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의 12월 31일 밤
오래전이라 상세한 기억은 없다. 20년 전의 일이다. 무섭고 기분 나쁜 그 일은 이 맘 때쯤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그 기억이 떠오른다. 그해 겨울 동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일행들과 머릴 맞대고 스케줄을 짜고 부풀어 있었다. 4명이었고 각자 부푼 가슴으로 그해 겨울 여행을 가을부터 계획을 했고 그때 일정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in-->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크푸르트 out으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겨울 동유럽 일정이라 가격도 싸고 비수기라 비행기표도 말도 안 되게 싸게 호텔도... 모든 게 평소보다 훨씬 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싼 맛에 가는 비수기 여행이었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출발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베를린에서 1박 하고 동독지역이었던 라이프치히에서 1박 하고 체코로 넘어갔다가
위에서 말한 일정을 다 돌고 다시 독일로 와 남부 뮌헨에서 그해 마지막 날 밤을 자면 해가 바뀌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시 1박을 하고 1월 2일에 프랑크 푸르트 공항에서 귀국을 하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타지에서 보내게 되는 12월 31일이라... 우린 이렇게 호텔방에서 해가 바뀌는걸 그대로 방에서 맞이할 수는 없다 하여 시내에 나가 신년 카운트다운을 하자고 해 호텔에서 전철을 타고 어찌어찌 시내 중심가로 나갔다. 중심거리로 들어가려는데 무슨 전쟁이 났었는지 화약냄새가 가득한 데다 뿌연 연기들... 정말 전쟁이 난 건가... 하는 의문이 들정도로 화약냄새와 연기가 그득했다. 아마도 거리에서 대단한 폭죽놀이를 한 것 같았다. 아직 카운트 다운도 안 했는데... 어쨌든 우리는 시내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또는 길에서 해가 바뀌는 카운트 다운을 모르는 사람들과 해외에서 맞이할 꿈에 부풀어 그렇게 거리를 걸어가는데 저 멀리 중심가 화려한 불빛이 보이고 발걸음을 더 빠르게 옮겨 가는데 저 길 건너편에서 대여섯? 쫌 더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일군의 청년들이 술에 취해 뭐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길거리에서 난동을 피우는 건지... 하여간 그랬다.
우린 길을 건너려는 찰나였고... 몇 발자국 길에 발을 놓은 순간 좀 가까이 그들이 보이는데 머리를 빡빡 밀고 가죽재킷 같은 걸 입은 청년들이 술에 취한 채 손엔 술병을 들고 있다가 우릴 보더니 뭐라 뭐라 소릴 지르며 우리에게 술병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지만 너무 무서워 잽싸게 다시 되돌아와 길 건너편으로 다시 왔는데 이들은 우릴 쫓아올 것처럼 길을 건너오며 소리를 질러대는데 역시 술병을 들고 온다.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워 일단 피해 큰길로 달려가 마침 햄버거집(맥도널드였던가?)이 보이길래 무작정 그곳으로 피해 들어갔다. 그때시간이 11시 좀 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쫓겨 들어간 그 맥도널드에서는 문 닫을 시간이니 나가라고 하는 건지 뭐라 하는데 영어인지 독일어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우리가 다급한 소리로 도와달라 하니 의아해하는데 우리가 다급한 표정으로 저 밖을 가리키며 '누가 쫓아온다' 뭐 하여간 영어반 한국어 반 다급하게 애원하듯 했더니 알았다며 자리에 앉으라 하는데 마침 테이블에 어떤 손님도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잠시 몸을 피하고 나와 두리번거리며 시내로 가는데(사실 방향도 모르고 어디가 중심가인지... 어디서 카운트 다운을 하는지도 모르고) 저 길 모퉁이쯤 또 일련의 청년들이 모여 있는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역시 겁이 나서 주저하며 다른 길로 가려는데 그들이 또 우릴 보더니 술병을 던지는데 아마도 그들 같았다. 그들은 동양인들을 공격하는 극우파 스킨헤드족들이라 했다.(나중에 알았다) 또다시 그들에게 쫓겨 달아나는데 이번엔 애들이 숫자가 좀 늘었고 병을 던지며 쫓아오는데 더 급박한 상황이 되었다. 환장하겠다. 그런데 마침 커다란 맥줏집... 우리나라 맥줏집 벽에 걸려있는 독일의 큰 맥줏집 같은 게 보였다. 당장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찼고 이야기 소리가 엄청 큰 소음으로 웅성웅성거리며 공명소리로 들리는... 하여간 엄청 큰 술집이었다.
들어가 자릴 잡고 보니 우리들끼리 이야기소리도 잘 안 들리는 듯했다. 우린 일부러 안쪽으로 자릴 잡고 앉아 그들이 더 이상 좇아오지 않는다는 걸 보고는 안심하고 술을 시켰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나가면 그들이 떠났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사실 걱정이 되는데... 그때마침 옆자리 건장한 아저씨 손님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느냐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반갑다며 말을 붙이며 아는 체를 해주었고 쪽팔리지만 밖의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그들이 한숨을 쉬며... 그네들이 스킨 헤드족이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이라 한다. 그리고 나갈 때 자기네들이 같이 나가주겠다고 하며 우릴 위로해 주는데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어디든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도 있기 마련인 것 같았다. 그렇게 그 맥주집에서 그야말로 처음으로 시간이 지나 해가 바뀌는 카운트 다운을 모르는 다른 나라사람들과 함께 했고 그렇게 그 술집에서 새해 2006년을 맞이했다. 나올 땐 옆 자리 덩치 큰 아저씨들이 오늘은 심야 운행하는 전철역까지 데려다주고 우리가 전철역으로 들어갈 때까지 우릴 봐주고 있었다. 우린 뒤를 돌아보고 그들이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며 땡큐를 외쳐댔다.
'당케 쉔~~'도...
(그런데 몇 년 세월이 흐르고 일행들을 만나 이야길 해보니 서로의 기억이 달랐다. 나는 심야전철을 타고 왔다고 기억하는데 두 명은 택시를 타고 갔다고 했고 한 명은 기억이 헷갈린다고 했다. 술을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오래돼서 그런지 각자의 기억이 달랐다. 어쨌든 공통적인 기억은 그 아저씨들이 우릴 데리고 나왔다는 것은 같은 기억이었다.)
*좀 다른 이야기로...
당시 동서독이 통일이 되고 십년이 지났어도 구 동독지역은 개발도 덜되고 양질의 일자리도 없고 그러다 보니 구 동독지역의 일부 젊은이들은 네오나치 또는 급진 우경화되기도 하고 독일의 젊은이들 중 스킨헤드족이라는 외모에 외국인들을 공격하고 혐오하는 일군의 무리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때 그 일이 있은 후 관심으로 찾아본 책이나 자료들에 의하면 독일은 외국인 혐오 발언이나 행동은 처벌받는다고 했고 우경화된 나치식 경례나 국가주의를 표방하거나 하면(심지어 국가 제창이나 국기에 대한 경례, 맹세 등도 잘하지 않는다 하고)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대개는 스포츠행사, 국가기념일, 외교. 국제 행사등에서 국가 연주가 있으나 이는 3절만 허용이 되고 가사 내용상 1,2절은 민족주의를 상징하기에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공연이나 때로 1,2절이 불려지면 비판을 받는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정기적으로 제창한다거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강제하지도 않는다고... 그 후 몇 번의 여론조사등을 거쳤지만 아직도 국민들의 의식은 이런 국가주의, 국기, 국가에 대한 강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며 그와는 반대로 극우파들이 늘어나는 것은 또 다른 현상이며 일전에 독일에서 온 외국인이 한국의 국기대한 경례나 국가 제창들을 보며 놀랐다는 기사를 읽은 게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가 80년대 한때 길을 가다가도 국기 하강식이 있다는 방송이 나오면 일제 서서 국기 쪽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 길가에 서 있었던 기억과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 애국가가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를 본 독일인이었던 것 같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처럼... 간혹 외국에서 한국의 국기를 보거나 상징하는 것들을 보게 되면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과거 군사정권처럼 그런 의식이나 절차 등을 강제하고 애국심을 강요하면 오히려 반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