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gomi Feb 18. 2019

지금 어디야?

잼고미의 여섯 번째 고민해 보고서

잠시만 연락이 안 돼도 힘들어요"


단짝이, 연인이, 배우자가 나랑 딱딱 맞아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 심심할 때 딱! 와주고, 나 바쁠 때 딱! 가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참 드뭅니다, 그죠? 늘 한 끗 빗나가서 이런저런 소소한 다툼의 빌미가 됩니다. 그중에서 최고는 연락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나 궁금할 때 딱! 연락 오고, 나 물었을 때 딱! 대답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잘 안 그러죠. 그럴 때 어떻습니까? 문자 했는데 답도 없고 전화해도 안 받고 그렇게 답답하게 한참이 지나면, 슬금슬금 짜증이 올라옵니다. 짜증은 어느 순간 걱정으로 옮아갑니다. 손가락이 삐었나 하는 관용구가 진짜일 것 같아집니다. 큰 일이라도 난 것 같아 이제 불안합니다. 그렇게 조바심 내면서 동동거리고 있는데, 태연하게 연락이 오면 어떻게 되나요? 팍 터지는 거죠, 주로. 걱정과 불안이 고스란히 화가 되어 버립니다. 상대는 그게 참 느닷없을 겁니다, 나랑 같은 시간을 지나온 것이 아니니까요. 음... 관계에 좋을 게 하나 없겠습니다. 

어쩌면 연락에 대한 이번 고민은 좀 익숙한 거라, 어찌하는 게 현실적으로 더 나은 건지, 답들이 다들 좀 있으실 것 같습니다. '대승적으로다가 신경 끊고 너도 니 일 해라' 뭐 그런 연애 조언 많이 오가니까요. 하여! 고민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생각, 고민해 보고서는 (흠흠!) 상담 사례를 하나 들어서 고민에 한걸음 더 들어가 볼까 합니다. 


“신혼 초에 저는 남편한테 자주 삐져 있었습니다. 늦는 날 연락을 잘 안 해줘서요. 남편이 늦는 날 저는 마음이 되게 힘들었습니다. 이상한 일에 연루되거나 어디서 쓰러졌거나 차사고라도 났나 싶어서 조바심이 났습니다.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제 상상 속에서 남편은 열두 번도 더 죽었을 겁니다. 재촉하고 안달하는 것 같아 보이긴 싫어 자꾸 전화할 수도 없고, 혼자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안절부절못하곤 했습니다."


이런 경우, 상대방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구하는 게 우선일 겁니다. 이 분도 그랬습니다. 남편도 도움이 되려고 나름 열심히 연락을 챙겨줬답니다. 그러면서 좀 괜찮아진다 했는데, 언젠가부터 다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투덜대며 연락하는 모습을 상상하게도 되고, 문자가 진짠가 생각도 하고, 오기로 한 시간에서 조금만 어긋나면 되려 더 겁이 나고, 그렇게 힘든 마음은 똑같더라는 겁니다


이런 식의 전개라면 불안감 자체를 다룰 때입니다. 초점을 자신에게 돌려서 불안한 마음 자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무작정 자라는 불안감에 일단 손을 좀 써봐야 할 텐데, 사례의 다음 부분에서 힌트를 좀 얻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젠, 그게 다 내 속에 있는 거라는 걸 좀 알아요. 불안을 내가 만드는 거구나 생각하죠. 상상이 파국으로 치달을 때는 그게 상상임을 스스로 주지시키는 기술도 씁니다. 꿈속에서 이건 꿈이다 하는 것 같은 거예요. 그렇게 하면 핸드폰 들었다 놨다 하는 대신 다른 할 일을 찾아보려고 해요. 여전히 신경은 시계에 좀 가 있지만, 불안한 마음은 좀 누그러진다고 해야 하나, 시간을 견디는 방법을 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게 좀 달라졌습니다.”


아마도 저게 불안감을 다스리는 전형적인 방법일 겁니다. 한없이 망해가는 생각을 멈추고, 그것이 그저 생각임을 확인하는 것이죠. 그 생각과 얽혀있는 불안감을 당장의 감정으로 지목하고 의식적으로 불안에서 빠져나오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좀 더 현실감 있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좀 더 합리적인 방식의 대응을 할 수 있게 되구요. 감정에 휘둘려 바라지 않는 행동을 저지르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겁니다. 


몸에 밴 생각의 흐름을 바꾸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몸에 밴 생각의 흐름은 말라버린 진흙길에 패인 바퀴 자국 같아서, 그냥 가다 보면 늘 그 자국을 따라 달리게 되거든요. 바퀴 자국을 벗어나 다른 길로 달리려면, 힘주어 핸들을 틀어야 하고, 또, 다시 자국에 빠지지 않게 핸들을 꽉 잡고 버터야 합니다. 사례를 마저 볼까요? 그 바퀴 자국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회사일로 바쁜 엄마랑 둘이 살았어요. 가만 보면 남편에 대한 저의 불안감은 그 시절의 마음이랑 이어지는 것 같아요. 나간 사람이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그 황망함, 울타리를 잃은 삶의 불안함, 혼자 있는 무료한 기다림, 외로움... 그런 어릴 적 제 마음이 남편의 연락을 기다릴 때의 마음과 참 닮아 있었어요. 생각이 이쯤에 닿고 나서야 진짜 뭔가 달라진 것 같았어요. 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불안감을 떨치려도 안감힘을 쓰는 일은 좀 없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가 가라앉아요." 


반복되는 생각의 흐름이 있거나 강렬하게 경험하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에는 어떤 근원이 있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 심리 상태의 근본적인 변화는 그 근원을 다독였을 때 오기 쉽습니다. 하여, 어떤 상황에서 감정에 심하게 휘둘리지 않을 만큼 단련이 좀 되었다면, 차근차근 내 속에 더 깊은 곳을 보려는 시도를 해 보시길 당부합니다. 앞서 말한 바퀴 자국이 어떻게 생기게 됐는지 보는 것과 같습니다. 전문 상담심리사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고, 아니면 여러 책을 보며 따라가 봐도 좋겠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내면에 초점을 두고 깊이 천천히 세세히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진지하고 꾸준한 성찰만 한 게 없으니까요. 


근데 다 쓰고 보니, 이번 보고서는 너무 무겁게 들립니다. 고민을 제가 너무 심각하게 봤나? 사례를 괜히 들었을까요? 고민을 다루더라도 생기를 잃지 않겠다는 게 고민해보고서의 다짐인데, 이번엔 좀 영... ㅠㅠ 이러다 담부터 아무도 안 봐주는 거 아닐까요? 보고서 중단해라 댓글 막 붙고? 브런치에서 쫓겨나고 막? 아아아아 클났다. 

...라고 불안감 만땅 돼서,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썼다 지웠다 안절부절... 그러면 안 되겠죠? 일단 망하는 상상을 멈추고, 습습 후후 라마즈 호흡을 시전 하면서, 저건 그저 내 상상이다 정신을 수습하고, 훅 올려 버려야겠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귤잼이나 한 술 퍼먹으며, 나는 글 올리는 게 왜 이리 겁나나 차분히 생각 좀 해볼까 합니다. 


(진짜 악플을 부를 이런 작위적인 엔딩...  하아... 다시 쓸까...)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 오지랖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