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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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6Gguh-GEoA?t=40
K는 부지런했다.
그는 서울 근교 어딘가 땅을 조금 샀다 하고
그는 주말이면 그 땅의 일부를 밭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주말 농사를 지었다.
강북에 아파트도 장만했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교육시켰다. 아들놈 장가까지 보냈다.
너무나 대단했다.
나와 비교하자면 그는 정말 부지런하고 대단하고... 억척스러웠다.
부끄러웠다.
나는 노력하지 않은 것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나는 남들이 악착같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부동산을 늘려가고 아파트를 장만하려 했을 때...
세상의 그들을 경멸했다.
House Poor들이라고...
천민자본주의에 편승한 기회주의자들이라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늘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인정하기 싫었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선 그들이 승자라는 걸...
나는 점점 세상에서 뒤처져 가고 있다는 것을...
그럴수록 책이나 뒤적이며 커피잔을 만지작 거리며 위안을 했다.
늘어가는 건 책뿐이었다.
그 내 마음속 진실은...
내지를 용기도 없고 혹독하게 허리띠를 졸라맬 자신이 없었고...
부지런하지도 못했고 머릴 쓰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머리 좋은 애들이 돈도 모으듯 나는 이재(理財)에 밝지 못했다.
은행문턱을 넘는 것도 못했다. 나는...
포장은 나 스스로 그럴듯하게 했다.
부동산 폭등을 조장하고 그에 따른 부를 탐하지 않는다...라고...
개도 웃을 이야기였다.
그러다 나는 경기도에 신설된 곳으로 발령이 나서
경기도로 내려갔고 이 참에 그곳에서 자릴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내 생애 최초의 청약통장이란 걸 이용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서울에서 전세를 전전하던 나는 드디어 내 집이 생겼다.
내 나이 마흔셋이었다.
그것도 경기도에서 말이다
그래도 잠시동안 행복했고 뿌듯했다.
하지만 그때 집값이 오른다고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고
주변에서 자꾸 들쑤셔댔다.
그러건 말건...
그것에 흔들릴 내가 아니다... 하고 무신경하게
아니 바보처럼 귀를 닫고 지냈다.
가끔 K가 연락해서 셋은 소주잔을 기울였다.
나는 S가 술만 마시면 주사파로 돌변하는 게 싫어서
술을 마시면 적당하다 둘러대고 자릴 일어났다.
다행히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K가 동조를 해주었다.
그런데 새롭게 S의 취미를 알게 되었다.
그는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었다.
유명한 사진작가와도 친분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사진에 대해 나보다 깊이가 있었고
심지어 내 사진들을 보며 나름의 조언까지 해주었다.
나는 그때 낮은 급의 캐논 D시리즈 하나를 가지고 재미나게 놀고 있을 때였다.
S의 뜻하지 않은 사진에 관한 조예 깊은(?) 관심에
놀라고 또 감동도 했다.
다행이었다.
그가 이런 취미로 세상을 욕하지 않을 거 같아서...
K는 나이를 먹더니 더 반듯한 삶의 자세로 살아갔다.
그러는 너는 무슨 낙으로 사냐고 하니
그런 거?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와 술을 마시면 둘이 합하여 2병이면 끝이었다.
어쩌다 3병을 먹기도 했지만...
2차를 가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그와 가끔 소주를 마셨다.
젊었을 땐 잘하지 않던 이야기를 했다.
살아가는 이야기... 가족이야기...
그와 이야기를 하면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편했다.
그렇게 1년에 한두 번 만나 소주를 마셨다.
나이 드니 K는 성당에 젊었을 때 보다 더 열심히 나가고 있다고 했다.
알다시피 난 젊었던 시절 한때 잠깐 '열혈신자'인적이 있었지만
그 후 38년을 냉담자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노래가사를 인용하여
'어딘가 있을 그 무언가를 아직 찾고 있다'라고 했다.
내게 종교는 멀리 있는 그 무언가였다.
그러고 보니 K도 천주교 신자고
S는 처음 결혼했을 때 아내는 돈독한 천주교 신자였고 그래서 한때 성당엘 나갔다.
그 후에도 다녔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S의 집안은 원래 개신교 집안이었다.
그리고 나는 점점 아파트가 싫어졌다.
나이 드니 그런가 했다.
딱히 나이가 아니라 아파트 삶이란 것이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설득을 시켰다.
그리고 번개처럼 아파트를 나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그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 옆에 단독주택 지구가 있었고
일단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
처음이니 전세로 살아보고 이게 정말 내 삶과 맞는 건지...
살아보고 진짜 단독주택을 내 집으로 만들고자 했다.
마당이 있는 그 단독주택에서 나는 살구와 자두를 입양했다.
얼떨결이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의 아이들이 있다 하니...
거의 충동적으로...
그리고 그 후 아파트를 팔려 내놨더니 그땐 집값이 내려가 있었다.
부동산은 역시 나와 맞지 않는 건가? 했다.
겨우 내가 입주한 그 비용 그건 뽑았다.
그래도 손해는 보지 않아 그 아주 조금의 차익에 얼마를 더 보태 14년간 타던 차를 바꾸었다.
내 아파트 12년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때마침 택지지구 구석에 집을 지어 분양한다기에
덜컥 고민도 없이 계약을 하고 말았다
그때 한창 유행했던 타운하우스였다.
하지만 부동산은 나와는 친하지 않은 게 사실 같았다.
한창 그렇게 좋다는 광고를 해대던 타운하우스는
아파트의 장점과 단독주택의 장점을 가진 주거라 하더니
실제 살아보니
아파트의 단점과 단독주택의 단점만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좁은 마당... 용적률만 최대로 활용한 기형적인 집구조였다.
물론 그 동네 다른 초 대형 타운 하우스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작은 단지인 내가 살던 곳은 그랬다.
그 초 호화 타운하우스에선 드라마 촬영 때문에 연일 방송국 차량이 드나들고 했다.
아무튼 눈에 뭐가 씌었던 모양이었다. 그땐...
식구들 모두 별로라고 했다.
나는 또다시 마당 있는 나무와 꽃들이 있는 집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2020년 은퇴를 했다.
결국 그 집을 내놨다.
그러나 팔리지 않았고 결국 분양가 밑으로 내렸다.
급매물로...
그래도 팔리지 않아 부동산에겐 어떡하든 팔아만 달라... 고 했다.
역시 부동산은 나와는 맞지 않았다.
똑똑한 아파트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사실이었고
나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같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은퇴를 하자 우리나라와 전 세계는 코로나라는 괴물의 습격으로
모든 나라들이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일상도 파괴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만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못했으며
마스크에 갇힌 날들이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