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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철 James Ohn Apr 08. 2021

결론

01. 부패가 분단의 원인이다.

당당뉴스


북에 인민공화국이 생기고 남에 대한민국이 건국 했다. 이제 남은 유일한 통일의 방법은 전쟁이었다. 북의 김일성은 소련의 힘을 빌려서 남을 점령하려고 1950년6월25일 대한민국을 침공 했다. 부산근처만 함락되면 적화통일이 눈앞에 다가왔으나 미군과 유엔군의 개입으로 인민군은 38 이북으로 후퇴 했다. 국군, 미군 그리고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북진 했다. 청천강과 장진호 이북 만 점령하면 인공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판국에 중공이 개입하여 대한민국의 꿈은 좌절 되었다. 인공은 중공 덕분에 본래의 영토를 회복하고 1953년7월27일에 유엔군과 휴전 협정을 맺었다. DMZ를 경계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과 대한민국은 전쟁을 멈추고 서로 대치하고 있다. 왜 한민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둘로 갈라저서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을 까?


한반도는 방대한 대륙에 매달려 있다. 대륙에는 항상 초강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은 끝임없이 한반도에 있는 나라의 존위를 위협했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이다. 이 바다는 태평양의 일부이다. 배를 타고 조금가면 일본이고 한참가면 아메리카 대륙이고 여기에 미국이 있다. 넓디 넓은 바다 태평양이다. 17세기 이전에는 태평양에 있는 두 나라의 존재는 무시해도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과 흑선사건(1853) 이후에는 태평양에 있는 나라들도 대륙에 있는 나라들 못지 않게 한반도를 압박 했다.  한반도에 있는 국가가 당면한 흔히 말하는 지정학적 위치 이다. 

 

우리민족은 만주에서 나라를 만들기 시작 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 진다. 고구려 때 대륙에는 당이라는 초 강대국이 나타 났다. 요즈음의 미국과 같은 슈퍼 파워 이다. 고구려는 당과 대립했으나 견디지 못하고 망했다. 그 후 고구려는 발해로 거듭나고 반도에는 신라가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만주의 일부와 반도를 우리민족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발해가 망하고 신라 대신 고려가 반도에 건국 했다. 고려는 고구려 영토 회복을 위해서 노력 했으나 몽골에 징기스칸이 출현 하면서 대륙에는 원나라라는 세계역사상 최대의 초 강대국이 생겼다. 고려도 무려 80년동안 원의 지배를 받았다. 


원이 망할 무렵 신생 명나라가 만리장성 이남 평정에 바쁠 때 만주에 공백이 생겼다. 고려의 최영장군은 고구려 영토 회복의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요동정벌을 결심 했다. 그러나 우왕은 최영을 자신의 호위를 위해서  개경에 남게 하고 이성계와 조민수가 군사를 이끌고 북진하여 압록강 가운데 섬 위화도에 도착 했다. 여기서 이성계는 장마를 핑계로 회군하여 개경을 점령, 역성혁명에 성공 했다. 유명한 위화도 회군이다. 


조선은  대륙 세력에 대항하여 곤혹을 치루는 것 보다는 아예  새나라 명이 원하는 대로  조공을 바치고 명을 섬겨 명으로 부터 평화를 보장 받기로 결심한다. 만주의 여진과 일본의 왜구를 교린국가라고 했다. 아직 완전한 나라가 형성되지 못한 도적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을 잘 따독거려 찝쩍 거리지 못하게 하면 국가의 안위를 도모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선은 사대교린으로 평화와 안정을 도모 하기로 작정 하고 나라를 시작 했다.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건 만 조선은 세상이 영원히 그대로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국가가 혼자 설 수 있는 힘을 배양하지 않았다. 해적에 불과한 왜구의 본거지였던 일본은 100년동안의 내전을 마치고 하나의 강력한 국가로 거듭 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 한 사건이다. 이젠 교린 따위의 정책이 먹힐리가 없었다. 임진년에 그는 조선을 침략 했다. 명나라는 조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명나라 원군이 육지에서 도와주고 바다에는 다행히 명장 이순신이 있었다. 8년동안 치도곤을 맞고 전쟁이 끝낫지만  조선은 정신차리지 못하고 옛 버릇 대로 명을 열심히 섬겼다. 


그러나 임진전쟁은 명의 허리를 휘게 했다. 명이 약해지는 동안 만주의 여진족이 강해 졌다. 그들이 산도적 신세를 면하고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 가는 동안 조선은 명나라와의 의리에 매달 렸다. 여진이 만든 새나라가 조선을 응징 했다. 병자호란이다. 교린국가라고 깔 보던 왜와 여진족들에게 혼이 나고도 조선은 정신차리지 못 했다. 청을 섬기기로 하니 조용 했다. 일본은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아예 전쟁을 하지 않고 잘지내자고 했다. 별로 신경 쓸 일이 없었다. 또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조선은 평화가 영원히 계속 되리라고 믿었다. 


조선은 건국 이래 500여년 동안 혼자 서 보려고 노력해 본적이 없다. 아예 처음부터 명나라 밑에 있는 나라 임을 자처 했다. 그리고 명나라와 청나라에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 


세종대왕이 만든 언문은 백성들이 쉽게 배워서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언문을 공식 문자로 사용하지 않았다. 대국의 글자인 한문을 주로 사용 했다. 보물 같은 한글을 썩힌 셈이다. 언문이 나오기 전에 금속활자가 있었다. 알파벹보다 더 편리하고 과학 적인 한글이 금속활자와 합처졌더라면 조선의 출판 기술은 세계 제일이었을 것이다. 이 두 보물은 돼지 앞에 진주 였다. 교육이 양반들의 특권이 었던 국가에서 외국어인 한문의 사용은 백성을 까막눈으로 만들 었다. 우민의 나라가 어떻게 강국이 되겠는 가?


조선의 이념은 성리학 이었다. 군자는 검소 해야 했다. 돈을 버는 행위는 지탄을 받았다. 무엇을 만들어서 파는 것은 재물에 대한 욕심을 내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의 도리가 아니었다. 사농공상이다. 윤리도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제일이었다. 장인과 상인은 말단이었다. 


임진전쟁과 병자호란은 나라를 초토화 시켰다. 실학이 발달하기 시작 했다. 도대체 먹을 것이 나오지 않는 성리학만 공부하지 말고 실제로 먹고 살기에 도움이 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학문을 하자고 했다. 이것이 실학이다. 정조 대왕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 였다. 그리고 실학을 정책에 반영 하려고 애를 썼다. 

이 무렵 유럽에서는 계몽사상과 산업혁명으로 근대국가가 만들어 지고 있었다. 조선의 실학은 유럽의 계몽사상 이었다. 그러나 1800년 정조가 죽자 실학도 조정에서 사라졌다. 조선이 강해질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 였다. 그리고 세도정치가 등장 했다. 사리사욕이 정치의 목적이 되었다. 


안보는 외세에 의존하고 내치는 사리사욕이 목적인 나라가 되었다. 권력은 김씨, 조씨, 민씨로 넘어 갔다. 이씨 왕조의 대표격인 흥선 대원군 이하응은 며누리 민비와 사투를 벌렸다.  그동안에 나라는 썩을 대로 썩 었다. 


1840년 아편전쟁은 근대국가로 환골탈퇴한 유럽 열강과 세상의 중심이라던 유교국가인 청나라와의 힘겨루기 였다. 결과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의 압승이었다. 태평양의 섬나라 일본은 미국의 해군제독 페리(흑선사건)의 방문으로 나라를 개방하고 명치유신을 단행하여 유럽국가와 똑 같은 근대국가가 되었다. 조선은  철석같이 믿던 큰나라가 망해가고 교린국가라고 깔 보던 일본이 위협하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사대교린의 붕괴였다. 조선의 안보는 완전히 무너졌다. 


1840년 부터 1860년 까지 계속된 아편전쟁을 청의 종말로 이해하고 조선이 근대화를 했다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을 수 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도저히 국제정세를 이해 할 수 없는 은둔의 나라였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표면상 청을 대국으로 모셨지만 속으로는 오랑캐의 나라라고 무시하여 청으로 부터 그나마 새로운 문물을 받아드리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소중화라 하여 없어진 명의 전통만 지키려고 했다.  지독한 쇄국이었다. 일본은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청이 영국에게 대패 했다는 사실을 듣고 정신차렸지만 조선은 아편전쟁이 천지개벽에 가까운 사건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썩은 조선은 맛있게 요리된 생선과 마찬가지였다. 대륙과 태평양의 강국들은 군침을 흘리며 먹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들어 오고 대원군이 텐진에 연금 되면서 조선의 묵숨은 사실상 끝났다. 그러나 조선 왕조는 그 실날 같은 생명을 그 이후에도 무려 120여년 동안 유지 했다. 왜냐면 조선을 먹으려는 나라들 끼리 서로 견제 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이라는 생선요리는 청과 러시아를 물리친 일본의 차지 였다.  나라 없는 한민족은 썩은 정부에게 수탈 당하고 이제는 철천지 원수 일본에게 착취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일본말을 쓰고 일본 이름을 가져야 했다. 


일본은 태평양 끝에 있는 미국과 전쟁을 했다. 일본은 미국에게 항복 했다. 만주에서는 일본 육군이 소련군에게 패배했다. 일본을 굴복 시킨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를 38선을 기준으로 북과 남을 각각 점령 했다.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에 자국의 사상에 맞는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 했다. 그러나 결국 무력 충돌을 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무승부로 끝나고 지금의 완충지대 를 경계로 남과 북이 완전히 갈라졌다. 


지정학적 위치라는 공식에 삽입해 보면 남은 태평양세력인 미국이 북은 대륙 세력인 중국이 장악하여 분단의 형국을 이루고 있다. 북은 종래의 대륙 세력이었던 소련이 붕괴된후  중국이 새로운 보호자가 되었다. 그러나 중국이 한반도에 미친 역사적인 영향을 재고 해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현세대에 주어진 역사적인 사명은 남북통일과 고구려 영토 회복이다. 불리한 지정학적 위치를 극복하려면 부국강병으로 세계강국과 어깨를 겨눌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부국강병의 최악의 적은 부패이다. 모든 망국의 근본적인 원인은 부패이다. 망국 조선도 그중의 하나에 불과 했다. 


요지음 대한민국은 세계12위의 국민총생산량을 자랑하는 선진국이다. 인구 5천만이상의 국가중에는 세계7위이다. 남한은 3천만 인구의 카나다 보다 2천만이 더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결코 작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세계 역사상 유래 없는 기적이다. 


어떻게 한민족은 이런 기적을 이루어 낼 수 있었을 까? 민족의 자질 즉 유전인자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한민족은 본래 우수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수 백년동안 이 재능을 발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미국의 힘으로 새로 만들어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은 한민족의 묻혔던  재능을 십분 발휘하게 해 주었다. 


조선인민공화국을 가장 위태롭게 하는 것은 부패이다. 나라가 부패하면 망한다. 대한민국이 인공과 만주영토 회복을 목표로 하는 만큼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은 약해진 나라를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아무리 전쟁을 선호하지 않는 국제정세이지만 외교도 힘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국익을 달성 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통일을 이룩할 기회는 인공이 부패로 인해서 망해 갈 때이다. 이후에 대한민국이 만주의 옛 영토를 회복 할 기회는 지금의 중국이 망해 갈 때이다. 만약 청나라가 망해 갈 때 조선이 강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 기회를 포착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 그동안에 한국민은 만주가 우리영토라는 것을 잊지 말고 부국강병에 매진해야 한다. 그러려면 절대로 부패해서는 않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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