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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철 James Ohn Sep 10. 2020

카스텔라와 사카모토 료마

나가사키의 명물


코로나가 퍼진 후로는 차 몰고 멀리 가는 데라고는 약 100킬로 떨어진 한국 식품점이 전부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식품점 안에 들어서면 고향에 온 것처럼 답답한 심정이 없어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가 사는 곳은 캘리포니아지만 텍사스 시골이나 비슷하다. 한국사람도 드물고 한국 식품점이나 음식점도 없다. 3월 이전에는 심심하면 로스안젤레스 아들 집, 산 호세 딸 집에 드나 들었섰는 데 요지음은 페이스 토크 가 전부이다. 


Koreana Plaza(KP)는 쎄크 라멘토 근처에 있는 대형 동양 식품점이다. 웬만한  미국 그로서리 보다 크고 물건도 잘 정리돼 있다. 한국 식품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동남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식품들이 즐비하다. 손님들도 아시아 사람들 뿐만 아니고 백인과 흑인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물론 주인은 한국 사람이다. 


아내와 같이 식품점에 가면 내가 먹고 싶은 것은 거의 퇴자를 맞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집 사정이다. 들어서자마자 한국 포도가 눈에 들어왔다. 사자고 하니 동네 그로서리에도 있다며 거절이다. 있을 리가 없지만 마른침만 삼키며 따라갔다. 고구마, 두부, 냉면 등을 카트에 실코 조금 가니 일본 제 단 것들이 진열되어 있다. 올 때마다 찹쌀떡을 집어 들었는 데 오늘은 좀 다른 것을 사고 싶었다. Castella라고 쓰인 직사각형 모양으로 포장된 물건이 보였다. 나가사키와 사카모토 료마가 연상되었다. 아내가 또 퇴자 놀 까 봐 얼른 사카모토 얘기를 간단하게 하니 오케이다. 그러나 김치 한 병과 같은 값이라는 단서를 잊지 않았다.


한국에서 자랄 때 카스텔라는 고급 간식이었다. 촉촉하고 부드럽고 달짝 지근 한 맛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홍차와 같이 먹으면 끝내 주었다. 한국식 빵이라는 것이 일본 식 빵이며 그 기원이 포튜칼이다. 빵이라는 말도 포튜칼어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뺠간 색-나가사키

일본 남단에 있는 규슈 섬은 한국과 무척 가깝다. 이 섬 서쪽(한국 쪽)에 나가사키라는 도시가 있다. 사람들이 히로시마는 원폭 맞은 도시로 잘 기억하지만 나가사키는 얼른 원폭과 연결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히로시마에는 8월 6일, 나가사키에는 9일에 원폭이 떨어졌다. 나가사키는 서양 사람들이 일본에 들어온 입구와 같은 도시였다. 유롭풍의 건물, 풍습 등이 가장 먼저 들어온 도시이다. 그러나 원래의 모습은 아마 모두 파괴되었을 것이다. 


16세기에 포튜칼 상선이 일본 남단의 작은 섬에 표류하여 일본과 교류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다이묘들이 서로 싸우는 내전 시대(센코쿠 시대)였다. 이때 포튜칼 사람들이 전해준 조총은 내전을 빨리 끝나게 해 주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총을 사용하는 전술을 개발하여 일본 천하를 통일하고 조선을 침공했는 데, 이것이 임진왜란이다. 포튜칼 사람들은 천주교를 일본 내에 전파했다. 도요토미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 시대(에도 시대)를 열었다. 천주교와 포튜칼 사람들이 국가의 존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한 도쿠가와는 나가사키 앞바다에 인공 섬(다지마)을 만들어서 포튜칼 상인들을 거주하게 하여 본토 출입을 제한하면서 무역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들이 천주교인들과 협력하여 막부 정부를 정복하려는 반란이 일어나자 화란(네덜란드) 사람들을 동원하여 이를 제압하고 향후 200여 년 동안 다지마 섬은 화란 사람들 차지가 되었다. 물론 일본과의 무역은 화란 사람들이 독점하였다. 화란 사람들이 가저온 문물의 영향으로 발달한 학문을 난학이라고 한다. 조선의 실학에 견줄 만한 학문이며 메이지 유신의  밑거름이 되었다. 


카스텔라는 포튜칼 말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만드는 방법을 푸튜칼 사람들이 가르쳐 주었지만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게 변화시킨 것이 오늘날의 카스텔라이다. 시카모토 료마는 쌋초동맹을 성사시킨 일본의 영웅이다. 막부 말엽에 일본은 두 세력으로 갈라져서 내란 직전의 상황이었다. 한 세력은 사무라이의 총수 쇼군을 없애고 천황을 권력의 중심으로 앉혀서 중앙집권 적인 일본을 만들어 외국의 침략을 막아야 한다고 했고 다른 세력은 막부를 개혁하고 외국과 통상을 해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외국과 대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카모토 료마는 천황을 권력의 중심으로 모셔오고 외국과 통상을 하자고 중제 하여 큰 전쟁 없이 막부를 없애고 명치유신을 가능하게 한 인물이다. 


1865 사카모토 료마는 나가사키에 해운회사를 차렸으나 자금이 부족했다. 그는 동료들과 같이 카스텔라를 만들어서 팔기로 하고 각종 레시피를 섞어서 만들어 보지만 제 맛을 내는 데는 실패했다. 이 회사의 경리를 맡았던 사람이 미스 부시를 만든 이와사키 야타로이다. 


나가사키 3대 카스텔라는 분메이도, 쇼오겐, 후쿠사야라고 한다. 매년 10월에 한 달은 한국에서 보냈는 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갈 수가 없다. 코로나 예방주사 맞고 한국 가면 꼭 나가사키를 방문해야겠다. 카스텔라의 원조 빵집에서 홍차와 같이 카스텔라를 먹으면서 17세기-19세기 유롭인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들뜬다. 내 아내가 설마 이것까지 안 된다고 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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