족 앞에 남았을 것이다.

삶이라는 문은
때로는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은 채 남는다.

나도 문 앞에서 서성인다.
가족의 마음 앞에서,
사랑의 끝자락 앞에서,
아직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 일들 앞에서.

그러다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본다.
햇볕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그 온도는 오래된 감정을 천천히 녹인다.

그 빛이 나를 지나 방 안을 물들이면
나는 잠시 멈춰 선다.
닫지 않아도 괜찮은 문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안다.

이제 나는 문을 조용히 닫는다.
소리가 나지 않게,
누군가 놀라지 않게.

그 문 위로 오후의 햇살이 비친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오래된 온기.
그건 어머니의 손길 같고,
아버지의 숨 같고,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같다.

문은 오늘도 나를 가르친다.
닫힘 속에도 빛이 있고,
열림 속에도 두려움이 있다.

그 모든 것을 견디는 일이
한 사람이 되어가는 일이다.
그건 외로운 일이지만,
결국 다정해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