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눈이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는
먼저, 소리가 천천히 사라진다.
도시가 낮 동안 흘려보내던 크고 작은 소음들이
눈발에 닿는 순간 미세하게 부서져
공기 속으로 스며들고,
그곳에는 오직 내려오는 것들의 기척만 남는다.
그 기척이 정류장 주변의 공기를
보이지 않는 두께로 감싸면서
사물들은 각자의 속도를 잃고
잠시 한 장면처럼 머물게 된다.
유리벽 너머의 도로는
지워지는 중이었다.
눈은 땅을 덮는 일보다
세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일을 먼저 했고
그 희미함 안에서
오래 알고 지내던 거리는
기억 속의 풍경처럼
조금 비껴 선 자리로 이동했다.
나는 그 낯선 이동을 바라보며
세상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닌데
분명히 한 번 접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은 언제나
‘지금’을 접어두고
‘잠시’를 펼쳐 놓는 방식으로 내렸다.
사람들이 정류장 안으로 들어와도
그들의 움직임은 다른 계절과 달랐다.
눈발이 형체를 흐리게 만드는 사이
한 사람의 윤곽은
그가 가진 감정보다 먼저
살며시 흔들렸다.
모두는 마치
자신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이 날씨가 허락한
느린 호흡 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정류장은
기다림의 장소가 아니라
자기 속도를 잠시 잊는 장소가 되었다.
버스는 오지 않았고,
그렇기에 시간이 흘렀다.
분 단위로 흐르지 않고
눈발의 개수로,
유리벽에 닿아 사라지는 작은 흔들림으로
천천히 이어졌다.
나는 한 송이의 떨어짐과 사라짐을 보는 동안
내 생각들이 눈처럼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기다림이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이 정류장에서는
기다림이 곧 정돈이었다.
멀리서 버스의 전조등이 나타났지만
눈이 그 빛을 여러 번 꺾어놓았다.
그 꺾임 속에 담긴 빛은
도시의 불빛과 달랐고
어딘가 오래된 감정처럼
부드럽고 서늘했다.
나는 그 빛이 가까워질수록
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들의 마음도
조용히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하루 동안 흩어졌던 감정들이
눈발을 따라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했다.
버스가 가까이 와 멈추자
문이 열리는 소리조차
눈발 속에서는 무척 낮게 들렸다.
사람들은 몸에 붙은 눈을 털고
하나둘 버스에 올랐다.
그 동작들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눈은 서두름을 허락하지 않는 날씨였고
오늘의 정류장은
그 허락받은 느림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로는
더 이상 분명한 선을 갖고 있지 않았다.
도로의 경계, 건물의 끝,
사람들의 발자국조차
눈이라는 얇은 층 아래에서
조용히 흐려지고 있었다.
그 흐려짐은
슬픔이 아니라
세계가 잠깐 자신을 아낄 때 생기는 온도와 닮아 있었다.
나는 그 온도에서
이상하게 안도했다.
버스가 떠난 뒤에도
정류장에는 여전히 눈이 내렸다.
남겨진 사람들은
각자의 손에 따뜻한 숨을 모으며
아직 오지 않은 버스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그들 삶의 어느 조각을 정리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알고 있는 듯했다.
눈은 세상을 흰색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흰색 이전의 상태,
아직 말이 붙기 전의 조용한 자리로
잠시 되돌려 놓는 방식으로 내렸다.
그리고 그 되돌림 속에서
나는 지금보다 더 천천히 살아도 된다는 사실을
아주 작은 숨결처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