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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l 10. 2023

이 칸은 일등석입니다 알고 타시는건가요?

스위스 열차에서 만난 천태만상 승객들


"이 칸은 일등석입니다. 알고 계세요?"


큰 트렁크를 들고 타려는 우리 모녀를 가로막고 선 사람은 노년의 백인여성이었다.


"네 그런데요?"


"여긴 콰이어트존이예요."


 여자는 마치 우릴 끝까지 못 타게 하려는 듯 앞에 바짝 섰다. 불쾌했다.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내게 무슨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요상한 할망구를 제치고 일등석으로 짐을 기어이 꾸겨넣으며 대꾸했다.


"닥치래."


 기차 검표원도 아니고, 직원도 아닌게 분명했다.

정말 정말 불쾌했다. 동양인은 1등석 기차 타지 말라는거야 뭐야. 거기다. 자기가 뭔데. 내가 들어오면서 입이라도 뗐음 또 모르겠는데 아무 말도 안했고 게다가 입구도 들어오기 전부터.


엄마도 설명을 듣더니 표정이 구겨졌다.


"재수없어."

"Racist같아."


낮은 목소리로, 나는 그 여자가 들으라고 일부러

저 영어단어를 썼다. 솔직히 경로우대 하기도 싫었다. 만약에 그 여자가 다가와 다시 한마디라도 한다면 "왜. 표 보여줘? 너나 닥쳐."라고 할 판으로 씩씩댔다.

 

 그녀는 같이온 일행에게 코리안 어쩌구 하며 속닥거렸다. 우린 진짜 별 말도 없이 갔다. 솔직히 말해 속닥거리며 떠든건 그 할머니였다. 콰이어트 존인 건 영어를 읽을 줄 몰라도 그림으로 표시되어있어서 알수 있었다.  별 경우를 다 겪는다 생각했고 우린 몇 정거장 후에 환승을 위해 그곳을

벗어났다.


 혼자하는 여행이었다면 비싸게 1등석을 끊지 않았을거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긴 스위스여행을 하면서 열차를 많이 탈텐데 좀 덜 피곤하게 다니셨음 했다. 비싸긴 했지만 비행기만큼 차이가 나는 값은 아니라서 그러려니 했다.


 물론 1등석을 올라탈 때 승무원들이 그 전후로

1등석입니다 라고 말은 했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누가 봐도 현지인이 아니니 착각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할머니처럼 길을 막고 방어하듯 가르치듯 말한 사람은 없었다.  무식한 인종차별주의자 할망구 같으니. 우린 욕하면서 그 일을 잊었다.


 스위스에 머무르며 우린 1등석 스위스패스로 이곳저곳을 다녔다. 검표원은 수시로 돌아다니며 표검사를 한다. 그들이 우리가 탄 칸에 와 표를 검사할때마다 인종에 상관없이 2등석과 착각(혹은 착각했다 둘러대는) 사람들이 쫓겨났다. 그래서 직원들이 묻는 것이 이상하진 않았다.


 그러고 며칠 후 오늘아침, 우린 취리히로 향하는 열차 안에 앉아있다. 오지 않는 검표원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1등석의 좋은 점은 쾌적하고 넓은것 외에 사람이 별로없고 조용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가 탄 칸에 갑자기 여덟 명의  중국인들이 들어왔고 기차 안은 순식간에 중국으로 바뀌었다. 자기네 나라 말로 웃고 떠들고...누군가 그들에게 조용히 해달라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저사람들 1등석 아닐거야.

순간적으로 나는 생각했다. 착각했다 말하는 사람 혹은 들어오다가 검표원을 보고 식겁해 나가는 사람들 반 이상이 중국인들이었다.


 조용히 해달란 요청이 세번째 이어지자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그러더니 한명은 손톱을 깎기 시작했고 한 남자는 말을 멈추자 기침에 하품에 가래긁는 소릴 약 20분간 계속했다.

이번엔 여자가 유튜브를 이어폰없이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되지만, 그 인종차별주의자 할망구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표가 1등이고 2등이고 간에 그냥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싫었고 그들이 중국인이었기에 나도 중국인(동양사람)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모든 중국사람이 그렇게 개념없지 않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있었을거다. 문젠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결국 관계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피해를 입힌다는 거다.


 여행을 하면 사실 그런 불쾌한 사람보단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을 훨씬더 많이 만난다. 난 어떤 여행객이었을까. 여행자는 처음이라 실수할 확률이 많다. 그렇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그 나라의 에티켓과 규칙은 지키려고 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그게 내 나라에서 내 여행 후에 올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테니 말이다.


 그래도 난, 그 할머니처럼 중국인 앞을 가로막진 않을거다. 떠든다면, 직원을 부르러 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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