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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아저씨 Jan 02. 2024

3. 일리야 레핀

-뜨거운 어느 날 내 머리를 울린...

이 이야기 들에 나오는 분들은 내게 문화적 영향을 준 사람들입니다

좀 더 이야기하자면 내 코드가 맞는 사람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내 영혼의 팬? 

그냥 쉽게...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들은 나의 십 대 말부터 지금까지 내 감성의 심연에 들어온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음악, 미술, 문학, 혁명가, 대중예술, 스포츠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글들입니다

그래서 깊이 없는 그저 내 감정, 내 마음대로 쓴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 둡니다.


                         세 번째: 일리야 레핀

1884~1930


1996년 초 여름의 토요일 어느 날... 종각역에서 갤러리를 찾아 청계천 쪽으로 걸어가며 현기증과 함께 토할 것 같은 울렁임이 있어 한동안 건물 그늘에서 쉬다 쉬다 찾아간 동아갤러리... 전날 마신 술로 아직도 술이 덜 깬 상태로 땡볕을 걷다 보니 아직도 남아 있던 취기가 올라와 속이 울렁거리며 토할 것 같은 상태로 겨우 찾아간 기억....  그렇게 만난 '일리야 레핀'

지금도 그 갤러리가 있을지 모르지만(동아그룹 해체 후 아마도 없어졌을) 보통 재벌들은 갤러리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데 대개는 그 사모님들의 우아한 취미를 살려 고상한 업종(?)으로 아마도 갤러리가 제격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모든 사모님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당시 이 미술관은 펄시스터스의 언니인 배인순 씨가 관장이었다.


일단 들어서는 순간 서늘하고 약간은 어둡던 느낌의(내 기억만 그랬는지 실제 어두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갤러리에서 처음 내 발걸음은 무겁고 처진 상태로 그림들을 지나쳤었던 기억... 그러다 멈춰 선 곳이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일리야 레핀, '볼가강의 배 끄는 사람들 Barge Haulers on the Volga' (tistory.com)이었는데 그 앞에서 서서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건 그림 속 인부들의 퀭한 눈이 내 눈과 마주쳤고 추레한 옷차림과 힘겨운 그들의 몸동작이 내 발걸음이 더 이상 옮기지 못하게 한 것 같았다. 

아니, 숙취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몇 걸음 못 가 화장실에서 나는 결국 어제의 나를 다 토하고 말았다.


다시 심기일전하여... 그림으로 다가갔다.

그 후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타나는 그림들에 얼어붙어 발길이 멈춘 듯 느꼈는데 자주 전시회를 다니는 건 아니었지만 그림들에 발걸음이 지척대는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보도에서 보았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사실 이 그림 때문에 간 것이다)를 보고 역시 한동안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전시를 소개하는 보도에서 본 그림과 제목은 같았는데 다른 그림이어서 의아하기도 

했는데 그 그림 말고 또 똑같은 제목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가 나왔다.

이게 보도에서 본 그 그림이었다.

하나는 좀 대작인 편에 속한 그림이고 하나는 작은 그림이었던 기억인데... 그 주제나 그림에서의 구도는 똑같았으나 등장인물만 달랐고 분위기도 비슷했다. 하지만 두 그림 다 너무나 선명한 주제가 다 드러나는 게 놀라는 가족들의 표정에서 정말 내가 겪고 있는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혁명기로 웬만한 지식인들은 혁명에 참가하러 집을 떠났다가 잡혀 투옥되거나 유배되거나 

했는데 그렇게 소식이 두절된 가족이 갑자기 등장하자 집에 있던 가족들이 놀라는 상황에서의 표정들이 정말 

압권이었다. 이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다행히 도록이 남아 있어 그 그림들을 찾아보니 역시 내 기억이 그대로 도록에 있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두 작품- 왼쪽 1884년작, 오른쪽 1883년작

왼쪽 그림 속에 등장하는 남자를 보자 의자에서 일어나 놀라는 자녀(추정)와 겁에 질린 것 같은 아이의 표정에서 당시의 상황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연락이 두절된 채 꽤 오랜 세월을 살았을 가족들에게 갑작스럽게 등장한 주인공은 이 가족에겐 기다리지 않던 사람의 등장이고 오히려 공포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른쪽 그림도 구도는 똑같다. 다만 등장인물이 여자이고 놀라는 동생들(도록에 동생들로 나와 있음)의 숫자가 적을 뿐... 분위기도 똑같다. 당시 러시아 혁명기에 아마도 많은 가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독립운동하러 만주로 떠난 아버지나 가족들이 일경의 눈을 피해 아마도 밤중에 몰래 집을 방문하거나 오랜 투옥 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으니 그걸 그림으로 그렸다면 이런 분위기 그림이 나왔을까?


1844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레핀은 미술에 재능을 보여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 당시 러시아 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모순들을 사실주의적인 묘사를 통하여 민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러시아전역을 여행하며 궁핍하고 고통받는 민중들의 모습을 그렸다. 또한 초상화도 많이 그렸는데 톨스토이 등 저명한 러시아 문학가들은 물론이고 왕족과 귀족, 우아한 상류사회의 인사들이 레핀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니 상반된 활동에 의아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레핀은 사회주의 운동에는 큰 관여를 하지 않았고 

그림으로서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실천했던 것 같은데 차르체제가 무너지고 성립된 소련은 이미 그를 미술계의 주요 인사로 올려놓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가로 칭송했다.

그런 그는 50대 때 핀란드로 이주하여 나머지 일생을 거기서 살다 1930년 86세로 그곳에서 사망했는데 소련정권에서 수차례 귀국하라고 권유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사망할 때까지 핀란드에서 살았다.

도록에는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다른 글에서 보니 레핀의 정치적 성향이 소련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다고 하고 2월 혁명당시 차르체제를 무너뜨리는 데는 찬성했지만 그 후 10월 혁명인 볼셰비키 혁명은  지지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는 글도 있는 걸 봐서는 귀국하지 않은 이유가 그래서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작품 전시회를 하기도 했고 당국에 그의 작품 몇 점도 기증했다고 하는 걸 보니 소련당국과는 척을 지지 않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레핀의 화풍이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고 한국에서도 레핀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유학파 화가들은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있다고 한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를 보면 이런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 작품이라고 나오는데... 그렇게 말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무엇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그대로 따르는 북한의 작품을 보면 레핀의 화풍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 같았다. 한국의 러시아 유학파 화가 작품들 그리고.. - 디지털 사진 마이너 갤러리 (dcinside.com)


일리야 레핀의 작품 중 눈빛이 유독 강렬하고 무서운 그림이 있는데 '1698년 노보제 비치 수녀원에 감금된 지 일 년 뒤의 소피아 알렉세예브나 황녀, 그녀의 친위대가 처형당하고 시녀 전부가 고문을 당하고 있을 때'라는 긴 배경설명을 담고 있는 작품에 나오는 알렉세이예브나 황녀의 표정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눈빛을 그리고 

있는데 상황을 알고(제목에 설명이 다 되어 있음) 보면 그 눈빛이 이해가 된다.  입을 앙다문 채 눈에서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뜨고 노려보는데 그 눈빛이 너무나 무서워 보이나 그녀의 측근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유배된 채 살아가는 그녀는 아마도 표정이 그러했을 것 같다. 일리야 레핀 :(naver.com)

그리고 충격적인 그림들이 꽤 있었던 기억이 있다. 폭군 이반대제가 아들을 죽이고 피투성이 인 아들을 껴안고 오열하는 그림, 그리고 유쾌하고 코믹한 그림도 있었는데 터키 술탄에게 조롱의 편지를 보내는 카자흐 인들이 그러하다. 또한 드로잉 작품들도 꽤 있었고 무엇보다 초상화가 많았다. 물론 자화상도 꽤 있었다.

훗날 안톤체호프는 '러시아 예술에서 딱 3명만 꼽는다면 러시아 문학의 톨스토이, 러시아 음악의 차이코프스키, 러시아 미술의 레핀'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종각역을 지나 인사동에 들어설 때쯤에야 도록을 사지 않았다는 걸 알고 힘든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돌아가 도록을 사 왔다. 그 도록이 아직도 있다는 게 신기하고

(이사 때 전시회도록과 공연 팸플렛을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도록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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