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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er Jan 24. 2022

부모님 등골 브레이커?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ep6. 대기업 취업 포기 후 방황의 시간 (feat. 엄마 미안)



2016년 10월.


자소서를 제출했던 스무 군데의 대기업에서 모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동안 애써 현실을 외면해왔지만,

이것으로 스펙으로는 한국 대기업에 명함도 못 내민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앞으로 다시 서류를 낸다고 해도 합격할 거란 보장이 어디에도 없었다. 확률적으로 따지면 도박과 다를 게 없었다.

승률이 불확실한 확률 게임에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긴 싫었기 때문에 대기업 취업을 깔끔하게 접기로 결정했다.


(자세한 내용은 전편 참조 : 쥐뿔도 없으면서 눈만 드럽게 높은 지원자)




#1. 그리고 그 후 : 방황의 시간



대기업 취업을 포기한 후,

일단 닥치는 대로 항상 들락거리던 취업 카페를 돌아다니며 대기업을 제외한 공기업과 중견기업의 채용공고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대기업이 빠진 한국 취업시장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우선 공기업은 전공 필기시험의 벽이 너무 높아 보였다. 아무런 준비도 안 한 상태에서 덜컥 지원했다가는 필기에서 바로 광속 탈락할 것 같았다.

중견기업 채용공고도 찾아봤지만,

중견기업이라고 스펙을 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대기업보다 학점을 더 중시하는 곳이 많다는 인상까지 받았다. 

취준 커뮤니티에서도 중견기업이 스펙을 더 따진다는 의견이 많이 보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귀국 후 한국에서 재취업을 시도한 지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앞으로 여기서 더 노력한들 날 뽑아줄 곳이 있긴 할까?

이쯤 되니 한국에 있는 '괜찮은' 회사 중에 나를 뽑아줄 만한 회사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 사회에서 아무짝에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를 뽑아줬던 일본 대기업에게 감사히 생각하고

깝치지 말고 그냥 계속 다닐 걸,

능력도 없으면서 괜한 객기를 부렸구나 싶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자신감도 완전히 잃어버렸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무력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취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쉬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취준에서 손을 완전히 놓아버렸고,

약 두 달을 방황했다.


친구랑 맥주 맛집 탐방을 다니고,

(이때 부산에 있는 맥주란 맥주는 다 마신 것 같다.)

짧게 국내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봉사 동호회에 가입해 봉사 활동도 하고,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이랑 썸 비슷한 걸 타기도 했다.

가끔 단기 알바를 하면서 용돈벌었다.

취준을 위한 공부는 아예 하지 않았다. 공부할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놀고먹으며 허송세월을 보내다 보니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어느덧 2016년의 끝자락,

12월 중순이 되어 있었다.


백수 시절 친구랑 정말 자주 갔던 광안리 코키 펍 (코젤 맥주 JMT)




#2. 등골 브레이커,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미래에 대한 고민저 멀리 내팽개친 채

대책 없이 신나게 놀아 재끼다 보니

1년간 일본 회사를 다니면서 모은 돈이 금세 바닥났다.


어머니는 취준에 실패한 딸이 딱해 보였는지 쿨하게 당신의 카드를 건네주셨다.

나는 결국 마지막 금단의 카드,

엄카(엄마카드)에 손을 대고야 만 것이다.


처음에는 엄카를 사용할 때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를 살 때도 신중해지고 가능하면 가장 싼 걸로 사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안타깝게도 나는 남들에 비해 유독 적응이 빠른 편이다.


엄카사용하는 상황에 빛의 속도로 적응한 나는 카드소유주가 어머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내 카드처럼 막 써대기 시작했다.

밥값, 커피값, 술값, 꾸밈비, 유흥비...

어느새 부모님 돈으로 놀고먹는데 익숙해져서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부모님 등골 브레이커가 되어 있었다.


부모님 등골 브레이커,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출처: KBS


세상 쿨하게 카드를 건네주셨던 어머니였지만

끊임없이 날아오는 카드 결제 문자에 아차 싶으셨는지,

어느 날 내게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건네셨다.


"딸~ 그나저나 취업 준비는 잘 돼가니^^?"


어머니의 부드럽지만 뼈 있는 한마디가 내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동안 어머니는 내게 단 한 번도 취업을 재촉한 적이 없으셨다.

우리 어머니는 자타공인 현시대 최고의 자유 방임주의 부모님이다.

어릴 적부터 내게 공부하란 말 한마디 한 적 없으셨고, 내가 뭘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항상 존중하고 믿어주셨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랄 수 있었다는 게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이 시대의 현자, 자비로움의 끝판왕인

어머니의 입에서 기어코 '취업 준비는 잘 돼가냐'는 말이 나왔다는 건,

내가 갈 때까지 갔다는 걸 의미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작작 놀고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했어야 하는데,

적당히를 모르고 대책 없이 너무 흥청망청 놀고먹었다.


그것도 부모님한테 빌붙어서 부모님 등골을 쪽쪽 빼먹으면서 말이다.

최악의 불효녀가 따로 없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동안 나를 믿고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신 어머니께 너무 죄송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닌 주제에

스물다섯이나 먹고 집안 살림에 보탬이 돼주진 못할 망정, 부모님 등골이나 빼먹고 앉아 있다니

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부모님께 당장 보탬은 되어 드리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짐이 돼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하루빨리 좋은 직장에 재취직해서 자리 잡고 부모님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제 그만 징징대고

자기 합리화도 그만하고

한량 같은 생활을 청산할 때가 왔다.


부모님의 소중한 등골을 지켜 드리기 위해

다시 정신 차리고 빡세게 취준 모드에 돌입할 시간이다.



다시 돈 벌 시간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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