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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er Aug 21. 2022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긍정의 힘'이 바닥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 되는 생각을 자주 하라는 처방을 내리는 의사는 없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지침들은 대부분 그렇다. "불행하다면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라고 말이다. 불행한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는 것은 손에 못이 박힌 사람에게 "아프다고 생각하지 말라"라고 조언하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을 통해 바뀌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생각이다. 행복의 핵심인 고통과 쾌락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니다. -《행복의 기원》 서은국 저  -






#1. 긍정의 힘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나도 행복한 삶을 꿈꾼다.

세상의 많은 자기 계발 책이나 강의에서 행복해지려면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가진 것에 감사해라' 같은 조언을 한다.


맞는 말 같아서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래, 중요한 건 긍정적인 마인드야!

모든 건 마음먹기 달렸어!'


그들의 조언에 따라

나는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다.


대기업 취업에 실패했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도

예상과는 너무 다른 직장생활에 실망했을 때도

노력에 대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도

부정적인 상황이 닥칠 때마다

'인생은 시트콤처럼'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으

내가 놓인 상황을 희화화하며 극복하려고 했다.


내 브런치에 있는 글들만 해도 그렇다.

'일본 주재원의 시트콤 같은 일상'이라고 해도

사실 이야기 소재만 놓고 보면

무스펙 백수의 암울했던 취준 시절,

뭐 하나 쉬운 게 없는 일본 생활,

보람을 느끼기 힘든 회사 업무,

돈에 대한 열등감, 외로움, 공허감 등

어둡고 부정적인 것들도 범벅이 되어 있다.

다만 그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해서 희극으로 바꾸고자 했을 뿐이다.


부정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도

주위 사람들에게 불평·불만을 하소연하는 대신

시답잖은 농담이나 자기 비하 개그를 던지며 웃음으로 승화시키려고 했다.


내가 느끼는 우울이나 슬픔, 좌절, 외로움 따위의 감정은 '긍정적인 마인드'라는 무기로 때려눕히고 마음속 깊은 곳에 생매장시켜버렸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내 머릿속의 긍정 머신(속칭 '기쁨이')을 연중무휴 풀가동했다.


겉으론 쏘스윗해 보이지만 사실은 꽤나 잔인한 면이 있는 기쁨이 (출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긍정 머신이 고장 났어요



그런데 올해 5월 중순 한국에 잠시 다녀온 이후

내 긍정 머신에 이상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어느새부터 순간순간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아무리 '긍정의 힘'으로 때려눕혀도 좀비처럼 계속 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왜냐면 난 긍정의 힘을 맹신하는 긍정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동기부여 영상과 자기 계발 서적을 뒤지기 시작했다.

자기 계발 유튜버가 알려준 '자기 암시' 문장들을 메모해두고 매일 아침 일어난 직후 주문 외우듯 달달 외웠다.


'나는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좋아하는 일로 행복하게 일한다.'

'나는 모든 면에서 긍정적이다.'

'나는 내 삶에 감사한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다.'

......


자기 암시를 하고 나니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상쾌하게 아침을 열고 활기차게 집을 나선다.

'오늘 하루도 파이팅!!!!!!!!!!'


기분 좋게 회사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고

업무 시작 전 '오늘의 할 일(To do list)'을 우선순위에 따라 정리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내 통제권 밖을 벗어난 일들이 쏟아진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서 밀물처럼 밀려드는 업무를 쳐내기 바쁘다.


솔직히 일에서 보람을 얻기 쉽진 않다.

하지만 여기서 질 순 없다. 모든 건 마음 먹기 나름이랬다.

포스트잇에 '모든 일은 다 도움이 된다' 같은 멋진 글귀를 적어서 모니터 앞에 붙인다.

'전혀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일도 언젠가는 다 내 자산이 될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에 가까운 처절한 자기 암시다. 뿌-듯하다.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 'Connecting the dots'을 참조했다. 크흐.)


스티브 잡스 님의 위대한 명언이 힘을 발휘한 덕분인지 다행히 회사에서는 평점심을 유지하며 업무에 임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은 다 내 자산이 되겠죠..?


그런데 이상하다.

퇴근 시간이 되면 그동안 꾹 눌러뒀던 부정적인 감정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우울함과 공허감, 허탈함, 외로움 등이 뒤섞여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한 기분이었다.

'이 짜식들이 왜 또 난리야.. 집에서 동기부여 영상 보고 긍정 머신 풀가동해서 다 조져줄 테니까 두고 보자..'


이상하다.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동기부여 영상을 봐도 긍정 머신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감정은커녕, 영상을 본 것만으로 마치 스스로가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줄 착각하는 나 자신이 갑자기 참을 수 없이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한 일이라곤 고작 방구석에 누워 유튜브를 본 것뿐인데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자기 계발 유튜버들이 해주는 듣기 좋은 말이 듣고 싶지 않았다.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한없이 무기력하다.


그제야 깨닫는다.

내 안의 긍정 머신이 완전히 박살나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출처: imageshack.com)
박살난 긍정 머신.. (출처: getty images)



분명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는데,

불행하다고 느낄수록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상황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긍정의 힘'이 바닥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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