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두갈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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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네
혼자인 나는 두 길을 다 여행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워서
멀리 굽어져 덤불 속으로 사라지는 길 하나를
오랫동안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았지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좋은 다른 길을 택했네
그 길은 웬지 더 나아 보였어
왜냐하면 풀이 많이 나 있고, 사람들이 덜 지나 다닌 듯했으므로
사실, 두 길은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은 것으론 정말 똑같았지
그날 아침 두 길은 모두 다
검게 밟혀지지 않은 낙엽으로 깔려 있었다네
아, 나는 다음 날을 기약하며 첫번 째 길을 남겨 두었네
하지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중에 다시 돌아오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
멀고 먼 훗날 어디에 선가
나는 한숨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런데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하였고
그로 인해 나의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손혜숙 옮김, 창비, 2014> * 자료: Wikipedia , 詩句는 수정하였음
명진씨는 경북 상주에 있는 갈비탕집 문을 열고 들어 섰다. 반갑게 맞이 하는 주인집 아주머니는 한눈에 어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갈비탕을 시켰다. 주인 아주머니는 무척 친절 했다. 난생 처음 보는 어머니였다.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며 갈비탕을 우적우적 먹었다.
머릿 속은 어떻게 내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말할 까 하는 생각으로 꽉차 있었다. 그때 10살 정도 먹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눈에 띠었다. 그 아이는 어머니를 똑 닮았다. 누가 봐도 주인 아주머니의 아들이었다.
나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내가 당신의 아들이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자칫 어머니의 행복을 깨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난생 처음 보는 어머니에게 차마 어머니라고 한번도 불러 보지 못하고 갈비탕집을 나왔다.
아버지는 내가 낳은 지 한달도 안되어 교통사고로 돌아 가셨다.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제발 아이들은 내가 맡아서 기를 테니 집을 나가서 잘살라고 했다. 그후 할머니는 나물과 콩등을 길가에서 파는 등 열심히 일해서 우리 심남매를 키웠다.
그러던 어느날 통장님이 집을 찾아 왔다. 통장님은 할머니에게 명진씨와 두누나를 외국에 입양 보내면 어떻겠느 냐고 물었다. 입양 보내면 세아이들이 훨씬 풍족하고 편하게 살것이고 장래도 밝을 것은 뻔한 이치 였다. 할머니는 며칠 동안 몸저 누워 끙끙 알았다. 그러다가 일어나신 할머니는 우리 삼남매를 끌어 않고 펑펑 우셨다. 할머니는 한번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식들을 또 다시 버릴 수 가 없었다.
할머니는 삼남매를 혼신을 다해서 길렀다. 덕분에 명진씨는 훌륭한 청년이 되어 군대 에 갔다. 제대 말년 휴가로 집에 왔는 데 할머니는 며칠동안 대변을 못 보고 있다고 했다. 병원에 가 보니, 대장암 말기 였다.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가 몇개월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명진아, 너는 엄마 안 보고 십니?, 나는 엄마가 밉지 않다. 사실은 보고 싶다." 라고 했다. 명진씨는 할머니의 마지막 바람이라고 생각 했다. 경찰에 수소문하여 어머니가 상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을 찾은 명진 씨는 누나를 똑 닮은 주인 아주머니를 만났 으나 어머니가 행복하게 잘 사시라고 눈물을 머금고 아무말 없이 길비탕집을 나왔다.
그 후 할머니는 "하고 싶은 일 하며 잘살아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 났다.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리고 "할무니" 노래를 듣은 동안 나는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도전 꿈에 무대를 한번도 거르지 않고 봐 왔지만 가장 감동을 주는 인생 이야기중에 하나 였다.
아직 핏덩이 같은 명진씨 그리고 두 누나가 부모 없이 할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과정은 너무나 불쌍하게 느껴 진다. 그러나 명진씨의 이야기 중에 석연치 않은 점이 몇가지 있다.
할머니는 왜 자식이 셋이나 있는 며느리를 혼자 나가라고 했을 까? 그렇다고 왜 어머니는 자식 셋를 뒤로 하고 집을 나갔을 까? 왜 할머니는 죽기전에 명진 씨 보고 어머니를 찾아가라고 했을 까? 어머니를 수소문해서 찾아간 명진 씨는 왜 어머니에게 자신이 아들이라고 밝히지 않고 그냥 갈비탕집을 나왔을 까?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아이들을 자신에게 맡기고 집을 나가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라고 한 것처럼 명진 씨는 이야기 하고 있다. 명진씨는 그렇게 믿고 있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세상에 어떤 여자가 어린자식 셋을 버리고 혈혈단신 집을 나갈 수 있을 까? 아무리 시어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해도 말이다.
모두 다같이 살았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살다가 어머니가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싶은 데 아이들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남자가 너그럽게 받아 주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도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장래를 걱정 했을 까?, 아니면 자신이 혼자 될 것을 우려 했을 까?
할머니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어머니에 대해서 어떻게 말 했을 까? 아마 어머니 잘 사시게 찾아가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명진 씨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이들이 어머니를 찾아가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죄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명진씨 보고 찾아가 보라고 했을 것이다.
어머니를 찾아간 명진 씨는 주인 아줌마와 똑 닮은 10살난 남자 아이를 보는 순간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 났을 것이다. "어머니 잘 사시게 찾아가지 말라고" 그래서 그는 갈비탕집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 했다.
사는 동안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선택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지난 다음 결과를 보고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최선을 다한 선택"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보내고 자신이 아이들을 키우는 길 을 택 했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집을 나와 새 인생을 살고 있고, 명진씨는 어머니를 놓아 주기로 했다. 모두 다 최선을 다해서 선택한 길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명진씨가 갈비탕을 즐겨 먹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