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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철 James Ohn Dec 23. 2021

유크레인과 러시아

유크레인의 비핵화와 남한의 핵무장


Washington Post

1922년에 만들어진 쏘비에트 유니온(USSR)은 1991년에 분해 되었다. 러시아가 모체였던 거대한 공산주의 국가는 주변에 있는 15개국을 포함한 제국이었다. 국가가 경제를 계획 경영하여 국민에게 부를 분배하는 모순적인 제도는 사람들이 일할 의욕을 상실하게 하여 실패 했다. 


소련은 Ukraine, Belarus, Kazakhstan 에 핵무기를 설치 했다.  소련이 설치한 핵무기이지만 이 세 나라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독립할 때 핵 무기 보유국가가 될 수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는 3국의 독립을 보장하느 댓가로 핵을 포기하라고 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민주국가로 변신하도록 도왔다. 미국은 핵확산을 방지하고 러시아를 민주화 해서 우방으로 만들 심산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에 민주주의는 미국이 예상한 대로 순조롭게 정착되지 않았다. 대신에 푸틴의 일인 독재가 자리를 잡았다. 기업의 총수와 관리가 구별이 안되는 올리가키가 지배 하는 부패 국가가 되었다. 쏘련의 붕괴로 자존심을 잃은 러시아 사람들은 옛날의 영광을 그리워 했다. 푸틴은 주위의 신생 독립국가를 지속적으로 공격하여 러시아의 영토로 복속 시키려고 한다. 


금년 후반기에 러시아는 유크레인과의 경계에 18만명에 가까운 병력을 집결 시키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내년 봄에 러시아가 유크레인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얼마전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과의 영상 통화에서 만약 러시아가 유크레인을 침공하면 극심한 경제제제를 하겠다고 경고 했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가 지상군을 투입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유크레인에게 군사원조를 해주고 자국의 힘으로 러시아와의 침공을 방어 하게 하겠다는 심산이다. 


과연 유크레인은 독립국가로 남아 있을 까? 아니면 러시아에 복속 될 까?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 서방 세력이 전쟁을 할 까?


쏘련에는 15개의 공화국이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국가가 유크레인이었다. 러시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았고 쏘련의 대부분의 농산물이 이곳에서 생산되었고 방어 산업이 발달 되었으며 흑해 함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로켓트 엔진이 이곳에서 생산 되었다. 이 엔진 기술은 북한에 전수 되었다. 소련 붕괴 당시에 소련과 미국 다음으로 많은 핵무기를 보유 하고 있었다.  소련 내 에서  러시아를 제외 하면 가장 강력한 공화국이었다. 1991년에 이 지역을 러시아에서 분리 시킨 사건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러시아는 이제 망 했구나" 하는 절망 감을 줄 정도로 러시아인들에게 중요한 영토 였다. 


독립이후 유크레인은 서방국가와 우방이 되려고 노력 했다.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 지도 모른다. 다른 유럽 국가 처럼 유럽연합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려고 노력 해 왔다. 그러나 유크레인은 동과 서로 갈라져 있다. 유럽에 가까은 서 쪽은 유크레인 말을, 러시아 쪽에 가까운 동쪽은 러시아 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전자는 서방을 후자는 러시아와 우방이 되는 것을 원한다. 


2014년 푸틴은 유크레인을 침공하여 크리미아 반도를 점령 했다. 원래 러시아 영토 였으나 후르시코프가 1954년 유크레인 공화국에 속하도록 했기 때문에 유크레인이 독립한 후에 유크레인 영토로 남았다.  이차대전 이후 유럽국가가 다른 나라 영토를 점령한 최초의 사건 이었다. 이 전쟁에서 무려 만사천명이 사망 했다. 

크리미아 반도에 있는 세바스토폴이라는 도시에는 러시아의 흑해 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크리미아 반도는 크리미아 전쟁(1853-1856)으로 유명하다. 부동항을 확보하여 세계 패권을 잡으려는 러시아와 경쟁국인 영국과의 충돌이었다. 러시아는 오스만제국, 영국, 사르데나, 프랑스 연합군과 싸워 패배 했다.

대영제국과 러시아의 패권경쟁을 "Great Game"이라고 하며 오늘날의 아프카니스탄, 조선의 거문도 사건,

러일전쟁과 일제강점도 "대경기"의 일환으로 설명할 수 있다. 크리마아 전쟁은 프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헌신적인 간호를 하고 병원운영을 개선하여 부상병 사망율을 현저히 감소 시켰고 그는 이경험을 살려서 근대 간호의 토대를 마련하고 간호사를 전문직으로 향상 시키는 데 크게 기여 했다. 


러시아의 관점에서 보는 유크레인


현재 유크레인의 수도 키에브(Kyiv)에는 스라브 족이 살 았다. 8, 9세기에 이들에게 비잔틴 제국(동로마)로 부터 그리스도교가 들어 왔다. 러시아 정교의 시작이었다. 키에브에서 같은 스라브 족이 사는 세인트 피터스버그, 모스크바로 그리스도교가 퍼졌다. 지금은 러시아, 유크레인, 벨라루시안에 갈라져서 살고 있지만 초창기의 그리스도교를 믿었던 스라브 족은 모두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유크레인과 러시아는 소련내의 공화국이었다. 따라서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유크레인으로 이주 해서 살았다. 유크레인이 독립한 후에도 러시아인 8백만명이 유크레인에 살고 있다. 푸틴 정부는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

다고 주장 한다. 


러시아는 유럽 연합 국가가가 필요한 천연가스의 40%를 공급한다. 이 천연가스를 보내는 파이프 라인이 유크레인을 통과 한다. 러시아는 유크레인에게 개스 통행료를 지급한다. 러시아는 최근에 발틱해를 통과하여 독일에 이르는 Nord Stream 2 Pipeline을 완성 했다. 물론 독일의 협조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앖는 일이었다. 내년 봄 쯤이면 유크레인을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을 사용하지 않고 북쪽 파이프라인으로 개스를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러시아가 유크레인을 공격할 시기와 밎 물린다. 


서방과 러시아의 세력 다툼


러시아는 1991년에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도 주위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2003-2005년 사이에 조지아, 유크레인, 키르니스탄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 섰다. 


냉전시대에 미국은 유럽에 공사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를 형성하여 운영해 왔다. 소련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바르사바(Warsaw)조약기구를 만들었다. 밀하자면 친미 유롭국가와 친소 국가가 대치 했다고 볼 수 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동구 공산 국가도 민주국가로 바뀌었다. 따라서 나토는 건재 했지만 바르사바 조약기구는 해체 되었다. 


유럽이 러시아에게 독일 동쪽으로는 나토의 세력을 확장하지 않겠다고 약속 했음에도 불구 하고 2004년에 체코, 스로바키아, 항가리, 폴란드는 물론 발틱 3국(Estonia, Latvia, Lithuania) 까지 포함 시켰다. 2008년에는 유크레인과 조지아를 니토에 가입시킬 의향이 있음을 발표 했다. 푸틴은 즉시 유크레인을 나토에 가입시키려 하는 행위는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의 표시"라고 경고 했다. 수 개월 후 푸틴은 조지아를 침공 했다. 


유크레인은 러시아와 유럽연합 모두에게 중요한 지역이다. 러시아가 유크레인을 확보하면 유럽 연합 보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설 것이고,  유렵연합이 유크레인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면 러시아가 옛 소련 영토로 확장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1991년 소련 붕괴 당시의 미국 대통령 아버지 부시는 유크레인을 서방 측에 끌어 들이는 일은 러시아르 공격적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라고 하면서 유크레인의 서방화를 꺼려 했다. 그러나 소련 치하에서 어려움을 격은 유크레인은 유럽국가가 되려고 무진 애를 섰다. 그럴 수록 러시아의 압력은 가속되었다. 유크레인 정부가 압력에 못이겨 친러로 선회하자 유크레인 사람들은 반정부 시위에 나섰고 급기야는 친러 정권을 내 쳤다. 그리고 친서방 정권이 들어 섰다. 그러자 푸틴은 크리미아 반도를 침공 했다. 그곳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을 보호 하겠다는 것이 명목이었다. 푸틴의 지지율은 80% 이상으로 치 솟았다. 


이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다른나라의 영토를 점령하는 일은 이전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측은 경제제제 이외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러시아가 유크레인과의 접경지역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는 데도 미국은 지상군 파견은 고려하고 있지 않음을 거듭 강조 하고 있다. 


내년 봄에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을 점령 하려고 유크레인을 침공 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유럽연방은 군사 원조를 해주고 유크레인과 러시아가 싸우는 것을 관망 할 가능성이 높다. 승자는 아마 러시아 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러시아가 유크레인 전역을 점령하려 들면 서방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러시아도 전쟁이 일어나면 자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서방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유크레인이 동남부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에게 내주고 일단은 분쟁이 소강상태로 들어갈 것으로 예측 된다. 


만약에 유크레인이 핵을 포기 하지 않았다면 세계 3대 핵 보유국이 되었을 것이다. 러시아가 함부로 침공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핵 보유국이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이란이 핵을 가질려고 하고 파키스탄이 핵을 가지고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핵이 주권을 보호 해주기 때문이다. 남한 국민의 70%가 핵을 보유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북한의 핵에 대항 하는 것 외에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주권을 행사해야 하는 남한에게 핵은 꼭 필요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Ref. cfr.org: Ukraine: Conflict at the Crossroads of Europe and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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