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랑

턱이 마른 나무

by 윤담

기준은 요즘 자주 이를 물고 있었다.
의식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회의실 유리벽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서야, 턱이 마른 나무처럼 굳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날이 많았다. 이를 오래 문 사람의 얼굴은 어딘가 얇아 보였다. 입술은 닫혀 있는데, 그 안쪽에서는 말해지지 못한 것들이 사금파리처럼 부딪히고 있는 얼굴. 그는 오후쯤 거울을 볼 때마다, 제 안에 작은 철공소 하나가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쇠가 식기도 전에 또 두드려지고, 두드려진 자리는 다시 벌겋게 달아오르는 곳.
회사에서는 늘 누군가의 말이 누군가의 책임을 비켜 갔다.
회의 테이블 위를 미끄러지는 말들은 대부분 매끈했지만, 그 매끈함 아래에는 늘 손톱 같은 것이 숨어 있었다. “그건 검토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은 대개 “내 책임은 아닙니다.”의 다른 얼굴이었고, “방향성에 대해 다시 논의하시죠.”라는 말은 “지금은 제가 답하지 않겠습니다.”와 비슷한 체온을 갖고 있었다. 기준은 이제 문장보다 문장 사이의 공기에서 더 많은 것을 읽었다. 대답이 오기까지의 몇 초, 컵을 드는 타이밍, 회의록에 끝내 적히지 않는 이름들. 회사는 보고서와 일정표로 굴러가는 척했지만, 실은 불안과 체면과 계산이 셔츠 소매를 잡아당기며 겨우 움직이는 곳이었다.
오후 세 시만 되면 사무실 창문은 희고 마른 빛으로 번들거렸다.
그 시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조금씩 납작해졌다. 엉덩이를 의자에 더 깊이 묻고, 목은 모니터 쪽으로 몇 센티미터 더 기울고, 대답은 짧아졌다. 기준은 커피를 마시며 뉴스를 훑었다. 검은 제목들이 화면 위를 지나갔다. 물가, 환율, 전쟁, 선동, 사고, 혐오, 분열. 뉴스는 늘 또렷한 목소리로 세상의 금을 읽어 내려갔다. 그 문장들은 종종 눈으로 읽히기보다 혀끝에 닿았다. 마치 알약 코팅처럼 번들거리는 표면 아래, 천천히 녹아 나오는 쓴맛. 그는 화면을 끄고도 그 맛이 한참 입안에 남는 걸 느꼈다.
사십 대는 분노를 참는 세대라는 말을 그는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몇 날 며칠 마음속 벽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젊을 때의 분노는 앞을 향해 뛴다. 바깥을 향해 주먹을 쥐고, 목소리를 높이고, 문을 세게 닫고, 세상이 틀렸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십 대의 분노는 방향이 없다. 밖으로 튀어나가기보다 안으로 접힌다. 어금니 사이에 끼이고, 어깨 위에 쌓이고, 명치 밑에서 천천히 단단해진다. 화를 낼 곳은 있지만 낼 수 없고, 소리를 지를 이유는 많지만 지를 수가 없다. 위에는 위가 있고, 아래에는 아래가 있고, 집에 가면 아이들이 있다. 그래서 이 나이의 분노는 불꽃보다 숯에 가깝다. 겉으로는 까맣고 잠잠한데, 안쪽에서는 아직 벌겋게 타고 있는 것.
기준은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제 가슴 안쪽을 만지는 기분이 들었다.
거기엔 분명 무언가 달궈진 것이 있었다.
퇴근해 집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세 개의 다른 계절처럼 그를 맞았다.
첫째는 이제 얼굴에 생각이 먼저 드러나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웃기 전에 먼저 웃어도 되는지 살피고, 서운할 때는 말을 아끼며, 무언가를 묻기 전에 스스로 답을 한 번 만들고 오는 아이. 둘째는 감정이 아직 날것이었다. 웃음도 울음도 너무 빨리 얼굴을 지나가서, 보고 있으면 맑은 물 위로 햇빛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막내는 아직 몸이 먼저였다. 사랑도 몸으로 달려와 안겼고, 서운함도 몸으로 발을 구르고, 졸음도 몸으로 와서 어깨에 기대었다.
기준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비슷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이만큼 키웠구나, 하는 생각.
그것은 뿌듯함이라기보다 약간의 현기증에 가까웠다.
처음엔 손바닥보다 조금 큰 발이었고, 새벽마다 우유 냄새가 났고, 고열이 오르면 작은 이마가 불붙은 돌멩이처럼 뜨거웠던 존재들. 그 몸들을 안고 병원 복도를 뛰어가고, 젖은 내복을 갈아입히고, 어린이집 가방에 여벌 옷을 넣고,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며 열이 내렸는지 확인하던 날들이 층층이 쌓여 지금 여기까지 와 있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수저를 스스로 들고, 자기 의견을 말하고, 제 방 문을 닫고, 내일 준비물을 챙기는 나이가 되었는데, 기준의 안쪽 시간은 아직도 가끔 그들을 젖은 손으로 번쩍 안아 들던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사랑은 이상했다.
사람을 부드럽게 하면서 동시에 거칠게 만들었다.
아끼는 마음이 클수록 쉽게 지치는 날도 있었고, 사랑하는 만큼 더 참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날 저녁이 그랬다.
회사에서는 오전부터 말들이 겹겹이 꼬였다. 이미 합의된 줄 알았던 일정이 다시 흔들렸고, 누군가는 엉뚱한 자료를 들고 와 고개를 갸웃했고, 누군가는 자기 잘못을 마치 모두의 착오처럼 펼쳐 놓았다. 점심때 본 뉴스에는 또 새로운 불안이 올라와 있었다. 숫자들은 자꾸 사람의 살림과 가까워졌고, 먼 나라의 파열음도 이상하게 자기 집 식탁까지 따라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기준은 퇴근길 운전대 위에서 두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손등의 핏줄이 가늘게 올라왔고, 신호 대기 중에도 발끝이 가만있지 않았다.
집에 오니 아이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저녁을 만들고 있었다.
막내는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흔들었고, 둘째는 학교에서 있었던 억울한 일을 한 번에 쏟아냈고, 첫째는 말은 적었지만 식탁 밑에서 발끝으로 자꾸 의자를 밀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저녁 뉴스 예고 음악이 흘렀고, 아내는 국을 떠 식탁에 올리고 있었다. 수저 부딪히는 소리, 물 따르는 소리, 아이들 목소리, 앵커의 단정한 발음이 한꺼번에 겹치자 기준의 머릿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줄 하나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막내가 아빠, 이것 좀 보세요, 하며 그림을 눈앞까지 들이밀었을 때,
그는 결국 말했다.
“좀 조용히 하면 안 되니.”
그 말은 너무 빨리 나갔다.
입안에서 한 번 더 구를 틈도 없이, 젖은 바닥에 떨어진 컵처럼 둔하게.
식탁 위의 공기가 순간 얇아졌다.
첫째가 숟가락을 멈췄다.
둘째는 입을 다물고 눈동자만 굴렸다.
막내는 자기가 잘못한 건지도 모른 채 그림을 천천히 내렸다.
아내는 기준을 한번 바라봤다. 그 눈빛엔 잔소리도 동정도 없었다. 그저 피곤한 이해가 있었다. 당신이 힘든 건 안다. 하지만 이건 당신의 피로를 아이들 앞에 내려놓는 방식이다, 하는 조용한 빛.
기준은 그 자리에서 사과하지 못했다.
사과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필요했다.
그는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물은 차가웠지만 입안에 오래 남은 쇠맛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다시 밥을 먹었고, 텔레비전은 계속 떠들었고, 저녁은 끝났다.
그러나 식탁 위에는 얇은 금 하나가 남아 있었다.
말은 지나가도 금은 남는다.
기준은 그것을 보면서도 모르는 척해야 했다.
밤이 오자 집은 점점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이를 닦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고, 막내는 평소처럼 베개를 끌어안은 채 먼저 잠들었다. 첫째는 알림장을 한번 더 보고 불을 껐고, 둘째는 이불을 발로 걷어차며 마지막까지 뒤척였다. 아내는 설거지를 마친 뒤 기준 옆에 잠깐 앉았으나, 둘은 길게 말을 나누지 않았다. 말 대신 피로가 먼저 자리를 차지한 밤이었다.
기준은 누웠지만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천장은 어둠 속에서 더 낮아 보였다.
눈을 감으면 회의실 유리벽이 떠올랐고, 눈을 뜨면 저녁 식탁의 정적이 돌아왔다.
낮의 장면들은 모두 끝난 일이었는데, 끝난 일들만이 이상하게 밤에 더 선명해졌다.
그는 몇 번이고 몸을 뒤척였다. 이불이 사각거릴 때마다 옆에 누운 아내가 깰까 봐 다시 움직임을 멈췄다.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기준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은 깊은 물속 같았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밤에는 이상하게 또렷해졌다. 냉장고 모터의 낮은 떨림, 벽시계 초침이 한 칸 한 칸 밀어내는 시간, 창틀 틈으로 스며드는 찬 공기. 소파 팔걸이에 걸린 작은 외투, 테이블 아래 굴러간 장난감 자동차, 바닥에 누워 있는 색연필 한 자루.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조금 어질러져 있었고, 밤이 되면 그 어질러짐이 오히려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그는 주방으로 가 물을 마셨다.
찬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잠시 속이 투명해지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휴대전화를 켜고 싶은 충동이 왔다가 사라졌다.
뉴스 제목 몇 줄만 읽어도 다시 제 안의 철공소에 불이 붙을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창가에 서서 아파트 단지를 내려다보니 아직 몇몇 창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저 집에도 깨어 있는 누군가가 있겠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열이 나는 아이를 돌보는 사람, 병든 부모의 간병 문자를 기다리는 사람, 돈 때문에, 후회 때문에, 미래 때문에 잠이 달아난 사람. 세상은 낮보다 밤에 훨씬 더 많은 진실을 품는다. 아침이 되면 모두가 멀쩡한 얼굴로 현관문을 나서겠지만, 그 전의 시간에는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기준은 문득 자신이 아주 오래 삼켜 왔다는 생각을 했다.
분노를, 억울함을, 불안을, 피곤을.
참았다는 말은 대개 단정하게 들리지만, 실제의 참음은 단정하지 않다. 그것은 목구멍 어딘가에 날이 서 있는 것을 억지로 밀어 넣는 일에 가깝다. 많이 참았다는 건 많이 삼켰다는 뜻이고, 많이 삼켰다는 건 그 안쪽 어딘가가 이미 여러 번 긁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아이들 방 쪽을 보았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막내가 무섭다며 완전히 닫지 말아 달라 했던 그대로였다.
그 좁은 틈에서 어둠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기준은 아주 천천히 그쪽으로 걸었다.
방 안에는 아이들이 자는 냄새가 있었다.
샴푸와 햇볕에 말린 이불 냄새와 미지근한 땀 냄새와 아직 덜 자란 몸에서만 나는 아주 엷은 단내가 섞인 냄새. 그 냄새는 꽃처럼 화려하지 않았고, 비누처럼 깨끗하지도 않았지만, 사람을 한순간에 안쪽으로 데려가는 힘이 있었다. 기준은 문턱에 잠시 멈춰 서서 그 냄새를 들이마셨다. 그러자 하루 종일 명치 아래 걸려 있던 것이 아주 조금 느슨해지는 느낌이 왔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줄 하나를 누군가 손끝으로 살짝 놓아주는 것처럼.
아이들은 셋이 각자의 무늬로 잠들어 있었다.
첫째는 벽 쪽으로 몸을 반쯤 말고 자고 있었다. 이불 끝이 턱 밑까지 올라와 있었고, 손 하나만 밖으로 나와 베개 곁에 놓여 있었다. 잠든 얼굴은 낮보다 훨씬 어렸다. 눈을 감고 있으면 아이들은 다시 처음의 존재에 가까워졌다. 말투도, 고집도, 서운함도 지워지고, 아직 단단해지지 않은 맨얼굴만 남는 것 같았다.
둘째는 이불을 걷어찬 채 대자로 누워 있었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에 붙어 있었고, 입술은 아주 조금 벌어져 있었다. 낮에는 그렇게 많은 말을 쏟아내던 입이 지금은 호흡만 내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가슴을 건드렸다. 어린아이의 잠은 침묵이라기보다 자라고 있는 고요 같았다. 잠든 동안에도 조금씩 키가 크고, 조금씩 뼈가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은 고요.
막내는 형과 누나 사이 틈에 몸을 기울인 채 잠들어 있었다. 작은 손 하나는 베개 바깥으로 나와 있었고, 발은 이불 아래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솟아 있었다. 아이들은 왜 자면서 저토록 무방비한 자세를 취하는 걸까. 기준은 그 무방비함을 볼 때마다 목 안쪽이 시큰해졌다. 이 밤이 안전하다고, 이 집이 자신을 받아 줄 거라고, 그들은 온몸으로 믿고 있었다. 믿음이란 어쩌면 저런 자세인지도 모른다. 방어를 다 풀어놓은 채 숨을 맡기는 것.
기준은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낮에 보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얼굴들이었다.
낮의 아이들은 시끄럽고, 요구가 많고, 어지럽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쏟아냈다.
그러나 밤의 아이들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설명하지도, 증명하지도 않은 채 그저 거기 있었다.
존재만으로.
그는 첫째 곁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매트리스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고, 아이는 깨지 않았다.
기준은 손을 뻗어 첫째의 이마를 가만히 짚었다.
미지근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살아 있는 온도.
손끝에 닿는 그 체온은 이상할 만큼 작고 분명했다.
그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겨주었다.
아이의 속눈썹이 잠깐 떨렸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러자 오래전 장면이 불쑥 떠올랐다.
첫째가 태어났던 날의 병원 복도. 너무 밝아서 오히려 서늘했던 형광등. 의자 플라스틱이 허벅지 뒤에 남기던 차가운 감촉. 그리고 문 안쪽에서 처음 울음소리가 터졌을 때, 심장이 갑자기 아래로 툭 떨어지는 듯했던 감각. 그날 그는 처음 알았다. 사람 안에는 전혀 다른 중심이 생길 수 있다는 걸. 그전까지 삶이 자기 한 몸을 중심으로 둥글게 말려 있었다면, 그날 이후의 삶은 밖으로 열렸다. 자기보다 더 중요한 타인이 생겼고, 그 타인은 말도 못 한 채 울음소리 하나로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둘째 쪽으로 손을 옮겼다.
둘째의 이마를 만지자 아이가 코끝을 조금 찡그렸다가 다시 풀었다.
기준은 아주 작은 숨을 웃음처럼 내쉬었다.
둘째는 어릴 때 자주 아팠다. 밤마다 열이 오르고, 기침이 오래 갔다. 기준은 그 작은 몸을 안고 거실을 여러 번 왕복했다. 새벽 세 시, 네 시, 다섯 시. 바깥이 조금씩 밝아올 때까지 등을 토닥이며, 사람의 체온이 정말 다른 사람을 붙들어 줄 수 있는지 믿어 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 오래된 새벽들 덕분인지, 그는 지금도 둘째의 얼굴을 보면 먼저 열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남아 있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종종 버릇의 형태로 굳는다. 만지는 순서를 바꾸고, 손등을 대는 각도를 바꾸고, 호흡의 길이를 바꾼다.
막내의 뺨을 손등으로 스쳤을 때, 가슴 안쪽이 더 약해졌다.
뺨은 복숭아 속살처럼 보드라웠고, 이마는 작은 전구처럼 따뜻했다.
막내는 아직 세상과의 경계가 얇았다.
울다가도 안기면 금세 잠들고, 서운해도 등을 쓰다듬어 주면 다시 몸을 맡겼다.
그 단순함은 어떤 날엔 사람을 지치게 했고, 또 어떤 날엔 사람을 구했다.
기준은 세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하루 종일 자기 안에서 커다랗게 부풀어 있던 것들이 갑자기 멀어지는 느낌이 왔다. 회사에서의 억울함, 뉴스 속 불안, 내일의 일정, 다음 달의 비용,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들. 그것들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해가 뜨면 다시 제 무게를 주장하며 어깨 위로 올라올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이 방 안에서는 그것들이 중심이 아니었다. 중심은 이 세 개의 호흡, 이불 아래 접힌 무릎,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 뺨의 온기, 잠든 아이들이 내는 아주 엷은 숨소리였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이 방 바깥으로 밀려나고, 한가운데에는 미지근한 불빛만 남은 것 같았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하루 종일 붙들고 있던 분노가 정말 이렇게 큰 것이었나.
내가 무너지지 않으려 이를 물었던 이유가, 정말 그것들 때문만이었나.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엔 아니었다.
그는 늘 자신이 아이들을 키운다고 생각해 왔다.
분유를 사고, 약을 먹이고, 학원비를 내고, 잘못을 가르치고, 신발을 사 주고, 울음을 달래고, 열 나는 밤마다 잠을 쪼개 쓰는 일. 분명 그는 아이들을 키워 왔다.
그런데 그 새벽,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만지고 있으니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반대로, 이 아이들이 자기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자기를 아버지라는 이름 안으로 걸어 들어오게 한 것이 결국 이 아이들인지도 모른다고.
분노를 끝까지 삼키는 법도, 새벽에 일어나도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법도, 세상이 시끄러워도 식탁을 차리는 법도, 사랑이 감정보다 동작에 가깝다는 사실도, 이 아이들이 몸으로 가르쳤는지도 모른다고.
기준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소리 없이 우는 법을 아는 나이였다.
울음은 바깥보다 먼저 안쪽을 적셨다.
눈물이 흐르기 전에 목 안이 먼저 젖고, 가슴뼈 뒤쪽이 먼저 뜨거워졌다.
그는 첫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둘째의 이불을 가슴 위로 끌어올려 주고, 막내의 삐져나온 발을 이불 안으로 넣어 주었다. 그 단순한 동작 하나하나가 이상하게도 경건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는 문장보다, 새벽에 이불 끝을 조금 더 당겨 주는 손의 움직임. 아이는 모른 채 자고 있고, 아침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웃고 울겠지만, 그래도 그런 작은 동작들로 사람이 사람을 지켜 주는 것.
기준은 막내의 이마에 아주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둘째와 첫째의 머리 위에도 손을 올렸다.
손바닥 아래에서 세 개의 시간이 자고 있었다.
아직 그에게 기대는 시간, 아직 그의 손을 민망해하지 않는 시간, 언젠가는 저마다의 바깥으로 걸어 나갈 시간. 그 생각이 오자 가슴이 저렸다. 자식을 향한 사랑에는 이상하게 미래의 상실이 함께 섞여 있었다. 언젠가는 이마를 마음대로 만질 수 없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제 방 문을 닫고, 언젠가는 아버지의 손길을 민망해하는 나이가 오겠지. 그래서 지금의 이 새벽이 더 아프고 더 찬란했다. 물에 젖은 유리조각처럼, 쉽게 깨질 것 같으면서도 빛을 오래 붙들고 있는 순간.
그는 방에서 나와 거실로 돌아왔다.
조금 전까지와 같은 집이었는데도 모든 배치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진 것 같았다.
소파는 더 낮아 보였고, 창문은 더 넓어 보였고, 새벽빛은 더 느리게 번졌다.
달라진 것은 세상이 아니라 제 안의 비율이라는 걸 그는 알았다.
무게를 재는 저울의 중심이 바뀐 것이었다.
회사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뉴스는 내일도 또 다른 불안을 끌고 올 것이다.
다음 달 카드값도, 아이들 준비물도, 보고서 마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삶은 여전히 복잡하고, 사십 대의 분노는 하루아침에 증발하지 않을 것이다.
아침이 되면 그는 다시 셔츠를 입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어금니를 무는 순간을 몇 번쯤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분명히 바뀐 것이 있었다.
그는 알게 되었다.
자기를 짓누르던 것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잠든 아이들 이마의 온도 앞에서는 척도가 다시 정해진다는 걸.
자기가 참아 온 것은 단지 비겁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평온한 잠을 지키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걸.
사십 대는 분노를 참는 세대라는 말은 맞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사십 대는 사랑 때문에 분노를 안쪽으로 밀어 넣는 세대이기도 했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대신 도시락을 싸고, 소리를 지르는 대신 학원비를 입금하고, 세상을 저주하는 대신 새벽에 아이의 이불을 끌어올려 주는 사람들.
기준은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단단해졌다.
쇠가 불을 지나며 단단해지듯, 견딤이 전부 상처만은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조금 알 것 같았다.
동쪽 창문이 아주 천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유리창 가장자리부터 옅은 회색이 풀리고, 주차된 차들의 지붕 위로 물기 같은 빛이 얹혔다. 새벽과 아침 사이의 시간은 늘 조용한 금속성 광택을 갖고 있었다. 차갑지만 맑고, 아직 세상 전체를 밝히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무언가를 시작하게 하는 빛.
기준은 문득 저녁 식탁의 장면이 떠올랐다.
좀 조용히 하면 안 되니.
그 문장은 이제 너무 거칠고 쓸쓸하게 들렸다.
시끄러웠던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 안쪽이었는지도 몰랐다.
회사에서 들고 온 잡음, 뉴스에서 묻어온 금속성 울림,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그는 아이들에게 던져 버린 셈이었다.
아침이 오면 말해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제는 아빠가 예민했어. 미안해.
그 한마디를 하자고 마음먹는 데까지, 그는 밤의 절반을 걸어온 셈이었다.
주방으로 가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고, 머그잔에 차를 우렸다.
따뜻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자 손바닥이 천천히 풀렸다. 밤새 안쪽으로 웅크리고 있던 몸이 조금씩 제 모양을 되찾는 느낌이었다.
창밖에서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먼저 울었다.
그 울음은 가늘었고, 그러나 유리조각처럼 또렷했다.
그는 차를 들고 다시 아이들 방 앞에 섰다.
문틈으로는 이제 아침빛이 아주 얇게 흘러들고 있었다.
그 빛은 방 전체를 밝히기엔 아직 부족했지만, 잠든 얼굴들 가장자리에는 이미 닿고 있을 것이다.
그는 그걸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사랑에는 그런 종류의 확신이 있다.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거기 있으리라 믿게 되는 것.
그때 방 안에서 막내가 뒤척였다.
이불이 사각, 하고 움직였고, 작은 발이 한번 침대를 찼다.
기준은 본능처럼 문을 조금 더 열었다.
막내가 반쯤 감긴 눈으로 그를 보았다.
잠과 아침 사이에 걸친 얼굴이었다.
아이는 기준을 보자마자 말도 없이 두 팔을 벌렸다.
그 순간 기준은 알았다.
밤새 자신을 흔들던 모든 뉴스와 숫자와 분노가, 이 작은 두 팔 앞에서는 얼마나 힘을 잃는지를.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겠지만, 이 아이의 아침은 자신이 받아 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너무 단순한 사실 하나가,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
그는 아이를 안아 올렸다.
막 잠에서 깬 아이의 몸은 이불속 온기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미지근하고 부드럽고 조금 무거운 체온.
그 온기가 가슴에 닿자 밤새 몸속에 남아 있던 차가운 것들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아이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다시 눈을 감았다.
창밖에서는 아침이 완전히 밝아오고 있었다.
기준은 아이를 안은 채 창가 쪽으로 몸을 조금 돌렸다.
유리창에 비친 제 얼굴이 보였다. 여전히 피곤했고, 여전히 걱정이 남아 있었고, 주름도 어제보다 깊어 보였다. 그런데 그 얼굴 위엔 방금 전까지 없던 것이 하나 얹혀 있었다. 조용한 확신 같은 것. 세상이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이 사랑의 체온 앞에서는 다시 중심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
그는 아이의 뒤통수를 천천히 쓸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아무것도 아니구나.”
무엇이 아무것도 아닌지 굳이 더 말할 필요는 없었다.
회사도, 뉴스도, 불안도, 분노도 전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 작은 체온 앞에서는 그것들이 중심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사람이 다시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어떤 새벽엔 그 정도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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