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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철 James Ohn Feb 11. 2022

시진핑과 히틀러

올림픽은 독재자 선전의 장이다. 


매일경제

 베이징 동계 오림픽이 한창이다. 시진핑은 중국의 힘을 만방에 알리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코비드19의 발상지라는 불명예를 벗어나기위해서 제로 코비드를 목표로 철저한 방역을 하고 있다. 혹시나 중국 사람들 자존심 상하는 보도가 나갈가봐 보도 관제가 대단 하다. 되도록 많은 메달을 따기 위해서 심판 판정이 중국 선수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는 면이 있어서 심판 매수를 의심 받고 있다. 경기장과 개막식 쇼는 역대 최고 라는 평을 받고 있다.  개막식에서 위구르 족 선수가 마지막 주자가 되어 성화대에 점화를 했다. 위구르 족 핍박을 가리기 위한 선전 이다. 중공기는 60여 개의 소수민족 대표가 운반 했다. 한복을 입은 조선족 대표도 포함되어 한국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평등한 국가임을 과시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중앙일보: 앞 쪽 남승룡, 중앙 손기정

1936 8월9일 손기정과 남승룡 은 마라톤 경기에서 각각 우승과 3등을 하여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섰다. 동아일보가 손기정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하여 민족의 자존심에 불을 지폈던 베를린 올림픽이 었다. 올림픽 마지막 날을 장식하는 마라톤 경기는 올림픽의 꽃이다. 이 경기에서 한나라가 1등과 3등을 하기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나라가 없는 우리 민족은 그 영광을 일본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미국과 유럽 몇몇 국가는 선수단만 베이징 올림픽에 보내고 외교 사절단 은 보내지 않았다. 위구르 족 탄압에 항의하기 위해서 이다. 일종의 보이코트(boycott)이다. 주최국 인권문제로 오림픽 보이코트 운동의 시작은 손기정과 남승룡이 시상대에 오른 베를린 오림픽때 부터 시작 되었다.



NBC News

독재자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을 나치 독일 선전에 십분 이용 했다. 히틀러는 새로 만들어 진 강하고 단결된 독일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러나 유대인과 집시에 대한 탄압은 교묘하게 감추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 

선수를 일체 올림픽에 참가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임을 강조 하여 무시무시한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는 것도 가릴 수 있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올림픽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다. 그 근거는 나치의 인권탄압 이었다. 물론 이 운동은 실패로 돌아 갔고 베를린 올림픽은 성대히 이루어 졌다. 독일의 목표인 독일이 인종차별하지 않는 평화를 사랑하는 강한 나라라는 인상을 세계에 심어 놓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물론 독일이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 했다. 


그러나 히틀러와 나치 그리고 독일인들의 복수심은 불타고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보면서 시진핑과 중국인들도 당시의 히틀러와 독일인들과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슴을 섬뜩 하게 한다. 왜 그랬을 까?


1918년 일차 세계대전 당사국 간의 협상을 위해서 파리 평화 회의가 열렸다. 전쟁에 지쳐 빠진 독일이 협상을 원했기 때문이다. 항복한 것은 아니 었지만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이었다.  가장 전쟁 피해가 심했던 프랑스 주도로 협상이 진행 되었다. 독일을 항복한 나라 처럽 취급했다. 독일의 의견은 전혀 반영 되지 않았다.  독일은 천문학 적인 전쟁 보상금을 내야 했다. 물론 점령 지역은 모두 독립국가가 되었다. 독일은 어처구니 없이 많은 돈을 찍어 냈다.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서 수레에 돈을 싫고 가야 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전 세계는 국익 보호라는 미명 아래 보호무역을 했다. 경제공황이 왔다. 전쟁은 경제공황 타개의 한 방법이었다. 

 
일본과 중국은 일차대전에 연합국으로 참전 했다. 중국은 독일 점령지였던 산동반도를 반환 받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일본은 독일이 유럽에서 전쟁에 바쁜 동안 산동반도를 점령 한 상태 였다. 열강은 파리 평화회의에서 중국을 완전히 무시 했다. 산동을 일본에게 넘겨 주었다. 1919년5월4일 중국인들은 믿을 수 없는 유럽인들을 규탄하는 시위에 나섰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와 민주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소련)를 선택 했다. 5.4운동이다. 
 
협상에서 이태리와 일본도 협상 주류국에서 베제 되었다. 홀대 당한 독일, 일본, 이태리는 2차대전 때 악의 축(Axis of Evil)이 된다. 
 
독일인들은 홀대한 미국, 프랑스, 영국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이들에게 복수심을 불어 넣어 준 게 히틀러 이다. 게르만 족 우선주의를 앞세워 권력을 장악 한 히틀러는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이류 국가로 취급당했던 일본과 이태리가 이에 합류 했다. 2차 세계 대전이다. 구차하게 1,2차로 나누지만 사실상 세계대전은 계속 된 것이다. 
 
1840년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팔아 먹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다. 물론 영국에서 아편 거래는 불법이었다. 중국은 자국민이 아편 중독으로 쇠락 해 가는 데도 불구하고 할 수 없이 아편 매매를 허락 해야 했다. 중국에 들어온 서양 사람들은 자기들이 키우는 개보다도 못하게 중국사람들을 취급 했다. 
 
유럽인들은 썩은 정권을 유지 시키고 자기들의 이권을 챙기기로 대중국 전략을 세웠다. 너무 크고 인구가 많고 저항이 심해서 식민지로 만들 수 가 없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손문이 혁명운동을 하는 동안에 손문 앞에서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실제로는 썩은 청나라 편이었다.  신해혁명 후에 위안스카이가 청나라를 접수 했다. 유럽 특히 영국은 위안스카이를 도왔다. 혁명을 일으킨 손문은 나라를 위안스카이에게 넘겨 주는 수 밖에 없었다. *위안스카이는 한국 사람들에게 원세계로 알려저 있다. 그는 1884년 부터 1894년 까지 조선의 감국(총독)으로 조선을 지배 했던 인물이다. 
 
일본은 조선, 만주, 산동반도, 상하이를 야금야금 먹어 들어 오더니 1937년 중국을 점령 하겠다고 전면전을 시작 했다. 미국과 영국은 일본에게 석유, 무기등 군수 물자를 팔아 먹고 돈을 빌려 주었다. 
 
일본을 상대하는 장개석이나 모택동은 주로 쏘련의 원조로 전쟁을 했지만 구미 국가들은 이들에게도 무기를 팔아 먹고 돈을 빌려 주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루즈벨트는 중국을 연합국으로 넣어주고 협상이 있을 때 마다 장개석이 등장 한다. 동양  사람들 생각으로는 참으로 뻔뻔 한 짓이었다. 그러나 장개석은 모택동한테 지고 중국은 공산국가가 되었다. 중국을 능멸한 유럽인들이 만들어놓은 결과물 이었다. 

 

LA Times


이와 같이 중국은 1840년 부터 1949년 중국 공화국(중공)이 탄생할 때 까지 서양인들에게 당해 왔다. 시진핑은 히틀러와 같이 복수에 나선 모양세이다. 시진핑이 히틀러와 같이 무력으로 다른나라를 침략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 시진핑은 100년동안 서양인에게 당한 능멸의 빚을 갚아 주고 세상의 중심이라 했던 중화를 회복하여 보란듯이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찾아 주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 한다. 시진핑은 중국을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대국으로 만들어 다른나라를 간접적으로 지배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 한다. 옛날 중국 황제가 작은 나라의 왕을 책봉하고 조공을 허락 했 듯이 말이다. 결국 달러와 위안화의 싸움이다. 기축통화가 달러에서 위안화로 바뀌는 날은 세상이 뒤집어 지는 날이다. 


문제는 시진핑의 중국이 미국처럼 합리적이고 아량있는 나라처럼 보이지 않는 다는 데 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결국은 양쪽의 파멸을 의미 한다. 시진핑의 망발을 저지하는 일은  중국인들의 몫이다.  홍콩과 대만의 기운이 중국내에 퍼져서 시진핑을 밀어 내자고 외치는 중국인들의 저항을 기대 한다. 지구촌 전 인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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