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국밥집 사장님이 질문에 답했다
식당에 가면 사장님들의 표정을 본다.
혼밥을 자주 하니까 자연스레 일하는 분들에게 눈길이 간다.
조직심리학 박사가 되고 나니 이제는 얼굴에서 일과의 관계가 보인다. 직업병이다.
화요일 저녁, 삼성동의 인기 치킨집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을 받는 사장님 표정이 즐겁다. 신나는 얼굴.
수요일 점심, 여의도 빌딩 지하 백반집. 오후 2시여서 그런지 피곤해 보이신다.
월요일 오후, 동네 시장 단골 죽집. 씩씩한 여사장님. 표정에서는 뭔가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수요일 저녁 아현역 근처, 30년이 넘은 국밥집. '처음인데요' 하자 사장님이 메뉴를 추천하시며 말씀하셨다. "만족하실 겁니다. 허허허." 과연 30년 동안 같은 일을 하신 이유가 있네 싶었다.
그 분들의 속마음은 모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일과 관계를 맺고 계실 것이다.
본인의 일에 각자의 의미를 부여하고 계실 것이다.
6년 전 대학원에 들어가고자 교수님을 찾아뵈었을 때, "무슨 연구를 하고 싶어요?"란 질문에 말문이 막혔었다.
약대를 나와 제약회사만 다니던 이과생에게는 외국어 같은 질문이었다.
알고 보니 교수님의 핵심 연구 주제는 소명(calling)이었다.
당시 스스로를 생계형 직장인이라 여겼기에 나와는 아주 거리가 먼 주제라고 생각했었다.
소명과 관련해서 심리학에서는 몇 가지 소명의 종류를 제시하고 있다(Hart & Hart, 2023).
신이나 사회적 의무처럼 외부에서 부름을 받는 소명은 전통적인 클래식 콜링(classic calling)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모던 콜링(modern calling)이라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나를 표현하는 일"처럼 부름의 원천이 내면에 있는 소명이 등장했다.
치킨집 사장님은 어쩌면 모던 콜링에 가깝고, 백반집 사장님은 어느 쪽도 소명은 없으실지도 모른다.
그런데 국밥집 사장님을 보면 그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30년이면 시작이 뭐였든 상관없다.
주어진 일이었든, 선택한 일이었든, "만족하실 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왔다.
잡 크래프팅(job crafting) 관점으로 해석하면 이 과정은 인지 크래프팅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 "만족하실 겁니다."라는 한 마디에서 의미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노포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맛? 물론이다. 하지만 맛 때문만은 아니다.
30년, 40년, 한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해온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닐까?
소명이든 자부심이든 집념이라 부르든, 그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20년 동안 6개 회사를 옮겨 다닌 나는, 특히 한 자리를 지키는 분들이 참 존경스러웠다.
국밥집 사장님처럼 매일 반복하는 일을 즐길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는 스스로 의미와 재미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그 일에 오래 머물고 있다면. 분명 의미 조각이 있을 것이다.
아직 이름이 붙지 않았다면, 내 삶에 일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당신의 하루는 한층 가볍고 당당할 것이다.
당신은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나요?
사람을 바꾸지 않습니다. 일하는 방식을 디자인합니다.
Easier & Merr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