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기억의 소환

세 친구 이야기- 2

by James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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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86W0r_V9i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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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건 세월은 누구나 공평했고 셋은 각자 다른 길에서 살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그사이 S는 여러 번의 부침 끝에 재혼하여 다시 가정을 일구었고

서울 인근 도시에서 다시 공업사를 차린건지 다닌다는 건지...

아무튼 다시 평온한 일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S와 K는 자주 만났다.

둘은 다른 듯하면서도 공통점이 많기도 했고 장남이라는 무게를 지고 가는 같은 처지에

일찍 사회생활을 하며 고생했지만 중년을 넘기며 나름 그 고생의 끝을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었다. 이제 어깨에 짐이 가벼워지는 듯해서...

나는 때론 S와 때론 K와 만나 술을 마셨다.

간혹 셋이 만나서 마시기도 했다.

S는 여전히 말술을 마셨고 K는 술을 조금만 마셨다.

둘은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서로서로의 입장에서 도와주는 아름다운 중년의 우정을 보여주었다.


또 세월이 흘렀다.

중년을 넘어 어느새 노년기에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러는 사이 S는 제주로 내려가 산다는 연락이 왔고

2020년 은퇴를 한 K와 나는 제주에 내려가 몇십 년 만에 셋은 밤새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며

국민학교 동창의 시절로 되돌아갈 마음으로 들떠있었다.

그렇게 S가 있는 제주로 갔다. K와 함께...

2021년이었다.

강북 변두리에서 태어나거나 자라거나 했던 코 찔찔이 셋이

어느새 60을 넘기고 머리 희끗희끗한 노인의 입구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그전 그러니까 은퇴 전 안식년 휴직을 1년간 할 때

제주에서 1달 살이를 해본 K는 제주살이 몇 년을 한 S보다 훨씬 잘 알았다.

우리는 K의 안내로 돌아다녔다.

맛집이나 명소들을...

내가 제주 사는 너보다 어째 외지인인 K가 더 잘 아냐고 S에게 타박을 하니

S는 '나는 살러 내려왔고 저 녀석은 놀러 와서 경험한 거니 당연하게 아니냐'라고 내게 따졌다.

그렇구나.... 하며 웃었다.

첫날 제주 해안가 어느 횟집에서 술을 마시며 예의 지난 이야기를 하며

서로 코 찔찔이 시절을 떠 올리며 놀려대는 흐뭇한 시간이 가고

막판... S가 또다시 대화를 얼어붙게 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절반이 빨갱이들이라 나라가 어찌 될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 들을 다 잡아넣어야 한다'라고...

그는 아직도 무슨 피해의식인지... 그런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고

헤어 나올 수 없는 어떤 곳에 더 깊게 빠진 듯했다.

그는 '소위 배운 것들이 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드니 자기 같은 기름밥을 먹는 놈들은 아직도 이렇게 산다'라며

억울해했다.

그러면서 싸잡아 우리 둘에게 '너희는 맨날 펜대나 만지고 살고 책상에 앉아 있던 놈들이니 모른다'며...

'세상이 불공평하고 이게 다 빨갱이들을 제대로 때려잡지 못해 세상이 이렇게 되었노라'라고 열을 올렸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한 개도 받아들이 상태가 아니었다.

'이미 우리나라는 망할 지경이고 자기 같은 놈들은 60이 넘어도 이 고생이고...

김정은 편에선 국회의원들을 싹 잡아가둬야 한다'라고 핏대를 올렸다.

'이게 다 김대중이 이렇게 만든 거다. 빨갱이 김대중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라고 욕을 해댔다.

그 어떤 말도 들을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원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면 나는 나가 싸울 것이다.

탱크로 밀고 들어온다 해도!!"


숙소로 와 술을 한잔 더 했는지 어쨌는지...

다음날을 어찌어찌 보내고 셋째 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둘은 제주에 남았다.

나는 은퇴하고 시골에 내려와 재취업해서 또 직장을 다니느라 2박 3일로 간 것이고

은퇴하고 제대로 백수인 K는 며칠 더 있다 또 다른 일행과 제주에서 합류하기 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남았다.

그런데 다음날 밤... 둘에게 전화가 왔다.

K가 먼저였는지 S가 먼저였는지... 둘은 내게 전화로 하소연을 했다.

둘은 내가 가고 난 후 심하게 다툰 것 같았는데 아무튼 둘 다 내가 보기엔

시시하고 유치한 걸로 다툼을 했고

서로 화가 잔뜩 난 상태로 내게 전화해서 서로를 향해 서운한 감정을 쏟아 내는데...

S는... 이러했다.

"너희는 어쨌든 은퇴하고 연금도 나오고... 그 연금으로 이렇게 여행도 다니고 편히 사는 거 아니냐...

난 60 넘었어도 먹고살기 위해 제주까지 내려와 기름밥을 먹고사는데... "

뭐 이런 받아들일 수 없지만 안타까운 하소연이 나왔고

그런데 '쩨쩨하게 K는 자기가 가져온 양주를 풀지도 않고 나를 업신여긴다... 더러워 못살겠다... '

라며 끝도 없는 한탄을 해댔다.

무슨 말을 하랴... 나는 그냥 듣기만 했다.

K의 전화도 왔다.

K도 나름 섭섭하고 화가 나는 일을 시시콜콜 내게 일러바치듯 쏟아 냈다.

역시 듣기만 했다.

그리고 K는 당장 내일이라도 제주를 떠날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어릴 때부터 예의 발랐던 S는 동네 애들이 몰려다니며

소소한 나쁜 짓을 하거나 쌈질할 때도 그러지 않은 아이였다.

덩치는 크고 얼굴도 시커먼 완전 컨츄리 스타일의 외모였지만 욕도 잘하지 않았다.

S는 그의 누나와 여동생 남동생들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그에겐 암에 걸린 어머니와 연로하신 아버님만 남았다.

그 또한 당시 기술이민으로 신청하여 비자가 나왔을 때...

아버님을 모시느라 미국행을 포기하고 남아 아버님, 어머님을 모시다 두 분 상까지 다 치렀다.

그런 순둥이였던 그는 덩치에 비해 소심한데

그는 단지 술만 마시면 버튼이 눌려지고 그 결과는 언제나 빨갱이 타령이 그의 주사였다.

그야말로 그는 주사파였다. 누가 뭐래도...

제주에서 술을 마실 땐 예전의 1/3 정도 마시고 주사가 나왔고

다음날 그 정도에도 숙취로 고생을 하는 그를 보며

천하장사도 세월 앞에... 못 버텨내는구나... 생각을 했다.

그의 어깨에 내린 세월은 더 무거운 세월이었을까?

우린 그렇게 강북 변두리에서 자라나 이제 각자의 길에서 머리 희끗희끗해지며 늙어간다.

잘 늙었으면 좋겠는데...

몸뿐 아니라 마음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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