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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n 16. 2023

후회도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정말 날 위해 말하는 거죠? 그럼 나도 좀 당신 위해 한마디 해볼까요?


 며칠 전 50대 중반의 상사 두분과 대화를 했다. 조금씩은 주변사람들이 아프고 돌봐야 하는 상황이 시작될 무렵인지라 대화의 내용도 그런 쪽으로 흘러갔다. 자녀들이 다 커서 밥벌이도 시작하고 한결 삶이 수월해지나 했더니 이젠 부모와 배우자가 아프다. 그것도 아니면 본인이. 그런 얘길 듣고 있자면 어느 인간인들 가까이서 보면 짠하지 않을 인생이 몇이나 있겠는가 싶었다. 거기에, 직장생활까지. 


그러나 이야기의 방향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갔다. 


"요즘 애들은, 우리 애도 그렇지만 결혼을 안 하려고 해요. 왜들 그러나 몰라."


"몰라서 그래. 몰라서. 늙고 아파보면 다 후회하더라고."


"애 안낳으면 지금은 편하지. 늙어봐. 혼자서 쓸쓸하고 외롭고. 누가 날 돌봐줘?"


"돈이 많음 뭐해. 그런 거 다 소용없어."


'미혼'에 '출산을 안 하는' 그런 후회할 인간의 교집합에 껴있는 날 앞에 두고 두 사람은 한동안 자기 아는 사람이 이혼당해 고독사를 했더라, 내가 아는 여자는 아프니까 후회하더라는.... 그런 얘기를 한참 했다. 

그렇다. 그것은 암묵적으로 나더러 들으라는 얘기였다. 

그 정도의 눈치는 있을 정도로 나도 늙었다. ㅋ

나이가 들면 안 당할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자주 받는 공격이다. 

결혼식장에 가면 환갑을 넘긴 친척이 옆에서 소곤댄다. "신랑 친구중에 좀 찾아봐"

월리야 뭐야. 내가 뭘 찾아야 되는 건가 싶다. 


 남의 인생에 배놔라 감놔라 하는 추잡스런 대화라고만은 하지 않겠다. 그것은 먼저 살아본 인생선배의 진심어린 노파심과, 인간의 생애에 어떤 시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숙제같은 것들을 겪어야만 그것이 완숙한 삶이라고 굳게 믿는 "통상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비일반"적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몰이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 분들은 주변에 혼자 사는 사람들의 문제를 보았기에 그들의 나이대에 도달했을때 가장 필요한 부분이 자유보다는 건강과 가족이라고 보고 미리 말을 해주는 것이다. 


그분들의 나이에 도달하지 않은 나로서는 50대에 들어섰을 때 과연 같은 후회를 하게될지는 모른다. 

안할수도 있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분들도 혼자 애 안갖고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모르기는 매한가지라고 본다. 

마치, 내가 가진 우울증이 멘탈이 약해서라고 굳게 믿고 내 앞에서 "네 병은 멘탈이 약해 생기는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말했다. "그건 너를 사랑해서 하는 말씀이야." 

그 말도 옳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인생을 함부로 말하는" 것도 맞다.


나 역시도 그 사람들이 말한 생각의 흐름을 겪으며 후회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말이 참이 되겠지. 내가 틀린거고.


하지만 난 생각했다. 

아이를 낳는 것도 숭고하고 귀한 일이지만 안 낳고 자신의 삶과 행복에 집중하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라고.

나의 행복을 위해 퇴사를 결심하고 선택하는데 "타의"가 개입되지 않는 것도.


나는 아이를 낳아서 쎄빠지게 키워봐야 시집장가가고 뒤는 돌아볼 것 같냐고 말하지 않는데

그쪽이 아플때 배우자가 불쑥 던진 가벼운 한마디에 상처받고 더 외롭고 쓸쓸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사지 멀쩡한 배우자가 똑같이 나가 돈 벌면서도 집안일 안하고 애도 안 키우고 이중고 삼중고 겪으면 

불행한 삶이라고 그렇게 산 당신은 호구라고 단정짓지 않는데.

왜 그분들은 내 인생을 함부로 얘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프지만 100프로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련다. 


하지만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면 생각을 한번 더 하고 말을 할 순 없나요?


나는 골치아픈 가족은 굳이 만들기보다 안 만드는 게 차라리 낫다고 믿고, 

아플 땐 손잡아줄 가족 대신 고급 실버타운에 가서 요양보호사를 쓸 돈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나 하나 책임지기 벅찬 세상에 나 닮아 골치아픈 아이 하나 더 만들어서 속 썩기 싫다.

태어난 김에 나는 살겠지만 내 노후 책임져달라고 아이를 굳이 낳고 싶지 않다.

모진 시집살이 예고편에 데인 나로선 대한민국에서 결혼도 결코 하고싶지 않다. 

50대에 후회하게 되면 그냥 할게요. 그쪽들도 후회 하면서 사시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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