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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아저씨 Jan 09. 2024

4. 기형도

- 내 마음의 '빈집'

이 이야기 들에 나오는 분들은 내게 문화적 영향을 준 사람들입니다

좀 더 이야기하자면 내 코드가 맞는 사람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내 영혼의 팬? 

그냥 쉽게...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들은 나의 십 대 말부터 지금까지 내 감성의 심연에 들어온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음악, 미술, 문학, 혁명가, 대중예술, 스포츠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글들입니다

그래서 깊이 없는 그저 내 감정, 내 마음대로 쓴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 둡니다.


    

                            4번째:기형도...

1960~1989

천재는 요절을 하는 건가...  일찍 유명을 달리하니 천재 소릴 듣는 건가...

그는 유고시집이 된 '입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집을 발간직전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그의 시는 회자되고 있다.


내가 기형도의 시를 읽고 그로테스크하고 기이한 아름다움에 빠진 것은 서른을 좀 넘긴 때였던 것 같다. 

91년도쯤? 아주 힘든 시기였고 내 영혼은 노곤하다 못해 쓰러질 것 같은 시기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때 가장 왕성한 여러 활동을 한 시기이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들, 모임들... 여러 활동으로 몸은 늘 바쁘게 움직였고 매일 술도 마셨으며 사실상 최고의 날들이었다.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나는 직장이란 데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허우적 댔고 똑같은 일에 똑같은 상황에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의미 없는 일에 지쳐갔다. 하지만 그만 둘 용기도 없고 당시 상황으로는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더 외부 활동에 목을 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몸과 마음이 스러져가는데도 나는 꺼져가는 불꽃을 살리려는 듯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했었다. 

아마도 마음의 도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렸던 것 같았다. 

어쩌면 내 마음에 그 복잡다단한 시기 그의 시가 들어온 건 당연하기도 했다.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 

뒤덤벅이 된 시에 빠진 게 아마 그의 시가 처음 아닌가 싶기도 했고 또 당시는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인물만 

바뀌었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말도 안 되는 노동정책과 경제정책 등으로  어지러운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박노해의 민중 시, 노동 시 들이 나왔을 때였는데 그는 그 시절에 이런 심미주의 적인 시를 썼다.  

사실 그는 연세대(정치외교학과) 시절 학보에 '노마네 마을의 개'를 기고했다가 공안당국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는데 그' 노마네 마을의 개'는 시인지 산문인지 불분명하지만 우리 현대사 상황을 빗댄 글인 것 

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 글은 그야말로 은유와 상징이 뒤범벅이 된, 읽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낼 글 같았다.(언젠가 인터넷에 그 글에 대해 혹평하는 글을 본 것 같다)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작인 시집 '입속의 검은 잎'이 그가 죽은 두 달 뒤인 1989년 5월에 나왔다.

이 시집은 출간 후 매년 쇄를 거듭하여 37만 부가 팔려 시집으로는 베스트셀러이고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중 가장 인기를 끈 시집이라고 한다. 시인 이소호는 '그의 시집은 세상에 아주 밀착됐다. 희망이 절망으로 읽혔고 불행은 분명한 회색이었다'라고 했고 어떤 평에 의하면 '그로테스크하고 약간은 진 회색빛, 어쩌면 병적 정서랄까 하는 것이 보인다'라고 했다. 심지어 그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까지 정의를 했다. 

그래서 빠지는 걸까? 아무튼 그의 시를 좋아하게 된 적절한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빠져들었는데 어쩌면 그 

추상적이고도 그로테스크한 상징으로 표현된 그런 글이 당시의 내정서와 맞아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빈집) 이 구절은 내가 내내 잘 인용한 구절이다.

특히 "잘 있거라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라는 구절은 어딘가 끄적일 때마다 이 구절을 썼다.

얼마 전 캘리그라프를 배우고 첫 작품으로 이 구절을 썼는데  당시 사람들과 선생님이 이 구절이 너무 좋다고 내게 칭찬을 했는데 이게 시구절이라고 했더니... 다들... 어쩐지...라고 뻘쭘한 표정들이 기억난다. 

한 친구가 내게, 기형도를 이야기할 때는 내 눈이 반짝이다가 이내 어둡게 변한다고 했었다. 

그러건 말건 나는 기형도를 핑계로 술을 마시며 위의 구절을 읊조렸다.

살아 있다면 나랑 동갑인 그... 1989년, 아직은 봄이 다 오지 않은 3월 초, 하필 종로의 3류 심야극장에서 

변사함으로 여러 말이 돌기도 했던 그...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로 당선되어 데뷔를 했지만 

스물아홉이라는 짧은 나이게 우리 곁을 떠난 그...  

그런데 그는 그의 가족력에(아버님도 뇌졸중으로 돌아가시고) 평소 나이에 비해 혈압도 높아 

자신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주변인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말이 씨가 된 건지... 

허망 그 자체로 갔다.  그래도 그렇지 서른도 안된 나이에...


그가 유년기를 보내고 죽을 때까지 생활했던 광명에는 2017년 '기형도 문학관'이 생겼는데 사실 여길 가보리라... 가보리라... 몇 번 다짐하면서도 아직 한 번도 가지 못했는데 이건 좀 소심한 반항(?) 같은 기질이 있어서 인데... 오래전 제주도에 이중섭 미술관이 생겨 정말 벼르고 별러 가보았더니 생각만큼, 기대만큼 그의 기념관이라 하기에 너무 초라했고 화가 나는 느낌에... 혹시 기형도 문학관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소심함에 선뜻 

가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다행히도 이 문학관은 '기형도 기념사업회'와 '광명문화원', '광명 도서관'들과 함께 여러 가지 행사를 했고 다녀간 사람도 6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잘 관리가 되는 것 같다. 그의 친누가가 명예 관장이라고 한다.


그의 시집은 첫 권인 '입속의 검은 잎'(1989)이고 

산문을 모아 '짧은 여행의 기록'(1990)이 나왔고 

그 후 미 발표 유고 시를 모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1994)가 나왔고 

이것들을 정리하여 모은 '기형도 전집'(1999)이 나왔다.


나는 한때 술만 취하면 그의 시구절을 되뇌곤 했었다. " 잘 있거라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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