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랑

사라진 층

by 윤담

거리에 저녁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백화점 유리 외벽에는 아직 낮의 빛이 얇게 남아 있었고,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건물 안의 따뜻한 공기가 바깥으로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 공기에는 커피 냄새와 향수 냄새와 막 포장을 벗긴 새 옷의 섬유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대부분의 사람들이 끝내 알아차리지 못하는 냄새 하나가 아주 희미하게 깔려 있었다.
오래 식은 금속을 만졌을 때 남는 냄새 같은 것.
한 번 불에 그을린 자리가 충분히 식은 뒤에도 벽 안쪽 어딘가에 남아 있는 기척 같은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밝은 조명과 음악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겹쳐 있는 곳에서는, 가장 오래 남는 냄새조차도 쉽게 이름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준은 가끔 자동문 안쪽에 잠깐 멈춰 서곤 했다. 마치 그 냄새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찾으려는 사람처럼.
그는 늘 같은 시간쯤 그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의 흐름 속에 섞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흐름과 완전히 같은 속도는 아니었다. 누군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도 그는 거의 반응하지 않았고, 급하게 앞을 가로지르는 사람이 있어도 발걸음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엄마 손에 끌려 뛰어가다 그의 몸 가까이를 스쳐도 아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쇼핑백을 든 어른이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옆을 지나쳐도 시선은 민준을 건너뛰었다.
마치 사람들의 몸이 오래전부터 그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피해 가는 데 익숙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민준은 아직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눈매는 다정하다기보다 조용한 쪽에 가까웠고, 입술은 늘 무언가를 참는 사람처럼 가볍게 다물려 있었다. 파란 티셔츠 위에 얇은 바람막이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차림은 계절보다 조금 늦게 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깥공기가 더 차가워져도 그는 늘 비슷한 옷차림이었다.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자른 뒤 시간이 꽤 흐른 듯 자연스럽게 자라 있었고, 운동화 끈은 희게 닳은 채 매듭만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는 어딘가로 향하는 아이 같기보다,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처럼 보였다.
시간의 큰 물줄기에서 혼자 다른 방향으로 떠밀려와, 물가 가까운 데 걸려 있는 그림자처럼.
그는 대개 지하 식품관부터 돌았다.
빵집 앞에는 막 구운 식빵 냄새가 둥글게 번져 있었고, 시식대 근처에는 치즈와 올리브의 짭조름한 향이 공기 속에 낮게 떠 있었다. 사과는 조명 아래서 실제보다 더 선명한 빨강을 띠었고, 포도는 유리구슬처럼 매끈한 윤기를 머금고 있었다.
사람들은 카트를 밀며 지나갔고, 아이들은 초콜릿 진열대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
어떤 아주머니는 장바구니에서 할인 쿠폰을 찾느라 지갑을 뒤적였고, 어떤 남자는 포장된 회를 들여다보며 가격표를 오래 읽고 있었다.
식품관은 늘 바빴고, 늘 살아 있는 냄새로 가득했다.
그러나 민준은 그 사이를 조용히 걸었다.
아무것도 집지 않았고, 무엇도 고르지 않았다.
가끔 빵을 잠깐 바라보거나 과일 더미 앞에 서기도 했지만 손을 뻗는 일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 그의 앞에서 진열된 물건을 집어 들면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 움직임에는 습관처럼 몸에 밴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마치 여기가 자기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는 사람의 태도 같았다.
지하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그는 늘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에스컬레이터가 더 가깝고 더 빨랐지만, 그는 언제나 엘리베이터를 탔다. 금속문은 지나가는 불빛을 얇게 접어 올리며 반짝였고, 문이 열릴 때마다 안쪽의 층수 버튼이 희게 빛났다.
민준은 문 앞에 잠깐 서서 그 빛을 바라보곤 했다.
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늘 조금 흐릿했다.
다른 사람들의 그림자가 겹쳐 들어오면 금세 밀려났고, 쇼핑백의 반짝이는 표면이나 검은 외투의 윤기가 그의 얼굴 위를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그 흐릿한 반사 속에서 자기 얼굴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의 버튼은 가지런했다.
1층
2층
3층
4층
5층
7층
민준은 언제나 망설임 없이 6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조용히 올라갔다.
숫자가 하나씩 바뀌었다.
3
4
5
그리고 짧은 정적이 지나간 뒤 문이 열렸다.
그곳이 6층이었다.
6층은 생활용품 층이었다.
작은 전기주전자들이 색깔별로 줄지어 있었고, 토스터기들은 입을 다문 채 나란히 놓여 있었으며, 스탠드와 미니 가습기와 유리 화병들이 지나치게 단정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진열대를 채우고 있었다.
다른 층보다 사람이 적었고, 다른 층보다 말소리도 낮았다.
이곳을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물건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가, 정말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듯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당장 없어도 되는 것들이지만 집 안 한구석에 놓이면 괜히 마음이 조금 환해질 것 같은 물건들.
그런 물건들이 모인 층에는 특유의 느린 공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 층에는 다른 곳과 아주 조금 다른 흔적이 있었다.
복도 끝 벽의 페인트 색이 미세하게 달랐다.
어떤 부분은 새로 덧칠한 듯 지나치게 매끈했고, 어떤 부분은 빛을 비스듬히 받을 때만 아주 얕은 물결처럼 표면이 고르지 않았다.
기둥 하나에는 작은 금속판이 붙어 있었다.
시설 보수 구역.
사람들은 그 문구를 굳이 읽지 않고 지나쳤다.
하지만 민준은 가끔 그 앞에 잠깐 서 있었다.
벽 가까이 가면 여전히 어딘가에서 식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연기까지는 아니고,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무엇이 벽과 바닥 사이에 배어 있는 냄새.
한 번 불탄 뒤 충분히 식었지만 완전히 잊히지는 못한 자국처럼.
민준은 그 층을 좋아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를 처음 봤다.
그녀는 스탠드 진열대 앞에 서 있었다.
작은 황동 스탠드의 전원을 켰다가 끄고 있었다. 불빛이 켜질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잠깐 밝아졌고, 꺼질 때마다 다시 고요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마흔을 조금 넘긴 것처럼 보였다.
검은 머리는 어깨 아래에서 느슨하게 굽어 있었고, 코트 소매 끝은 손목을 조용히 감싸고 있었다.
화장은 거의 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눈가에는 아주 얕은 주름이 있었다.
그것은 나이의 흔적이라기보다, 오래 같은 표정을 견뎌온 사람에게 남는 결에 가까웠다.
어떤 슬픔은 사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대신 얼굴의 선을 조금 더 조용히 정돈해 놓는다.
그녀는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쇼핑백도, 지갑도, 휴대폰도.
마치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민준이 가까이 오자 그녀가 먼저 말했다.
“여기 자주 오니?”
목소리는 낮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음 듣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민준은 잠깐 그녀를 바라봤다.
“가끔요.”
그녀는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스탠드 불을 끄며 말했다.
“여기는 시간이 좀 느리지?”
민준은 잠깐 생각했다.
“조금요.”
그녀는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지.”
그게 그들의 첫 대화였다. 그 뒤로 민준은 그녀를 자주 만났다.
둘은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러나 이름 없이도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대화가 있다는 것을, 민준은 그 층에서 처음 알았다.
“오늘은 사람이 좀 많네.”
“주말이라 그런가 봐요.”
“이 토스터기 예쁘지 않니?”
“근데 집에 있으면 잘 안 쓸 것 같아요.”
“그래도 한 번쯤은 갖고 싶어 지지.”
“조금요.”
그녀는 늘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전기주전자 뚜껑을 열어보거나, 스탠드 전원을 눌러보거나, 유리 화병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한번 짚어보는 정도였다.
민준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생활용품 층을 마치 오래된 산책로처럼 걸었다.
사람들은 그들 옆을 지나갔다. 어떤 부부는 공기청정기 성능표를 두고 작은 말다툼을 했고, 어떤 아이는 엄마 소매를 꼭 붙잡은 채 걸었다.
그 아이의 손을 볼 때마다 그녀의 시선이 아주 잠깐 멈추는 것을 민준은 몇 번 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아주 작은 물결이 스쳤다.
그러나 곧 다시 고요해졌다.
어느 날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젊은 부부와 유모차 하나가 있었고, 향수 냄새가 강한 여자가 구석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먼저 6층 버튼을 눌렀다.
민준은 그 손가락을 잠깐 바라보았다.
가느다란 손등 위에 푸른 핏줄이 희미하게 비쳐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그녀가 물었다.
“어릴 때 백화점에서 길 잃어본 적 있어?”
민준은 잠깐 생각했다.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녀는 숫자 표시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억이 안 나?”
“네.”
“그럴 수도 있지.”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갔다.
3
4
5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잠깐 멈췄다.
“잃어버려본 적은 없는데… 잃어버린 적은 있어.”
민준이 물었다.
“뭘요?”
그녀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애를.”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6층이었다.
생활용품 진열대 사이를 걸으며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아주 잠깐이었어.”
전기포트 진열대 앞에서 멈췄다.
“손을 놓은 게.”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전기포트 손잡이를 천천히 쓸었다.
“금방 찾을 줄 알았거든.”
그녀는 아주 작게 웃었다.
“백화점이잖아.”
잠깐 멈췄다.
“사람도 많고.”
그리고 덧붙였다.
“누군가는 봤을 줄 알았어.”
며칠 뒤 민준은 다시 백화점에 갔다.
지하 식품관을 한 바퀴 돌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6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갔다.
3
4
5
문이 열렸다.
그런데 그 층은 어두웠다.
가게들은 모두 닫혀 있었고, 진열대에는 천이 덮여 있었다.
불은 거의 켜져 있지 않았다.
바닥은 지나치게 깨끗했다.
사람이 떠난 자리의 먼지조차 허락되지 않은 공간처럼.
민준은 한참 그곳에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옆 안내판을 다시 보았다.
5층 – 생활용품
7층 – 가전 / 가구
그 사이에는
6층이 없었다.
그때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안내 말씀 드립니다.”
백화점에서 늘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보호자를 찾고 있는 어린이가 있습니다.”
민준의 몸이 아주 천천히 굳었다.
“… 이름은 민준이고…”
그의 귀 안쪽에서 오래된 금속 소리가 울렸다.
“…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아이입니다.”
그 순간,
아주 오래 닫혀 있던 문 하나가 머릿속에서 열렸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불이야!”
천장 가까이에서 연기가 번졌다.
조명이 흔들렸다.
어떤 직원이 아이 손을 잡으려다 놓쳤다.
민준은 사람들 다리 사이를 헤집고 움직였다.
엄마 손이 조금 전까지 분명 옆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보이지 않았다.
연기가 낮게 번졌다.
눈이 따갑고 목이 뜨거웠다.
누군가 그를 밀었는지
그가 넘어졌는지
정확한 순서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의 발
비명
매캐한 공기
끊어지듯 들리던 미아 방송
그것들만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민준아.
민준아!
그 후의 기억은 없었다.
민준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차림이었다.
검은 코트
조용한 얼굴
눈가의 얕은 주름
그러나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기다림이 없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면 슬픔이 되고
슬픔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사람은 기묘하게 고요해진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런 고요가 있었다.
그녀는 민준 앞에 멈췄다.
그리고 아주 오래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민준아.”
그 이름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라기보다
오래 붙잡고 있던 시간을
마침내 놓아주는 소리처럼 들렸다.
민준은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알았다.
그녀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야 그 알음이 모양을 얻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엄마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 속에서
아이를 찾고 있던 엄마.
“엄마가…”
그녀가 말했다.
“그날 너를 못 찾았어.”
공기 속에 말이 놓였다.
“연기가 너무 많았어.”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이번에는 허공에서 멈추지 않았다.
민준의 뺨 가까이에 닿았다.
“엄마가 너무 늦었어.”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눈 속에서 아주 오래된 밤들을 보았다.
끝나지 않던 기다림
해마다 돌아오던 계절
사람 많은 곳에서 아이의 뒷모습을 따라가던 습관
그녀는 계속 이 백화점에 왔을 것이다.
주말에도
비 오는 평일에도
연말 장식이 켜진 날에도
혹시라도
혹시 오늘은
찾을 수 있을까 하고.
그녀의 눈가가 처음으로 무너졌다.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얼어 있던 것이 천천히 녹는 것처럼.
“민준아.”
그녀가 다시 불렀다.
“엄마가 계속 왔어.”
민준은 그 말이 가장 슬펐다.
미안해도 아니고
보고 싶었어도 아니고
그저 계속 왔다는 말.
그 말 안에는 세월이 전부 들어 있었다.
“엄마.”
민준이 처음으로 말했다.
그 한마디에 그녀의 어깨가 아주 작게 흔들렸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다 아주 조용히 웃었다.
“응.”
그리고 말했다.
“이제 집에 가자.”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백화점의 공기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빵 냄새가 멀어졌다.
조명이 흐려졌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그녀의 얼굴이었다.
너무 오래 찾아
이제는 찾는 표정조차 몸에 밴 얼굴.
그 안쪽에 아주 작게
봄빛 같은 것이 스며들고 있었다.
자동문 바깥으로 저녁이 깊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안으로 들어오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손을 잡고 걸었고
누군가는 가격표를 들여다보았고
누군가는 주차권을 찾고 있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흘러갔다.
그러나 그날 저녁만큼은
아주 잠깐 이 건물 안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하루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
조용히 문을 닫는 것처럼.
그 이후로도 백화점은 그 자리에 있었다.
자동문은 여전히 열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드나들었다.
안내판에는 여전히
5층 다음이 7층이었다.
사람들은 그 사이의 빈 숫자를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건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전 연기가 번졌던 벽 안쪽
덧칠된 페인트 아래
금속판 뒤편의 틈
그곳에는 한때의 공기가 남아 있다.
사람 하나를 잃은 자리에는
그 사람의 시간도 함께 남는다.
그리고 그 시간은
누군가가 다시 와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아주 오래 기다린다.
어쩌면 백화점이란 그런 장소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끝내 다 잃었다고 인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조명 아래 잠깐씩 돌아와 서 있는 곳.
그래서 어떤 저녁에는
지하 식품관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존재하지 않는 층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
그 층에서는 누군가가 묻는다.
“여기 자주 와요?”
그리고 누군가가 대답한다.
“가끔요.”
그 순간 백화점의 공기가 아주 잠깐 멈춘다.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시간이
아직도 이 건물 어딘가에서
자기 이름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아주 드물게
정말 아주 드물게
누군가가 그 이름을 끝내 찾아낸다.
자동문이 열리면
따뜻한 공기가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그 공기를 스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
어떤 이름 하나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갔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