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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er Oct 28. 2021

무스펙 백수가 되어 돌아온 그 여자의 사정

프롤로그. 무스펙 백수의 한국 취업시장 입문기  




최근 한국에서 대기업 공채가 없어지면서 공기업 경쟁률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라떼도 공기업에 들어가기 힘들었지만, 요즘은 예전보다 훨씬 더 힘들어진 것 같다.



5년 전 일본 회사를 때려치우고 한국에서 취업준비를 할 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후배 세대들은 조금 더 수월하게 취업할 수 있길 바랬는데 1000대 1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서울 본사에서 근무할 때는 종종 인턴 면접에 면접관으로 참여하곤 했었다.

면접을 볼 때마다 지원자들의 후들후들한 스펙에 놀라 나자빠졌던 기억이 있다.

만점에 가까운 토익 점수에 해외 어학연수 경험에 온갖 자격증까지..

우리나라 취준생들은 마치 초고사양 스펙을 가진 슈퍼 컴퓨터 같다. 

다들 스펙이 뛰어난 인재들이지만, 제한된 자리로 인해 대다수의 지원자분들께는 불합격 통보를 드려야 했다. 불합격 연락을 드릴 때마다 힘들었던 내 취준생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쓰렸다.


" 귀하의 우수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제한된 선발 인원으로 인해 아쉽게도 이번 기회에는 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취준생 시절 나를 가장 빡치게 만들었던 멘트를 내가 직접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역량이 우수하면 뽑아야지 왜 떨어뜨려놓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면접관 입장이 되니 저 말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나라 취준생들은 실제로 과할 정도로 스펙이 좋다. 영어도 너무 잘하고 OA스킬도 뛰어나고 말도 잘한다. 우리 회사에 최근 들어온 신입사원들도 정말 스마트하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좋은 직장'에서 채용할 수 있는 인원에는 제한이 있다. 다 모시고 싶어도 모실 수가 없다. 스펙이 부족해서 떨어뜨리는 게 아니다.


나도 취준생 시절,

웬만한 대기업에는 전부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넣는 족족 탈락의 고배를 맛봤다.

내 입으로 말하기 수치스럽지만, 나는 대기업 서류전형에서 ALL 광탈했다.

 

한국에선 완전 듣보잡 일본 대학 출신

2점 초반대 학점

무스펙 5관왕(인턴·수상경력·OA 자격증·어학연수·대외경험無)


객관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취준생에 비해 내 스펙이 많이.. 부족했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스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정확하겠다.

그래도 어찌어찌 공기업에 취업해서 지금은 내 밥벌이는 하고 산다.


나의 미천한 경험이 한국에 계신 취준생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가슴 한편에 고이 간직해뒀던 취준 시절 흑역사를 조심스럽게 꺼내보려고 한다.







Intro. 무스펙 백수가 되어 돌아온 그 여자의 사정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나는 일본 대학을 4년 만에 칼 졸업하고

일본의 모 대기업에 취직했다.

일본은 지금도 취업 호황기지만, 당시에도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한국에 비해 대기업에 들어가기 훨씬 수월했다.

안정적이고 복지도 좋은 직장이었지만 업무가 적성에 너무 맞지 않아서 매일이 괴로웠다.

그렇게 딱 1년을 채우고 퇴사한 후

2016년 4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주변 한국인 선배들로부터 한국의 취업난에 대해서 익히 전해 들었던 터라 걱정을 많이 하긴 했다.

일본에 질려서 한국으로 돌아갔던 선배들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재취업하는  보며 한국 취업시장이 만만치 않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일본 대기업은 학점, 영어점수, 대외 경력, 자격증 등 스펙을 일절 묻지 않는다. 

자소서와 형식상의 인적성 시험, 동아리 활동 등 조직생활 경험을 중시하며,

지원자의 당장의 스펙이 아닌 인성과 잠재력을 보고 채용한다.


나는 대학시절 주 6회 검도부 활동과 알바에 내 노력과 시간을 몰빵 했기 때문에

학점이 졸업 조건을 겨우 만족시키는 2점 초반대였고, 영어점수와 자격증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도 그 상태로 일본 대기업 서류 전형에 통과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과 달리 학점은 물론이고, 영어점수, 대외 경력, 자격증,  해외 어학연수 경험에 인턴 경력까지 본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 내 스펙으론 한국에서 대기업은커녕 중소기업도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기에, 주변 한국인 친구들이 다 뜯어말렸는데도 아무런 대책 없이 일단 귀국을 강행했다.


1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많이 모으진 못했다.

일본 회사는 초봉이 짜기 때문에 대기업이라도 월 실수령이 한국 돈으로 약 160만 원 정도였다.

(교통비, 회사 기숙사 비용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160만 원으로도 생활은 가능하다.)

당시 생각 없이 살아서 저축을 거의 하지 않았던 터라 퇴직금 600만 원을 포함해서 1,600만 원 조금 안되게 가지고 퇴사를 했다.


남의 돈을 벌긴 어려워도 쓰는 건 왜 이리 쉬운지...

월급 받을 때의 소비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일본에서 모아 온 돈을 정말 빠른 시간에 소진했다.

툭하면 친구랑 맥주를 마시러 가고, 티켓값이 10만 원씩 하는 콘서트도 자주 다녔다.

엄마 눈치가 보여서 마냥 놀기만 할 순 없으니 토익학원과 자격증 시험 인강을 등록하긴 했다.

인강이나 학원 비용도 만만치 않아 돈이 정말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일본에서 귀국한 지 딱 3주 되던 일요일 오전, 취준을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고 흥청망청 노느라 바빴던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말 감성에 젖어 휘갈겼던 패기 넘치는 일기를 조심스레 공유하고자 한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스킵하셔도 된다.  



(※ 경고! : 과도한 오글거림으로 속이 안 좋아질 수 있음)


2016년 5월 1일 일요일 오전 11시경


벌써 5월이다.

일본을 떠나서 한국에 정착한 지 3주가 되었다.

3주 동안 딱히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


책 몇 권 읽고, 영화 몇 편 보고,

집 근처 파리바게트에서 알바를 하고,

한국사 능력시험 인강을 듣고 (오늘 고려시대 끝낼 예정이다.)

토익은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간간이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을 타고 (앞으로도 자주 가야 한다.)

엄마와 동생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가족끼리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


토익 시험을 2주 앞두고 있고,

한국사 시험은 이번 달 28일이니까 둘 다 급하다.

5월은 영어와 한국사에 집중해야 한다.


사실 3주 동안, 이런저런 것들을 공부하면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다.


한국 나이로 스물다섯,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나이.

난 왜 일본에 있는 회사를 굳이 그만두고 왔나. 그냥 다니면 될걸.

한국이 좋아서? 일본이 싫어서?

한국이 좋으면 휴가 내서 자주 가면 되고,

일본이 싫은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익숙해진 지 오래고, 일도 못 견딜 만큼 힘들지도 않고, 사람들도 착하고 좋았고.


근데 왜? 난 한국의 무엇을 보고 여기로 왔나.

일본에선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 아닌가.


그 답은 내가 사실 가장 잘 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나답게 살기 위해서.

나답게 산다는 건 뭘까.

우선 마음을 다잡고 5월부터,

그래 오늘부터 다시 열심히 달릴 거다.


이제 갈팡질팡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확실한 목표와 확실한 계획을 세워서 매진할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달리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달리다가 힘들고 지칠 때도 있겠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으니까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으니까'

이 부분이 킬링 포인트다.

...ㅎ

저 일기를 쓸 당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아침이었으니 술을 마시진 않았을 텐데...

당시 상태가 많이 안 좋았나 보다.


5년 전 일본에서 갓 돌아와

세상 물정 몰랐던 스물다섯의 나는

매우..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젊은 청년이었다.

 

"열정! 열정! 열정!"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앞으로 지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르고

마냥 자신감이 넘쳤던 시절이다...



그렇다.


헬게이트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To be continued...


다음편

 <무스펙 취준생의 백수 탈출기> 시리즈는 매주 1회씩 총 10부작 내외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찌질했던 제 흑역사를 최대한 솔직하게 그려나갈 예정이니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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