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랑

봄의 낙하

by 윤담

봄은 늘 체육관 문틈으로 먼저 들어왔다.
누가 문을 열어젖히기 전부터, 계절은 얇고도 집요한 방식으로 안으로 스며들었다. 바깥에서 막 풀리기 시작한 흙냄새와 아직 다 녹지 않은 저녁 공기의 서늘함, 어디선가 늦게 피어난 목련의 흰 기척 같은 것이 코트 바닥 위를 천천히 기어왔다. 실내에는 오래 닦인 마룻바닥의 매끈한 냄새와 고무창이 미끄러질 때 나는 마찰의 냄새, 사람의 땀이 마르며 남긴 옅은 소금기, 라켓 그립에서 배어나오는 고무 냄새가 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셔틀콕은 작고 하얀 생명처럼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나는 그 낙하를 오래 보는 편이었다.
셔틀콕은 이상한 물건이었다.
깃털을 달고 있으면서도 새가 아니고, 날아오르면서도 결국은 떨어지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 누군가의 손에서 튕겨 오를 때마다 잠깐은 가벼움의 형식을 취하지만, 공중에서의 그 우아한 체류는 늘 짧았다. 흰 깃은 형광등 불빛을 한 번 머금었다가 곧바로 바닥을 향해 기울었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도 저런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른다고, 나는 여러 번 생각했다. 잠깐 반짝이고, 잠깐 허공을 믿고, 결국은 어딘가의 현실에 닿아 조용히 멈추는 것.
배드민턴 동호회는 매주 수요일 밤에 모였다.
하루가 다 써버린 사람들, 회사에서 잘린 문장처럼 밖으로 밀려난 표정들, 가정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쯤 자기 몸의 무게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 혹은 너무 일찍 집으로 들어가면 마주쳐야 할 적막을 조금 더 늦추고 싶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왔다. 어떤 사람은 정말 운동을 위해 왔고,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를 위해 왔고,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를 위해 왔다고 말했지만, 대체로 우리는 각자의 생활에서 조금 비껴난 곳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았다. 라켓을 쥔 채 코트 위를 왕복하는 동안만큼은 다른 이름으로 살아도 된다는 듯이.
나는 집에 돌아가는 일이 싫어진 뒤부터 그곳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조용한 사건이었다.
큰 소리와 눈물과 파손된 물건들보다, 오히려 잘 정리된 서랍과 맞춰 접힌 옷가지,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머그컵 두 개 같은 것들이 더 오래 남았다. 처음에는 싸움이 있고, 그다음에는 체념이 있고, 마지막에는 서로를 피곤하게 여기게 되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 다 닳아 없어진 뒤에야 관계는 끝난다. 끝이라는 것도 대개 문을 쾅 닫는 소리가 아니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이 비어 있는 풍경에 가까웠다.
집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만 더 또렷해지는 풍경.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과하게 크게 들리고, 샤워기 물 떨어지는 소리가 길게 이어지고, 밤이면 현관 쪽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쓰게 되는 생활.
그래서 나는 셔틀콕을 쳤다.
흰 깃털 하나를 치켜올리고 쫓아가고 받아내고 다시 넘기는 동안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몸은 생각보다 정직해서, 숨이 차면 과거를 덜 떠올렸다. 스텝이 꼬이면 후회를 끼워 넣을 틈이 없었다. 나는 내 몸을 피로하게 만들고, 그 피로 덕분에 겨우 잠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를 처음 본 건, 체육관 바깥의 벚나무들이 막 꽃을 놓아주기 시작한 저녁이었다.
문이 열리며 바깥 공기가 한 움큼 들어왔다.
서늘한 밤기운 위에 얹힌 꽃냄새가 먼저 들어오고, 그 뒤에 그녀가 들어왔다. 새 운동화의 밑창이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 특유의 조심스러운 걸음걸이. 손에는 동호회에서 빌렸는지 손때가 잘 묻지 않은 라켓이 들려 있었고, 머리는 대충 묶여 있었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얼굴인데도 이상하게 눈에 남는 인상이 있었다. 예쁘다기보다, 오래 무언가를 참아온 사람들에게 생기는 조용한 그림자 같은 것.
처음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종류였다. 지나치게 밝거나, 지나치게 조용하거나. 그녀는 후자에 가까웠다. 웃을 준비는 되어 있는데 먼저 웃지는 않는 사람. 자기 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잠깐 망설이는 사람.
회장이 내 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형, 신입분이랑 한번 쳐주세요.”
나는 물을 한 모금 넘기고 라켓을 들었다.
코트 건너편에 선 그녀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라켓 헤드를 조금 너무 세게 쥐고 있었고, 발은 반 박자 늦게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초보자에게 자주 보이는 자세였다.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를 조금 예상해두는 사람의 몸.
“저 진짜 못 쳐요.”
그녀가 먼저 말했다. 변명처럼 들리지 않게 말하려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다들 처음에는 못 쳐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배드민턴은 원래 셔틀콕을 많이 주우면서 배우는 운동이에요.”
그녀는 잠깐 나를 보더니, 아주 조금 웃었다.
그 웃음은 크게 열리지 않았다. 입술 끝이 가볍게 풀리는 정도였는데, 이상하게도 그 미세한 변화가 더 오래 보였다. 누군가의 얼굴에서 웃음이 피어나는 장면은 생각보다 섬세했다. 빛이 창틀을 건너 들어오듯이, 먼저 눈가가 느슨해지고 그다음에 입가가 따라오는 식이었다.
처음 랠리는 엉망이었다.
그녀는 첫 번째 셔틀을 완전히 헛쳤다. 하얀 깃털은 그녀의 라켓 앞을 지나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그녀는 민망한 표정으로 웃었다. 두 번째는 프레임에 맞아 옆으로 날아갔고, 세 번째는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셔틀이 천장 쪽으로 기이하게 솟아올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포기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못하는 순간에 드러나는 성질이 있다. 짜증을 내는 사람, 웃어넘기는 사람, 금세 의욕을 잃는 사람. 그녀는 실수할 때마다 한 번 더 해보겠다는 쪽에 가까웠다. 그것만으로도 대체로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몇 주가 지나자 그녀는 눈에 띄게 나아졌다.
배드민턴은 손목만으로 하는 운동 같지만 사실은 발로 배우는 종목이다.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늦지 않게 몸을 보내는 방법, 셔틀이 떨어질 자리의 공기를 먼저 읽는 일. 그녀는 그런 감각을 생각보다 빨리 익혔다. 처음에는 셔틀을 쫓아다니기만 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셔틀이 오기 전에 이미 그 자리에 가 있었다. 라켓을 휘두르는 각도가 정돈되기 시작했고, 백핸드가 조금씩 살아났다. 드라이브는 아직 거칠었지만 드롭샷은 감각이 있었다. 너무 세게 밀지 않고 네트 바로 뒤로 떨어뜨리는 손목의 가벼운 배반. 초보자에게 흔치 않은 종류의 감각이었다.
“센스 있으시네요.”
어느 날 내가 말했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무릎에 손을 짚었다가 웃었다.
“칭찬을 좀 늦게 하시네요.”
“늦게 하는 칭찬이 더 진짜 같잖아요.”
“그럼 지금은 진짜예요?”
“네. 지금은 진짜요.”
그녀는 물병 뚜껑을 열며 고개를 숙였다.
땀에 젖은 잔머리가 관자놀이에 붙어 있었다. 운동하고 난 사람의 얼굴에는 이상한 정직함이 생긴다. 하루 종일 쌓아온 표정의 먼지가 씻겨나가고, 그 아래의 피곤과 생기가 동시에 드러난다. 그녀는 물을 마신 뒤 플라스틱 병을 가볍게 구겼다 펴며 말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으면 유튜브 보면서 혼자 스윙 연습했어요.”
“어디 다니세요?”
“출판사요.”
“책 만드는 일?”
“네. 책 만드는 일인데, 요즘은 책보다 다른 것들이 더 빨리 소비되잖아요.”
그녀가 웃지 않은 채 말했다.
“다들 짧은 것만 봐요. 제목, 요약, 짧은 문장, 짧은 영상… 긴 이야기는 잘 안 기다려주고.”
나는 잠깐 그녀를 보았다.
그 말은 단순히 업계의 사정을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기다려주지 않는 것들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해본 사람이 하는 말처럼 들렸다. 사람을 기다리는 일,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 설명이 끝날 때까지, 혹은 침묵이 끝날 때까지 옆에 있어주는 일. 요즘에는 무엇이든 빨랐고, 그래서 많은 것들이 설명되기도 전에 끝났다.
“그래도 책을 만드는 사람은 필요하죠.”
내가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왜요?”
“누군가는 긴 이야기를 믿어야 하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잠깐, 무언가가 흔들린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 시선이 지나간 뒤에야 나는 내가 조금 지나친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다시 웃었고, 우리는 다시 코트로 들어갔다.
그녀의 이름은 서연이었다.
이름을 알게 된 건 그보다 며칠 뒤였다.
게임이 끝나고 체육관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였다. 코트 안의 열기에서 막 빠져나온 몸에는 밤공기가 시원했다. 벚꽃은 한창이 지나고 있었고, 꽃잎은 활짝 핀 모양을 유지한 채 떨어지기보다, 이미 한 번 제 몫의 빛을 다 쓴 것들처럼 바람에 흩어졌다. 체육관 앞 가로등 아래로 꽃잎이 내려앉는 걸 보고 있으면, 흰 셔틀콕이 공중에서 자세를 바꾸며 떨어지는 모습이 겹쳐졌다.
“이름이 뭐예요?”
그녀가 먼저 물었다.
나는 이름을 말했고, 그녀도 자기 이름을 말했다.
“서연 씨.”
내가 한 번 따라 하자 그녀가 웃었다.
“왜요.”
“이름이 책 속 주인공 같아서요.”
“그런 말 자주 하세요?”
“아니요.”
“그럼 오늘만 특별히요?”
“봄이라서 그런가 봐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웃음을 감췄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운동 이야기 말고 다른 말을 오래 했다. 집은 어느 쪽인지, 퇴근은 몇 시쯤 하는지, 주말에는 뭘 하는지. 그녀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지만 정작 평일에는 긴 글을 잘 못 읽는다고 했다. 너무 많은 원고를 검토하고 나면 눈이 먼저 닫혀버린다고. 나는 그 말에 조금 웃었다. 나는 숫자와 보고서와 결재 문서들에 둘러싸여 일했고, 하루 종일 활자를 보고 나면 저녁엔 아무것도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 피로와 닮은 사람에게 마음이 느슨해지는 법이다.
그 뒤로 우리는 자주 같은 코트에 섰다.
누가 일부러 짠 것도 아닌데 늘 비슷한 순서가 만들어졌다. 몸을 풀 때도 근처에서 서성였고, 복식 조를 짤 때도 이상하게 한 번쯤은 같은 편이 되었다. 어떤 친밀함은 아주 사소한 반복 속에서 생긴다. 함께 커피를 마셨다거나 큰 비밀을 나누었다거나 하는 사건보다, 늘 같은 시간에 같은 문을 열고 들어와 비슷한 자리에 가방을 두는 일. 상대가 물병을 어디에 놓는지, 운동화를 신을 때 어느 발부터 넣는지, 게임이 지고 나면 웃는지 아니면 입술을 다무는지, 그런 하찮은 버릇들을 알게 되는 일. 그런 것들이 조금씩 쌓이면 사람은 이상하게도 서로의 생활 일부가 된다.
서연은 게임할 때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는 짧고 정확한 말을 했다.
“하나 더.”
“좋았어요.”
“지금 건 제가 늦었어요.”
“다음엔 앞쪽 볼게요.”
그 몇 마디만으로도 같이 치기 편한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오래전에 배웠다. 배드민턴도 결국 관계와 비슷해서, 공을 잘 치는 사람보다 리듬이 맞는 사람이 더 중요할 때가 많았다. 욕심내지 않는 사람, 상대 실수를 크게 만들지 않는 사람, 자신이 놓친 셔틀을 남 탓으로 넘기지 않는 사람. 서연은 그런 쪽이었다. 자신의 미숙함을 과장하지도 않고, 남의 실수를 무겁게 만들지도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그녀와 랠리를 주고받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했다.
셔틀콕은 공중에서 늘 한 번쯤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미세해서 잘 보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그 아주 작은 저항 때문에 셔틀은 끝내 직선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 마음도 그와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 끝난 줄 알았던 감정이 어느 날 갑자기 늦은 바람을 만나 다시 기울어지고, 아닌 줄 알았던 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한다. 나는 이미 한 번 결혼을 끝낸 사람이었고, 다시 누구를 좋아하는 일이 내게 일어날 거라고는 오래 믿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것은 결국 내 안의 어떤 방을 다시 열어두는 일이었고, 그 방은 한동안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안에 남아 있던 것은 후회보다는 피로였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고, 내 마음을 설명하고, 다시 기대하고, 그 기대가 틀어졌을 때 견뎌내야 하는 반복들. 다시는 그런 노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서연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노동이 아니라 습관처럼 조금씩 움직였다.
한 번은 게임이 끝난 뒤 그녀가 체육관 구석에서 셔틀 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다들 샤워실 쪽으로 가거나, 다음 모임 약속을 잡거나, 맥주를 마시러 갈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셔틀을 주워 담았다. 부러진 깃털, 헤드가 눌려 찌그러진 셔틀, 아직 쓸 만한 것들, 완전히 못 쓰게 된 것들. 우리는 말없이 한참 그것들을 분류했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가 문득 말했다.
“뭐가요?”
“셔틀콕이요.”
그녀는 손에 든 셔틀 하나를 들어 보였다.
“깃털을 달고 있는데 날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 떨어지기 위해 만들어진 거잖아요.”
나는 웃었다.
“그러네요.”
“어떤 관계도 좀 그런 것 같아요.”
그녀는 너무 가볍게 말해서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말끝에는 분명히 오래된 피로가 묻어 있었다.
“처음에는 가벼워 보여요. 잘 날 것 같고. 근데 방향이 정해지는 순간부터는 계속 떨어지는 쪽으로 가는 거.”
나는 손에 쥔 셔틀의 헤드를 눌러 보았다. 말랑한 코르크가 손가락 끝에 닿았다.
“그래도 떨어지기 전에 날아오르는 시간이 있잖아요.”
그녀는 잠깐 나를 보았다.
그 시선이 조금 길었다. 다정하다고 말하기엔 아직 조심스럽고, 무관하다고 하기엔 이미 조금 따뜻한 정도의 길이. 사람 사이의 거리는 어느 순간 갑자기 가까워지지 않는다. 다만 서로가 침묵을 불편해하지 않게 되는 시점이 오고, 그때부터는 이미 어느 정도 건너온 뒤다.
봄은 점점 깊어졌다.
체육관 바깥의 나무들은 꽃을 다 버리고 연둣빛 잎을 내기 시작했다.
꽃이 질 때는 요란했지만, 잎이 피는 건 조용했다. 도시의 계절은 늘 그렇게 지나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진 찍는 순간은 짧고, 그 뒤의 시간은 대개 보지 못한 채 흘러갔다. 서연은 어떤 날은 유난히 말이 없었고, 어떤 날은 이상하게 조금 더 밝았다. 나는 점점 그녀의 표정의 결을 읽게 되었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을 잘 못 잤는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온 얼굴인지.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먼저 알게 되는 건 큰 사실이 아니라 이런 작은 결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평소보다 늦게 왔다.
땀에 젖은 얼굴도 아니고, 지친 표정도 아닌데 어딘가 정돈되지 않은 기분이 묻어 있었다.
머리를 묶은 손길이 조금 급했고, 운동화 끈도 평소보다 느슨했다. 나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가 먼저 말했다.
“오늘 좀 늦었죠.”
“바빴어요?”
“네.”
잠깐 침묵이 있었다.
그녀는 셔틀을 하나 집어 손에서 굴렸다. 그러다 아주 별것 아닌 말투로 덧붙였다.
“저 다음 달에 부산 가요.”
나는 잘못 들은 줄 알고 그녀를 보았다.
“출장이요?”
“아니요. 이직이요.”
그녀는 웃으려고 했지만 끝까지 웃지 못했다.
“출판사 하나가 내려오라고 해서요. 전부터 제안은 있었는데… 이번에 가기로 했어요.”
나는 바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축하한다고 해야 할지, 잘됐다고 해야 할지, 갑자기요? 하고 되물어야 할지. 사람은 뜻밖의 상실 앞에서 종종 가장 평범한 문장들조차 고르지 못한다. 무언가 빠져나간 자리를 막아보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뻔한 말뿐이라서.
“좋은 기회네요.”
겨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은 기회죠.”
그런데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날 게임 내내 집중을 잘 못했다. 셔틀이 예상보다 짧게 떨어지고, 평소 받을 수 있는 볼을 놓쳤다. 서연도 몇 번이나 스텝을 꼬였다. 우리는 서로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았지만, 랠리의 리듬이 자꾸 끊겼다. 마음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 있으면 몸은 금세 알아챈다.
게임이 다 끝난 뒤, 사람들은 삼삼오오 흩어졌다.
누군가는 회식을 가자 했고, 누군가는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한다며 먼저 나갔다. 체육관 불이 절반쯤 꺼지고, 코트 위의 선들이 더 희미해졌을 때, 서연이 내게 말했다.
“잠깐 나가서 걸을래요?”
우리는 체육관 뒤편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그 길은 길다고 하기엔 짧고, 짧다고 하기엔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길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나무 사이로 잘게 부서져 바닥에 떨어졌고, 잎이 무성해진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 그림자도 함께 흔들렸다. 어둠과 빛이 번갈아 지나가는 길 위에서 사람 얼굴은 자주 달라 보였다. 어느 순간에는 담담해 보이고, 어느 순간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해 보였다.
“왜 가요?”
나는 묻고 나서야 질문이 너무 단순했다는 걸 알았다.
왜 가냐는 말 안에는 왜 떠나냐는 뜻이 섞여 있었다. 왜 여기서, 왜 지금, 왜 나보다 먼저, 같은 말들이 다 눌어붙어 있었다.
서연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서울이 너무 오래됐나 봐요.”
그녀가 한참 뒤에 말했다.
“처음엔 뭘 해도 될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여기서 내가 자꾸 마르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녀는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걸었다.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계속 뭔가를 설명해야 하는데, 설명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기분 알아요?”
알았다.
너무 잘 알았다.
삶에는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어느 시기에는 유독 후자만 쌓일 때가 있다. 아무리 정성껏 말해도 전달되지 않는 마음, 반복할수록 더 닳아 없어지는 관계, 노력과 별개로 막히는 일들. 그런 것들 앞에서는 사람이 조금씩 자신을 잃는다.
“가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내가 묻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죠. 근데 안 가면 계속 여기에 갇혀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서늘하게 들렸다.
누군가에게 나는 이 체육관에서의 몇 시간, 몇 번의 랠리, 몇 번의 웃음보다 더 큰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사람은 약간의 무력감을 느낀다. 물론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 그런데도 마음은 종종 그런 당연한 사실에 뒤늦게 상처 입는다.
그날 헤어질 때 서연이 말했다.
“여기 오는 건 좋았어요.”
아주 작게, 거의 혼잣말처럼.
“좋아졌어요. 생각보다 많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은 여러 가지였지만 어느 것도 입 밖으로 나올 만한 모양을 갖추지 못했다. 나도 그랬다고 말하면 너무 늦은 고백 같았고, 나도 좋았다고 말하면 너무 가벼워 보일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결국 늘 그렇듯이 애매한 문장 앞에서 침묵을 택했다.
그 뒤의 한 달은 이상하게도 빨랐다.
아니, 빨랐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하루하루는 여전히 길었고, 회사의 업무는 고단했고, 수요일 밤이 오기까지는 늘 멀었는데, 막상 수요일이 오고 나면 시간이 모래처럼 흘렀다. 나는 그 시간들을 더 잘 기억하려는 사람처럼 사소한 장면을 자꾸 눈에 담았다. 서연이 스트레칭할 때 왼쪽 다리를 먼저 뻗는 버릇, 머리끈이 헐거워지면 이를 손목에 잠깐 끼워두는 습관, 게임 중 실수했을 때 혀끝으로 아주 짧게 입술을 적시는 표정,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조용히 주먹을 쥐는 동작. 그런 것들을 기억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은 사라질 것을 예감할 때 이상하게 사소한 것들을 더 정확히 붙잡으려 한다.
마지막 수요일은 생각보다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봄은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고, 밤공기에는 초여름의 얇은 습기가 묻어 있었다. 체육관 안은 여느 때처럼 시끄러웠다. 누군가는 새 라켓을 샀다며 자랑했고, 누군가는 무릎 보호대를 바꿨다고 했다. 회장은 농담을 했고 다들 웃었다. 어떤 이별은 세상이 아무렇지 않게 계속 돌아가는 가운데 일어난다. 그래서 더 실감이 안 난다. 내가 어떤 밤을 마지막으로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른 채 다음 게임 조를 짜고 있는 풍경 속에서만 알게 되는 것.
서연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왔다.
짙은 남색 반팔 티셔츠에 검은 반바지, 평소 신던 흰 운동화. 특별히 꾸민 것도, 특별히 흐트러진 것도 없었다. 다만 얼굴이 평소보다 고요했다. 뭔가를 이미 마음속에서 오래 만져본 사람의 고요. 나는 괜히 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물을 마시고, 그립을 정리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우리 둘 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게임이 몇 번 돌고 나서,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마지막 복식 조가 정해졌다.
나와 서연이 같은 편이었고, 맞은편에는 회장과 젊은 회원 하나가 섰다. 다들 가볍게 치자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숨이 자꾸 차올랐다. 첫 랠리부터 길었다. 셔틀은 코트 양쪽을 바쁘게 오갔고, 스매시와 드라이브와 리턴이 이어졌다. 서연이 네트 앞에서 짧게 끊어주면 내가 뒤를 받았고, 내가 길게 올리면 그녀가 앞으로 뛰어들었다. 우리는 그동안 함께 맞춰온 시간만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어디에 설지 아는 사람들처럼.
탁, 탁, 탁.
셔틀이 라켓면을 맞고 튀어 오를 때마다 작은 울림이 났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심장 가까운 데를 건드렸다. 나는 그 경기 내내, 지금 이 랠리가 가능하면 더 길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시간을 늘이기 위해 셔틀콕의 낙하 속도까지 조절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하지만 셔틀은 본래 떨어지는 방향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게임은 결국 끝을 향해 간다.
마지막 점수는 서연의 드롭샷으로 났다.
아주 가볍게 밀어 넣은 셔틀이 네트 바로 뒤에 떨어졌다.
나는 상대편이 아니라 같은 편이었는데도, 그 공의 아름다움에 순간 숨을 멈췄다. 너무 세지 않고, 너무 높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날아가서 조용히 가라앉는 공. 어쩌면 그녀의 떠남도 그와 비슷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누구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모양으로, 그러나 끝내는 자기 자리로 정확히 떨어지는 것.
경기가 끝나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누군가는 “부산 가서도 운동 꼭 하세요”라고 했고, 누군가는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우리는 다 같이 웃었고, 몇 장의 사진 속에서 어색하지 않은 표정을 만들었다. 사진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그 순간 이미 지나가고 있는 마음을, 마치 영원할 것처럼 네모난 프레임 안에 고정한다. 하지만 사진은 장면의 온도까지는 가져가지 못한다. 그날 체육관의 공기, 라켓 손잡이에 남아 있던 손의 땀, 내 가슴속의 묵직한 침묵 같은 것은 사진 바깥으로 흘러나갔다.
사람들이 거의 다 떠난 뒤, 서연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셔틀콕 하나였다.
새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많이 망가지지도 않은 것. 몇 번의 랠리를 견디고, 아직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셔틀.
“이거 가져요.”
그녀가 말했다.
“왜요?”
나는 셔틀을 받지 않은 채 물었다.
그녀는 잠깐 웃었다. 아주 짧게.
“기억하려고요.”
“누가요?”
그녀는 셔틀을 내 손에 쥐여주며 대답했다.
“아마… 둘 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손안의 셔틀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런데 그 가벼움이 이상하게도 묵직했다. 어떤 것은 무게가 아니라 의미 때문에 무거워진다. 말 한마디, 손끝의 잠깐 스침, 건네받은 하얀 깃털 하나. 그 셔틀에 그동안의 수요일 밤들이 접혀 들어가는 것 같았다.
체육관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불었다.
초여름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밤공기는 아직 완전히 따뜻해지지 못해, 뺨에 닿으면 서늘했다. 나무들은 이미 꽃을 다 떨구고 짙은 잎을 달고 있었고, 그 아래의 어둠은 봄밤보다 조금 더 깊었다.
“잘 가요.”
내가 말했다.
그 문장은 너무 많은 것을 덜어낸 뒤에야 남는 최소한의 말 같았다. 가지 말라는 말도, 보고 싶을 것 같다는 말도, 나도 당신 때문에 조금 달라졌다는 말도, 전부 빼고 나면 결국 저 말 하나만 남는 것 같았다. 잘 가요. 다치지 말고. 너무 외롭지 말고. 당신이 가는 곳에서 당신이 조금 덜 마르기를. 그런 뜻들이 모두 눌어붙은 짧은 문장.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웠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정말로.”
그녀가 돌아서서 걸어가는 동안 나는 부르지 않았다.
인생에는 붙잡아야 할 때도 있지만, 붙잡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 늦었고, 그냥 스쳐간 인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분명하게 남을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아마 그 중간쯤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도 있었지만, 닿는 순간 오히려 더 쉽게 깨졌을 종류의 거리. 어떤 마음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오래 남는다. 닿지 못한 채 공중에서 방향을 잃는 셔틀처럼, 끝내 완성되지 않은 궤적이기 때문에.
서연이 사라진 뒤에도 수요일은 왔다.
체육관은 변하지 않았다.
같은 형광등, 같은 마룻바닥, 같은 코트 선, 같은 웃음소리. 회장은 여전히 시끄럽게 조를 짰고, 새로 들어온 회원들은 여전히 셔틀을 자주 놓쳤다. 계절은 봄을 통과해 여름으로 넘어갔고, 사람들은 땀을 더 많이 흘렸다. 나는 여전히 그곳에 나갔다. 처음에는 서연이 없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잘 믿기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늦게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았다. 물병을 내려놓고 신발 끈을 묶고, “오늘은 제가 좀 늦었죠” 하고 말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은 없어진 자리를 꽤 오랫동안 습관으로 찾는다.
코트에서 랠리가 길어질 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있을 법한 쪽을 보았다.
네트 앞에 누군가가 발을 내딛는 방식이 비슷하면 순간 가슴이 멎는 듯했고, 물병 뚜껑을 여는 소리가 비슷해도 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닮은 것은 늘 닮은 것일 뿐이었다.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은 대개 아주 구체적인 버릇과 침묵의 방식으로 기억된다.
여름이 한창일 무렵, 서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요즘도 배드민턴 쳐요?
그 문장은 평범했지만, 오랫동안 닫혀 있던 창문이 아주 조금 열리는 소리처럼 읽혔다. 나는 한참 뒤에야 답장을 보냈다.
네. 여전히 셔틀콕 주우러 다녀요.
곧 답장이 왔다.
저도요. 여기 동호회 하나 들어갔어요.
그리고 잠시 후, 한 줄이 더 왔다.
가끔 랠리가 길어지면 생각나요.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가끔. 랠리가 길어지면. 생각나요. 사람은 대개 가장 정확한 감정을 가장 평범한 말로 쓴다. 보고 싶어요 대신 생각나요라고, 자주 대신 가끔이라고, 당신이 그리워요 대신 랠리가 길어지면이라고. 직접 말하면 너무 선명해져버릴 것을, 다른 사물과 상황에 기대어 우회하는 법을 우리는 어른이 되며 배운다.
나도 답장을 썼다가 지웠다.
생각나요, 나도. 잘 지내요? 거긴 어때요? 서울은 이제 너무 덥고, 체육관은 여전하고, 당신이 준 셔틀은 아직 서랍 안에 있어요. 그런 말들을 몇 번이고 조합했다가 다시 지웠다. 끝내 내가 보낸 문장은 이것뿐이었다.
저도요.
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와 서랍을 열었다.
안쪽 구석에 그녀가 준 셔틀이 그대로 있었다. 깃털은 약간 벌어졌고, 한쪽 끝은 조금 눌려 있었지만 여전히 셔틀의 형태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손에 쥐고 한참 앉아 있었다. 창밖에서는 늦여름 벌레 소리가 들렸고, 선풍기 바람이 느리게 방 안을 돌았다. 생활은 계속되고 있었다. 회사는 여전히 바빴고, 설거지는 쌓였고, 휴지와 세제를 사야 했고, 내일 아침에도 알람은 울릴 것이다. 그런 평범한 지속 속에서 어떤 마음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는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짧았고, 우정이라고 부르기에는 조용히 아팠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분명히 많은 것이 지나갔고, 무엇이 있었다고 말하기에는 누구도 손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런 시간들이 있다. 명확한 이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떠다니는 시간. 제때 말해지지 못한 문장들, 끝내 건너가지 못한 거리들, 이루어지지 않아 낡지도 못한 감정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좀 더 어렸다면 어땠을까. 혹은 좀 더 무모했거나, 좀 더 외롭지 않았거나, 각자의 생활이 조금 덜 복잡했더라면. 하지만 그런 가정은 언제나 늦다. 사람은 늘 자기에게 주어진 계절 안에서만 누군가를 만난다. 너무 이른 봄에 피면 꽃은 냉해를 입고, 너무 늦은 봄에 피면 금방 여름이 온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마 정확히 그 정도였을 것이다. 피어 있다고 말하기에는 짧고, 지나갔다고 말하기에는 또렷한, 한 계절의 어스름 같은 시간.
가을이 오기 전 어느 날, 동호회에서 체육관 창문을 열어두고 운동한 적이 있었다.
바깥에서는 비가 막 그친 냄새가 올라왔고, 축축한 바람이 코트 안으로 스며들었다. 랠리를 하다 문득 문틈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맞는데, 이상하게도 처음 서연을 보았던 날이 떠올랐다. 꽃냄새 대신 젖은 흙냄새였고, 벚꽃 대신 짙어진 잎들이었지만, 계절이 문틈으로 들어오는 방식은 여전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누군가를 잊는다는 것은 완전히 지워내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과 얽힌 공기와 냄새와 소리를 이제 조금 덜 아프게 받아들이는 쪽에 가깝다는 것을.
그래도 어떤 장면들은 끝내 오래 남는다.
형광등 아래로 떠오르던 흰 셔틀콕,
처음 라켓을 헛치고 민망하게 웃던 얼굴,
네트 앞에 짧게 떨어지던 마지막 드롭샷,
그리고 “기억하려고요. 아마 둘 다”라고 말하던 그 저녁의 눈빛.
인생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들로 이루어진다.
영원하겠다고 다짐한 것보다, 잠깐 머물다 간 표정 하나가 더 오래 남을 때도 있다. 오래 함께 산 사람보다, 어떤 계절의 끝에서 한 번 만난 사람이 더 깊이 가라앉기도 한다. 그건 아마 지속의 길이보다 닿은 깊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짧아도 깊게 닿는 시간, 길어도 끝내 표면만 스치는 시간. 우리는 그 둘을 자주 혼동하며 살고, 뒤늦게서야 무엇이 정말 내 안에 남았는지 깨닫는다.
나는 아직도 수요일 밤이면 체육관으로 간다.
운동화를 갈아 신고, 라켓 그립을 한 번 감아 쥐고, 코트 위에 선다. 게임은 시작되고, 셔틀은 날아오른다. 어떤 날은 아주 잘 맞고, 어떤 날은 어처구니없이 짧다. 사람들은 웃고, 숨을 몰아쉬고, 물을 마시고, 다음 게임을 준비한다. 그 속에서 나는 아주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랠리가 이상하게 길어지는 순간, 네트 위를 넘어간 셔틀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잠깐 하얗게 빛나는 순간, 나는 늘 조금 멈춰서게 된다.
그 순간 셔틀은 눈송이 같기도 하고, 꽃잎 같기도 하고, 다 쓰지 못한 문장 같기도 하다.
가볍게 떠오르지만 끝내 어디론가 떨어지고야 마는 것.
한 번 손을 떠난 뒤에는 완전히 제 뜻대로 돌려놓을 수 없는 것.
그래서 더 아름답고, 그래서 더 씁쓸한 것.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 아니라 계절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오는지도 모른다.
오래 머물지는 않지만, 지나간 뒤에야 그 공기의 온도가 얼마만큼이었는지 알게 되는 식으로. 곁에 있을 때는 그저 수요일 밤의 몇 시간쯤으로 여겼는데, 다 지나고 나면 한때 내 삶의 결을 분명히 바꾸어놓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식으로. 봄이란 늘 그런 식이었다. 오고 있는 동안에는 미처 다 보지 못하고, 지나간 뒤에야 그때의 빛이 얼마나 연했고 얼마나 선명했는지 떠올리게 만드는 계절.
서연은 내 삶에서 오래 머문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남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제 안다.
모든 사랑이 끝내 이름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고백으로 도착하지 못한 마음도 있고, 손을 잡는 데까지 가지 못한 친밀함도 있고, 끝내 서로의 생활 바깥에 남아야 했던 감정도 있다. 그런 것들은 실패라기보다 미완에 가깝다.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쉬이 닳아 없어지지 않는 것. 삶의 안쪽 어디엔가 가만히 보관되어, 어떤 밤의 공기나 어떤 빛깔의 꽃이나 어떤 운동화 마찰음에 의해 다시 떠오르는 것.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 미완이 아주 슬프기만 하지는 않다.
씁쓸했다. 물론 씁쓸했다.
하지만 그 씁쓸함 속에는 한때 정말로 따뜻했던 부분이 있었다.
내가 완전히 닫혀 있던 시절, 누군가의 웃음 하나가 다시 내 안의 방 하나를 열어젖힌 적이 있었다는 사실. 세상이 다 닳고 난 뒤에도 아직 조금은 부드러운 곳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어떤 계절은 충분히 제 몫을 다한 것인지 모른다.
체육관 문이 열리면, 나는 여전히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공기를 맡는다.
꽃냄새가 섞여 있으면 봄이구나 싶고, 비 냄새가 섞여 있으면 계절이 돌아왔구나 싶다. 그리고 코트 위로 첫 셔틀이 떠오르면, 나는 잠깐 그것의 궤적을 본다. 하얀 깃털은 빛을 한 번 머금고, 공중에서 미세하게 떨리다가, 결국 어딘가를 향해 내려온다.
아주 정확하게.
아주 조용하게.
마치 지나간 마음들이 모두 그런 방식으로 내 안에 내려앉았던 것처럼.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