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아야 할 것들

투명한 불완전을 쓰며 든 생각

by 윤담

가끔은 밤이 너무 깊어서,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갱도 속으로 혼자 걸어 내려가는 기분이 된다. 숨을 들이키면 가슴이 더 조여오고, 눈을 감으면 어둠이 오히려 선명해지는 순간들. 그 시절의 몇몇 밤들은 아직도 손등의 냉기처럼 또렷하다. 몸 안의 구조가 한 겹씩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나는 아주 가벼운 먼지처럼 흩어질 것만 같았다.

그때마다 나는 조용히 호흡을 고르려 애썼다. 문장을 되뇌듯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나라는 존재의 울퉁불퉁한 면을 손끝으로 더듬어 확인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호흡 사이사이로 나는 늘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야… 불완전한 존재야…” 어떤 밤엔 수십 번, 어떤 새벽엔 백 번도 넘게 되뇌었다. 마치 그 문장만이 내가 가라앉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마지막 실 같은 느낌으로.

불완전하다는 사실은 이상하게도 나를 살게 했다. 완전해지려 몸을 조일 때마다 내면은 더 파편처럼 깨졌지만, 불완전하다는 자각은 그 파편을 바람에 흘려보낼 틈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비참함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투명한 불완전”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도망이 아니라 관조였다. 고통이 눈앞을 가리고, 두려움이 뒷목을 끌어내려도, 그 순간을 관통해 지나가는 투명한 시선 하나를 갖는 일. 그 시선 덕분에 나는 잠깐이나마 고통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삶은 완벽하게 세워지는 성벽이 아니라, 금이 가 있는 유리창 같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금이 간 면을 따라 빛이 들어오듯, 균열은 파괴이면서 동시에 통로가 되었다. 나는 그 틈에서 다시 숨을 배웠다. 숨을 뱉고, 멈추고, 다시 들이키는 단순한 반복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되돌려놓는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관조는 그 작은 반복 안에서 싹텄다.

죽고 싶었던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내 안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 그림자는 날카롭고, 절망적이고, 때로는 너무 솔직해서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그 그림자를 밀어내기보다, 조용히 옆자리를 내줬다. 불완전한 존재에게는 불완전한 그림자가 따라붙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그림자는 조금씩 모양이 바뀌었다. 더이상 나를 짓누르지 않았고, 나와 거리를 둔 채 잠시 머무는 방문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완벽함은 나를 살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를 살린 건 언제나 투명한 불완전함이었다.

불완전함은 그저 모자람이 아니라, 존재의 결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완전함이 단단한 벽이라면, 불완전함은 빛이 통과하는 유리였다. 투명하다는 것은 비어 있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투명함 속엔 고통, 흔들림, 그리고 다시 살아보려는 미세한 결심들이 고요하게 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조금씩 내 안의 방향을 되찾아갔다.

어둠 속에서 한걸음 물러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 그게 나를 구했다. 관조라는 숨은 고통을 없애지는 못했지만, 고통을 통과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그 길을 택했다. 그 선택은 어떤 위대함도 아니었지만, 나라는 존재가 오늘 여기까지 이어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다리였다.

지금도 가끔은 그 시절의 밤이 내 안에서 희미하게 흔들린다. 그러나 이제 그 흔들림이 두렵지 않다. 그 흔들림이 있었기에, 나는 나의 숨을 다시 찾아낼 수 있었다.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이 내가 무너질 이유가 아니라, 내가 계속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 금이 간 도자기처럼, 조심스럽고 투명한 균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삶. 그 모습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조용히 되뇐다.
“나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나 투명하니까, 괜찮다.”

그 문장을 속으로 품는 순간, 세상은 아주 얇은 공기층을 만들어 다시 숨을 고르게 해준다.
그 얇은 공기층이 나를 살렸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투명한 불완전이 나를 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