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가르치기 전에 나나 잘 하자
금요일 아침, 커뮤니티(채팅방)에 설문조사를 요청하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회사에서 AI를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조사하는 설문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커뮤니티는 IT 서비스의 PM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사람들은 '설문이 얼마나 잘 구성되었는가'에 대해 한마디씩 평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설문을 하다보니 이런 것들이 좀 불편하더라구요' 정도의 이야기였지만, 점차 '설문 설계 자체가 잘못되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답변이 너무 한정적이다' 등의 지적이 올라왔다. 설문을 올린 분은 하나하나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이모지를 누르고, '조언에 감사하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여기는 익명의 채팅방이고, 공통된 주제로 모였지만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요즘 유행하는 '커뮤니티에 사는 사람' 밈처럼, 상대가 조언을 할 만한 사람인지 혹은 조언을 받을 만한 사람인지 판단할 수 없다. 실제로 이 채팅방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회사생활과 이직에 대한 고민에 열심히 조언을 해주던 분이 사실 이직 경험도 없는 1년차였고, 조언을 구한 분은 8년차 프로 이직러였다. 현실에서도 이런 상황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요즘 스스로 꼰대력이 올라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장 조심하려는 것이 '상대가 요청하지 않은 조언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상대가 요청하지 않은 조언을 하는 것이, 특히 다수가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무례한 조언과 함께 은근한 올려치기와 내려치기가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대화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내려쳐지기 않기 위해 한 마디씩 보태다보면 어느새 그 대열에 합류해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거나, 화제를 전환할 수 있는 대화 거리를 생각해 가기도 한다. 여전히 가끔 집에 돌아와서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최대한 말을 아끼고 오히려 경청해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내가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는 입장인지도 솔직하게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아쉽게도 온라인을 포함한 많은 상황에서 상대의 맥락을 충분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성급한 조언은 99% 확률로 나에게 이불킥을 선물한다.
가끔은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이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최고의 도움이다.
프로조언러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나 포함)
"너나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