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 위의 앨리스 Oct 27. 2024

쭈굴 룸메이트에서 혐관까지, 우리는 반려메이트

헤이 곰돌! 누나가 왔다

헤이 곰선생!!! 

내가~왔따~!!!! ㅎㅎㅎ


뭔지 알지?

부모님댁 중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누나는 항상 "내가 왔다!"라고 외쳤어. 

마치 주인공이 등장한 마냥, 크고 당찬 목소리로 말이지.

부모님은 내 등장소리를 늘 어이없어 하셨어. 

적은 나이도 아니고, 뭐 잘난 것도 없는 자식이 집에 올 때마다 애도 아니고 

웃기잖아?


근데 사실은 있지. 누나가 그런 덴 이유가 있었어.

귀가 어두워진 네가 냄새도 소리도 못 듣고 누나가 집에 가도 전혀 반응이 없더라고.

가까이 가서 만지면 화들짝 놀라며 왕~!짖던 너에게 누나의 등장을 큰소리로 알려주고 싶었어.

그렇게 누나가 "내가 왔다~"라고 외치면 넌 늘 그르렁 하며 못마땅하다는 듯 반응했었지.

예전처럼 팔짝 폴짝 뛰며 핥고 오줌을 지리고 난리부르스를 추던 네 모습은 없지만

누나는 그런 네 싫어하는 반응도 기뻤단다.

어쨌든 왔어? 하는것만 같았거든.

너의 그 힘찬 경운기 소리를 떠올리면 아직도 웃음이 나.

너를 약올리려고 일부러 앞에 앉아서 으르렁대는 네게 개짖는 소리 흉내내면

너는 꼭 지지않고 응수했었지.

나 아직 짱짱해~!라고 하는 것 마냥 고개를 쳐들고 짖던 네 그 모습까지도 

가족들에게 기쁨을 주었단다.


있잖아. 누나 요즘 너를 닮은 듯 닮지않은 멍멍이와 함께 지내고 있어.

너도 봤을려나?

너보다 예쁘지는 않지만 솔직히 너보다 조금 착해.

기억나?

나의 20대 백수시절. 우리가 룸메이트였던 그 시절.

넌 꼭 내가 공부하던 책상 아래서 누나를 보고 앉아 해바라기처럼 언제쯤 널 쳐다보나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기다렸잖아.

물론~ 그러던 네가 으르렁~이 되었지만....그래도 그 시절에 넌 그랬잖니?

이 친구는

누나가 작업하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잖아?

누나가 앉아있는 책상 주변에 쭉뻗고 누워서 얌전히 누나의 작업이 끝날때까지 기다려.

그리고 누나가 외출해도 짖지도 울지도 않는단다.

돌아오면 아주 천천히 있던 곳에서 걸어나와서 

왔어? 하는 듯이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어.

배변은 또 어떻고? 맨날 끄트머리에 싸서 엄마에게 혼나곤 하던 너와 달리

아주 가운데다가, 오차도 없이 딱 해결한단다. 너무 똑똑하지?

그런데....

갑자기 며칠 전부터 이녀석이 꼭 네 전용존 앞에다가 배변 실수를 한다. 

너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네가 못마땅했을까.

아니면, 네가 몇달 전 남겼던 흔적의 향 때문일까?

답을 알면 알려줄 수 있겠니? 

강아지가 아닌 인간인 난 알수가 없어 가끔은 답답해.


이 친구와 너와 자주 가던 공원을 가끔 산책한단다.

혼자서 걸을 엄두를 낼 수 없던 그 공원도, 함께하니 걸을 만 하더구나.

얼마 후면, 너와 함께 즐거운 산책을 했던 집앞 공원에도 흰 눈이 내리겠지?

네가 처음 왔던 가을이 지나고 눈이 내리던 겨울날 너와 산책하던 기억이 뚜렷한 그때가 오면

그때는 오롯이 너만 생각하며 혼자 걸을게!

너의 예쁜 눈을 가리던 털을 잘라내려 엄마와 낑낑대며 오르던 그 언덕으로...

강아지별에서 잠시 내려올 수 있다면, 함께해줘!!


너의 경운기 시동거는 소릴 그리워하는, 눈나.


(좌) 눈나를 맞이하던 5갤 곰돌 (중) 작년 눈나를 보던 곰돌 (우) 곰돌~이라고 부르는 눈나에게 경운기 시동거는 곰돌.
룸메이트 쭈구리(?) 시절 아기 곰돌.
하도 쳐다봐서 무릎위에 올려줘봤다. 업무모드 곰돌이.


이전 03화 나도 강아지는 처음이니까 너도 사람은 처음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