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다. P가 계획하기 시작할 때의 폭풍우가.
"나 공부를 좀 해야겠어. 가는 곳 관련한 책들 좀 사와."
으잉?
그냥 잘 아는 네가 알아서 가는 대로 따라간다 계속 말하던 우리엄마가 변했다.
"아니, 느그 아빠가 가기 전에 어딜 가는지, 가는 곳은 어떤 덴지 좀 공부하는 게 어떠냐 그래서."
내가 얘기할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역시 부부는 무촌.
그래서 부랴부랴 파리와 프랑스, 스위스 관련 책들을 써치해서 구입해 부모님댁으로 주문을 넣어두었다.
여행지에 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인데 나는 또 다른 한편으로 불안해졌다.
그렇다. 나는 보름간의 프랑스-스위스 여행의 시간표를 모조리 다 짜놓았던 것이다.
일주일 남은 상황에서 P 엄마가 갑자기 급 여행계획을 바꾸자고 하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잘듣는 K 장녀인 나는 그 얘길 듣자마자 머리 속으로 걱정을 하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서치를 하며 XX 문고의 도서들을 결제하고 있었더랬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엄마가 드디어 가는 곳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가기 시작햇다는 것.
좋다 싫다도 모르면 그 여행이 엄마에게 좋은 여행일까? 싶었는데.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 (꼭 그런건 아니지만)
나는 두번 갈 수 있겠지만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의 엄마에게 비행기만 14시간을 타야 가는 곳에 두번 갈 수 있을까? 싶어서 더 그렇다.
내가 어릴 땐 엄마도 J형이었던 것 같다. 감기에 피부병으로 성적이 떨어지자 우리엄마는 나보다 더 불안해하며 연상암기법 학습지를 구독시켜 주셨다. 수학여행 때 입을 옷이 필요하단 말에 당시 대학생들에게 핫한 브랜드들을 검색해서 Ma@@ 라는 브랜드 샵으로 데려가 옷을 사주셨다. 공부하란 구체적인 잔소리는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지만 과외를 제안한 것도 엄마였다. 그렇게 나름의 극성 엄마였던 그녀도 나이가 들자 변한 것 같다. 마치, 엄마와 딸이 바뀐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인가.
"나, 그 저번에 보여줬던 모자 사줘."
"그거? 비싼데.."
"사줘 그거. 나 그거 쓰고 니스 갈래."
"-_- 알았어."
결국 빠르게 결제를 누르는 내 손꾸락.
그래. 그런 거지 뭐.
엄마도 다아~ 계획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