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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철 James Ohn Oct 29. 2020

한국사회는 자유롭고 평등한가?

존댓말과 호칭


반말과 존댓말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

어린이를 가까이하시어 자주 이야기하여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이발이나 목욕, 의복 같은 것을 때맞춰하도록 하여 주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여 주시오


1922년 일제강점기에 어린이날을 제정했던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쓸 것을 주장했다. 방정환의 부인 손용화는 천도교 3대 교주인 손병희의 셋째 딸이다.  천도교는 인간의 평등을 강조하는 종교이다. 그는 천도교청년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그의 강연은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미국에 사는 교포들간에 농담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너 공항에 가서 (내 친구) 아무개 좀 픽업해 와” 한다. 아들은 아버지 친구와 가족 울 차에 태우고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야, 이놈들아 다 왔다. 내려” 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에게 평소에 가족이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하던 말을 그대로 했을 뿐이었다.  


사람은 부모가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배워서 말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부모는 열심히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가르친다. 자식이 부모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상식이기 때문이다.  권위에 대한 복종을 길들이는 가정교육의 시작이다. 


요즈음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아주 많고 그들은 한국말을 국내인 뺨치게 잘한다. 그들은 하나 같이 한국의 종적인 인간관계를 지적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평등해야 하고 인간관계는 당연히 횡적이어야 한다. 서구 민주주의에 익숙한 외국인들은 종적인 인간관계가 합리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종적인 인간관계는 위계질서를 의미하며 부락을 이루어 사는 농경사회의 질서유지에 편리한 윤리관이었다. 유교를 바탕으로 한 위계질서는 농경사회 발달에 크게 이바지했다. 옛날에 중국이 선진국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아랫사람에게는 반말 윗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쓴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르기 위해서는 우선 누가 위이고 아래인지를 정해야 한다.  가장 흔하게 쓰는 표준이 나이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존댓말을 쓰다가 상대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것을 알아차리면  “말 놓으세요” 한다. 그리고 반말과 존댓말로 대화가 진행된다. 때로는 어르신과 젊은이가 분명하면 아예 처음부터 반말과 존댓말이 오간다. 반말을 쓰는 사람은 존댓말을 쓰는 사람의 의견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 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기보다는 본능적으로 긍정하는 태도가 몸에 배인다.  


호칭


(한겨레 신문)


한국사람들은 이름을 잘 부르지 않는다. 친구끼리, 부모가 자식을, 나이 많은 친척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나 사용한다. 나머지는 다 호칭이 있다. 친척간의 호칭은 매우 복잡하여 요지음 사람들은 어떻게 부를까를 몰라 당황 해 하는 경우 가 많다. 나이와 멀고 가까움이  정확히 구분되어 있다.

서열이 분명하다. 남녀차별도 나타 난다. 여자가 남자 친척을 부를 때는 존칭을 사용한다. 도련님이 좋은 예이다. 


밖에서는 직위를 분명히 해서 부른다. 소상인들은 대체로 사장님으로 불린다. 운전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기사님이다. 회사에서 과장이면 김 과장이라고 부른다. 교회에서 장로 면 김 장로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나 분명 그렇지 않다. 아무 직함이 없는 사람은 그냥 아저씨, 아줌마이다. 

옆에 사람은 김 교수라고 하는 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들은 열등의식에 시달린다. 


선배와 후배


학교를 먼저 졸업한 사람들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사용한다. 후배는 선배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윤리관은 동창, 직장, 군대에 팽배해 있다. 검사들은 사법연수원 후배가 총장이 되면 모두 사퇴한다. 

학교에서 3학년의 1, 2학년에 대한 행패와 저학년의 학생들이 고학년 앞에서 기를 못 피는 문화는 평등하지 않고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이 성장하면 아내와 남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직장에서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되어 서열을 이룰 것이다. 


평등과 자유


인간관계가 평등하지 않으면 자유롭게 살 수 없다. 헌법에는 자유와 평등을 보장한다고 되어 있지만 

한국의 위계질서와 존댓말은 법에 명시된 대로 생활할 수 없게 한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존경을 강요하는 구조이다. 따라서 아랫사람은 좀 과장하면 억압 상태이다. 자기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윗사람을 대하면 항상 찝찝하다. 윗사람의 아랫사람에 대한 사랑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자선이 된다. 다 가져도 되는 데 좀 떼어 준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들과 나는 영어를 사용할 때가 많다. 아이들이 나에게 반말을 한다고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다. 병원에서 청소부가 내 이름을 불러도 아무렇지 않다. 병원장을 원장님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존이라고 하면 내가 원장을 지칭하는 줄 다 안다. 내 며느리는 나의 이름을 부르고 나도 그를 제니퍼라고 부른다. 나이와 직업 따라서 사람을 위아래로 가리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사람은 하늘 앞에 모두 똑같다. 이것이 평등이다. 


효도나 윗사람 받들기도 모두 자발적 이어야 한다. 존경은 자신이 잘 행동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심이 우러나게 해야 한다. 윗사람에게 하는 인사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배려 이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자발적으로 우러나는 행동이 바로 자유이다. 


천도교, 동학 혁명, 일본, 외세


천도교를 동학이라고 한다. 지배계급이었던 양반의 착취에 시달리고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직업에 따라서 차별받고 양반, 평민, 노비, 천민으로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분명했던 세상에 모든 사람은 하늘 앞에 평등하다는 교리는 백성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었다. 


19세기의 인류는 군주(왕)로 부터의 해방을 위해서 궐기 했다. 나라의 주인이 백성(국민)으로 바뀌던 시절이다. 이러한 노력이 프랑스혁명-미국의 독립-민주주의와 러시아 혁명-소련-공산주의로 정착한다. 


한민족도 커다란 인류의 변화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동학 교도들은 좀 더 평등한 삶을 위해서 기존의 질서에 저항했다.  그래서 동학교도들이 일으킨 난을 동학 혁명이라고 한다. 


무능한 정부는 자력으로 진압할 수가 없어서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였고 이를 빌미로 일본군대가 들어와서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일본은 재빨리 경복궁을 점령하고 고종을 협박하여 개혁을 단행했으니 이를 갑오개혁이라고 한다. 개화파를 앞세웠지만 사실상 일본 주도의 개혁이었다. 


한편 동학군은 호남 지방을 점령하고 각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갑오개혁과 거의 동시에 개혁을 시작했다. 두 개혁의 내용은 놀랍게도 너무나 흡사하다. 얼마 후 일본군과 관군은 동학군을 재압했다. 


"집강소의 행동 강령은 총 12개조로 양반 중심의 봉건 사회를 혁파하고, 신분 차별을 없애며, 인습에 갇혀 사는 여성들을 해방시켜 농민의 생활을 풍족하게 만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 같은 집강소 행동 강령은 17세기 이래 진보적인 실학자들이 내걸었던 개혁안과 1884년 김옥균 등의 개화파가 주장했던 정책보다 훨씬 진보된 내용이었다.[24] 그만큼 시대를 멀리 내다보았던 전봉준의 개혁 사상은 봉건 사회인 조선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혁명적인 기치를 내걸고 있었다."(위키피디아)


그 후 동학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일본 순사들의 집요한 추격을 당 했고 천도교는 조선총독부의 철저한 탄압을 받았다. 그리고 한민족의 중요한 종교가 되는 데 실패 했다. 


나는 만약에 동학 혁명이 외세의 간섭 없이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성공하여 백성이 주권을 갖는 나라로 바뀌어서, 백성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면서 살았으면 지금 한반도는 어떤 나라가 되어 있을 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일본을 일본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역사는 현세대에게 올바른 교훈을 주지 않는다. 방해자는 외세라고 포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라가 안에서 부패하면 외세에게 휘둘림을 당 한다. 기회를 빨리 포착하는 나라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망국의 원인은 항상 안에 있지 밖에 있지 않다.  안이 튼튼하면 아무도 넘겨다 보지 못한다. 


방정환 선생의 충고 대로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면 부모가 구태여 존댓말을 쓰라고 가르처 주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그렇게 할것이다. 그리고 반말을 없애고 모두 서로 존댓말을 쓰면 목소리 높여 싸울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나이에 따라 위 아래가 정해지는 인간 관계도 사라 질 것이다. 


직업과 직위를 나타내는 호칭을 쓰지 않고 서로 이름을 부르면 얼마나 편할 까?  사람들 간에 우월 감과 열등감이 많이 사라 질 것이다. 서로 존댓말 쓰고 이름 부르면 사람만나서 마음이 한결 편할 것이다. 이 편한 마음이 바로 자유이다. 평등해야 자유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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