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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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월이 몇 년이 흘렀고
2025년이 가기 전에 만나자며 지난해 말 K를 만났다.
K는 그야말로 'K-장남'의 표본처럼 살아왔고
동생들 공부시켜 시집장가 다 보내고 아버지, 어머니도 모시고 살았다.
고졸 출신으로 입지전적인 인물까지는 아니어도 고생도 하고 힘들게 살아가며
서울에 집도 장만하고 모시던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90이 훨씬 넘으신 어머님도 아직 모시고 산다.
그리고 동생들은 시집 장가가서 다들 잘 산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 후 말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동생들은 어머님 생신 때도 안 오고 명절 때도 오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썩은 웃음을 날렸다.
그렇게 세월 속에 숨었던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대학졸업하고 외국 연수까지 보낸 딸은 서른 중반이 넘었어도 취직도 안 하고
아직도 애비에게서 용돈을 타서 쓴다는 이야기에
내가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소릴 질렀다.
"야! 언제까지 딸년 뒷바라지 하며 살래?"라며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질렀다.
그는 쓸쓸하게 소주잔을 털어 넣었다.
밖으로 나오자 겨울바람이 그의 어깨에 스쳐 지나갔다.
또 이 찬바람이 지나면 그도 나도 나이를 더 먹을 것이다.
그러면 또 몇 걸음 더 멀어질지...
아주 오래전이었다. 30년도 더 된...
사고로 S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연락이 왔다. K의 연락이었다.
그리고 그가 입원한 병원엘 찾아갔더니 침대 누워있는 그 옆에 모르는 젊은 여자가 간호를 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잠시 물을 받으러 나간 사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녀석이 쓰윽 웃으며 '내 여자친구...' 하며 어색한 웃음을 날렸다.
여자친구라니.. 이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릴 하냐고... 되물었다.
아무튼 사실이었다.
생각해 보니... 녀석은 10대 말 군에 나가 규율에 딱 잡힌 생활만 하고
이른 결혼에 스물 초반에 아이까지 낳아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의 규정된 틀속에 살며
이십 대의 젊음, 이십 대의 자유로움, 청춘의 방황이니 하는 건 남의 이야기였고
오히려 그 시절 철저한 세뇌로 세상을 반쪽으로만 보고 살았고...
그러다 일찍 자리 잡아 집도 사고 돈도 있다 보니 갑자기 자기의 이십 대가 떠올랐고
내 잃어버린 이십 대를 마치 되찾겠다는 듯...
술에 빠져 생활을 하다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났고...
뭐 그 후는 3류 소설처럼 이어져 결국 나중엔 이혼을 한 것이었다.
큰 아이를 사고로 잃었던 게 가장 큰 연유인 것 같았다.
큰 아이를 잃고 술로 버팅기다 아마도 젊은 여자를 만난 것 같았고
그걸 안 와이프가 이혼소송을 해서 아마도 재산을 다 잃은 것 같았다.
그렇게 S는 술을 많이 마셨다.
그는 그냥 많이 마셨고 다음날 숙취로 고생을 하면서도 마시고,
많이 마시면 내게 트집을 잡아 꼭 큰 소리가 오가곤 했다.
다행히 폭력적이거나 하진 않았다.
규율이 몸에 밴 생활을 해선지 천성이 워낙 그래서였는지...
다른 사람과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내겐 그랬다.
으레 '빨갱이 같은 것들'이라며... 내게 퍼붓다가 끝이 났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흐르고 재혼한 여자에게선 다 큰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때 하필 사춘기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새아버지가 무뚝뚝하긴 해도 애들에게 잘해선지
애들은 새아버지를 피하거나 어긋나고 그런 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혼해서 생긴 큰 아들이 몇 년 후 뇌종양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새아버지인 그는 내가 어떡하든 너는 살린다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결국 완치를 시켰다고 했다.
원래 자신의 큰 아들을 잃었던 트라우마 때문인지...
착한 S는 그럴 만도 했다.
지난해 말, K를 만났을 때 S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다시는 S와 만나기 싫다고 했다.
제주 사건 이후 둘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나 보았다.
무슨 상처들이 그렇게 있었을까... 내가 그 자리에 없어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모르지만
다시 만나기 싫다는 소리까지 하는 걸 보면 분명 큰 상처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둘의 이야길 들어본 내 생각엔 그렇게 만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다툼은 아닌 것 같았는데...
모르겠다. 내가 그 자리에 없어서...
어쨌든 S를 조만간 만나봐야겠다.
이 정도 나이 들어 서로 늙었으면 젊은 시절 한도 풀고 다시 만나게 될 나이에
느지막이 이제서 안 보고 싶다느니... 하는 걸 보니 십 대 애들로 돌아가는 듯했다.
은퇴를 하고 백수 생활을 하던 K는
상고 출신임에도 독학으로 전기기사 자격증과 산업안전관리사 자격증을 따서
그쪽으로 재취업을 하여 지금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고
교대근무라 주말이 따로 없는 그는
비번인 날에는 와이프와 국내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나름의 행복을 찾고 있는 중이라 하고
S는 제주 생활을 접고 다시 와이프와 아이들이 있는 경기도 모처로 돌아왔다고 한다.
아직 경기도로 올라온 후 만나지 못했다.
둘이 만날 수 있게 아니 셋이 만날 수 있게 뒤늦게나마
내가 나서야 하는지...
요즘 고민이다.
그전엔 K가 우리 셋의 만남을 조율했었는데 말이다.
은퇴 후 시골로 내려와 재취업을 한 나는
어중간한 전원생활이지만 시골생활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으며
늙은 자두와 늙어가는 나는 조용히 이곳 생활을 즐기려 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매일매일 진짜 백수가 되길 꿈꾸고 있으며
드디어 올해 8월엔 정말 은퇴를 할 예정이고(누가 뭐래도, 누가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도, 목을 비틀어도)
그리하여 진정한 백수가 될 것이다.
또 하나... 꿈은
시골에 집을 짓는 것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 아니라
시골 산 자락 어디쯤이라도 꽃을 심을 수 있고 나무가 있는 곳이면 좋겠고
그리고 집 뒤문으로 나가면 산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숲으로 들로 다니며
나무 냄새도 맡을 것이고 들꽃들을 품으러 다닐 것이다.
도서관에서, 군청 문화센터에서... 한낮에 하는 강좌도 들으러 다닐 것이고
마당에 꽃들도 더 만져볼 것이다.
그러면 친구들은 아직도 이따위 철딱서니 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욕을 할 테지만...
사실... 젊은 시절, 악착같이 치열하게 살지 못했듯
늙을 때도 그냥 천천히 조금만 먹고 조금만 싸고
작은 삶을, 천천히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주변엔 이미
'이젠 다시 아파트 생활은 못 할거 같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